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읍산(趨揖山, △582.6m), 추읍산 바로 앞의 안개는 흑천(黑川)에서 피어오른다.
特地登臨第一峯 우뚝한 제일봉에 올라서서 굽어보네
深深從古白雲封 예로부터 흰 구름이 깊이 봉한 이 봉우리
欲辨燕齊纔引頸 연(燕)과 제(齊)를 분간하려 목을 빼고 보는 찰나
漸離膚寸倐圍筇 조금씩 피던 구름 지팡이를 휘감네
身外忽驚滄海闊 주변이 갑작스레 너른 바다 되었으니
坐間已失水山重 겹겹의 산수가 잠깐 사이 사라졌네
應知仙子要持贈 알괘라 신선이 이 즐거움 선사하려
故出靈氛滿眼濃 일부러 신령스런 기운 짙게 피웠음을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강민정 (역) | 2014
―― 무명자 윤기(無名子 尹愭, 1741~1826), 「백운봉에 오르자마자 문득 산허리에서 피어
난 흰 구름이 삽시간에 사방을 가득 메워 가없는 흰 바다가 되기에(纔登白雲峯 忽白雲冉冉
自山腰起 頃刻環繞瀰漫 成無邊白海)」
주1) ‘연(燕)과 제(齊)를 분간하려 목을 빼고 보는 찰나’에서 연과 제는 중국 하북성(河北
省)과 산동성(山東省) 일대의 지방을 이르는데 용문산 백운봉에 올라 서쪽으로 바라보면 황
해(黃海) 너머 중국 땅도 볼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아주 먼 곳까지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고
말한 것이다.
주2) 백운봉은 지금의 백운봉이 아니라 용문산 주봉인 가섭봉을 말한다.
▶ 산행일시 : 2020년 9월 12일(토), 비
▶ 산행시간 : 7시간 38분
▶ 산행거리 : 도상 12.8㎞
▶ 갈 때 : 청량리에서 무궁화 열차 타고 용문 가서, 택시 타고 신점리 용문사 입구 버스종
점에 감(택시비 11,600원)
▶ 올 때 : 새수골 용문산자연휴양림 입구에서 택시 불러 타고 양평에 와서(택시비 8,100
원), 전철 타고 상봉역에 옴
▶ 구간별 시간
06 : 40 - 청량리 무궁화 열차
07 : 17 ~ 08 : 13 - 용문역
08 : 34 - 신점리 용문사 입구 버스종점, 산행시작
08 : 58 - 용문사
09 : 22 - 용문산 남릉 주릉, 532.0m봉
09 : 40 - 절고개, ╋자 갈림길 안부, 왼쪽은 상원사(上院寺) 가는 길
10 : 18 - ┣자 갈림길 안부, 오른쪽은 용각골 마당바위 가는 길
11 : 10 - 용문산 가섭봉(1,157.1m)
11 : 40 ~ 12 : 32 - 점심
12 : 40 - 용문산 서봉(1,135m) 아래
13 : 18 - 장군봉(1,065m)
13 : 06 - 함왕봉(咸王峰, △967.0m)
14 : 02 - 구름재, ┣자 갈림길 안부, 오른쪽은 사나사(舍那寺) 가는 길
14 : 15 - ┫자 갈림길, 왼쪽은 연수리 가는 길
14 : 32 - 백운봉(△941.2m)
15 : 39 - 두리봉(543.2m)
16 : 12 - 용문산자연휴양림, 약수사, 산행종료
16 : 33 ~ 16 : 47 - 양평역
17 : 50 - 상봉역
1. 용문산 지도
▶ 용문산 가섭봉(1,157.1m)
용문산을 얘기할 때 유명한 것을 들라고 하면 흔히 다음의 세 가지를 든다.
첫째, 용문사 은행나무다.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수령은 약 1,100여년이며, 수고 67m, 흉고는 14.0m를 넘는다. 동양에
서 가장 큰 은행나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재위 : 929~935)
의 세자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심은 것이라고 하고,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
도 한다.
