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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제르바이잔 바쿠 구시가지 메이든 탑
바쿠 중심 구시가지에 있는 메이든 탑은 정복할 수 없는 성역이라는 탑이다. 12세기에 건설한 메이든 탑은 처녀의 탑, 소녀의 탑이라고도 부른다.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겠다는 당시 사람들의 투지를 나타낸다. 결코 범할 수 없는, 결코 침략 당하지 않은 처녀의 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높이 27m, 직경 16.5m의 우람한 원통형 탑이다. 높이가 아득하여 한참을 올려다보아야 전경이 잡힌다. 건물의 형태도 웅장하다. 메이든 탑은 아제르바이잔 건축의 독특한 기념물로 두 시대에 걸쳐 건설되었다. 자세히 보면 메이든 탑은 위와 아래가 다른 건축이다. 12세기에 지어진 메이든 탑은 기원전 6~7세기에 구축된 초기 구조물 위에 세운 것이다. 아래의 3층은 기원전 7세기와 기원전 7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천체 관측소나 조로아스터교의 예배소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탑의 위층은 12세기의 재건축을 기념하는 고대 아라비아 명문이 있다. 육안으로 보아도 아래와 위는 확연히 다르다. 아래 부분이 더 고풍스런고 위 부분이 조금 현대적이다. 메이든 탑 주변에는 좁은 길들을 따라서 18세기 후반에 건설된 집들이 연결되어 있다. 또한 12세기에 건설한 방어용 성곽도 있다. 바쿠의 상징인 불꽃 타워도 건물 3개 모두가 시가지 위로 뚜렷하게 잘 보인다. 한낮의 태양이 바쿠 구시가지와 메든 탑을 비경으로 조명한다. 원통형 구조의 메이든 탑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8층까지 올라가는 계단 설치되어 있다. 우리 부부도 입장하여 힘겹게 올라가 보았다. 각 층은 중간에 작은 구멍이 있는 낮고 둥근 천장으로 덮여 있다. 좁은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층마다 바쿠의 역사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벽면의 좁은 틈으로 카스피해와 바쿠 시가지 거리가 보인다. 모두 메이든 탑이 베풀어 주는 아름답고 소중한 진풍경이다.
* 아제르바이잔 메이든 탑 전망대에서 본 바쿠 시가지
메이든 탑 전망대에 올라왔다. 이곳은 바쿠 시가지를 조망하는 메이든 탑 전망대다. 높이 27m의 8층까지 올라온 것이다. 바쿠 시가지 전경이 한눈에 담긴다. 크고 작은 건물들이, 높고 낮은 건물들이 고전과 현대를 머금고 바쿠를 빛내고 있다. 카스피해가 드넓게 전개된다. 해변 항구에는 아제르바이잔 국기가 높이 솟구쳐 오른다. 유전설비도 보인다. 거리에는 행사 행렬 물결이 아름답다.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할 지 혼돈될 만큼 아름다운 풍경들이 사방에 가득하다. 그래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쿠를 상징하는 불꽃 타워다. 3개의 건물로 구성된 불꽃 타워는 3개 건물의 높이가 약간 다르다. 불꽃이 타오르는 형상의 투명한 푸른 빛이 찬란하다. 아제르바이잔은 '불의 나라'란 뜻이다. 아제르가 불이라는 뜻이다. 카스피해 연안에 위치한 아제르바이잔은 예전부터 땅 곳곳에서 불이 올라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불을 숭배하는 고대 종교인 배화교가 탄생했다. 불꽃 타워 곁에는 방송탑이 또한 높이 솟아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는 '바람의 도시'란 뜻이다. 바쿠는 카스피해에 인접한 도시로 바람이 심하다. 센 바람으로 카스피해변의 나무들은 비스듬히 자라고있다. 바쿠 성곽 도시는 구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살던 오래된 곳이다. 도심 지역은 12세기에 축조된 방어벽도 보존되어 있다. 성곽 도시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얼마 남지 않은 중세 도시 중 하나다. 19세기와 20세기 초 바쿠는 석유를 생산하는 세계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구시가지 외곽 지역에 있는 도시는 이 시대에 건설된 건물들이다. 석유로 인해 상당한 부를 축적하여 건물을 지었다. 그런 역사의 영토, 불과 바람의 땅, 아제르바이잔 바쿠와 마주하고 있다. 이곳 시민과 어린이들도 많이 올라와 있다. 아제르바이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카스피해 바다와 접한 신비로운 바쿠의 비경을 가슴에 담는다. 우리 부부의 정원에 하얀 바람이 고일 때, 오늘 메이든 탑 전망대에서 본 뜨거운 저 카스피해와 바쿠의 비경을 회억하며 행복하리라.
