이근미기자의 의리의집단해병대 제2편 <바퀴벌레 다음으로 싫은 해병?>
해병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해병 출신 누가 맞는다면 달려가 가세한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해병 출신이라면 함부로 건드리지 않을뿐더러 기동순찰대가 순찰을 할 때 악명 높은 조직 폭력배들도 해병만큼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 명의 해병 출신들과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음식점에서 목청을 높여 타군을 예로 들어가며 얘기를 하였다. 타군 출신들이 덤벼들면 어쩌느냐고 우려를 표명하자 모두들 「누가
해병대를 건드리느냐, 그랬다가는 순식간에 해병들이 몰려들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군용열차가 있을 때는 휴가 가는 해병들이 말썽을 많이 일으켰다. 해병들이 섞여 있는 군용칸에는 반드시 사건이 벌어졌다. 모자를 들고 다니면서 육군들에게 돈을 걷고 그것도 모자라서 육군들은 다 쫓아내고 해병 몇 명이 한 칸을 몽땅 차지하고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일이 잦아지자 4대 김성은(金聖恩) 사령관이 타군에 피해를 입히지 말라는 특별지시까지 내렸다. 하지만 군용열차에서의 횡포는 그 후에도
해병대의 오랜 전통으로 계속되었다.
용산에서 만난 현역 해병들은 요즘은 군용열차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다고 말했다.
『상륙 후 빨리 옷을 마르게 하기 위해 바지가 다리에 붙지 말라고 바지 안에 링을 찹니다. 첫 휴가 나왔을 때 링을 철컥거리며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니까 육군이 여러 명 서 있다가 양쪽으로 쫙 갈라서는 거예요. 그게 신이 나서 첫 휴가 때는 괜히 폼잡고 다녔죠. 하지만 두 번째 휴가 때쯤이면 그런 객기 어린 짓은 하지 않습니다. 지금 육군에게 공연히 시비 거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그는 그런 악명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지 여자들에게는 여전히 인기가 없다고 서운해했다.
『오늘 신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자 둘이서 우리를 보더니 갑자기 「어머
해병대야」 하면서 막 도망가지 뭡니까.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퀴벌레고 그 다음이
해병대라고 하더군요. 알고보면 우리도 부드러운 남자인데...』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기만 해도 피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럴 때는 정말 기분이 좋지 않노라고 덧붙였다.
예전의 악명 때문에 여전히
해병대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개병대」인데 「개병대」라는 말에 대해 해병들은 그다지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서울을 제일 먼저 열었다는 개병대(開兵隊)라는 뜻과 개처럼 주인에게 충성한다는 의미라는 설명이었다.
美
해병대의 마스코트인 아메리카 피플즈 테리아라는 개는 싸움터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으며 최후의 순간까지 공격하고 죽을 때 절대로 신음소리를 내지 않는 용맹스럽고 신비로운 개라고 한다. 한번 물었다 하면 주인의 명령이 없이는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놓지 않을 정도로 충성스러운 그 개처럼
해병대도 조국의 개가 되어 온몸을 불사르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전쟁이 나면 여권 들고 외국으로 달아나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 해병 예비역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당장 전쟁터로 달려갈 겁니다』
충성스런 개병대인 자신들은 코리아 피플즈 테리아가 될지언정 비겁하게 조국을 버리고 도망가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해병대에 입대하는 부류를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로
해병대의 고된 훈련을 통해 자신을 단련시키고자 하는 그룹이다. 두 번째로는 막연한 동경에서 지원하는 경우이다. 그러니까
해병대의 신화,
해병대의 전통이 멋있어 보여서 지원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소심한 성격을 개조시키라는 주변의 권고를 통해서 입대하는 경우이다. 그 외에 아버지의 대를 이어
해병대 출신의 자녀들이 입대하는 부류와 마지막으로 징집되는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지원 입대하는 해병들은 「나가자 해병」이라고 부르고 징집에 의해서
해병대로 가게 되는 경우는 「가보자 해병」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요즘은 「가보자 해병」이 되기는 힘들다. 보통 40대 1의 경쟁을 뚫고 해병에 입대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월의 경쟁률은 70대 1이었다. 12, 1, 2월에 날씨관계로 지원하는 해병이 없을 때 징집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우선 신체검사에 합격해야 하는데 첫째 눈이 나쁘면 해상침투를 할 수 없으므로 현역 해병 가운데 단 한 명도 안경 낀 사람이 없다.