둘째, 용문산 지구 전투다.
한국전쟁 중 1951년 5월 16일부터 5월 21일까지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과 가평군 설악면 일
대에서 국군 제6사단이 중국군 제63군에 속한 3개 사단과 벌인 전투이다. 국군이 큰 승리를
거두어 ‘용문산 대첩’이라고도 한다.
이 전투에서 국군 제6사단은 1개 연대 병력으로 중국군 1개 군단의 공격을 저지하는 성과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중국군 1만5천여 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키는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제6사단에는 100여 명의 전사자를 비롯해 6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용문산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면서 국군과 유엔군은 수세에서 벗어나 대대적인 반격 작전을 추진하게 되었
으며 나아가 중국군이 대공세를 멈추고 휴전 협상에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셋째, 용문산 백백교 사건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7년에 희대의 살인을 저지른 백백교(白白敎)의 실질적인 교주 전용해(全
龍海)가 도일봉 자락 솔밭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는 10년 동안 교단 간부들과 무려 620
여 명의 신도들을 무참하게 살해하였다. 용문산 위성봉인 도일봉 자락이 백백교의 본거지였다.
일제는 전용해의 시신을 거둔 후 범죄연구용 삼기 위해 머리를 포르말린 용액 에 넣어 보관
했고, 이것은 해방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전해졌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전용해
의 머리는 2011년 10월 25일 벽제 화장장에서 화장되었고, 이 유골은 포천 백운산 아래 흥
룡사 청암부도에 안치되었다.
* * *
어제 날씨가 무척이나 청명했다. 문득 용문산에서의 가없는 망망한 조망이 생각나고 오늘도
날씨가 이럴 것이다 예상하여 거기를 가기로 했다. 용문 가는 열차표를 서둘러 예매했다.
첫 전철로 연결되는 06시 40분 청량리발 열차다. 밤새 창문을 들이치는 빗발도 대수롭지 않
게 여겼다. 설마 낮까지 내리려고, 비가 그치면 조망은 더욱 장관일 거라는 기대에 잔뜩 부풀
었다.
이 비가 오는데 용문산을 가시려고요, 택시기사님의 인사를 불안하게 듣는다. 용문사 입구
버스종점은 물론 그 아래 너른 주차장도 한산하다. 문화재관람 매표 직원은 마스크 쓰고 출
근하였다. 경로우대 1장이라고 말하자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고 바로 표를 끊어준다.
2,500원이 무료다. 조금은 쓸쓸한 생각이 든다. 내 번거롭지만 신분증을 보자고 했으면 좋았
을 것을.
나쁜 마음을 먹지 마라, 부모에 효도하라. 일주문을 지나 대로변 판자에 새긴 거룩한 법문을
보며, 그 아래 청량하게 법문하는 계류소리를 들으며 용문사를 간다.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
지 않는다. 안개가 심하게 일지 않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긴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볼 때마다
신령스럽다. 단일의 나무로는 천연기념물 제2호다. 제1호는 헌법재판소 구내에 있는 ‘재동
백송(천연기념물 제8호)’이다.
용문봉 진등은 암릉이라 꽤 미끄러울 것. 가장 흔한 것이 가장 귀한 것이라고 한다. 여러 발
길이 흔한 등로를 간다. 용문사 담벼락을 지나 계류 건너고 데크계단을 오르자마자 왼쪽 사
면을 돌아간다. 가파른 오르막 사면에 등산로 유도선 밧줄이 달려 있다. 밧줄 잡고 한 피치
올라 지능선에 올라선다. 숲속 길 바람이 불면 소낙비가 내린다.
2-1. 용문사에서 바라본 용문산 가섭봉(뒤쪽)
2-2. 용문사 은행나무
3. 추읍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사람들의 발음 편의를 위해 ‘주읍산’이라고 했다.
4. 추읍산
이 산에 오르면 일곱 개의 읍이 보인다고 하여 칠읍산(七邑山)이라고도 불렀다.
