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동체는 진정한 샬롬으로 사귐이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동안 팀장님께서 말씀해 주신 ‘샬롬’의 단어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헬라어 “샬롬(에이레네)”은 ‘결합하다’는 어원에서 유래 되었고,
문자적 또는 상징적으로 평화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함축적으로 “번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 “샬롬”에도 “번영”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화, 하나 됨, 안식 등등의 뜻은 어느 정도 쉽게 이해가 되었는데,
번영(?)
‘왜 갑자기 번영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샬롬”은 그냥 단순히 우리 영혼의 평안, 평화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완성’이라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전까지
“샬롬”을 단순한 평안, 평화
그리고 개인주의처럼 “내 영혼이 평안하면 되는거지”라고만 생각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팀장님께서 “샬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샬롬” 다음으로 진정한 “사귐”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말씀을 들으면서
“샬롬”과 “사귐”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귐”의 원어에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교제, 참석, 우정, 상호 교류가 있으며,
또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바로 “분배”입니다.
“샬롬”과 “사귐” 안에는
“번영”과 “분배”라는 의미들이 각각 있었습니다.
무언가 점진적으로 퍼져서 흘러가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샬롬”도 나에게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흘러가도록
“사귐”도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다른 누군가와 나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3절 말씀을 살펴보면,
그 사귐이 흘러 가는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개인주의입니다.
교회에서의 모습도 개인주의나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이기주의의 모습이 강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이 강합니다.
말씀과는 전혀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샬롬”과 “사귐”이 있으려면
나란 존재는 없어야 합니다.
난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는
“나”라는 존재를 죽이고
오직 “예수님(말씀)”만 있고
예수님으로 “샬롬”을 얻고
나에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는 공동체에게 “샬롬”이 흘러가며,
서로 나누며 진정한 “사귐”이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공동체가 되어서
사도행전의 공동체의 모습이 우리도 있을 것입니다.
행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행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행 4:34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행 4: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행 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행 4: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