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우리 같은 시민들이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이다. 코로나19가 일상화되고 이제 곧 있으면 실내 마스크 해제도 눈 앞에 두고 있지만 찌들고 녹록치 않은 삶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음울한 느낌이 든다. 새해 첫 날, 그리고 설날을 보내긴 했지만 희망찬 생각들은 그때만 잠깐일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숨이 막혀 올 때가 종종 있다. 가정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식들이 부모 뜻대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욕심인가. 부모인 우리 세대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보이는 자식들을 보며 화가 나기도 하고 낙담된 마음이 음습해 오기도 한다. 자식들만이라도 밝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자식들을 키워왔던 지나온 세월이 후회가 되기도 한다. 자식 때문에 웃고 우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라.
참 위로가 되는 책을 만났다. 나를 돌아보게 책이다. 김기석 목사님의 깊이 있는 편지글이다. 코로나19를 맞이하여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방침 때문에 오랫동안 교우들을 대면으로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자는 보고 싶은 마음 가득 담아 틈틈히 편지로 교우들을 문안했다. 편지의 서두는 평안과 은총을 빌며 시작한다. 편지를 쓸 당시사회적 상황 때문에 힘들어 하고 지쳐 있는 교우들을 대상으로 썼다. 힘이 되고 싶고 위로를 전해 주고 싶어 하는 담임 목회자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편지글은 저자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 교우들에게만 읽혀질 내용이 아닌 것 같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읽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공감이 되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있는 모든 이들을 은총의 큰 손으로 감싸 주시기를 하나님께 청할 뿐입니다. _32쪽
이 책에서 저자는 다수의 책들을 인용했다. 책 읽는 내내 평범한 편지이기보다 마치 한 편의 설교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저자가 얼마나 깊이 있는 독서 생활을 해 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출판사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친절하게 책의 앞부분에 사무실을 배경으로 일을 하고 있는 저자의 사진들을 흑백으로 실어 놓았다. 꾸밈이 없고 정갈한 모습이다.
편지 글마다 주제에 맞게 그동안 읽어왔던 책에서 저자가 먼저 감동받고 도전되었던 문장들을 가지고 왔다. 깊이 있는 문장들때문에 편지를 읽는 독자들의 눈길이 오랫동안 글에 머무를 것이라 생각된다. 아마도 저자가 인용한 책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것 같다. 아니 그 책을 당장이라고 구해서 읽어 볼 마음이 들 것 같다. 고전에서 길어온 문장들은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르더라도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편지마다 가지고 온 문장들도 그렇다. 두고 두고 메모해 두고 읽어보고 싶을 정도다. 저자가 가지고 온 문장들은 아주 오래된 책에서 가지고 온 것도 있고 장르도 무척 다양하다. 시, 소설, 평론, 심지어 강원도 삼척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권일한)이 아이들과 만든 문집의 동시에서도 가지고 왔다.
저자는 과연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변함없이 독서를 생활화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목회라는 특수한 직업적 특성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인간의 본성을 깨닫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교회가 사회를 품기 위해서는 시대적 소명과 방향을 먼저 읽어갈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여러 지혜들을 책이라는 우물에서 길어 마셔야 한다.
저자가 책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간곡한 부탁조로 이야기하고 있다. 베드로 사도가 고백했던 것처럼 믿음에 덕을 세우는 일부터 하자고 간청하고 있다.
자기 앞에 있는 한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성공한 듯 보여도 실패자입니다. _59쪽
친절함은 지배하려는 마음의 금식입니다. _65쪽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어를 가려 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_117쪽
언어가 달라져야 세상이 달라집니다. 단정적인 언사는 대화의 의지를 차단합니다. 듣는 사람의 입장을 늘 살펴야 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는 침묵해야 합니다. _154쪽
말에도 멀미를 할 수 있다. _154쪽
이익에 담백해질 때 우리 속에 여백이 커집니다. 여백이 있어야 다른 이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_247쪽
책 제목 『사랑은 느림에 기대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행동적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앙 생활이 고백을 삶으로 번역하는 과정이듯이 말로만 사랑을 외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믿음, 기도라는 용어의 정의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청하여 얻어내는 과정이 아니다. 우리 마음을 하나님 마음에 접속하는 과정이다. _61쪽
믿음은 나의 가능성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가능성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_109쪽
저자 김기석 목사님처럼 품격 있는 어른들이 이 세상에 많아졌으면 한다. 물론 우리 모두 나이들수록 언어가 정제되고 태도가 정숙해지며 사고에 깊이가 있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노력해야한다. 저자가 읽었던 책들을 찾아서 읽어가는 목표를 세워도 좋을 것 같다. 홍수 때에 오히려 마실 물이 없다고 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도서관 서가에 무수히 많은 책들이 꽂혀 있지만 무슨 책을 읽어야 할 지 망설여질 때가 있다. 이 시대의 존경 받는 어른들의 독서 목록을 참조하는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저자 김기석 목사님의 독서 목록을 참조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