* 아제르바이잔 카스피해 유전지대
아제르바이잔은 유전이 많은 나라다. 세계 3위 유전국이다. 기름보다 물값이 비싼 나라다. 예전에는 개인이 산유하기도 했다는데 현재는 국가에서 관리한다. 개인이 산유하여 억대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1848년 유전을 개발했다. 바쿠는 19세기 오일 붐 때 지어진 건물들이다. 바로크 양식 등 다양하다. 바쿠에서 시가지 외곽 지역을 거쳐서 고부스탄으로 이동한다. 야트막한 산 위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산정 마을은 부자 마을이다. 카스피해를 조망할 수 있는 값비싼 지역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도 카스피해를 조망하며 간다. 카스피해 물빛이 장관이다. 카스피해변의 유전이 많은 유전지대를 지나간다. 크고 작은 유전지대가 즐비하다. 마을처럼 구성된 유전단지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도로 양편으로 유전지대는 계속 보인다. 바쿠의 경제기반은 석유다. 석유가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8세기부터이며, 15세기에 들어서자 지표면 유정에서 등불용 기름이 채취되었다. 근대 상업적인 탐사가 시작된 것은 1872년으로 루마니아에 이어 2번째다. 20세기 초 이곳의 유전은 세계 최대였고, 1940년대까진 그 최대 규모를 지켜왔다. 그러나 석유 매장량이 상당히 고갈된 오늘날은 유정 일부가 도시 내에 남아 있다. 지하 5090m까지 시추작업을 하거나 압셰론 반도를 가로질러 카스피 해까지 시추작업을 벌여야만 석유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바쿠 만에는 많은 유정탑이 도시를 향해 세워져 있다. 보다 작은 규모의 도시 대부분은 시추 중심지로서, 여러 정유공장 및 가공처리공장과 송유관으로 연결되어 있다. 석유는 바쿠에서 흑해를 끼고 있는 바투미로 송유관을 통해 보내지거나, 유조선으로 카스피 해를 가로지른 뒤 볼가 강을 거슬러 운송된다. 그밖에도 석유산업에 필요한 장비 제조업의 중심지로 20여 개의 공장이 가동중이다. 다른 기계공업으로 조선업·선박수리업·전기기계류 제조업 등이 있다. 또한 화학제품·시멘트·직물·신발류·식료품 등도 생산된다. 진풍경으로 스쳐지나가는 유전지대가 부러운 시선으로 가슴에 담긴다. 도로변의 건물에는 모두 가스관이 밖으로 설치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땅속에 매설하는 가스관을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지상에 설치한다. 아제르바이잔은 석유와 가스 매장량이 아주 많은 나라다. 가스 매장량이 화폐로 환산하면 3조원이나 된단다. 아제르바이잔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천연자원이다. 가스 공장과 높은 장치의 시멘트 공장도 보인다. 1년에 4천여만 톤의 석유를 배관으로 이동한다. 커다란 배관이 들녘 곳곳에 놓여있다. 조지아 트빌리시까지 연결된 가스관이다. 터키를 거쳐 유럽까지도 들어간다.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이런 유전 산업으로 연간 1백억 불의 외화를 벌어 들인단다. 건조한 땅으로 농사 짓는 땅은 없다. 예전에는 말이나 당나귀가 석유를 운반했는데 배관이 발달하여 그들의 직업도 잃었다. 들녘은 온통 사막화 된 건조한 땅다. 저런 땅에서 사람이 어찌 살까 싶은데 지구는 참으로 공평하다. 땅속에 지하자원을 풍부하게 묻어주어 살아갈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지상은 살벌한 풍경이지만 자하는 넉넉한 자원이 매장된 축복의 영토다.
* 아제르바이잔 고부스탄 박물관
고부스탄 암각화 유적지로 가기 전에 박물관을 먼저 들러 관람했다. 입구에는 경찰초소가 있고 남자 경찰이 나와서 차량을 안내한다. 버스에서 하차하자 바위 앞에 원시인 세 명이 돌과 막대기를 들고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나타내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박물관 진입로에는 인공으로 물을 주어 기른 꽃과 식물들이 화사하게 길손을 맞이 한다.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아담한 박물관 건물이 있다. 이곳에는 옛날 그 당시의 여러가지 생활상을 전시해 놓았다. 울창한 숲의 동물들, 사냥하는 모습, 가죽옷을 입은 사람, 춤추는 모습, 암각화 등 소증한 역사적 자료가 많다. 박물관을 관람하고 암각화가 있는 유적지 산으로 향했다.
* 아제르바이잔 고부스탄 암각화 유적지
고부스탄Gobustan 암각화 유적지는 바쿠 남쪽 65km 지점에 있는 사막건조기후의 사암지대에 있다. 기원전 8세기 선사시대 사람들이 거주했던 지역이다. 석유, 천연가스 등의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기도 하다. 고부스탄은 돌을 뜻하는 고부gobi와 땅을 뜻하는 스탄stan이 합성된 ‘바위 지역’이란 뜻이다. '텅 빈 땅'이라는 뜻도 품고 있다. 고부스탄에는 암각화 유적지 산이 3개가 있다. 우리는 그 중에서 가장 큰 산에 온 것이다. 박물관 입구에 잇는 작은 산은 지나쳐서 왔다. 걸어서 산으로 올라가니 중턱에 'QOBUSTAN'이라는 안내 문구와 함께 자세한 설명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고부스탄 주립 보호구로 선사 청동기 시대의 유적지다. 바위에는 약 5천 년에서 2만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약 6,200여 점의 암각화가 있다. 바위 곳곳에 가늘게 또는 굵게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암각화에는 그 당시 사람들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며 새긴 생활상이 담겨 있다. 사냥, 전쟁 그리고 낙타, 사슴, 소, 10명이 손을 잡고 추는 춤, 황소싸움, 배 승선, 창을 든 전사, 해와 별 등이 그려져 있다. 암각화 보존을 위해 암각화마다 번호가 부여되어 있다. 49번 암각화가 가장 대표적이다. 암각화는 기원전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0기의 무덤과 10여 점의 유물도 있다. 고부스탄은 1966년에 아제르바이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고부스탄의 암각화는 200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진과 바람에 의한 풍식작용으로 일부 훼손된 것도 있다. 산에서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면 건조한 평원과 카스피해가 보인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기막힌 비경의 풍경이다. 지금 나는 과거의 땅을 걸으며 현세의 땅을 조망하고 있다. 바닥의 바위에는 그 당시의 부엌이었던 자리도 있다. 빗물을 받아 사용하던 구멍도 있다. 물이 흘러드는 물길도 바위에 내어 놓았다. 하산하여 길손을 위해 마련해 놓은 하얀 천막의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했다. 휴게소 마당에에서 석관과 무덤의 비석도 보았다. 오래 전 인류의 역사가 보존된 신비로운 영토다에서 값진 유적과 유물을 본 소중한 여정이다.
* 아제르바이잔 고부스탄 암각화
고부스탄 암각화 유적지 산을 오르며 바위에 새겨진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당시의 생활상을 나타내는 그림들이 조각되어 있다. 이곳 고부스탄 주립 보호구에 있는 암각화 그림들은 약 5천 년에서 2만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한다. 고부스탄의 3개 산에 약 6,200여 점의 암각화가 있다. 이곳 암각화는 그 당시 사람들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며 새긴 것이다. 수렵 및 채취를 하는 그림, 전쟁 장면, 낙타, 사슴, 소 등과 같은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10명이 손을 잡고 춤추는 얄리얄리 춤그림도 있다. 황소 싸움 장면, 무장한 사람이 배를 타고 노를 젓고 있는 장면, 창을 쥐고 있는 전사, 낙타, 해와 별 등도 그려져 있다. 해산하는 여인 모습도 새겨져 있다. 암각화 보존을 위해 암각화마다 번호가 부여되어 있다. 어찌하여 이런 유물이 현세까지 보존되어 있는지 신비롭다. 아마도 건조한 가막기후가 지켜준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어딘가의 산에도 이런 유적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이 솟구쳤다.