해병대들은 체력적으로 우세하다는 것에도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해병이 이렇게 인기 있는 이유는 군대생활을 통해 자신을 단련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나가자 해병!」>
용산에서 만난 세 병사는 모두 자신들을 「나가자 해병」이라고 소개했는데 대학에 다니다가 군대에 가게 된 그들은 지금까지 고생 없이 자랐고 앞으로도 고생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 일부러 고생해 보려고
해병대를 지원했노라고 말했다. 또 해병기동대 조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기동대를 통해 봉사하려고 해병을 지원했다고 덧붙였다.
『어떤 여자가 마음에 들 때 꼭 이유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무조건 좋은 것처럼 해병이 그냥 좋아서 지원했습니다. 한순간에 끌렸습니다』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심지어 국적을 바꾸거나 멀쩡한 다리연골 절개 수술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판국에 그들의 그런 소리를 들으니 참으로 듬직해 보였다.
『해병정신은 세뇌되는 것 같습니다.
해병대에 들어가기 전에 4일간의 가입소 기간이 있습니다. 그때 신체검사를 다시 하고 해병정신을 주입 받습니다. 「나는 가장 강하고 멋진 해병이 되겠습니다」하고 수없이 외칩니다.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끝없이 외치다 보면 정말로 가장 강하고 멋진 해병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가입소 기간 동안 멋진 해병이 되겠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무적해병, 귀신 잡는 해병, 신화를 창조하는 해병 등 무수한 구호를 외치면서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쉬지 않고 해병을 외치는데 복무 기간보다 단지 나흘간 동안 해병을 더 많이 부르짖게 된다고.
해병 예비역들도 이 가입소 기간을 세뇌교육 기간이라고 얘기했는데 수없이 해병을 외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해병이 되어 있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입소 기간과 6주간 훈련, 그리고 다시 후반기 4주 훈련을 받으면 그 누구라도 강인한 해병정신을 단단히 주입받게 된다고 얘기한다.
그 기간 동안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극한의 훈련」을 거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대답이다. 美
해병대를 「제조창」이라고 부른다는데
해병대는 제조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해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제조창이라는 말이 아주 실감난다고 말했다.
『공수, 유격, 암벽, 헬기 훈련 등을 마치고 나자 내가 정말 훈련을 해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부심과 뿌듯함이 몰려오더군요. 포항에서 훈련을 받고 각자 배치를 받아 떠나올 때 그 동안의 긴장이 풀리면서 모두들 연병장에서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혹독한 훈련을 거치고 드디어 해병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예전처럼 심한 기합은 없지만 해병만의 끈끈한 동지애를 기르기 위한 「빵빠레」라는 훈련이 있다고 들려주었다. 11월에 팬티만 입고 옥상에 누워 바닷바람을 받을 때 상당히 추웠지만 모두들 그렇게 누워서 빵빠레 동지애를 기르면서 해병정신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신세대 해병들은 그 모든 훈련을 선배들을 생각하면서 이겨냈노라고 얘기했다. 뿐만 아니라 해병 수난사와 함께 지금도 가장 가난한 군대라는 사실을 그들도 곱씹고 있었다.
