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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언삭궁(多言數窮)
말이 많으면 자주 곤란한 처지에 빠짐을 이르는 말이다.
多 : 많을 다(夕/3)
言 : 말씀 언(言/0)
數 : 자주 삭(攵/11)
窮 : 다할 궁(穴/10)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말이다. 전하기만 하면 좋은데 이것이 넘치거나 잘못 알려져 관계를 갈라 놓기도 하고 원수를 만들기도 한다.
모든 화의 근원은 말을 하는 입에서 나온다는 풍도(馮道)의 구화지문(口禍之門)은 말조심을 하라고 할 때 맨 처음 등장한 정도로 유명하다.
말은 조심할 뿐만 아니라 적게 해야 한다는 경계의 말도 많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이것저것 늘어놓다 보면 무엇을 전하려 했는지 잊을 경우가 있다. ‘군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우리 속담이 콕 집었다.
말이 많으면(多言) 자주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數窮)는 이 말도 자기가 한 여러 말이 결국 자기를 옭아매는 올가미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셈 수(數)는 삭뇨(數尿)라 할 때의 자주 삭, 빽빽한 그물 촉고(數罟)라 할 때는 촘촘할 촉도 된다. 상대방을 설득할 때 말을 적게 하거나 침묵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으니 말이 많다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성어는 도덕경(道德經)에서 노자(老子)가 한 말이다. 도가(道家)의 창시자 노자는 희언자연(希言自然)이라 하여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강조하며 여러 장에 걸쳐 말이 많은 것을 멀리 하라고 했다.
제5장 虛用章(허용장)에 실려 있는 부분의 내용을 보자. 천지만물의 변화는 누구의 개입이나 간섭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이어진다.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지도자도 자신의 의도를 확실히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저 백성들을 풀강아지 정도로 생각하며 간섭하지 말라.
추구(芻狗)는 건초로 만든 개의 모형인데 제사에 쓰고 나면 밟히는 천한 존재다. 그러면서 ‘말이 너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 그저 말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多言數窮 不如守中/ 다언삭궁 불여수중)’고 결론짓는다.
성인을 지도자로 보고 백성들에게 간섭 없이 내버려 두는 것이 잘 다스리는 것이란 뜻이다.
일반인들도 말이 많은 것을 조심해야 한다. 말을 주고 받으면서 일을 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말로 남을 설득하거나 속뜻을 명확히 전달하기는 어려운 만큼 특히 필요한 말만 해야 한다.
그런데도 막말과 욕설이 섞여야 화제가 된다고 생각하는지 말로써 말이 많은 것은 갈수록 더하다. 시끄러운 말이 오가지 않고 할 말만 해서 국정을 이끌 수는 없을까.
다언삭궁(多言數窮)
노자(老子)의 도덕경 제5장에 다언삭궁(多言數窮)이란 말이 나온다.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는 뜻이다. 그리고 제56장에는 지자불언(知子不言) 언자부지(言子不知)라 하였다. 정말로 아는 자는 말하지 않으며 말 하는 자는 실제로는 모르는 것이라는 말이다.
또 같은 제56장에는 지부지상(知不知上) 부지지병(不知知病)이라는 말도 있다. 알면서도 알지 못 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훌륭한 태도이며,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체 하는 것은 병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그 노자 도덕경 제5장 구절을 살펴보자.
天地不仁 以萬物爲蒭狗.
천지는 사사로운 사랑을 베풀지 않아서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긴다.
聖人不仁, 以百姓爲蒭狗.
성인은 사사로운 사랑을 베풀지 않아서 백성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천지지간(우주)은 텅 비어 마치 풀무와도 같구나.
虛而不屈 動而愈出.
비어 있어 다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 많이 나온다.
多言數窮 不如守中.