* 아제르바이잔 고부스탄에서 바라본 카스피해 주변 풍경
고부스탄 암각화 유적지의 산에서 카스피해가 멀리 보인다. 해변에는 고부스탄 시가지가 있다. 온통 건조한 들녘 평원이다. 건조한 들녘에는 스탈린 감옥이었다는 긴 담장의 건물도 보인다. 고부스탄 암각화 유적지 산은 3개가 있는데 조금 전 이곳에 오기 전에 본 고부스탄 작은 산이 멀리 보인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테이블마운틴 처럼 산정이 평평하다. 바위와 흙만이 나뒹구는 영토다. 손님을 위해 하얀 대형 천막 휴게소가 있다. 그곳에 올라가서 카스피해를 바라보니 더욱 잘 보인다. 천막 곁에는 파란 나무 한 그루가 힘겹게 생명을 유지하여 싱그러운 풍경이다.
* 아제르바이잔 고부스탄 마을 풍경
고부스탄 암각화 유적지 산에서 내려왔다. 진흙화산으로 이동하는데 도중의 길에서 이곳 지역 택시 3대가 달려와 있다. 우리가 탄 대형 버스로는 좁은 길의 진흙화산 지대에 올라가지 못하여 우리를 태우고 가겠다는 의사를 나타낸다. 손님을 위한 배려심이 크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봉고차를 섭외한 관계로 그냥 지나갔다. 마을 입구에 고부스탄 암각화 유적지를 선전하는 돌비가 세워져 있다. 들녘에는 유조 기차가 끝없이 길게 지나간다. 조지아행 유조 기차다. 터키를 거쳐 유럽까지도 간다. 유조 기차로 운반하는 것이 배관보다 저렴만 비용이 든다. 옛날에는 말이나 당나귀에 싣고 운반했다. 온통 사막화 된 건조한 영토에 긴 호흡으로 살아 움직이는 유조 기차다. 신기한 이색 풍경의 땅이다.
* 아제르바이잔 고부스탄 진흙화산 가는 길 분출된 석유
고부스탄 암각화 유적지에서 나와 진흙화산으로 가기 위해 마을 주유소에서 하차했다. 진흙화산 가는 길이 좁아서 대형버스는 운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봉고버스로 바꾸어 타고 진흙화산으로 향했다. 오래 된 낡은 차인데 안에 고운 장식을 많이 해놓았다. 차의 앞 유리창에는 아제르바이잔의 국기도 걸어두었다. 점점 진흙화산 지대로 가까이 다가가자 들녘에 검은 색 기름이 있다. 지하에서 자연적으로 분출된 석유다. 얼마나 많은 양의 유전지대인지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저 멀리에서는 높은 기둥에서 불꽃이 춤춘다. 가스 회사인 것 같다. 예전에는 개인도 산유하기도 했는데 오늘날은 국가에서만 산유할 수 있다. 물값보다 기름값이 더 싼 나라라는 것이 실감나는 현장이다. 건조한 땅에서 물은 볼 수 없는데 땅에서 솟구친 기름을 보고 있으니 말이다. 부러운 시선으로 눈길이 떼어지지 않는다.
* 아제르바이잔 고부스탄 진흙화산
고부스탄 암각화 유적지를 보고 인근의 진흙화산으로 왔다. 온통 사막화 된 건조한 땅이 우뚝우뚝 솟은 작은 산봉우리들이 벌거벗은 진흙 살점으로 서 있다. 더 가까이 산 둔덕을 올라가 보니 진흙탕 물이 솟아 흐르는 곳도 있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곳도 있다.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가스로 인해 진흙이 분출하는 진흙화산이다. 석유, 천연가스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오일과 가스가 함유된 진회색의 진흙화산도 있다. 분출된 진흙의 기포가 터지면 가스냄새가 난다. 조금 큰 구멍에서는 팥죽을 끓이는 것처럼 진흙물 방울이 커다랗게 솟아올랐다가 푹 꺼지곤 한다. 폭발한다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제르바이잔의 신비로운 영토 한자락이다.
* 아제르바이잔 고부스탄 진흙화산 주변 건조한 땅
고부스탄 진흙화산을 보고 내려오는데 온통 사막화 된 땅이다. 산자락도 모야만 산이지 사막이다. 미국 서부 모하비 사막 같은 형상이다. 건조한 땅에 마른 풀 포기만 있다. 그래도 마을이 있다. 이렇게 건조한 땅에서 어찌 살까 싶은데 가축들도 떼지어 다닌다. 이제 다시 고부스탄을 떠나 바쿠로 간다.
* 아제르바이잔 바쿠 카스피해 유전시설
고부스탄에 갈 때도 보았던 유전시설이다. 카스피해 해변 여러 곳에 크고 작은 규모로 설치되어 있다. 어려운 나라에서 석유가 저리도 많아,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보물이 아제르바이잔의 경제를 큰 몫으로 담당하고 있다. 부러운 풍경이다.
* 아제르바이잔 바쿠 올림픽 경기장
아제르바이잔이 2015년 제1회 유럽피안 올림픽을 개최하기 올림픽 경기장을 건설하는 중이다. 한국 기업도 참여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하계올림픽 등 국제스포츠 행사유치를 위해 스포프 인프라 구축에 힘쓰고 있다. 바쿠 올림픽 경기장은 그 중 하나로 2015년 2월 완공 예정이다. 카스피해 해변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 아제르바이잔 바쿠 카스피해 해변 공원 풍경
카스피해는 세계 최대의 내륙 바다다. 해안선의 대부분이 러시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과 접해 있다. 지금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로 들어기면서 카스피해를 보고 있다. 평균너비가 320㎞, 길이는 북에서 남으로 약 1,200㎞ 뻗어 있다. 면적은 약 39만 제곱킬로미터로 한반도 거의 2배 크기다. 어마어마한 큰 규모의 바다가 유럽 남동쪽 끝, 카프카스 산맥 동쪽, 중앙 아시아 서부 평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육지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남쪽으로는 이란의 산맥과도 접해 있다.