『긴장하기 때문에 사고는 별로 없습니다. 「가보자 해병」들도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어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도 빨간 명찰만 달면 해병이 될 수 있다는 말처럼 훈련을 하다 보면 누구나 견딜 수 있게 됩니다』
신세대 해병들은 군대 와서 몸무게가 10kg이나 늘 정도로 강인해졌다는 데 몸뿐만 아니라 정신력까지 강해져 마치 슈퍼맨이 된 듯한 느낌이라고 전한다.
<대를 이어 해병하자>
해병 출신들은 자녀가
해병대에 지원하여 해병 가족을 이루는 것을 몹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해병 예비역들의 자녀들은 대부분
해병대에 지원하는데 아버지가 권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해병대에 지원한다는 것이다. 취재 중에 만난 해병 예비역의 자녀들은 대부분
해병대였다. 자녀가 평발 이어서
해병대에 가지 못했다며 몹시 서운해하는 해병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사나이가 되려면
해병대에 가야 하고 해병혼을 배워야 사회 생활하기가 수월하다는 답변이었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는 월남전 참전 해병을 만났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해병으로서 최전방에서 싸우다가 몹쓸 병을 얻었지만 자녀는 반드시 해병에 보내겠다고 말했다.
『월남전에 참전한 해병이라면 대부분 한 사람당 100명 정도의 적을 섬멸하였을 겁니다. 돌격부대로 항상 앞장서서 정글 속으로 뛰어들어가 기지를 마련했습니다. 부하가 한 사람 전사하면 상관들이 두들겨 맞으면서 전투를 했습니다. 포위되어서 며칠간 굶으면서 전투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전투를 하였던 그들은 지금 그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지만, 그들은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데 분통을 터뜨릴 뿐 자신들이 해병으로서 전장에서 싸운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광수씨의 경우는 5부자 해병으로
해병대 내에서 유명한 해병가족이다.
『내가 특별히 해병에 지원하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자진해서 가더군요. 둘은 장교로 둘은 사병으로 제대해서 모두들 훌륭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해병대 출신이라면 패륜사건 같은 걸 고민할 필요는 없어요. 상관에게 절대 복종해야 하는 것이 해병정신인데 해병 선배인 아버지를 해칠 리가 없죠』
홍사덕 의원의 아들도 해병 702기로 현재 연평도에서 복무 중이다. 해병정신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투지」라고 정의한 홍의원은 어려운 일을 해병정신으로 돌파했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전한다. 홍의원은 의장대 출신으로 지금도
해병대 사령부 의장대 출신 동우회 모임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해외동포 해병들은 자녀를 입대시킬 수 없자 지난해부터 1사단에 자녀들을 입소시켜 2주일 동안 해병과 똑같은 훈련을 받게 하고 있다. 이 일을 기획한 美 동부지역 해병전우회 한신일 회장은 지난해 30명이 훈련을 받았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올해 7월에는 100명을 입소시키기 위해 지금 열심히 준비중이다. 올해는 훈련을 3주로 늘려 한국의 발전상도 돌아보게 할 예정이다.
『해병들과 똑같이 훈련을 받았어요. 제식훈련 집중동작 산악훈련 수색교육을 받고 해군 함정도 탐방했죠. 첫날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니까 먹지 않더니 다음날부터는 배가 고프니까 아무 거나 가리지 않고 먹더군요. 교포들의 가장 큰 걱정이 바로 자녀교육입니다. 짧은 기간이나마 해병에 입대시키고 나니 마음이 놓입니다. 미국에서 자유스럽게 살던 애들이 강한 훈련을 통해 강인해지고 또 해병정신을 통해 조국을 깊이 인식하게 되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습니다』
<국내 172개, 해외 32개 지회>
한 회장은 제 2기 교포 2세 해병 훈련을 위해 내한했는데 교포들이 생각보다 그리 넉넉한 것이 아니어서 경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중이라고 일러주었다. 특히 이 행사에는 반드시 해병의 자녀가 아닌 일반교포의 자녀들도 포함된다고 한다.