말이 많으면 자주 막히니 차라리 그 비어 있음을 지키느니만 못하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을 통념으로 읽으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천지는 어진 것이라는 우리의 편견 때문이다. 천지에게는 어질다, 어질지 않다는 구별이 통하지 않는다. 천지가 어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편견을 꿰뚫어 보고 있는 노자는 그 편견을 지적하여 어질지 않다(不仁)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천지는 인간의 통념에 따른 어질다는 개념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천지는 어질지 않은 것이 아니라 편벽되거나 기울거나 하는 사사로움이 없다는 말이 된다. 편애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만물을 구태여 위해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천지는 만물을 추구(芻狗)로 여긴다는 것이다. 여기서 추구(芻狗)란 짚이나 풀로 만든 개 인형을 말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풀로 엮어 만든 개 인형을 가지고 제사 때 제물 대신 썼다고 한다. 그런데 그 추구(芻狗)는 한번 쓰고 나서는 버려지는 물건이다. 노자가 여기서 만물을 추구(芻狗)로 여긴다고 한 것은 이처럼 쓸 때가 되면 쓰지만, 쓰고 나서 필요를 다하면 버리는 그야말로 어디에 끌림 없는 모습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한다면 공평무사(公平無私)하다는 것인데 이게 사람의 정리(情理)로 본다면 불인(不仁)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성인(聖人)이 불인(不仁)하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성인도 그 속에 사사로움이나 치우침이 없기 때문에 세속의 눈에는 불인(不仁)으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장자(莊子)에는 사람의 마음으로 도를 헐어내지 말고 사람의 힘으로 하늘을 돕겠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냥 자연에, 하늘에 순응하고 사는 것이 사람의 도리지 제 뜻으로 하늘과 자연을 헤아리거나 조작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상은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와 인간중심의 생활태도로 인해 불과 몇 백년 만에 인간은 절대 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인간은 지구를 몇 백번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가지고 서로를 위협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연은 황폐할 대로 황폐해져 생존을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다 잘났다는 사람들이 소위 인(仁)을 행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인간 전체를 위한다는 대의(大義)를 말한다고 할지라도 그 대의 때문에 수없는 생물들이 멸종되고 자연이 파괴되고 있다. 인류를 위한 대의라는 것도 단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명분일 뿐이다. 그리고 성인이 백성을 추구(芻狗)로 여긴다는 것은 백성을 하찮게 안다는 뜻이 아니다. 백성을 사사로운 욕심의 희생양이 되지 않게 한다는 말이다.
성인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백성을 이용하지 않는다.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백성을 억누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체중생을 공평무사하게 대할 수 있는 자가 바로 성인인 것이다. 성인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다언삭궁(多言數窮)이니 불여수중(不如守中)이라. 즉, 말이 많으면 자주 막히는 법이니 그냥 빈 것을 지키고 있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말이 많은 것 때문에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지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며, 만물은 상처를 입는 것이다.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것이 더 도에 합당한 노릇이 아닐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 하고, 없으면서도 있는 체 하며, 닦지도 못했으면서 깨달은 체 떠들고 다닌다는 것은 화를 자초할 위험성이 있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 했다. 그러나 실은 구시화복문(口是禍福門)이다. 잘못 쓰면 입이 화문이지만 잘 쓰면 큰 복문이 되기 때문이다. 다언삭궁이다. 앞으로 더욱 무겁게 행동하고 말수를 줄이도록 노력하여 주변 사람의 눈총은 맞지 말아야겠다.
다언삭궁(多言數窮)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
우리말에 '말이 많으면 빨갱이'라는 말이 있다. 똑같은 말로 '노자(老子)'의 '도덕경' 제5장에 '다언삭궁(多言數窮)'이란 말이 나온다.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는 뜻이다.
그리고 제56장에는 '지자불언(知子不言) 언자부지(言子不知)'라 하였다. "정말로 아는 자는 말하지 않으며 말 하는 자는 실제로는 모르는 것이다"는 말이다.
또 같은 제56장에는 '지부지상(知不知上) 부지지병(不知知病)'이라는 말도 있다. "알면서도 알지 못 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훌륭한 태도이며, 알지 못 하면서도 아는 체하는 것은 병이다"고 하였다.
여기서 그 '노자' 도덕경 제5장 구절을 살펴보자.
天地不仁, 以萬物爲蒭狗.
천지는 사사로운 사랑을 베풀지 않아서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긴다.
聖人不仁, 以百姓爲蒭狗.
성인은 사사로운 사랑을 베풀지 않아서 백성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천지지간(우주)은 텅 비어 마치 풀무와도 같구나!
虛而不屈, 動而愈出.
비어 있어 다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 많이 나온다.
多言數窮, 不如守中.
말이 많으면 자주 막히니 차라리 그 비어 있음을 지키느니만 못하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을 통념으로 읽으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천지는 어진 것이라는 우리의 편견 때문이다. 천지에게는 '어질다', '어질지 않다'는 구별이 통하지 않는다. 천지가 어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편견을 꿰뚫어 보고 있는 노자는 그 편견을 지적하여 '어질지 않다(不仁)'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천지는 인간의 통념에 따른 어질다는 개념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천지는 어질지 않은 것이 아니라 편벽되거나 기울거나 하는 사사로움이 없다는 말이 된다. 편애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만물을 구태여 위해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천지는 만물을 추구(芻狗)로 여긴다는 것이다. 여기서 추구(芻狗)란 짚이나 풀로 만든 개 인형을 말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풀로 엮어 만든 개 인형을 가지고 제사 때 제물 대신 썼다고 한다. 그런데 그 추구(芻狗)는 한번 쓰고 나서는 버려지는 물건이다.