5. 맨 오른쪽 뒤가 추읍산
6. 맨 오른쪽 뒤가 추읍산
7. 추읍산
용문산을 오르면서 각각 고도를 높여 바라보았다.
8. 용문에서 용문산 오는 길에 거치는 마을들
9. 추읍산, 뒤쪽 멀리는 한강이고, 앞쪽 마을은 연수리다.
10. 문례봉(폭산, 천사봉)은 운무에 가렸다.
대기는 서늘하다. 그래도 오르막에서는 구슬땀을 흘린다. 등로 주변의 아름드리 노송 우러르
다 노송 사이로 용문봉을 들여다보며 간다. 지난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은 이곳에도 흔적을
남겼다. 뿌리가 뽑혀 넘어졌거나 줄기가 부러진 거목이 등로를 가로막았다. 용문산 남릉 주
릉에 오른다. 532.0m봉. 배낭 벗어놓고 가쁜 숨 돌린다. 휴식할 때는 우산 받친다.
비가 오면 게을러진다. 웬만한 경치에서는 비닐봉투 꼭꼭 여민 가방을 열고 카메라를 꺼내기
싫다. 우산도 받쳐야 한다. 쭈욱 내린 야트막한 안부는 절고개로 ╋자 갈림길이다. 왼쪽의 잘
난 길은 아홉 산굽이를 돌아 상원사(上院寺)로 간다. 이제 용문산까지 줄곧 오르막이다.
가파를만한 데는 밧줄이나 데크계단을 설치했고 암릉은 등로 따라 돌아간다.
한 피치 숨 가쁘게 오르면 ┣자 갈림길인 655.5m봉이다. 등로는 잠시 잠잠하다 바윗길 오르
막이 시작된다. 뒤돌아보는 데크계단 걸음걸음이 경점이고 봉봉 또한 경점이다. 추읍산이 또
렷하다. 추읍산은 용문산을 읍(揖)하고 있는 형상이라 그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하나, 용문
산 오르면서 뒤돌아 바라보는 추읍산의 모습은 그저 단아하고 당당하다. 도리어 그 주변의
뭇 산들이 서로 다투어 추읍산에게 읍하는 형상이다.
이렇듯 암릉을 데크계단으로 도배해버려서는 용문산을 오르는 맛이 전혀 없다. 날씨마저 쾌
청했다면 발걸음은 퍽 심심할 뻔했다. 점점 고도를 높여 그 주변을 넓힌다 하여 추읍산은 조
금도 위축되지 않는다. 대천인 흑천과 장골인 상원골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는 추읍산을 부용
인양 살며시 감싼다. 간간이 홀로 산행객과 마주친다. 서로 길 양보하느라 머뭇거린다. 그들
은 아침 일찍 용문사에서 올랐다고 한다.
┣자 갈림길. 오른쪽은 용각골 마당바위에서 오는 길이다. 평상이 놓여 있어 배낭 벗어놓고
휴식한다. 용문산 정상 0.9km. 빗속 미끄러운 바윗길이다. 핸드레일과 데크계단의 연속이다.
등로 벗어난 암봉이라도 오를 수 있으면 들러 추읍산을 또 본다. 한강기맥 문례재로 가는 ┣
자 갈림길을 지나고 잠깐 오르면 용문산 정상 직전 쉼터다.
예전에는 용문산의 ‘용문’이 과연 어디일까 하고 그 구체적인 위치를 알아보려고 애썼다. 부
산(釜山)이나 울산(蔚山), 마산(馬山)의 산은 어느 산을 말하는지, 대구(大邱)의 큰 언덕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한 것처럼 말이다. 이 쉼터에서 오른쪽 사면을 약간 돌아 오르면 커다란
바위가 차례가 나온다. 그 바위 사이의 협곡을 용문으로 알았는데 나만의 생각이었다.
