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한 우물만 파며 살아온 인물이 있다. 바로 베지밀로 유명한 정식품 창업자 정재원 회장이다. 정 회장은 일제강점기 시절 당시 2년 만에 독학으로 19세라는 최연소의 나이에 의사고시에 합격했다. 공인된 합격자 중 최연소의 나이였다. 그가 성모병원 소아과 의사로 일할 때 한 아주머니가 죽어가는 갓난아기를 업고 찾아왔다. 딸 다섯을 낳고 겨우 얻은 아들이었다. 정 회장은 밤을 새며 아기를 돌봤지만 아기는 뭘 먹이면 설사만 하다 일주일 만에 죽었다. 정 회장의 의사 시절 이런 식의 아이의 죽음이 반복되었다. 그 병의 원인을 밝히고자 20여 년간 독학으로 연구했으나 홀로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다.
이에 정 회장은 나이 마흔이 넘었던 1960년 6남매와 아내를 남겨놓고 홀로 영국 런던으로 떠났다. 당시는 해외 유학 자체가 흔한 일이 아니었던 시대였으니, 가장이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유학을 간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영국에서조차 그 병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자, 그는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64년 미국에서 유당불내증이란 병을 알게 됐다. 유당분해효소가 선천적으로 결핍된 아이가 모유나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고 대장에서 유독물질을 형성해 난치성 설사가 생기고 죽음까지 이르는 병이었다.
정 회장은 유당불내증 치료에 콩이 도움이 된다는 점을 발견하여 귀국한 뒤 병원 한구석에 실험실을 차려놓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연구를 위해 쥐들을 사용하다 이웃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베지밀이 탄생한 것이다. 이 베지밀로 유당불내증 아기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하자 수요가 급증하여 결국 1973년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만들고 정식품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1917년생인 정 회장은 96세에 이르렀다. 그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하여 외국의 콩 연구 논문을 섭렵하고 있다. 그는 틈틈이 실험실에도 직접 들어간다. 정식품은 베지밀을 비롯하여 모든 제품들이 콩으로 만든 두유이다. 이미 70년대에 대박을 터뜨린 점을 감안한다면 그도 얼마든지 타 업종 진출이 가능했으나 그는 오직 두유 생산에만 전념했다.
현재 정식품의 연간 매출액은 2400억 원대이다. 이제 세계10대 경제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큰 기업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지금껏 만든 베지밀은 무려 110억병이다. 현재는 미국, 일본 등 13개국에 수출하며 두유시장에서 40%를 점유하고 후발업체에도 두유 제조기술을 제공한다. 그는 오직 아직도 더 많은 사람들이 두유를 먹어 건강하고 오래 살기만을 바란다.
기업가의 성공 기준으로만 보자면 정재원 회장은 이병철, 정주영 회장 등에 비해 큰 성과를 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성공한 기업가를 목표로 살아오지 않았다. 청년시절 원인 모를 병으로 죽어간 아이들을 치료하는 것만이 목표였다. 96세인 현재까지도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