노자가 여기서 만물을 추구(芻狗)로 여긴다고 한 것은 이처럼 쓸 때가 되면 쓰지만, 쓰고 나서 필요를 다하면 버리는 그야말로 어디에 끌림 없는 모습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한다면 공평무사(公平無私)하다는 것인데 이게 사람의 정리(情理)로 본다면 불인(不仁)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성인(聖人)이 불인(不仁)하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성인도 그 속에 사사로움이나 치우침이 없기 때문에 세속의 눈에는 불인(不仁)으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장자(莊子)에는 사람의 마음으로 도를 헐어내지 말고 사람의 힘으로 하늘을 돕겠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냥 자연에, 하늘에 순응하고 사는 것이 사람의 도리지 제 뜻으로 하늘과 자연을 헤아리거나 조작하지 말라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상은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와 인간중심의 생활태도로 인해 불과 몇 백 년 만에 인간은 절대 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인간은 지구를 몇백 번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가지고 서로를 위협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연은 황폐할 대로 황폐해져 생존을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다 잘났다는 사람들이 소위 인(仁)을 행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인간 전체를 위한다는 대의(大義)를 말한다고 할지라도 그 대의 때문에 수없는 생물들이 멸종되고 자연이 파괴되고 있다. 인류를 위한 대의라는 것도 단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명분일 뿐이다.
그리고 성인이 백성을 추구(芻狗)로 여긴다는 것은 백성을 하찮게 안다는 뜻이 아니다. 백성을 사사로운 욕심의 희생양이 되지 않게 한다는 말이다.
성인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백성을 이용하지 않는다.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백성을 억누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체중생을 공평무사하게 대할 수 있는 자가 바로 성인인 것이다.
성인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다언삭궁(多言數窮)이니 불여수중(不如守中)이라" 즉, 말이 많으면 자주 막히는 법이니 그냥 빈 것을 지키고 있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말이 많은 것 때문에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지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며, 만물은 상처를 입는 것이다.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것이 더 도에 합당한 노릇이 아닐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체 하고, 없으면서도 있는체 하며, 닦지도 못했으면서 깨달은 체 떠들고 다닌다는 것은 화를 자초할 위험성이 있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 했다. 그러나 실은 '구시화복문(口是禍福門)'이다. 잘못 쓰면 입이 화문이지만 잘 쓰면 큰 복문이 되기 때문이다.
말을 삼가라
이름이 바뀐 걸 안 건 내가 고등학교 입학해서다.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 서무실(지금의 행정실)에 호적등본을 제출하라고 했다.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아 그거 때문에 그러는구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며칠 뒤 고향의 면사무소에서 우편으로 보내온 호적등본에는 중학교 졸업장에 나와 있던 내 한자 이름 조성권(趙誠權)이 조성권(趙成權)으로 가운데 자가 '정성 성(誠)'자에서 '이룰 성(成)'자로 바뀌어 있었다. 호적등본을 앞에 놓고 주역(周易)에 밝은 아버지는 그리 길지 않게 바꾼 경위를 설명했다.
설명하기 전에 아버지는 '그 입을 다물라. 말을 삼가라'고 주의부터 줬다. "한양조씨 26세손은 항렬자가 성(誠, 成)이다. 네 사주는 오행(五行)이 모두 들어있다. 흔치 않게 고루 갖춘 사주다. 어느 글자를 취하더라도 이름이 사주를 뒷받침하는 데 문제 될 게 없었다. 자식의 이름을 지으며 고심하다 살아가는 데 더 긴요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정성 성(誠)자를 택했다. '사람은 이름을 따라간다'는 신념은 지금도 변함없다. 자라는 너를 지켜보니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크게 달랐다"면서 먼저 말을 문제 삼았다.
패가망신할 말과 말하는 태도까지 5적(五賊)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나무랐던 게 이거다.
첫째 지적이 거짓말이다. 아버지는 거짓말을 싫어했다. 자식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의 말에 거짓이 드러나면 심하게 책망하고 절교하거나 거래를 끊었다. 몇 번 들키지는 않았지만, 송충이처럼 싫어하는 거짓말이 탄로 날 때면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고 그에 맞는 벌을 줬다.