카스피해로 흘러드는 주요강은 볼가강, 우랄강, 테레크강으로 유입 강물량의 88%다. 카스피해에는 50개의 매우 작은 섬들이 있다. 북부 카스피해의 평균 깊이는 4~6m로 가장 얕다. 중부 카스피해는 가파른 경사와 비탈로 기복이 심하다. 남부 카스피해는 저지대로 최대깊이가 1024m다. 카스피해에는 오래 전부터 철갑상어가 살았다. 그러나 최근 수십년 간 해수면이 낮아지고 산란장이 메말라 철갑상어의 수가 크게 감소하였다. 1940~1950년대 지질탐사로 지금은 석유와 천연가스가 카스피해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또한 교통의 중심지로 매우 중요하며, 항구로서도 중요한 구실을 담당한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카스피해Caspian Sea 해변에는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국립공원이다. 갇힌 바다지만 드넓은 카스피해 해변에는 바쿠 시가지가 접해 있다. 해안 도로를 따라 길게 공원이 전개된다. 자전거 도로도 있고 선착장도 있다. 영국 템즈강변에서 보았던 니들아이 같은 둥근 놀이 기구도 있다. 현대풍의 바쿠 도시와 낭만이 서린 카스피해 바다와 하늘과 만나 비경을 선사한다.
* 아제르바이잔 바쿠 국립 카페트 박물관
아제르바이잔은 카페트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세계 7대 카페트 생산지 중 하나다. 이란에 1개 생산 지역, 이곳에 6개 생산 지역이 있다. 아제르바이잔에서는 결혼하기 전에 여자가 카페트를 짜서 남자에게 선물로 준다. 남자는 카페트를 잘 짜는 여자를 배우자로 선택한다. 카페트 박물관 곁에 있는 건물 옆으로 웨딩 드레스를 입고 걷는 모습의 남녀 한 쌍이 보인다. 결혼하여 걸어가는 남녀다. 결혼하면 저렇게 걷는 것이 이 나라의 결혼 풍습이다. 카페트 박물관이 바로 곁에 있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중심부에 있는 이 박물관은 국가카페트 박물관이라고 부른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카페트는 국가가 다룰만큼 경제적으로 소중한 생산 품목이다. 아제르바이잔 카페트와 실용미술 국가박물관이라고도 한다. 그 만큼 예술이 부여된 카페트라는 뜻이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수세기에 걸쳐 내려온 다양한 기술과 재료의 카페트와 양탄자가 전시되어 있다. 세계에서 아제르바이잔 카페트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세계 최초이며, 세계 최대의 이곳 카페트 박물관은 1967년에 설립되었다. 카페트를 둘둘 말아 놓은 듯한 굉장한 크기의 건물이다. 아제르바이잔의 특산품이며, 이곳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카페트 박물관은 카스피해 해변에 있어서 더욱 아름다운 경관이다.
* 아제르바이잔 바쿠 카스피해 해변 베네치아 공원
바쿠로 시가지로 진입하는 도로변에 베네치아 공원이 있다. 카스피해와 접하여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본 떠 만든 공원이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처럼 물로 둘러싸인 건물도 있고, 분수로 솟구치는 물기둥도 있다. 이런 공원의 조성이 가능 한 것은 오일 머니 덕이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생산되는 오일은 이 나라 경제의 큰 힘이다.
* 아제르바이잔 바쿠 카스피해 불바르 공원 산책
저녁 무렵 바쿠로 진입하여 카스피해 해변 불바르 공원Bulvar Park에 잠시 들러 산책했다. 바쿠 카스피해를 따라 조성된 공원이다. 주변에는 카페트 박물관, 기념품 상가, 식당 등이 많다. 바쿠의 시민들이 즐겨 찾는 중심지로 붐비고 있다. 도로에서 공원으로 들어서자 고운 꽃들이 먼저 반긴다. 카스피해 연안의 도로를 따라 공원이 길게 조성되어 있다. 바쿠 도심의 불꽃 타워가 우뚝 솟구쳐 오른다. 석양에 바다와 만나 비경으로 뜬다. 비가 간간이 내린다. 나무가 울창한 길을 따라 가니 대형 쇼핑몰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백화점 격인 곳이다. 건물 앞에는 현대풍의 조각 작품이 설치되어 있고, 건물도 현대적인 세련된 구조다. 숲 공원에는 공중에 떠 있는 기이한 수도꼭지 작품도 있다. 갇힌 바다지만 드넓은 카스피해 해변에서 멋진 낭만을 만나는 황홀한 여정이다.
* 아제르바이잔 바쿠 구시가지 카라반 전통식당 석식
카라반 전통식당에서 전통 쇼를 보며 먹는 석식이다. 바쿠 구시가지 메이든 타워가 있는 근처의 카라반 전통식당이다. 실크로드 교역시절의 카라반들이 머물던 식당이다. 어두운 조명의 아늑한 공간에서 먼저 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에는 바깥 마당에서 쇼를 관람했다. 작은 무대에 중년 남자가 나와 불쇼를 먼저 한다. 막대기에 불을 붙여 내게로 와서 손에 쥐어준다. 불이라는 것을 확인시키려는 것 같다. 그리고는 손으로 불을 끈다. 우리의 시각으로는 진부한 쇼인데 이곳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쇼인 것 같다. 여자 무용수가 나와서 관객 중 한 명을 불러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고풍스런 카라반 식당에서 중세의 음식을 먹으며 카라반의 생활상을 잠시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 아제르바이잔 바쿠 구시가지 야경
저녁식사를 하고 나오니 밤이다. 바쿠 구시가지의 메이든 타워가 불빛 조명에 그윽하다. 바쿠 도심의 불꽃 타워는 그야말로 불꽃처럼 붉은 불꽃의 형상이다. 아름다운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야경이다.
2014년 5월 29일 목요일 아제르바이잔 바쿠, 쉐마크, 쉐키
* 아제르바이잔 바쿠 호텔 출발
오전 6시 30분 모닝콜, 7시30분 조식, 8시 출발이다. 오늘은 쉐키로 이동한다. 가는 길에 구왕궁이 있던 작은 도시 쉐마키에도 들를 것이다. 쉐마키는 아제르바이잔의 수도가 있던 지역인데 지진으로 수도를 바쿠로 옮겼다.버스 안에서 현지 가이드가 한국의 아리랑 격인 노래를 불러준다. 바쿠 시내의 국제버스터미널을 지나서 간다. 난민촌도 지난다. 카스피해를 따라 간다.
* 아제르바이잔 목축 마을 풍경
목초지를 재배하여 동물을 기르는 목축 마을이다. 사막건조기후로 황폐화 된 영토에 초지를 인공으로 만들어 가축을 기르는 것이다. 마을에는 목장도 있고 소들이 많다. 무슬림 공동 묘지도 있다.
