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힘든 일을 결정을 내린 후 "나를
따르라"고 하면서 뛰어드는 리더도 용감하지만,
뭔지도 잘 모르면서 그 리더를 따라가는 팔로워들도 대단히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용기는 맹목적인 순종의 용기가 아니다.
리더가 나가는 방향이 옳은 일이면 목숨을 걸되
리더라 할지라도 도덕성이나 판단력을 상실할 때는
정중하게, 그러나 결연히 그것을 지적할 수 있는 용기를 말한다.
나름대로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판단하는 이런 탁월한 팔로워들은
리더들이 자신의 카리스마적 권력에 도취되어 힘을 남용하거나 실수하지 않도록 견제해 주고 도와 주는 역할을 한다.
무조건 반역의 칼을 들라는 얘기가 아니다.
좋은 차일수록 브레이크가 좋아야 하듯 좋은 리더일수록 실수하지 않도록 옆에서 검토해 주는 팔로워가 있어야 한다.
진 헤크만과 덴젤 워싱턴이 주연한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라는 영화를 아주 감명 깊게 본 기억이 난다.
그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냉전 이후 급변하는 러시아의 정세를 세심히 관측하고 있던 미 정보국은
러시아의 쿠데타 세력이 핵 미사일 기지를 장악하여 미국을 향해 핵을 쓸 가능성을 간파하고,
초대형급 핵 잠수함을 러시아로 급히 파견한다.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사령부로부터 러시아의 핵 기지로 핵 미사일을 조준하고 발사 대기하라는
명령이 미 핵 잠수함에게 떨어진다.
10초 카운트다운을 준비하고 대기중이던 잠수함에 갑자기 본부와의 교신이 두절된다.
이때, 잠수함의 함장은 바로 핵 미사일을 발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젊은 엑소 장교(비상시 함장의 판단력을 상실할 경우 그를 대신하기 위해 파송한 장교)는 본부의 명확한 발사 명령 없이 함부로 핵 미사일을 발사하면 3차
세계 대전으로 가게 된다고 반대한다.
잠수함의 승무원들도 함장과 이 장교를 지지하는 두 파로 나뉘어 팽팽하게 대립한다.
그러나 결국은 통신이 재개되자 부하 장교의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되고, 잠수함은 무사히 돌아오게
된다.
후에 이 문제를 다룬 군법 재판에서는 함장과 장교 두 사람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 둘 다 옳았지만 둘 다 틀렸소."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던 점은, 함장의
인격이 나빴거나 능력이 없어서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탁월한 인격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사람인 이상 실수할 수 있고,
그때에는 그 실수를 보완하고 도와 줄 사람들이 옆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했을 때는 혼신의 힘을 다해 밀어 주지만,
잘못되었을 때는 공손히 그러나 단호히 브레이크 장치가 되어 줄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팔로워십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다.
성숙한 리더라면 그런 팔로워십을 장려할 것이다.
한홍 지음 <칼과 칼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