두 번째는 말이 많은 다언(多言)을 추궁했다. 실언과 변명했던 몇 가지 일을 들어 책망하며 고사성어 '다언삭궁(多言數窮)'을 인용했다. 다언삭궁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제5장에 '말이 많을수록 자주 궁색해지니 속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多言數窮 不如守中)'라는 구절에서 나온 것이다. 자기가 내뱉은 말로 스스로 곤경에 빠지는 일이 없게 말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경계의 뜻을 담고 있다.
세 번째로 아버지는 '모르면서 아는 척 말하는 못된 버릇이 들었다'고 크게 질책하며 이미 습관으로 굳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서둘러 '말씀 언(言)' 자를 빼 이름을 바꿨다고 했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경청하는 태도와 표정만으로도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다면서 예를 든 고사성어가 '삼함기구(三緘其口)'다. '입을 세 번 봉하다'는 뜻이다. 입을 다문다는 함구(緘口)는 여기서 유래했다.
주(周)나라의 전설적 시조 후직(后稷)의 태묘(太廟)를 방문한 공자가 사당 오른쪽 섬돌 앞에 금으로 만든 동상을 봤다. 입이 세 바늘이나 꿰매진 동상의 등에 새겨진 글귀다. '옛사람의 경계의 말이라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말이 많으면 일을 그르친다(古之愼言人也 戒之哉 無多言 多言多敗).' 공자가어(孔子家語) 관주(觀周)편에 나온다. 신언(愼言)에 대한 특별한 각성에 영향받은 공자는 훗날 말조심을 당부하는 언행을 많이 남긴다.
네 번째는 말만 앞세우는 태도가 못마땅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선행후언(先行後言), '먼저 실천하고 그 다음에 말하라' 라면서 '이 짧은 한마디는 공자가 번드르르한 말로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제자 자공(子貢)을 꾸짖은 말이다'고 일러줬다.
마지막으로 남을 흉보는 나쁜 버릇을 꼽았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낮잠을 자라며 '그 사람 앞에서 할 수 없는 얘기를 그 사람 없는 데서 절대 하지 말라'고 엄명했다.
이름만 바뀐 게 아니다. 호적을 정리한 면서기가 단기(檀紀) 4287년생에서 고조선을 세운 기원전 2333년을 빼면 서기 1954년생 될 텐데 지금도 이해 못 할 실수를 해 1955년생으로 내가 태어난 해도 바뀌었다. 두 살 터울인 남동생이 어느 날부터 연년생이 되었다.
아버지는 웃으면서 "남들은 하나밖에 없는 사주를 너는 두 개나 가졌다. 언제나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받아 들이라"고 했다. 돌이켜 보면 두 사주는 내가 그렇게 해석해서인지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분인 자기 긍정감을 키워줬고, 나는 그에 따랐다.
말은 입을 떠나면 책임이라는 추가 달린다. 말은 품은 생각을 드러내는 마음의 표현이다. 생각부터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고사성어 '삼사일언(三思一言)'이 그 뜻을 잘 설명하고 있다. '세 번 생각해 한번 말한다'는 뜻이다. 말을 막 배우는 손주들에게도 저 고사성어와 함께 고스란히 물려주어야 할 고귀한 품성이 신중성이다. 말을 삼가는 구체적 실천방안이다.
▶️ 多(많을 다)는 ❶회의문자로 多는 夕(석; 저녁)을 겹친 모양이 아니고 신에게 바치는 고기를 쌓은 모양으로 물건이 많음을 나타낸다. 뒷날에 와서 夕(석;밤)이 거듭 쌓여서 多(다)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多자는 '많다'나 '낫다', '겹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多자는 夕(저녁 석)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실은 肉(고기 육)자를 겹쳐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서는 肉자가 서로 겹쳐진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지만, 금문에서는 夕자와 肉자가 매우 비슷하여 혼동이 있었다. 多자는 본래 고기가 쌓여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많다'라는 뜻을 갖게 된 글자이다. 