용문산의 옛 이름은 미지산(彌智山)이다. 미(彌)는 두루, 널리라는 뜻이고, 지(智)는 슬기,
지혜를 뜻하니, 스님들이 이 산에 고승대덕들의 덕풍지광(德風智光)이 미만(彌漫)해 있다
고 하는 풀이를 그들의 아전인수로만 여길 일은 아닌 것 같다. 한편, ‘미지’란 미르, 곧 용을
뜻하여 우리말의 미지산을 그 뜻을 살려 용문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하니 용문의 위치
를 찾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데크계단 110m 올라 용문산 정상에 선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친다. 금방 땀이 식고 춥다.
문례봉과 봉미산, 도일봉은 운무에 가렸다. 옛 문객 중 용문산을 자주 오른 이는 무명자였다.
그가 왜 유독 용문산에 대해 많은 시를 남겼을까 의문이었는데, 그는 1815년에 양근(지금의
양평은 양근과 지평에서 한자씩 취하였다) 이사 와서 살았다.
그러니 무명자의 「백운봉에 올라(登白雲峯)」라는 시에 나 또한 절대 공감하는 바다. 백운
봉은 지금의 백운봉이 아니라 용문산 주봉인 가섭봉을 말한다.
層層危石拄乾坤 층층의 높은 바위 하늘 땅을 받치었고
古木蒼茫日月昏 고목이 우거져 햇빛 달빛 어둑하네
地劈千尋山彌智 천 길 높이 솟은 땅은 미지산(彌智山)이요
天開一穴郡楊根 하늘로 트인 자리 양근군(楊根郡)일세
頭擡帝座通呼吸 머리 위의 선계와 숨결 통하고
足躡仙風爽魄魂 맑은 바람 밟고 서니 정신이 산뜻
便覺朝鮮眼下小 조선 땅이 눈 아래 조그맣게 느껴지니
玆遊奇絶是龍門 이번 유람 최고 장관 용문산일레
11. 용문산 정상에서 바라본 추읍산
12. 용문봉, 그 오른쪽 뒤는 중원산
13. 멀리 왼쪽은 봉미산
14. 투구꽃(Aconitum jaluense Kom.)
유독식물로 뿌리에 강한 독이 있는데, 초오(草烏)라고 하며 약재로 쓴다.
15. 뒤는 백운봉
16. 배너미고개, 대부산, 마유산 쪽으로 가는 능선
17. 백운봉 가는 도중에 바라본 추읍산
18. 백운봉
19. 멀리 왼쪽은 예봉산, 그 오른쪽은 운길산, 그 앞은 형제봉
20. 발로 줌인한 백운봉
▶ 백운봉(△941.2m)
비바람에 쫓겨 서둘러 용문산을 내린다. 백운봉을 향한다. 우선 장군봉 가는 길, 지능선을 넘
고 넘는다. 비바람은 숲속까지 파고든다. 손 시리게 춥고 배고프다. 산행시작 후 홍로 몇 조
각만 먹었을 뿐이다. 등로 벗어나 용문산 서봉 아래 바위벽이 명당이다. 우산 받치고 버너 불
피워 고추장 삼겹살을 굽는다. 곁들이는 마가목주가 오히려 심심하다.
장군봉능선에 올라서고 경점인 용문산 서봉 자락을 들러 주변 경치를 살핀다. 원경은 운무에
가렸다. 장군봉 0.5km. 줄달음한다. 오른쪽 사면의 풀숲이 겉으로는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만
실은 푸른 사막인 줄 안다. 지난봄에 캐이 님과 샅샅이 더듬었었다. 그래서 머뭇거리지 않고
막 간다. 장군봉. 주변 나무숲을 베어내 조망이 트이게 했다.
장군봉을 기점으로 등로는 급전직하한다. ┫자 갈림길 왼쪽의 감미봉 또는 상원사 가는 길
이 그렇고, 직진하여 백운봉 가는 길이 그렇다. 뚝 떨어졌다가 함왕봉(△967.0m)에서 잠시
멈칫한다. 함왕산성의 허물어진 성곽에 이어 헬기장을 지나고 오늘은 제법 짜릿한 손맛을 보
는 암봉을 오른다. 비바람 헤쳐 암봉에 올라도 원경은 여전히 운무에 가렸다.
