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갈량(諸葛亮)
자는 공명(孔明), 삼국지연의에 의해 거의 신격화된 사람으로, 주 문왕 서백후를 도운 강태공, 한 고조 유방을 도운 장자방과 함께 5천 년 중국사에서 3대 명재상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제갈량은 주로 경세(經世)를 겨냥한 학문을 익혀왔고, 당대의 재사들과 교유(交遊)를 통해 천하대세를 가늠할 식견과 안목을 기르고 있었다. 또한, 결혼을 통하여 명문가와 결속을 맺고 신분상승을 꾀했다. 제갈량의 장인은 호족인 명사(名士) 황승언, 장모는 형주 제일의 명문 채 씨 집안의 딸로서 형주자사 유표의 부인과 자매였다.
제갈량은 세상에 나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미 확고한 터전과 많은 인재를 보유한 조조와 손권보다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유비를 주군으로 택했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천하3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설명하면서 서촉에서 기업(基業)하여 오와 힘을 합쳐 위를 공략하는 전략을 제시한다.
약관 27세의 제갈량이 혜성처럼 등장하면서부터, 한때 천하의 7할을 석권했던 조조가 참담한 좌절을 맛보게 됨은 물론, 삼국지의 주역 자리도 그에게 빼앗기고 만다. 적벽대전에서 손권과 유비의 5만 연합군이 조조의 백만 대군을 괴멸시킬 수 있었던 것은 주유의 공이 크지만 제갈량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갈량은 기도로 동남풍을 불게 하기도 하고, 공성(空城)에서 거문고 하나로 적의 대군을 물리치기도 하고, 또 축지법을 써서 추격하는 적군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의 행적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부풀려진 부분도 많다.
제갈량은 어리석은 촉 황제 유선을 하늘처럼 받들고 충성을 다하는 모습에서 명재상으로서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국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똑똑한 2인자가 아둔하기 짝이 없는 1인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갈량은 나이 54세, 과로로 인한 폐결핵으로 죽자, 그와 함께 중원을 다툰 사마의는 이런 말을 남긴다.
“공명은 참으로 천하의 기재이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가 쓴 제갈량에 대한 인물평을 보면,
"해마다 군사를 이끌고 나갔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으니 장수로서는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승상으로서는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고 백성을 따뜻하게 어루만질 줄 알았으니 실로 다스림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가히 관중과 소하에 견줄 만했다."
중국 사천성 성도 무후사(武侯祠)에 제갈량 전(殿)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