그래서 多(다)는 ①많다 ②낫다, 더 좋다, 뛰어나다 ③아름답게 여기다 ④많게 하다 ⑤두텁다 ⑥붇다, 늘어나다 ⑦겹치다, 포개지다 ⑧도량이 넓다 ⑨중(重)히 여기다 ⑩크다 ⑪남다 ⑫공훈(功勳), 전공(戰功) ⑬나머지 ⑭단지(但只), 다만, 겨우 ⑮두터이 ⑯많이 ⑰때 마침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적을 과(寡), 적을 소(少)이다. 용례로는 모양이나 양식이 여러 가지임을 다양(多樣), 운수가 좋음이나 일이 좋게 됨을 다행(多幸), 수효가 많음 또는 많은 수효를 다수(多數), 분량이나 정도의 많음과 적음을 다소(多少), 일이 바싹 닥쳐서 매우 급함을 다급(多急), 매우 바쁨이나 일이 매우 많음을 다망(多忙), 복이 많음 또는 많은 복을 다복(多福), 많은 분량을 다량(多量), 인정이 많음이나 교분이 두터움을 다정(多情), 여러 가지 빛깔이 어울려 아름다움을 다채(多彩), 많이 읽음을 다독(多讀), 많이 발생함을 다발(多發), 근원이 많음 또는 많은 근원을 다원(多元), 많이 알고 있음으로 학식이 많음을 다식(多識), 많은 사람이나 여러 사람을 다중(多衆), 가장 많음을 최다(最多), 너무 많음을 과다(過多), 소문 따위가 어느 곳에 널리 알려진 상태에 있음을 파다(播多), 매우 많음을 허다(許多), 여러 가지가 뒤섞여서 갈피를 잡기 어려움을 잡다(雜多), 번거로울 정도로 많음을 번다(煩多),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진리를 찾기 어려움 또는 방침이 많아 할 바를 모르게 됨을 이르는 말을 다기망양(多岐亡羊),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는 말을 다다익선(多多益善), 정이 많고 느낌이 많다는 뜻으로 생각과 느낌이 섬세하고 풍부함을 이르는 말을 다정다감(多情多感), 여러 가지로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사다난(多事多難), 많으면 많을수록 더 잘 처리함을 이르는 말을 다다익판(多多益辦), 아들을 많이 두면 여러 가지로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남다구(多男多懼), 유난히 잘 느끼고 또 원한도 잘 가짐 또는 애틋한 정도 많고 한스러운 일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정다한(多情多恨), 밑천이 많은 사람이 장사도 잘함을 이르는 말을 다전선고(多錢善賈), 수효나 양의 많고 적음을 헤아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다소불계(多少不計), 재주와 능력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재다능(多才多能), 재주가 많은 사람은 흔히 약하고 잔병이 많다는 말을 다재다병(多才多病), 보고 들은 것이 많고 학식이 넓음을 이르는 말을 다문박식(多聞博識), 말이 많으면 자주 곤란한 처지에 빠짐을 이르는 말을 다언삭궁(多言數窮), 일이 많은 데다가 까닭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사다단(多事多端), 일이 많아 몹시 바쁨이나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쁨을 이르는 말을 다사다망(多事多忙), 일이 가장 많을 때나 가장 바쁠 때 또는 흔히 국가적이나 사회적으로 일이 가장 많이 벌어진 때를 이르는 말을 다사지추(多事之秋),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어쩌다가 사리에 맞는 말도 있음을 이르는 말을 다언혹중(多言或中), 재능과 기예가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재다예(多才多藝), 여러 가지로 일이 많고 몹시 바쁨을 이르는 말을 다사분주(多事奔走), 종류가 많고 그 양식이나 모양이 여러 가지임을 이르는 말을 다종다양(多種多樣), 좋은 일에는 방해가 되는 일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호사다마(好事多魔), 학문이 넓고 식견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박학다식(博學多識), 준치는 맛은 좋으나 가시가 많다는 뜻으로 좋은 일의 한편에는 귀찮은 일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시어다골(鰣魚多骨), 일이 얽히고 설키다 갈피를 잡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복잡다단(複雜多端), 입춘을 맞이하여 길운을 기원하는 글을 이르는 말을 건양다경(建陽多慶), 오래 살면 욕됨이 많다는 뜻으로 오래 살수록 고생이나 망신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수즉다욕(壽則多辱), 이익을 적게 보고 많이 팔아 이문을 올림을 일컫는 말을 박리다매(薄利多賣) 등에 쓰인다.