* 아제르바이잔 디리바바 영묘 모스크
이곳 디리바바 무슬림 모스크는 디리바바Diri Baba 성자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아제르바이잔의 북서쪽 조그만 도시 마자라Maraza시에 있다. 수도 바쿠에서 101Km 떨어진 위치다. 사막건조기후의 사암지대인 고부스탄에 있다. 고부스탄은 아제르바이잔어로 '텅빈 땅'이란 뜻이다. 마자라Mazara 마을은 고부스탄의 행정 중심지다. 해발고도 800m의 지역이다. 바쿠에서 쉐마키로 가는 도중에 들른 곳이다. 고부스탄에는 디리바바 영묘 모스크 외에 라비린스 동굴도 있다. 어머니가 죽은 아들에 대한 진한 눈물의 사랑이 서린 동굴이다. 전설이겠지만 바위에서는 아직도 어머니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고부스탄에서 바위에 새긴 암각화와 진흙화산을 보았는데 이곳 디리바바 영묘도 고부스탄의 명소다. 차에서 내려 계곡 곁의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서 만났다. 모스크는 바위 벽에 바짝 붙어있다. 둥근 돔의 하얀 지붕과 아치형 문이 이슬람 모스크임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바위벽에 붙은 아주 작은 규모여서 소슬하다. 모스크 지붕 위 둔덕에는 동물들이 풀을 뜯고 있다. 가파른 계단을 걸어서 모스크로 올라갔다. 문 앞에는 디리바바Diri Baba의 묘이며 1402년에 건립되었다는 문구가 부착되어 있다. 디리바바는 이란의 이슬람 수피파 성자다. 실크로드 전성기에 이곳에서 수행하던 압바스 쉐이크 두주라는 성인다. 디리바바는 평생 종교적으로 신비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기행과 언행으로 기적을 많이 일으켰다. 그래서 지금도 살아있는 기행 성자로 추앙받고 있다. 그가 행한 기적으로 인해 살아있는 할아버지로 불린다. 디리바바의 영묘와 모스크가 함께 있는 조촐한 이곳 건축물은 순례자들의 성지다. 벽면 굴속에서 거주하는 기도원 용도의 모스크다. 지금도 영묘와 모스크를 지키는 수행자가 있다. 모스크 안은 다듬어지지 않은 협소한 공간인데 벽면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낮은 책상 위에는 성서가 있다. 디리바바의 묘가 있던 곳이라 하니 서늘한 기분이 든다. 바위에 구멍을 뚫고 디리바바의 시신을 넣고는 구멍을 막았던 장소다. 그의 무덤이 놓인 바로 앞에는 바위 절벽을 타고 모스크 형태로 암벽에 사당을 지은 것이다. 이슬람식 묘지다. 마자라 마을에는 무슬림 공동묘지도 있다. 이곳 모스크에 오기 전에 보았다. 이 나라는 무슬림 신앙인이어도 돼지고기와 술을 먹는다. 여성해방으로 히잡도 벗는다. 모스크에서 나와 다시 가파른 계단을 따라 위로 나가니 마자라 마을이 전개된다. 주변은 드넓은 마자라 고원이다. 건조한 땅이지만 파릇하게 보이는 목초지에서는 소들이 풀을 뜯는다. 모스크 곁에 목장 건물도 있다. 이곳은 실크로드 교역의 카라반들이 왕래하던 길목의 요충지였다. 저 아래 보이는 마자라 마을에는 아직도 그 당시 중세의 여관터가 있다. 아슬한 계단을 따라 다시 내려왔다. 큰 가스관이 모스크앞으로 지나간다. 초라하지만 사람의 흔적이 고인 수도와 화장실도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작은 도시 마자라에서 무슬림 성자의 영혼을 만난 소슬한 성지다.
* 아제르바이잔 디리바바 모스크에서 본 시골 풍경
디리바바 무슬림 모스크를 보고 위로 가파른 언덕을 올라오니 아제르바이잔의 시골 풍경이 전개된다. 계곡 위 바위 절벽 아래에는 디리바바의 묘지가 있는 모스크 지붕이 보인다. 이곳에 오면서 목초지를 재배하여 가축을 기르는 풍경을 종종 보았는데 디리바바 모스크 바로 곁에서도 목장과 동물들을 본다. 크게 지어놓은 목장 안과 주변에 소들이 먹이를 먹고 있다. 목부도 구릉진 언덕 아래의 동물에게로 간다. 우리 부부가 차에서 내려 걸어온 길 근처에는 아담한 도시 마라자Maraza 시골 마을이 있다. 이곳 마자라 마을에는 무슬림 공동묘지가 있다. 디리바바 영묘 모스크 가까운 거리에서 보았다. 아제르바이잔에서는 건조한 지역만 보았는데 북쪽으로 가면서 푸른 지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도 건조한 풍경이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풍경에 비하면 파란 들녘이다. 시골 마을 주택 사이로 푸른 나무들도 보인다. 파란 하늘의 하얀 구름도 고운 풍경을 선사한다.
* 아제르바이잔 건조한 들녘 동물들
과거 수도였던 쉐마키 마을의 왕조 무덤 유적지로 간다. 쉐마키는 지진 지역이다. 이곳 지역들은 실크로드의 무역중개 요충지다. 와인 생산지역이기도 하다. 도로변 건조한 들녘에는 가축들이 많다. 풀이 많지 않은 힘겨운 목축지다. 목장의 경계로 키운 소나무 군락도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는 대부분 사막화 된 건조지대였는데 동물과 풀이 약간 보이는 정겨운 풍경이다.
* 아제르바이잔 들녘 국장 문양과 국기
아제르바이잔 들녘을 달리는데 언덕진 능선에 국가를 상징하는 문장이 있다. 언덕 위에 국장 문양과 국기가 세워져 있다. 대통령 이름도 새겨져 있다. 독특한 풍경이다.
