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봉 속 십만원
권대웅
"벗어놓은 쓰봉 속주머니에 십만원이 있다"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무슨 큰 비밀이라도 일러주듯이
엄마는 누나에게 말했다
속곳 깊숙이 감춰놓은 빳빳한 엄마 재산 십만원
만원은 손주들 오면 주고 싶었고
만원은 누나 반찬값 없을 때 내놓고 싶었고
나머지는 약값 모자랄 때 쓰려 했던
엄마 전 재산 십만원
그것마저 다 쓰지 못하고
침대에 사지가 묶인 채 온몸을 찡그리며 통증에 몸을 떨었다
한 달 보름
꽉 깨문 엄마의 이빨이 하나씩 부러져나갔다
우리는 손쓸 수도 없는 엄마의 고통과 불행이 아프고 슬퍼
밤늦도록 병원 근처에서
엄마의 십만원보다 더 많이 술만 마셨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고참이 된 누나가 지쳐가던
성탄절 저녁
엄마는 비로소 이 세상의 고통을 놓으셨다
평생 이 땅에서 붙잡고 있던 고생을 놓으셨다
고통도 오래되면 솜처럼 가벼워진다고
사면의 어둠 뚫고 저기 엄마가 날아간다
쓰봉 속 십만원 물고
겨울하늘 훨훨 새가 날아간다
***********
돈을 지갑이 아닌 호주머니에 그냥 넣는일이 드물어서 인지.
세탁을 할 때 주머니를 안뒤지는편이다.
두꺼운 청바지
세탁해 놓고 안입다 날이 추워져 꺼내 입고, 주머니가 거북해 손을 넣어보니 꾸깃꾸깃 세탁까지 한 지폐 십만원.
문득 권대웅님 쓰봉속 십만원이 떠올랐다.
어르신들을 모시다보니 더 공감가는 시였다.
출근 후 점심시간
햇살 먹으러간 옥상테라스 앞에 널어진 바지들을 보니 슬픔도 아닌것이 공허함도 아닌것이 울컥했다.
100세, 한세기를 돈 모으며 아등바등 살아도 결국 저 몸빼바지 한벌이면 되는것을..
며칠전 버려도 되는 것을 한사코 손수 깁겠다고 침침한 눈과 파킨슨 떨리는 손으로 바지를 깁던 어르신 몸빼도 바람에 흔들거린다.
이거봐라
인생 뭐 별거없다.
보란듯이 흔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