▶ 言(말씀 언, 화기애애할 은)은 ❶회의문자로 辛(신)과 口(구)의 합자(合字)이다. 辛(신)은 쥘손이 있는 날붙이의 상형이고, 口(구)는 맹세의 문서의 뜻이다. 불신이 있을 때에는 죄를 받을 것을 전제로 한 맹세로, 삼가 말하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言자는 ‘말씀’이나 ‘말’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言자의 갑골문을 보면 口(입 구)자 위로 나팔과 같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을 두고 생황(笙簧)이라고 하는 악기의 일종을 그린 것이라는 설도 있고 나팔을 부는 모습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말소리가 퍼져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言자는 이렇게 입에서 소리가 퍼져나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부수로 쓰일 때는 ‘말하다’와 관계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갑골문에서의 言자는 ‘소리’나 ‘말’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래서 금문에서는 이를 구분하기 위해 여기에 획을 하나 그은 音(소리 음)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言(언, 은)은 ①말씀, 말 ②견해(見解), 의견(意見) ③글 ④언론(言論) ⑤맹세(盟誓)의 말 ⑥호령(號令) ⑦하소연(딱한 사정 따위를 간곡히 호소함) ⑧건의(建議), 계책(計策) ⑨허물, 잘못 ⑩혐극(嫌隙: 서로 꺼리고 싫어하여 생긴 틈) ⑪이에 ⑫요컨대, 다시 말하면 ⑬여쭈다, 묻다 ⑭기재하다, 적어넣다 ⑮소송하다 ⑯이간하다(離間; 헐뜯어 서로 멀어지게 하다) ⑰알리다 ⑱예측하다 ⑲말하다 ⑳조문하다, 위문하다 그리고 ⓐ화기애애 하다(은) ⓑ화기애애 하면서 삼가는 모양(은) ⓒ위엄(威嚴)이 있는 모양(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말씀 화(話), 말씀 설(說), 말씀 어(語), 말씀 담(談), 말씀 사(辭), 말씀 변(辯),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글월 문(文), 호반 무(武), 다닐 행(行)이다. 용례로는 말로나 글로써 자기의 의사를 발표하는 일을 언론(言論), 어떤 일과 관련하여 말함을 언급(言及), 사람이 생각이나 느낌을 소리나 글자로 나타내는 수단을 언어(言語), 말과 행동을 언행(言行),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을 언중(言衆),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입으로 나타내는 소리를 언사(言辭), 말로 한 약속을 언약(言約), 말을 잘 하는 재주를 언변(言辯), 입담 좋게 말을 잘 하는 재주를 언설(言舌), 말로써 옥신각신 함을 언쟁(言爭), 상대자가 한 말을 뒤에 자기가 할 말의 증거로 삼음을 언질(言質), 말과 글을 언문(言文), 말 속에 뼈가 있다는 언중유골(言中有骨), 여러 말을 서로 주고 받음을 언거언래(言去言來), 서로 변론 하느라고 말이 옥신각신 함을 언삼어사(言三語四), 말하고 웃는 것이 태연하다는 언소자약(言笑自若) 등에 쓰인다.
▶️ 數(셈 수, 자주 삭, 촘촘할 촉)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婁(루)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婁(루, 수)는 여자(女子)가 머리 위에 貴(귀; 물건을 넣은 자루)를 이어 나르는 모양, 물건이 겹쳐지는 일을, 등글월문(攵=攴)部는 손으로 거동(擧動)을 하는 일, 몇 번이나 손으로 무엇인가를 하다, 여러 개 세다, 세다, 수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數자는 ‘세다’나 ‘계산하다’, ‘헤아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數자는 婁(끌 누)자와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婁자는 두 여인이 위아래로 포개져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한자에서 婁자가 들어간 글자들은 대부분이 樓(다락 루)자처럼 ‘겹치다’라는 뜻을 전달한다. 이렇게 겹침을 뜻하는 婁자에 攵자가 결합한 것은 숫자 一, 二, 三과 같이 막대기로 셈을 하고 있다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고대에는 막대기를 겹쳐 셈을 했다. 이를 산가지라 한다. 그러니 數자에 쓰인 攵자는 몽둥이가 아닌 막대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니까 數자를 막대기를 겹쳐 셈을 한다는 의미에서 ‘세다’라는 뜻을 갖게 된 글자이다. 