* 아제르바이잔 쉬르반 왕조의 묘지
쉐마키Samaxi 마을에 있는 쉬르반 왕조의 묘지에 왔다. 쾌나 큰 공동묘지에는 외부로부터 들어갈 수 있는 차도가 놓여있어 쉽게 도착했다. 여기저기 비석들이 지진으로 기울어지고 쓰러져 있다. 쉐마키의 쉬르반 왕조의 돔형 가족 묘지는 허물어진 것도 있지만 남아있는 것은 매우 웅장하다. 높은 신분의 가문은 조상 대대로 무덤을 잘 관리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지역별로 왕조가 있었다. 쉐마키는 중세의 쉬르반 왕조시대에 아제르바이잔 수도였던 곳이다. 종교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곳 묘역은 9~16세기 쉬르반 왕조의 집안 무덤이다. 왕족 무덤은 3명씩 묻힌 7개의 큰 돔형 무덤이다. 일반인 무덤은 낮은 평무덤으로 비석만 세워져 있다. 돔형 왕조 무덤은 얼핏보면 사람이 거주하는 건물로 보일 만큼 큰 규모다. 문이 열려있어 안으로로 들어가 보니 가족 무덤이 3개 있다. 바닥에 대리석 관이 3개 있고 관 뒤로는 문양이 새겨진 비석을 세워 놓았다. 천장도 돔형 벅돌 구조다. 12세기에 지진이 크게 나서 쉐마키 도시가 대부분 허물어졌다. 왕조 묘지도 지진이 나서 마을 밖의 이곳 높은 언덕으로 이동했다. 쉬르반 왕조는 수도 기능이 마비된 쉐마키에서 바쿠로 천도했다. 지진으로 인해 왕조의 유적은 남아있지 않고, 마을 높은 언덕지대에 왕조의 묘역만 남아있다. 오래된 왕조의 묘역이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 중세의 장례문화와 묘역으로 역사적인 가치가 크다. 아래로는 쉐마키마을이 있다. 나무 사이로 주택들이 줄지어 있다 .현대의와 과거 중세가 만나고 있다. 산자와 죽은 자가 상면하고 있다. 죽은 자의 곁에는 대형 버스가 산자의 이동을 돕기 위해 들어와 있다. 세월을 초월하여 넘나드는 경이로운 묘역에서, 타국이지만 삶과 죽음의 영토를 소슬하게 밟아보는 여정이다.
* 아제르바이잔 쉬르반 왕조묘지 마을 쉐마키
쉬르반 왕조의 묘역을 가기 위해 지나가는 쉐마키 마을이다.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130Km 떨어진 곳이다. 인구 32000명의 작은 시골 도시 마을이다. 예술인 거리가 길게 이어져 있다. 이곳 지역의 시인 등 예술인 조각상을 많이 세워 놓았다. 왕조묘역에 갈 때도, 나올 때도 훈훈한 정경의 거리를 지나서 왕래했다. 쉐마키는 아제르바이잔의의 수도였던 곳이다. 왕조묘역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아름다운 마을이 전개된다. 마을 가운데 주택들 사이로 코카서스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살색 건물의 모스크가 보인다. 태양신 '주마'를 모시던 자리였다. 저곳 마을 안의 살색 건물 모스크는 쉐마키의 11번 지진에서 8번 무너지지 않았다. 그 만큼 잘 보존된 모스크다. 쉐마키는 지진으로 많이 허물어진 도시다. 지진 떄문에 이곳에서 바쿠로 천도할 만큼 아픔이 서린 도시다. 마을에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이 그대로 방치된 것을 보았다. 중학교로 보이는 학교와 경찰서도 보았다. 현대의 문명 도시에서 중세의 왕조 묘지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쉐마키 마을이 조금은 흉칙해 보이지만, 역사를 존중하는 위대한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아제르바이잔 전통 중식
휴게소에 들러 현지 전통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메뉴가 충실하다. 3공주라고 부르는 음식으로 피망, 가지, 토마토 속에 고기 다진 것을 넣어서 찐 요리가 일품이다. 맛도 참 좋다. 과일, 음료까지 아주 정성껏 차려서 대접하는 손길이 아름답다. 몇 종류의 과일을 썰어 유리병에 담아 우려낸 음료가 상큼하게 맛있다. 장미 정원과 연못도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쉐키로 이동한다. 여기서 4시간 소요. 휴게소를 한번 더 거쳐서 갈 것이다. 잠시 들렀지만 고운 뜨락과 정성이 담긴 손길의 대접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휴게소다.
* 아제르바이잔 마른 강
산자락과 들녘이 만나는 곳에 강이 있다. 그런데 강물은 아주 조금 흐르고 돌멩이만 구른다. 이 나라 말로 악스 강이다. '하얀 물'이란 뜻이다. 비가 안 올 때는 마른 강이다. 겨울에만 물이 흐른다. 코카서스 산맥에서 발원한다. 아제르바이잔 북쪽으로 갈수록 푸른 들녘이다. 우리는 지금 조지아로 넘어가기 위해 북쪽으로 가고 있다. 초지에는 가축도 보이고, 말을 타고 가는 목부도 보인다. 농사 짓는 사람들도 있다. 산이 울창한데 강물이 없다는 것이 우리나와는 다른 풍경이다.
* 아제르바이잔 도로변 과일가게
아제르바이잔 도로변에서 노천 과일가게를 만났다. 과일, 야채, 잼 등을 판다. 과일을 잼처럼 만들어 둥근 모양으로 말려 비닐에 포장한 건과일을 매달아 놓은 것이 이색 풍경이다. 그 건과일은 시고, 떫고, 쓰고 묘한 강한 맛을 낸다. 체리, 복숭아, 사과, 토마토 등 다양한 과일들이 많다. 도로변에는 호두나무가 가로수로 심겨져 있다.
* 아제르바이잔 코카서스 산맥 풍경
코카서스 산맥의 우람한 풍경을 보며 계속 산길을 넘어서 간다. 스키 타는 지역이기도 하다. 높은 산에는 눈이 많고 스키대가 있다. 이곳 지역의 최고 높은 산은 4600m다. 코카서스 산맥은 3000~6000m다. 이곳은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경계 산맥이다. 저 산 너머는 러시아다. 설봉이 비경이다. 산자락 아래에는 마을이 있다. 호두산지 마을이다. 뒤로는 코카서스 산맥과 설봉 그리고 목장이 비경이고. 우측은 코카서스 산맥이 비경이다. 좌측에는 낮은 산과 밀 재배 지역이 있다. 이곳은 난민들 마을이다. 도로변에서 난민들이 빵을 구워서 판다. 그들의 생활상이기도 하다. 코카서스 산맥은 하얀 구름이 더욱 고운 풍경을 그려낸다. 점점 해발 고도가 높아지고 있다.
