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 법대 15기 – 기별동정]
진리와 자유
입학 64년도, 졸업 68년도인 동문들은 1945년 해방을 전후하여 태어났다. 50년대와 60년대의 사회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경험하고, 4.19혁명과 5.16 군사혁명을 청소년인 나이에 체험한 세대이다. 대학에서는 대일청구권이 문제가 된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데모가 대학가를 달구고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인생의 황금기인 대학 4년은 그렇게 꿈결처럼 지나갔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예배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건성으로 듣던 성경이야기도 학점을 받아가며 배울 수 있는 곳, 집 떠난 외로움 속에서도 형제 같던 친구들, 어머니처럼 인정 많은 하숙집 아줌마와 식구들, 신촌로터리의 왕자다방에서 듣는 감미로운 팝송들, 고시준비생들의 쉼터 역할을 했던 정문앞 철로 밑에 있던 오리서점,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평생 동안 잊지 못하는 추억이 되었다.
마음속에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캠퍼스인 연세동산. 봄이면 잔설 속에서 피어나는 벚꽃의 장관, 이른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으로 하얗게 뒤덮인 뒷동산, 낙엽이 흩날리는 백양로, 사계절이 숨 쉬는 안산골짜기는 우리 집 안방과 같은 마음의 고향이었으며, 그 속에 인생의 진리가 숨 쉬고 있었다.
대학에서 배운 전공과목은 사회생활의 기초가 되어, 한평생을 살아가는데 밑거름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에는 70년대 초에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으며, 연세는 자부심의 출발이었다. 70년대의 산업화와 90년대의 민주화를 위해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군으로서 묵묵히 맡은바 소임을 첫째로 생각하는 전통적인 민주시민으로 성장하였다.
똑같은 법학을 공부하였음에도 각자의 진로와 희망은 다양하다. 64학번 동문 중에서 사법고시를 목표로 한 친구들은 거의 합격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현재까지도 법조계에 종사하고 있는 김태환(변호사), 박재승(판사,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변호사)동문과 장우건(부장판사, 변호사) 동문이 있다. 그러나 이재술(부장검사, 변호사)동문과 이치호(판사, 국회의원 법사위원장, 변호사) 동문은 유명을 달리했다. 늦게까지 고시공부를 했지만 끝내 합격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낙향한 김남주 동문은 요사이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김영삼(인천대 교수), 방홍길(법률사무소 대표)동문과 이방호(수협중앙회 회장, 국회의원 한나라당 사무총장) 동문은 전문분야에서 아직도 건재하다. 공무원으로 국가에 봉사한 강도원(통일원 연수원장), 김봉수(안기부), 박종원(재무부, 코리안리 부회장), 안태선(안기부), 이대길(안기부), 이철승(국세청 국장), 최이식(교육부 국장)동문과 한대수(충청북도 부지사, 청주시장) 동문들이 있다.
64학번 법대 동문들은 학창시절에 사법고시에 전념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며, 1968년 졸업 시에는 취직문도 넓지 못했다. 김천모(오.이.씨. 전무), 김흥근(펜타죤 대표), 민웅기(S-oil 상무), 박 실(한국 카푸로락탐 사장), 박웅호(아가방 사장), 손동관(펭귄 부장), 이대희(삼일부직포 전무), 이헌구(한국지퍼 상무), 정영호(기풍 감사), 조재철(세아제강 부회장)동문과 황인굉(독서실 대표) 동문은 산업전선에서 정년까지 소임을 다하였다. 그러나 오필휘(팔리컴퍼니 대표) 동문과 이종오(남미이주공사 사장) 동문은 일찍이 유명을 달리하였다.
또한 독립된 기업체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경영하고 있는 강권석(아람출판 대표), 김기환(오륭교역 대표), 장윤성(정화상사 대표), 한국일(남경무역 대표) 동문이 있으며, 강행남(금성철강 대표), 문태삼(두란해운 대표), 안 철(동성프로덕션 대표)동문은 사업을 접고 여생을 즐기고 있다.
법과 출신이면서도 뜻한 바 있어 유일하게 목회일을 하고 있는 김주택(창천교회 목사) 동문이 있으며,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석원(LA 사업)동문과 함창헌(시애틀, 사업) 동문은 건재하며, 그러나 김철영(시카고, 사업)동문과 권순일(뉴욕, 사업) 동문은 작고하였다.