그래서 數(수, 삭, 촉)는 (1)좋은 운수(運數) (2)운수(運數) (3)서너 또는 두어 오륙 정도의 확실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말. (4)낱낱의 것을 셈하여 본 결과의 값. 특히 양(量)과 대비해서 쓰기도 함 (5)사물을 계속적인 면에서 포착(捕捉)하는 것 (6)자연수, 완전수, 정수, 분수, 부수, 무리수, 실수, 허수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7)수학 (8)인도(印度) 게르만 어족(語族)이나 그 밖의 언어에서 볼 수 있는 문법 범주(範疇). 보통 단수, 복수 등이 있음. 언어에 따라서는 두 가지의 것을 나타내는 쌍수(雙數)도 있음 (9)옛날 중국에서, 육예(六藝)의 하나 등의 뜻으로 먼저 셈 수의 경우는 ①셈, 산법(算法) ②역법(曆法) ③일정한 수량(數量)이나 수효(數爻) ④등급(等級), 구분(區分) ⑤이치(理致), 도리(道理) ⑥규칙(規則), 예법(禮法) ⑦정세, 되어 가는 형편 ⑧꾀, 책략(策略) ⑨기술(技術), 재주, 솜씨 ⑩운명(運命), 운수 ⑪수단(手段), 방법(方法) ⑫몇, 두서너, 대여섯 ⑬세다, 계산하다 ⑭셈하다 ⑮헤아리다, 생각하다 ⑯조사(調査)하여 보다 ⑰책망하다 그리고 자주 삭의 경우는 ⓐ자주(삭) ⓑ자주 하다(삭) ⓒ여러 번 되풀이하다(삭) ⓓ빨리 하다(삭) ⓔ빠르다(삭) ⓕ황급하다(삭) ⓖ바삐 서두르다(삭) ⓗ급히 서둘러 하다(삭) ⓘ다가서다(삭) ⓙ접근하다(삭) 그리고 촘촘할 촉의 경우는 ㉠촘촘하다(촉)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계산하여 얻은 수를 수치(數値), 수를 나타내는 글자를 숫자(數字), 수효와 분량을 수량(數量), 사물의 수를 수효(數爻), 열의 두 서너 곱절되는 수효를 수십(數十), 두서너 차례나 몇 차례를 수차(數次), 수학의 이론 또는 이치를 수리(數理), 이삼일 또는 사오일을 수일(數日), 돈의 머릿수를 액수(額數), 수효가 많음을 다수(多數), 성적을 나타내는 숫자를 점수(點數), 어떠한 대응 관계로 변화하는 수를 변수(變數), 기초적인 셈법 또는 이를 가르치는 학과목을 산수(算數), 적은 수효를 소수(少數), 일이나 사건 따위의 가짓수를 건수(件數), 인간의 힘을 초월한 천운과 기수를 운수(運數), 두 자리 이상의 수를 복수(複數), 작은 수로 얼마 되지 않는 수를 소수(小數), 차례의 수효를 횟수(回數), 친족 간의 멀고 가까운 정도를 나타내는 숫자 체계를 촌수(寸數), 글씨에서 획의 수효를 획수(劃數), 일정한 수효나 수량을 정수(定數), 어지간히 많은 수를 상당수(相當數), 전체수의 거의 대부분을 대다수(大多數), 구설을 듣게 되는 운수를 구설수(口舌數), 반이 더 되는 수를 과반수(過半數), 방정식에서 풀어서 구하지 않고서는 그 값을 모르는 수를 미지수(未知數), 극히 적은 수를 극소수(極少數), 같은 사람이 저지른 여러 가지 죄가 한꺼번에 드러남을 이르는 말을 수죄구발(數罪俱發), 몇 년이라도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는 일을 일컫는 말을 가아연수(假我年數),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매우 많음을 일컫는 말을 부지기수(不知其數), 무능한 사람이 재능이 있는 체하는 것이나 또는 외람되이 높은 벼슬을 차지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남우충수(濫竽充數) 등에 쓰인다.
▶️ 窮(다할 궁/궁할 궁)은 ❶형성문자로 穷(궁)은 통자(通字), 竆(궁)은 본자(本字), 穷(궁)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구멍 혈(穴; 구멍)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躬(궁)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窮자는 '극에 달하다', '가난하다', '궁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窮자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이를 종합해 보면 '매우 가난하다'이다. 窮자에는 그 가난한 정도가 잘 묘사되어 있다. 우선 窮자의 갑골문을 보면 宀(집 면)자에 人(사람 인)자, 呂(등뼈 려)자가 결합한 형태였다. 