* 아제르바이잔 쉐키 칸 궁전
쉐키는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의 접경도시다.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의 인구 6만3천여 명이 거주하는 작은 도시다. 역사도 깊고 울창한 나무 숲이 비경이다.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다. 다게스탄으로 이어지는 무역 중심지였다. 18~19세기에 이 지역을 다스리던 쉐키 칸 왕조의 수도였다. 쉐키Sheki 칸 궁전은 칸 왕조의 여름 별궁이다. 칸 사라이, 쉐키 칸 팰리스 등으로도 불린다. 쉐키 칸은 쉐키의 영주를 말한다. 사라이는 숙소를 뜻한다. 그러니까 쉐키 왕이 사는 궁전이다. 1968년까지의 이 지역 옛 이름은 누카Nukha였다. 구소련 시절인 1960년대 누카에서 쉐키로 지명이 변경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은 11개 기후대의 나라인데, 쉐키는 9개 기후대가 지나는 지역이다. 그런 기후 영향으로 쉐키는 대홍수 침수가 잦았다. 1716년 쉐키 마을 대홍수로 지금보다 윗쪽에 건설했던 소왕국이 사라졌다. 1740년 하시세라비 칸이 이곳에 와서 다시 성을 축성했다. 그러나 1772년 다시 대홍수로 큰 피해를 입었다. 그때 언덕으로 이주하여 현재의 이곳 지역에 다시 성채를 건설하여 쉐키 칸 왕국의 수도를 이전했다. 지금의 궁전은 1752년부터 1762년까지 10년 간 지은 것이다. 2년 동안은 외부 건설, 8년 동안은 내부 그림 제작을 완성했다. 그림의 85%가 오리지널이다. 15%만 복원한 것이다. 그래서 일체 사진촬영 금지다. 18세기 건축 당시에는 40여개 동의 건물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여려 차례의 홍수를 거치면서 이동하며, 왕궁 건축을 거듭하며, 지켜온 쉐키 영토를 1805년 러시아에게 침탈했다. 유물도 러시아에서 많이 가져갔다. 마지막 칸은 1819년에 사망했다. 칸 왕조가 사라진 후에는 실크 견직물과 무역상 교역도시가 되었다. 트빌리시와 바쿠를 잇는 도시이며 주요 통상로의 중간 지점으로 카라반이 머물던 곳이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쉐키까지는 380km다. 쉐키는 해발고도가 1200m 이상의 고지대 마을이다. 코카서스 산맥에 인접하여 자연환경이 좋아 장수촌이기도 하다. 쉐키에 도착하여 좁은 언덕길로 인해 버스가 가지 못하여 작은 차량으로 바꾸어 타고 올라갔다. 쉐키 궁전 안에는 지금도 집무실. 휴식처. 접견실 ,궁궐, 모스크, 목욕탕 등 역사적 건물이 많다. 입구의 건물에 들어가서 그 당시 발달했던 스테인드 글라스 공예품을 보았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있다. 조금 더 걸어서 올라가니 아담한 2층 건물의 궁전이 있다. 건물 외부의 벽면이 모두 기하학적인 스테인드 글라스 공법으로 치장되어 있다. 우람한 나무와 꽁 정원이 매우 아름답다. 내부에도 기하학적 모자이크의 스테인 글래스나 장식이 화려하다. 입장할 때는 덧신을 신었다. 이곳 쉐키애서는 아주 자랑스럽고 아끼는 유적지다. 영어로 해설하는 여자 안내원이 나와 안내한다. 화려하고 세련된 문양의 슽테인드 글라스 문양과 고운 그림들이 그 당시의 상당히 발달된 문화를 드러낸다. 아제르바이잔의 작은 궁전에서 중세의 문화를 체험하였다.
* 아제르바이잔 쉐키 칸 궁전 박물관
쉐키 칸 궁전을 관람하고 다시 아랫 쪽으로 걸어 내려와서 박물관으로 갔다. 칸 궁전 안에 있는아담한 박물관이다. 박물관 주변에는 대포와 석조 관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 당시 궁전에서 사용하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당시의 숲과 동물들, 도자기 그릇, 가구, 의류 등 다양하다. 쉐키는 견방직 공업이 발달한 도시여서 그에 관련된 물품이 많이 진열되어 있다.
* 아제르바이잔 쉐키 거리의 동물들
쉐키 칸 궁전에서 알바니아 사도 교회로 가는 도로에서 동물 떼를 만났다. 말을 탄 목부와 튼실한 소떼가 거리를 활보하여 간다. 버스의 앞 유리창문으로 뽀얀 먼지와 함께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버스는 그들이 놀라지 않도록 완전 서행이다. 양떼도 도로변에서 풀을 뜯는다. 아제르바이잔의 작은 도시, 역사 깊은 도시인 쉐키에서 큰 선물로 주는 진풍경이다.
* 아제르바이잔 쉐키 마을 풍경
쉐키 칸 궁전을 보고 알바니안 교회로 간다. 교회가 있는 마을에 들어서니 노르웨이 사람의 동상이 있다. 이곳 교회가 그의 증언으로 짓게 되어서 기념 동상을 세워 놓았다. 노르웨이 다음으로 지은 교회가 있는 이곳은 그 만큼 역사가 깊은 마을이다. 쉐키는 2,500년 전에 남 코카서스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지였다. 18~19세기에는 실크로드의 전성기로 카라반 대상들이 많 드나들던 곳이다.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조지아의 트빌리시, 터키 등으로 오고 가는 카라반들의 요충지로 그들이 머물던 숙소도 있었다. 지금은 6만3천여 명 인구의 아담한 도시다. 알바니안 교회를 보고 마을을 나오는데 한 여인이 대문 밖으로 나와 나를 보고는 화사하게 웃는다. 정다운 미소로 화답하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아제르바이잔 쉐키의 여인과는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따스한 미소 하나만으로도 포근한 인간의 정을 교류했다. 오래도록 기억될 고운 추억이 될 것이다.