현재
해병대 해외지부는 미국 25개, 캐나다 3개, 브라질 1대, 아르헨티나 1개, 호주 1개, 파라과이 1개 등 총 32개 지회가 결성되어 있다.
『해외 해병 출신들은 외롭고 힘들어 모군(母軍)를 더 깊이 생각하죠. 어쩌면 본국의 전우회보다 더 똘똘 뭉쳐 있을 겁니다. 미국의 경우 대여섯 시간이나 달려가서 서로 교류하기도 합니다. LA폭동이 났을 때 그 지역 해병전우들이 교민들을 직접 도왔고 가지 못한 다른 주의 해병들은 모금해서 동포들에게 전달했습니다』
한인(韓人)커뮤니티 범죄예방, 한인 행사시 질서유지, 지역 순찰, 사고시 신속히 신고하여 경찰 업무 협조 등의 목적으로 창설되었는데 각 지회마다 기동대를 조직해 범죄예방에 나서다보니 미국 경찰들에게 해병기동대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더욱이 219년의 역사를 가진 美
해병대가 미국 내에서 선망의 대상이다 보니 한국
해병대 출신들도 덩달아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美 해병들이 재미(在美) 한국해병 전우회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어 요청하지 않아도 그들의 신문에 한국해병전우회 소식도 싣고 교류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고 한다. 또 범죄자들로부터 피해를 당할 때를 대비해 보험에 들 수 있도록 주선하겠다는 제의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 기동대 차량은 없지만 기동대원들은 자신의 차에
해병대 마크를 붙이고 다니면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광복절에는 모든 한인들이 태극기를 게양할 수 있도록 홍보활동을 펼칠 예정이라고 한다.
7월 27일, 워싱턴의 케네디기념관 앞에서 한국전쟁 기념탑 및 공원 개막식이 열린다. 美
해병대에서 한국 해병이 오겠다면 미국 해병이 길거리에서 자더라도 자신들의 숙소를 제공하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강경서씨가 전한다. 전세계 24개국에
해병대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미국과 태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자랑하고 있다. 전세계 해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긍지가 높으며 모두가 형제 해병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전한다.
87년에
해병대 사령부가 재창설되자 88년 4월 8일에는 해병 예비역 조직체인 해병 전우회가 발족되었다. 현재 전국적으로 172개 지회와 광역시 및 도 단위에 7개의 연합회가 조직되어 있으며 이 중 102개 지회에서는 기동봉사대를 운영하고 있다. 70만 해병 예비역 중 절반인 약 35만이 어떤 형태로든 해병전우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한다.
해병정신 중에 애민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해병 기동 봉사대원들은 주로 야간 방범활동, 민생치안 사범 단속 협조, 교통정리 지원, 산악 및 해상구조 활동, 환경보호 및 감시체제 활동을 주업무로 하고 있다.
<해병 가족도 해병>
87년 경기도 안산시의 해병 전우들이 치안부재 현상이 일어나자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방범활동을 벌인 것이 발족의 계기가 되었다. 강남해병전우회 기동대장 안만영(安萬永·56세·해병 157기)는 기동대의 역할에 대해 이와 같이 설명한다.
『범죄예방 차원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사법권이 없기 때문에 선도차원에서 일을 하지만 경광등을 단 기동순찰대 차량이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면 범죄가 줄어들 건 분명한 사실이죠. 가끔 주민들이 고맙다며 드링크나 라면을 들고 올 때면 보람을 느낍니다』
서울 강남전우회 회원은 약 280명 정도인데 이들은 주 4회 교대로 교통정리와 야간순찰을 한다. 교통정리는 오전 7시부터 9시, 야간순찰은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하게 된다. 취약지구인 양재천 주변 순찰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주로 20대들이 술에 취해 말썽을 많이 일으킨다고 한다. 술 취한 사람들을 차에 태워 집에 데려다 주기도 한다.