64학번에는 유난히도 금융기관에 종사했던 동문들이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이 정년퇴직하여 여생을 소일하고 있다. 권용희(강원은행 지점장), 김광림(신한은행 지점장), 김조원(제일은행 본부장), 배상린(제일은행 본부장), 배재익(국민은행 지점장), 서한백(주택은행 지점장), 손동관(삼성화재 지사장), 안 곤(한일은행 지점장), 유병호(국민은행 지점장), 윤용훈(제일은행 지점장), 이부형(제일투자금융 전무), 이재천(국민은행 지점장), 장수봉(산업은행 지점장), 최상태(서울신탁은행 지점장), 한규채(동양화재보험, 한국생산성본부 교수)동문과 홍성우(제일은행 지점장) 동문이 금융기관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한상찬(삼성화재보험 대리점 대표) 동문은 아직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김창교(외환은행 지점장)동문과 정무영(서울신탁은행 지점장) 동문은 일찍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제 64학번 동문들은 우리나라의 평균기대수명에 근접한 나이가 되었다. 지나간 한세대의 사회생활 속에서 서로 힘이 되었고, 좋은 친구들을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법대 15기 동문들은 사회에 진출해서부터 매월 만나는 전체모임인 삼화회와 강남북 모임인 일수회, 수지분당지역의 막월회 모임과 골프모임 등 이 있다. 동기회(회장 안 철, 총무 김기환)에서는 매년 단체여행과 송년회를 개최하며, 동기생들의 경조사도 챙기고 있다.
우리는 인생이란 연극에서 마지막 무대를 맞이하였다.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열심히 일했으며, 많은 여행도 했으며, 기대 이상으로 충실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살아오는 동안에 후회도 있지만,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은 모두 다 이루었다. 사랑하고, 웃고, 때로는 울기도 했지만, 이제는 추억 속에서 새로운 힘을 얻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고 있다.
’의학계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는 진화론자이면서 신경의학자인 올리버 색스(Oliver Sacks)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2015년 타계하기 전에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나의 인생‘ 중에서 마지막 구절로 우리들 연극도 막을 내리고자 한다.
“나는 두렵지 않은 척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일종의 고마움이다. (...) 무엇보다도,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 생각하는 동물이었다. 그 자체가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첨부: 사진 5매
<2013년 홍도여행>
첫댓글 "진리와 자유" 초고에 대하여 동문들의 경력이나 수정을 요하는 부분은 의견을 받아 정정하겠습니다.
수정원고는 3월 말까지 연세 50주년 홈컴잉 출판담당자에게 보내면 됩니다.
3월 23일 김광림회장의 조언에 따라 동문들의 경력사항 중에 일부를 수정하였습니다.
안 철 동기회장의 요망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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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님 보다 더 -- 어머니 처럼● 박종원 (재무부, 코리안리 부회장)
● 조재철 (세아제강 부회장)- 대아제강이 아님
● 그러나 오필휘동문 (팔리컴퍼니 대표) 과 이종오(남미이주공사 사장) 동문은 일찍이 유명을 달리하였다.
● 이대회 ---이대희
● 안철 (동성프로덕션 대표) 다음에 나오는 오필휘동문 내용은 삭제
● 여생을 소일하고 있다 를 여생을 즐기고 있다로
● 김창교(외환은행 지점장)과 정무영(서울 신탁은행 지점장)동문은 일찍이 유명을 달리했다.
●매월 만나는 전체모임인 삼화회와 강남북 모임인 일수회, 수지분당지역의 막월회 모임과 골프모임
● 망년회를 개최하며 를 송년회로
김기환 사무총장의 부탁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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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원동문의 글 중에서 대학생활
중 왕자다방이나 대포집은 추억거리로 언급이 되었는데
정문앞 철로 밑에 있던 오리서점(?)에 관한 추억도
한마디 했으면 어떨가 합니다
고시준비생들의 쉼터 역할을
많이 했던 것으로 생각되고
(사족이지만 나는 별로고) 우리행동거지의 품격도 좀높일
필요가 있지않나 합니다
안철회장과 김기환총무의 의견을 반영하여 전부 수정완료하였습니다.
이상으로 별다른 이견이 없으면, '50주년 홈컴잉 기념지' 편집자에게 제출합니다.
이부형도 상무에서 전무까지 올랐습니다.
대표이사까지 바라보뎐 시기에 IMF가 오셔서 그만 하차하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