* 아제르바이잔 쉐키 알바니안 교회
아제르바이잔 초기 기독교 유적지다. 1세기에 세운 달의 신전이었던 곳이다. 카톨릭 4세기 공인 이전 건물이다. 알바니안 교회는 4~6세기에 건설되었다. 1세기~7세기까지는 이곳 지명이 코카서스 알바니아였다. 알바니아라 해서 발칸반도의 국가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곳 나라와는 상관이 없다. 그저 이곳 지명일 뿐이다. 아담한 건물과 아름다운 장미 정원이 길손을 맞이한다. 교회는 외형에서부터 내부까지 아주 고풍스런 흔적 그대로다. 교회 건물 주변에는 기독교 성인들의 묘지가 그대로 있다. 유리 바닥 아래로 해골과 뼈의 잔재가 보이는 것도 있다. 교회 내부 입구의 벽면에는 그 동안의 변천사를 기사화한 지면을 붙여 놓았다. 벽돌 벽면에 호롱불을 켜두어 밝히고 있다. 동전을 벽면에 붙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홈이 파인 둥근 구멍도 잇다. 밖에도 교회 건물의 발전상을 초기부터 순서대로 모형을 전시해 두었다. 코카서스 산맥의 우람한 산자락이 아제르바이잔 쉐키 알바니안 교회를 하늘 아버지처럼 보듬고 있다.
* 아제르바이잔 쉐키 카라반 호텔
쉐키 카라반 호텔에 투숙했다. 실크로드의 교역길에 낙타 상인들이 자던 숙소다. 18세기 이곳 왕국의 칸에 의해 건축된 건물이다.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온 실크로드 카라반들이 지친 몸을 누인 곳이다. 우리는 오늘밤 카라반이다. 옛날 그대로인 숙소에서 잠을 잘 것이다. 벽돌로 지은 건물이 입구에서부터 범상치 않다. 실크로드 동서무역 전성기에 대상과 낙타 그리고 물건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두터운 옹벽구조의 요새 형태로 지어졌다. 카라반사라이KARVANSARAY라는 상호가 걸려있는 아치형 문으로 들어갔다. 호텔 입구의 문은 두터운 목재를 사용했고, 내부는 사각 구조의 방 건물과 정원이 빙 둘러쳐져서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말은 호텔이지만 호텔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로비의 벽돌 벽면에는 호롱불이 은은하게 빛을 발한다. 조각상들도 부착되어 있다. 좁은 계단으로 걸어서 2층의 방으로 갔다. 카라반이 자던 그대로의 방이다. 방의 벽면도 모두 돌이고, 구조도, 장식도 모두 예전 카바반이 사용하던 그대로에 가깝다. 화장실도 불편하고 현대의 생활과는 차별된 숙소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행복한 여행객이다. 앞으로 이곳 카라반사라이가 유네스코에 등재될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일반인이 투숙을 하지 못한다. 카라반사라이를 개조하지 못하는 것도 문화재 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다. 유네스코에 등재 되기 전에 우리는 실크로드 교역길의 낙타 대상이 되어 그들의 안식처였던 숙소에서 체험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정원은 네모진 구조로 옛날 낙타가 잠자던 마당이다. 고운 장미가 만발하여 그날의 향기를 발한다. 바깥 정원도 아름답다. 나무와 꽃이 아름다운 정원에서 저녁만찬 시간을 가졌다. 아제르바이잔의 마지막 밤, 참 행복한 여정이다.
* 아제르바이잔 쉐키 카라반 호텔 주변 풍경
쉐키Sheki 카라반 호텔 주변을 거닐어 보았다. 도로 바닥에서부터 건물들이 아주 옛스런 풍경 그대로다. 마른 강에서 채취해온 이곳 지역의 돌로 쉐키의 주택 짓는다. 호텔 입구 건너편의 건물 앞에 아제르바이잔 대통령과 국기가 커다랗게 걸려 있다. 이런 풍경은 아제르바이잔 곳곳에서도 많이 보았다. 호텔 주변에 기념풍 상가가 많다. 이 나라의 독특한 상품도 많다. 여행객들의 숙소가 곁에 있어서 식당이나 공예품, 실크 등의 관광물품 상점이 있다. 실크로드의 길목이어서 낙타 인형이 곱다.
2014년 5월 30일 금요일 아제르바이잔 쉐키, 조지아 시그나기, 트빌리시
* 아제르바이잔 쉐키 카라반 호텔 아름다운 정원 조식
오늘은 쉐키 카라반 호텔을 출발한다. 조지아로 이동한다. 날씨가 싸늘하다. 새벽 4시에 기상했다. 7시 30분에 조식을 하고 8시 출발이다. 약간의 비가 온다. 구름층이 내려온 듯하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코카서스 산맥의 비경을 보며 맛있게 먹었다.
* 아제르바이잔 운무서린 코카서스 산맥
코카서스 산맥의 운무서린 풍경이 비경이다. 산자락 아래 낮게 깔린 하얀 구름 띠가 산 허리를 감싸고 있다. 도로변까지 하얀 구름이 내려온다. 지금 아제르바이잔을 떠나는 길인데 아제르바이잔의 코카서스 산맥은 마지막 고운 풍경을 선사한다.
* 아제르바이잔 호두나무 가로수
아제르바이잔에서 조지아로 가는 중 휴게소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 화장실이 유료다. 할머니가 지키고 있다. 화징실 앞에는 하얀색 오디가 달린 뽕나무와 버찌 같은 붉은 열매가 달린 나무가 있더니, 도로변에는 호두나무 가로수가 있다. 도로변에 줄지어 선 호두나무 풍경이 독륵하다. 아제르바이잔에는 호두나무가 많아 여행 중 곳곳에서도 보아왔다. 도로변에는 젖소떼가 풀을 뜯는다. 모두 정겨운 풍경이다.
* 아제르바이잔 국경 마을
아제르바이잔 국경마을 도착했다. 나무가 울창한 마을이다. 길가 풀밭에 벌통을 여러기 놓고 양봉을 하는 풍경이 보인다. 허름한 병에 담아 판매도 한다. 코카서스 산맥의 꽃이 많은 지역이어서 양봉을 많이 한다. 아제르바이잔을 아쉽게 떠나며 이제 조지아로 가는 국경사무소로 가고 있다.
*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 국경선
아제르바이잔 국경선 사무국에서 출국심사를 했다. 비자표와 여권 그리고 얼굴 사진을 카메라에 입력한다. 긴 계단을 따라 담벼락 사이의 길을 따라 걸어서 조지아 국경사무국으로 간다. 큰 가방도 끌고 가야 한다. 이곳은 아직 여행객들이 많지 않아 여행자를 위한 시설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 계단 턱으로 인하여 대형 여행가방이 힘들게 오른다. 조지아 국경사무국에서 입국 심사를 마치고 조지아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