『부인들이 도와주어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부인들이 돌아가면서 밤마다 간식을 준비해 줍니다. 해병 가족들도 해병이 다 되었지요』
안만영씨는 해병 행사 때면 온가족이 해병 복장을 입고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일러준다. 강인한 성격의 해병들이지만 부인들에게는 부드럽다는 설명과 함께 그래서인지 부부문제로 고민하는 해병은 별로 없다고 전한다.
기동봉사대 외에도 친목단체로 90개 단체가 가입되어 있는데 직능별로 공병, 보급, 헌병, 보병, 재무, 택시 기사회, 기독선교회 등이 있으며 직장별로는 창원공단 천자봉 연합회, 안산 기안산업 해병전우회, 울산 현대해병 전우회, 9·28 친목회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해병전우들의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 기동봉사대는 주로 자영업을 하는 40~50대 중년들이 참여를 하고 20~30대는 직장 내에 조직되어 있는 기동봉사대에서 활동한다. 또한 각 대학마다 해병전우회 모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면을 걸고 사는 사람들>
지금도 조직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지난 4월1일 아산만 기아자동차 해병 봉사단 발대식이 있었다. 행사 때마다 해병들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하는 등 활동을 하자 회사측에서 정식으로 발족식을 하라고 권유를 했던 것이다.
이날 발대식에 전국의 해병전우회 위원장들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었는데
해병대 행사가 있을 때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지는 것이 해병만의 전통이다.
『해병 위장복을 입고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우리 해병들은 몹시 좋아합니다. 그 옷을 입고 싶어서 행사에 참여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예요. 누가 경비를 주는 것은 물론 아니죠. 어디서 해병 행사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모두들 자비를 들여 달려가서 축하를 하는 겁니다. 해병기동대 차량도 모두들 회원들이 스스로 갹출을 하여 마련한 것이지 누가 도와준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해병이 좋아서 함께 모여 일하는 것뿐입니다』
김기수씨는 아무런 이권도 어떤 특혜도 없는 일이지만 모두들 즐겁게 참여한다고 덧붙인다.
해병기동전우회가 단순히 마을 순찰만 도는 것은 아니다. 위급할 때는 발벗고 나서서 재난을 막아낸다. 문민정부 들어서서 네 번이나 대통령 표창을 받았는데 아시아나 항공사고시 인명구조(목포 해병전우회), 폭우시 인명구조봉사(영월 해병전우회), 위도 해난사고시 봉사(군사 해병전우회), 엑스포 행사시 봉사(대전서구 해병전우회) 활동 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활동을 벌일 수 있었던 배경을 유화선(劉和善·54세·해간 32기)씨는 설명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역이건 예비역이건 「나는 해병」이라는 일종의 자기 최면을 걸고 사는 것이 해병입니다. 인간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를 증명해 보고 그 한계를 넘어섰을 때 「죽자」고 하면 죽을 수도 있는 게 해병정신이죠. 대통령 표창을 받은 영월 해병전우회의 일입니다. 폭우가 내려 사람이 섬에 갇혔어요. 상황이 위급했는데 악천후 때문에 헬기로도 구조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예비역들인 해병 인명구조 요원 세 명이 보트를 타고 가서 사투 끝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했어요. 잠시 후 그 작은 섬은 물에 잠겼어요. 이건 구조 기술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나는 해병」이라는 자기 최면, 자부심, 명예를 늘 지니고 있다가 용기가 필요한 그 순간에 적용하는 기질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실제로 어떤 해병은 자녀의 생활기록부 종교란에
해병대라고 써넣었다고 하는데
해병대를 신앙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해병들은 스스럼없이 말했다.