바닥 친 안부는 ┣자 갈림길인 구름재다. 드디어 백운봉 품에 든다. 나지막한 봉우리 2개를
넘으며 워밍업하면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숨 가쁜 고지에 왼쪽으로 연수리 가는 ┫자
갈림길이 있는 건 의외다. 슬랩과 절벽 덮은 데크계단과 철계단을 오른다. 뒤돌아보는 장릉
끝의 용문산은 운무에 가렸다. 아무 볼 것이 없으니 계단 오르는 걸음이 한층 팍팍하다.
백운봉. 정상 표지석은 굳건히 비바람을 버티고 있다. 삼각점은 1등 삼각점이다. 용두 11,
1988 복구. 데크전망대 두 곳에는 대학생인 듯한 젊은이들이 야영을 하려는지 텐트를 치고
있다. 밤새 비바람에 텐트가 날려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그러나 이튿날 이 산정에서 맞이
하게 될 장려한 아침을 생각하면 그들이 부럽기 짝이 없다.
비바람 부는 날씨는 아까보다 더 궂어졌다. 백운봉 정상에서 잠깐 서성이다 테크계단을 내린
다. 0.4km를 가파르게 내려 왼쪽으로 형제우물(0.5km) 가는 ┫자 갈림길 지나면 사나운 길
은 다 끝났다. 더러 야자매트가 깔린 산책로를 간다. 야트막한 안부인 삼태재를 지나 한 피치
오르면 682.5m봉 너른 헬기장이다. 운무는 백운봉을 금방 덮칠 기세다.
걷고 있어도 걷고 싶은 산책로는 계속된다. 산책로 주변의 안개 자욱한 나무숲은 또 다른 가
경이다. 인적 없는 능선이 유혹해도 두리봉 이정표가 안내하는 잘난 길을 따른다. 오른쪽으
로 방향 틀어 한 차례 뚝 떨어져 왼쪽으로 쉬자파크 가는 갈림길 안부 지나고 50m 바짝 오르
면 두리봉 정상이다. 정상의 돌탑은 예전보다 더 커졌다. 두리봉에서 양자산, 백병봉, 한강
등의 조망 역시 가렸다.
하산! 용문산자연휴양림(0.8km)을 향한다. 가파른 내리막에는 굵은 밧줄을 달아 놓았다. 쭉
쭉 떨어져 내린다. 일단의 묵직한 박 배낭을 짊어진 젊은이들을 만난다. 백운봉에 누군가 텐
트를 쳤던가요? 하고 묻는다. 내일 아침 날이 썩 좋을 것이라는(그랬다) 예보가 있었나 보다.
이런 날씨에는 백운봉을 오르기 전인 △682.5m봉 헬기장이 더 없는 명당이겠더라고 추천해
준다.
용문산자연휴양림이 한산하다. 새수골 울리며 흐르는 계류를 연신 기웃거리며 내린다. 약수
사 앞. 양평 택시 부른다.
21. 용문산, 오른쪽 멀리는 중원산
22. 멀리 가운데는 중원산
23. 백운봉, 왼쪽에 추읍산이 흐릿하다. 사진의 조그만 흰점은 비다.
24. 발로 줌인한 백운봉, 사진의 조그만 흰점은 비다.
25. 추읍산
26. 백운봉 정상 표지석
27. 백운봉 서릉
28. 새수골 계류
부락 뒷산에 조숙(鳥宿)이라는 절이 있어 조숙부락이라고 부르며 조숙을 우리말로 새숙골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부르기 쉬운 ‘새수골’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29. 새수골 계류
첫댓글 멋집니다. 감상 잘했습니다.
추읍산이 그 날의 포인트였군요,,,종일 비와 구름속에서 지내셨습니다...그래도 좋은 하루였죠^^
버너에 고추장 삽결살 불고기, 마가목주라. 쎈데. 럭셔리합니다.
골골 구름이 피어오르는 사진이 예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