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석연경 선생님의 <연경인문화예술연구소>
<영미시와 사랑을 시작하는 가을> 강연
서울, 포항 밖에서 하는 첫 개인 강연.
모든 ‘첫’은 셀레는 일. 강의야 늘 하던 일이지만 이렇게는 ‘첫’
KTX로 포항 가는 시간만큼의 거리를 달려 닿은 순천, 순천만의 고향.
10여년 전 순천만에서 만났던 고교동창 용구가 반반차를 내고 찾아와 반겨준 첫 시작부터 아담하고 환한 연구소와 소장 석연경 시인과 만남까지 편하고 반가운 시작.
연경 시인이 참석하실 분이 적겠다고 연신 걱정하고 미안해 하는 것과는 달리 무려 일곱 분^^이나 함께 하셨다. 강의건 강연이건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면 반가운 건 당연하지만, 한 번 하고 말 게 아닌 모든 일에서 결국 중요한 건 못/안 오신 수십 명보다 시간과 마음 내어 그 자리에 참석해주신 분. 한 분이라도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마음을 나누는 그 시간이 전부인 것. 모든 다음은 바로 지금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예정된 1시간 30분 동안, 브라우닝 부부, 존 던과 앤 모어, 매슈 아널드와 마가렛, 그리고 예이츠와 모드 곤의 사랑과 애증, 삶의 이야기를 전하고 그들의 시를 함께 읽었다. 내가 번역한 시를 참석하신 분들이 읽고, 나는 영시를 낭독했다.
시에 담긴 개인사, 당시 사회 상황의 반영과 함께 아널드의 초상화를 보면서 얼굴에 나타난 아널드의 삶과 시, 그리고 운명의 닮음을 해석하는 교실용 관상학까지. 시간 상 키츠와 패니 브라운의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그래도 충분했다. 1시간 40분은 금방 지났다.
마치고 사진찍고 책 사인하고 끝내는 순서였는데 참석하신 분들이 아쉬워했다. 질문하고 답변하는 가운데 시와 영시, 문학을 대하는 태도 같은 이야기들이 나왔고, 자연스럽게 내 시 이야기까지 옮겨갔다. 연경 시인은 내가 열차 놓칠까봐 연신 걱정이었지만 이야기는 한 시간을 흘쩍 남겨 9시 40분이 되어서야 차 시간때문에 끝났다. 그 시간에 함께 하신 분들 한 분 한 분의 마음이 오롯이 내게 전해졌다. 나도 내 이야기를 가감없이 했다. 깊게 교감하는 시간이었다. 이구동성 한 번 더 하자 하셨다. 한 번 더 가게 될 것 같다.
석연경 시인님, 제안 받아 애써 준비하고 마음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 KTX는 새벽 한 시가 다 되어 용산역에 도착했고, 집에 오니 두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샤워하고 앉아 잠깐 친구 용구를 생각했다.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녀석. 십 년만에 만났는데,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옆방 찾아가 만난 것 같은 친구. 그때 용구와 포장마차의 한때가 발표되지 않은 내 시로 남았었다.
용구
여국현
3교대 쇳공장 노가다가 꿈은 무슨 꿈
개소리 집어치우고 술이나 퍼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여리기만하던
공고동기 용구
쇳공장 교대근무 5년에 남은 건
술과 야근에 절인 구겨진 몸뿐이라며
연신 소주를 들어붓다
엎어져 잠든 네 어깨 위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할퀴고 지나갈 때
나는, 보았다
네 콧등을 타고 흐르던 한 줄기
굵은 눈물, 속에
투명하게 응결된 우리들의 절망
혹은,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