해병기동봉사대 못지 않게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단체가 바로 해병 예비역들로 조직된 청룡 환경연합회와 한국 환경경영 연합회이다. 청룡환경 연합회는 정식 등록단체로서 환경평가 때 공식 초청되는 단계에 이르렀고, 한국 환경경영 연합회는 22개 지부를 두고 활발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애경사가 있을 때면 해병들의 단결력은 또한번 빛을 발한다. 특히 상(喪)을 당한 해병전우는 손쉽게 장례를 치를 수 있다. 해병전우가 사망했을 경우 해병 정복을 입고 와서 마치 군대장처럼 운구에서부터 장지 뒷마무리까지 절도있게 처리해 준다. 가끔 해병들의 끈끈한 의리를 보고 기동대 차량을 제공할테니 명예해병으로 가입시켜 달라는 청탁(?)을 해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예전에
해병대의 육성과 발전에 이바지한 인사들에게 명예해병증을 수여한 적은 있다. 국어학자 이희승 박사, 고려대 김성식 박사, 여류작가 이명온 여사, 문산농고 이경재 교장, 종군 작가 김중희씨 등이 그분들이다.
해병의 발전을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해병들도 많다.
해병대 하교 160기인 최돈수 씨는 302면에 달하는 「해병사」를 혼자서 발간해 내는 저력을 보였으며, 해병정훈동지회 회장 정채호(鄭采浩)씨는 해병에 관한 책을 10권 이상 출간한 바 있다. 또 변기룡씨는 1년6개월간 작업한 끝에 49년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지금까지
해병대 장교들의 주소와 전화번호 인적사항을 총망라한 「해병장교가족」이라는 책을 펴냈다.
<너무 설치는 거 아닙니까?>
개인이 이런 무모한(?)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해병의 특유의 돌파력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해병들은 입을 모은다.
46년간 배출된 70만 해병 예비역들이 사회 요소요소에 활동하고 있다. 홍사덕·박찬종·장석화·박구일·허재홍의원 등 현역 국회의원과 정창화 3선 의원을 비롯한 전직 국회위원 다수와 김성은 전 국방장관, 김기춘 전 법무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을 다수 배출한 바 있다.
언론인으로는 현소환 연합통신사 사장, 안병훈 조선일보사 전무, 윤혁기 서울방송 사장 등이 있으며 김용철 전 대법원장, 선남식 전 고법판사, 김문희 현 헌법재판소 판사를 비롯해 많은
해병대 출신 법조인들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체육계에서도 해병 예비역들의 활발한 활동이 펼쳐지고 있는데 김정남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 94월드컵 국가대표 김호 감독과 허정무 코치, 한양대 축구부 감독인 이회택씨 등이 모두
해병대 출신이다.
경제계 인사로는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 엄종일 건영 대표이사 등이
해병대 출신이다. 소설가로는 김용성·오유권·정건영·천금성씨 등이 눈에 띄고 패션 디자이너 이동수씨도
해병대 출신이다.
원영무 인하대학교 전 총장, 이필원 KIST 시스템공학실장, 차문섭 단국대학교 대학원장, 서울대 김진세 교수, 중앙대 최정호 교수 등 학계에
해병대 출신이 유독 많다.
신영균 예총 회장, 장수봉 PD, 작곡가 정풍송씨, 코미디언 구봉서·임희춘씨, 탤런트 임채무씨 등도
해병대 출신이다.
특히
해병대 출신 가수들이 많은데 최희준·남백송·박일호·오기택·남진·박경원·윤항기·진송남·김흥국씨 등이다. 박양원 전 경희의료원장, 장익열 전 한강성심병원장, 민병철 현대 중앙병원장 등 의료인 중에도
해병대 출신이 많다.
취재 중에 타군 출신들에게
해병대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더니 너무 설친다, 너무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친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다, 할 일도 없다 등 대체로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해병이니까」라고 해병과 똑같은 답변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변기룡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각 지역에 있는 해병전우회 특히 기동봉사대의 활동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국민들이 없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러 해병 출신임을 내세워 폼만 잡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순수한 마음에서 기동봉사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확실히 보기 드문 일>
또다른 해병예비역들은 질투에서 나온 말이 아니겠느냐, 설쳐서 잘못된 것 있느냐, 많은 사람이 움직이다 보면 잡음이 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정도로 응수했다.
