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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한복음 14:1-31
여러분은 길을 잃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산중에서 길을 잃어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낯선 도시에 가서 길을 잃기도 하고 한 밤 중에 방향감각을 잃고 길에서 헤메기도 합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를 길을 잃고 잘못된 인생길로 가는 양이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바 몰라하고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천국에 대한 소망을 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에는 위로와 희망이 차고 넘칩니다. 하지만 도마는 이해를 못하고 길을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심령에 드리워져 있는 모든 의심과 근심의 구름을 말끔히 없애주시고자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더이상 근심하거나 방황하지 않고 생명의 길을 힘차게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성공의 길이십니다.(1)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장 말씀은 13장에서 계속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셨습니다. 그 식사 분위기는 무겁고 심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식사 도중에 갑자기 일어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또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라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제자들은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로부터 떡조각을 받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조금 있다가 제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가시겠다는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베드로가 죽는 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자 오히려 네가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제자들의 마음에는 점점 근심과 염려와 불안의 먹구름이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그 동안 이스라엘 회복이라는 큰 희망 가운데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을 행하실 때마다 그들의 희망은 더욱 커져 갔습니다. 예수님만 있으면 모든 현실 문제가 해결되고 그들의 장래도 보장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버려두고 어디론가 가신다고 하시자 갑자기 그들은 불안해지고 마음에 근심이 가득차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장래의 보장(security)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장래 문제로 마음에 근심과 염려로 가득 차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직장 문제로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또 어떤 분은 건강 문제로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또 진로 문제로 인해 심령이 눌리는 형제자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확실한 것이 없으면 불안해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이 있다할지라도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미래로 인해 불안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러한 불안 문제는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생들의 공통된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불안한 마음을 잘 아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날 밤에 체포 당하시고 많은 고난을 받으셔야 하셨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힘과 위로를 받아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부드럽게 위로하기 시작하셨습니다. 1절을 보시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은 그들이 근심하고 불안한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개인적인 믿음이 없기 때문임을 아시고 하나님을 믿고 또한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믿으라는 말씀은 'trust' 즉 '맡기라', '신뢰하라'는 뜻입니다. 즉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생명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신뢰하고 모든 장래를 맡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때만이 마음의 근심과 염려,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확실한 보장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래 문제로 불안해 하는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신뢰할 때 자신의 모든 것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의 장래 문제, 자녀문제, 결혼 문제, 경제 문제 등 모든 것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천국의 길이십니다.(2)“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예수님은 그들에게 믿음을 심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도 심어 주셨습니다. 2a절을 보면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거주지가 좁아서 아파트 투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곳에는 얼마든지 거할 곳이 많습니다. King James Version에는 많은 맨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맨션은 수없이 많은 방이 딸린 궁궐과 같은 큰 저택을 의미합니다. 그곳에는 공기 오염도 없고 질병도 없고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곳은 생명과 평화와 자유와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영원토록 안식할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제자들은 세상의 모든 소유를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또 박해를 받아 정처없이 방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결국에는 목숨까지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영원히 거할 거처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육신의 장막을 벗게 됩니다. 그때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이나 지위나 명예나 모든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때 사람들은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은 바로 그때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희망으로 불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5: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우리에게 영원히 거할 거처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 집은 하나님꼐서 친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건설하신 집이기 때문에 가장 확실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이 집은 하나님의 왕국이라 불리워지기도 하고 하나님의 도성이라 불리워지기도 합니다. 또한 기쁨과 희락을 나타내는 낙원이라고도 불리워집니다. 우리가 이 아름다운 곳에 영원히 거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영광스러운 희망입니다.
이러한 영광스러운 희망을 그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자는 세상 것에 얽매이지 않고 여유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 땅에 희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잘 살아야 되기 때문에 세상 것에 집착하게 되고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그리고 인색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우리가 영원히 거할 거처지가 되지 못합니다. 인생은 나그네요 세상은 잠시 머물다가 가야하는 여인숙에 불과합니다. 우리 인생이 가야 할 본향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에게 이 영광스러운 희망이 있을 때 주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있게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찬송을 부르며 거룩한 순례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심으신 후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처를 다 예비하면 다시 와서 그들을 영원한 거처지로 인도하여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예수님은 십자가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늘나라의 문을 여시고 사랑하는 제자들을 그곳으로 인도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도 하나님께로 이르는 길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마는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목적지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그 길을 알 수 있겠는가 하며 반문했습니다. 도마는 현실주의자로서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야 믿는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싶지도 않았고 또 가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도마는 마음의 의심 때문에 나아가야 할 참된 인생의 길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진리와 생명의 길이 되십니다.(6)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6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갈망 때문에 사람들은 누가 죽었을 때 죽었다고 하지 않고 돌아 가셨다고 표현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산의 정상에 오르는 길이 여러 개가 있듯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가든 정상에만 오르면 되듯이, 어떤 종교를 믿어도 착실히만 믿으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로 이를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 예수님 뿐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하시고 또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이 하나님께로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선언입니다. 세상에 어느 성현 군자도 "내가 곧 길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공자는 '아침에 진리를 찾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석가는 인생의 참된 길을 찾고자 출가하여 10년의 세월을 허덕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참된 길을 찾기 위해 진실되게 고뇌한 구도자였지 결코 길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놀랍게도 내가 바로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의 신성의 선포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 길을 잃었습니다. 벧전 2:25절은 이를 잘 말해줍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사람들은 참된 생명의 길, 바르게 살 수 있는 진리의 길,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행복의 길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근본적으로 길을 잃었기 때문에 그 어디에서도 그런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예수님께로 돌아와야 만이 참된 생명의 길, 진리의 길,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생들의 근본 문제인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가 되십니다.(딤전2:5)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이으시는 유일한 다리가 되십니다. 쇼펜하우어를 따라가면 한강으로 가게 되지만 예수님을 따라가면 하나님 나라로 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이르는 길이 되실 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길이 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정된 인생을 의미있고 보람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방황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들에게 분명한 삶의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길이 되실 뿐만 아니라 진리가 됩니다. 진리란 참되고 영원불변하고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세상에 이런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세상에 이런 것은 없기 때문에 진리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된 진리가 되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계시로서 진리 자체가 되십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바로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진리는 철학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생명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또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수여자가 되십니다. 사람들은 죄와 허물로 그 영혼이 죽어 있습니다.(엡 2:3) 예수님은 이런 인생들에게 참된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순간부터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됩니다.(요 5:24) 예수님은 "I am the way"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항상 진리의 길이 되시고 생명의 길이 되십니다.
우리의 장래는 불확실합니다. 그래서 근심하고 불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공의 길이 있습니다. 천국의 길이 있습니다. 진리와 생명되신 예수님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따라 담대하게 가심으로 승리의 문이 열리고 축복의 문 건강의 문 형통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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