이것은 집에 뼈가 앙상한 사람이 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이후 금문과 소전을 거치면서 人자는 身(몸 신)자로 바뀌었고 宀자도 穴(구멍 혈)자로 바뀌면서 '궁하다'라는 뜻의 竆(궁할 궁)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본래 '궁하다'라는 뜻은 竆자가 쓰였었지만, 지금은 이체자(異體字)였던 窮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窮(궁)은 ①다하다 ②극에 달하다 ③마치다, 중단하다 ④궁하다(가난하고 어렵다), 궁(窮)하게 하다 ⑤가난하다 ⑥이치에 닿지 아니하다 ⑦외지다, 궁벽(窮僻)하다 ⑧작다, 좁다, 얕다 ⑨궁구(窮究)하다(파고들어 깊게 연구하다) ⑩연구하다 ⑪드러나다 ⑫궁(窮)한 사람 ⑬의지(依支)할 데 없는 사람 ⑭궁려(窮廬: 허술하게 지은 집, 가난한 집) ⑮나라의 이름 ⑯크게, 매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곤할 곤(困), 다할 추(湫), 다할 극(極), 다할 진(殄), 다할 진(盡), 다할 갈(竭), 가난할 빈(貧)이다. 용례로는 일이나 물건을 처리하거나 밝히기 위하여 따져 헤아리며 이치를 깊이 연구함을 궁리(窮理), 어려움이나 난처함에서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상태나 처지를 궁지(窮地), 곤궁하고 궁색함을 궁색(窮塞), 궁경에 빠진 적군을 궁구(窮寇), 생활이 곤궁한 지경을 궁경(窮境), 몹시 가난하고 궁함을 궁핍(窮乏), 한 해의 마지막 때를 궁랍(窮臘), 딱하고 곤란함을 궁곤(窮困), 속속들이 깊이 연구함을 궁구(窮究), 극도에 달하여 어찌 할 수 없음을 궁극(窮極), 북극 지방의 초목이 없는 땅을 궁발(窮髮), 외따로 떨어져 구석지고 몹시 으슥함을 궁벽(窮僻), 곤궁하게 살아가는 상태를 궁상(窮狀), 생활이 어렵고 궁한 백성을 궁민(窮民), 아주 어렵고 곤란하게 된 사람을 궁객(窮客), 더 할 수 없이 괴로움을 궁고(窮苦), 산 속의 깊은 골짜기를 궁곡(窮谷), 가난하여 살림이 구차함을 곤궁(困窮), 어디까지나 캐어 따짐을 추궁(追窮), 가난하여 궁함을 빈궁(貧窮), 공간이나 시간 따위의 끝이 없음을 무궁(無窮), 몹시 궁함을 극궁(極窮), 더할 나위 없이 곤궁함을 지궁(至窮), 곤궁한 것을 잘 겪어냄을 고궁(固窮), 외롭고 가난하여 궁핍함을 고궁(孤窮), 가난한 사람을 구하여 도와줌을 진궁(振窮), 가난이나 궁핍을 벗어남을 면궁(免窮), 가난한 친구와 친척을 일컫는 말을 궁교빈족(窮交貧族), 궁지에 몰린 쥐가 기를 쓰고 고양이를 물어 뜯는다는 뜻으로 사지에 몰린 약자가 강적에게 필사적으로 반항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궁서설묘(窮鼠齧猫), 피할 곳 없는 도적을 쫓지 말라는 뜻으로 궁지에 몰린 적을 모질게 다루면 해를 입기 쉬우니 지나치게 다그치지 말라는 말을 궁구막추(窮寇莫追), 피할 곳 없는 쥐를 쫓지 말라는 뜻으로 궁지에 몰린 적을 모질게 다루면 해를 입기 쉬우니 지나치게 다그치지 말라는 말을 궁서막추(窮鼠莫追), 곤궁해질수록 그 지조는 더욱 굳어짐을 이르는 말을 궁당익견(窮當益堅), 가난으로 겪는 슬픔을 이르는 말을 궁도지곡(窮途之哭), 막다른 골목에서 그 국면을 타개하려고 생각다 못해 짜낸 꾀를 일컫는 말을 궁여지책(窮餘之策), 막다른 처지에서 짜내는 한 가지 계책을 일컫는 말을 궁여일책(窮餘一策), 쫓기던 새가 사람의 품안으로 날아든다는 뜻으로 사람이 궁하면 적에게도 의지한다는 말을 궁조입회(窮鳥入懷), 궁년은 자기의 한 평생을 누세는 자손 대대를 뜻으로 본인의 한 평생과 자손 대대를 이르는 말을 궁년누세(窮年累世), 온갖 힘을 기울여 겨우 찾아냄을 이르는 말을 궁심멱득(窮心覓得), 가난한 마을과 궁벽한 땅을 일컫는 말을 궁촌벽지(窮村僻地), 가난하여 스스로 살아 갈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궁부자존(窮不自存),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종일 일함을 일컫는 말을 궁일지력(窮日之力), 운수가 궁한 사람이 꾸미는 일은 모두 실패한다는 뜻으로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궁인모사(窮人謀事), 성정이 음침하고 매우 흉악함을 일컫는 말을 궁흉극악(窮凶極惡), 궁하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기 어려우면 예의나 염치를 가리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궁무소불위(窮無所不爲), 하늘과 땅과 같이 끝간데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궁천극지(窮天極地), 궁하면 변하게 되고 변하게 되면 두루두루 통해서 오래간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궁변통구(窮變通久),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거듭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궁리궁리(窮理窮理), 울림을 미워하여 입을 다물게 하려고 소리쳐 꾸짖으면 점점 더 울림이 커진다는 뜻으로 근본을 무시하고 지엽적인 것을 다스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궁향이성(窮響以聲)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