홍사덕 의원은 유난스러운 단합으로 간혹 배타적이라는 인상을 주기는 하나 반드시 그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타군에 비해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되어 자랑스럽습니다. 간혹 지나치게 극우적인 행태를 보인 적은 있으나 우리 사회에는 그런 부분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해병전우회로부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모든 해병의 자발적인 도움이 있었을 뿐이라고 얘기했다.
해병전우회는 어떤 정치색도 띠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순수 친목, 봉사단체이므로 정치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해병회보서 1년6개월간 수많은 해병을 만난 여기자 김경남(金炅南)씨는
해병대원들과 생활하다 보니 자신도 해병이 다 되었다고 한다. 언어습관도 많이 달라져 자신도 모르게 「새발의 피」가 아니라 「새발의 미스무시(무좀)」라고 말할 정도라며 웃는다.
『특수문화에 관심이 많아 입사했어요. 특수문화의 좋은 점을 일반문화화 시키는 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해요. 해병의 가장 큰 특징을 들라면 단결력을 들고 싶어요. 기수 하나로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기이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직업도 다양하고 성격도 틀리지만 이들은 해병이라는 이름 하나 아래 똘똘 뭉쳐 있는 것 같아요. 신기할 정도입니다. 기수에 따라 서열이 매겨질 뿐 다른 조건은 다 무시됩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지금까지 취재한 사람 중에서 서울 종로5가에서 문구사를 운영하는 사람과 안산에서 구두닦기를 하는 해병 예비역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문구사를 하는 사람은 종업원으로 취직하여 자수성가한 분인데 갑자기 불이 나서 알거지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다시 노력해 다시 사업을 일으켜 세우는 모습을 보고 그 정신이 놀라웠다고 전한다.
「자기 자신을 끌어 올리는 정신」
안산에서 구두닦이를 하는 사람은 서울 강변 포장마차 주변에서 활개치던 폭력배였는데 자기 주먹을 알아 줄 것 같아
해병대에 입대하였다가 적응을 잘 하지 못해 군대생활 내내 거의 영창에서 보내다 제대하였다. 제대 후에도 방황하다가 자신이 사회악이라는 자각을 한 후 전우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선후배들을 통해 그제야 해병의 참뜻을 깨닫게 된 그는 구두닦이를 시작하여 새 삶을 살면서 지금은 가출 청소년 7명을 돌보고 있다고 한다.
『
해병대들은
해병대 작대기 하나를 논 서마지기하고도 안 바꾼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녀는 해병정신을 「자기 자신을 끌어올리는 정신」인 것 같다고 정의했다.
중앙대학교 국문과 김선풍 교수(金善豊·해병 121기)는 해병들의 모임을 단순한 무리의식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의무감이 아니라 목적의식을 갖고 군대에 가서 혹독한 훈련을 거치고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제대 후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역정신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겁니다. 기독교 문화가 자본주의를 살찌게 했듯이 해병들의 건전한 리더십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풍요로운 사회가 되면서 사회정의가 흔들릴 때 의로운 일에 뛰어드는 집단이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요』
이익이 따르지 않는 일, 의무조항이 아닌 일. 그런 일을 해병예비역들은 하고 있었다. 그건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가며 살아가야 하는 요즘 세상에서 확실히 보기 드문 일이다. 그들은 스스로 의욕을 돋우며 서로서로 칭찬해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해병이 좋아서 해병에 미쳐서 해병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그들은 무작정 그렇게 하고 있다●
이근미기자 홈페이지 :www.rootlee.pe.kr
첫댓글 해병에 긍지를 다시금느껴봅니다,,,해~~~병
그 정신 영원하리......................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