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는 너무 아파 외면하고 싶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효창원 정문 장열문
맞은 편은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만든 효창운동장
계단을 오르면 임정요인 묘역
왼쪽부터 조성환 - 이동녕 - 차리석
일제 때 정조의 후궁 의빈성씨 능이 이장된 자리
의빈성씨 능 서쪽에 삼의사묘
왼쪽부터 안중근 - 이봉창 - 윤봉길 - 백정기
문효세자의 능이 있어 효창원이며
일제 때 서오릉으로 이장
계단을 오르면 8인을 모신 의열사
이동녕--- 임시정부 첫 주석. 김구와 함께 한국독립당 조직하였으며 1940년 서거
19세에 동학 접주가 됨. 공주 마곡사에서 계를 받았고 법명 원종.
황해도 양산학교 교사생활 도중 서간도에 무관학교를 세우려다 잡혀 징역17년을 언도받고 서대문 감옥 투옥.
3.1운동 이후 압록강을 건너 임시정부에서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
1949. 6. 26. 12시36분 경교장에서 현역육군 소위 안두희의 저격으로 운명
조성욱--- 임시 정부 군무부장
신민회 조직하고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고 김구, 이동녕 등과 한국국민당을 조직 1948년 서거
차리석--- 임시정부 국무위원 비서장
신민회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 한국독립당 집행위원. 데라우치 조선총독 암살사건으로 징역 8년 언도
1945년 환국 준비를 하다가 영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유해를 한국으로 묻어달라는 유언
이봉창--- 일본인 과자점에 점원, 용산 역무원 군무 등 6~7년간 일본인 회사에 근무하며
도쿄, 나고야, 오사카 적정 탐방 후 상해 임시정부에 찾아감.
1932년 도쿄에서 일본 천황 히로히토를 폭살에 실패하고 체포되어 사형. 향연33세로 후손 없음
윤봉길--- 농촌 계몽운동을 위해 야학당 운영하다가 24세에 상해 김구와 비밀 접촉 후
1932. 4.29일 일본 천장절에 홍구공원에서 물통모양(거사용)과 도시락폭탄(자살용)을 만들어
시라카와 대장 등 10여명 처단 --- 25세에 순국
백정기--- 1932년 상해사건 이후 흑색공포단을 조직. 홍구공원 거사를 계획 하였으나 윤의사가 먼저 시행
홍구 공원 담장 밖에서 기뻐하다.
1933년 아리요시 주중공사 습경에 실패하여 체포되어 무기징역 도중 폐병으로 옥중에서 1934년 순국
안중근 --- 부친을 도와 의병장 활동. 삼흥학원을 세워 인재육성.
1909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등박문 저격하고 여순 감옥에 수감
1910년 동양평화론 집필 후 3월 26일 여순 감옥에서 순국
백범 김구 묘역
천천히 언덕길을 따라가면
2002년 문을 연 백범 기념관
기념관 입구에 이봉창 독립운동가 동상
첫댓글 일찍 일어나셨네요
효창공원 참 오랜만에 봅니다
대학1학년때 가봤으니 벌써 40년이 훌쩍......
참 잘 꾸며놓았네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초저녁에 잠들어
새벽에 눈을 뜬 김에
목숨 비친 선조들의
뜨거운 나라 사랑에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 사진으로 뿌려봅니다~~
효창원에
다녀오셨군요
설명과 함께
잘 보았습니다
봄에 갔을때는
효창운동장은
못들어가게 막아 있었어요..
백범김구 선생 기념관은
다녀 왔습니다
꾸물거리느라
설명은 늦게 ㅋㅋ~~
날씨가 쌀쌀한데
낮에는 다닐만했어요
효창동은 기사식당이 유명
돼지불백은 먹어야 제격이죠
8인을 모신 의열사
잘찍었어요
ㅋㅋ 고맙습니다
효창공원 효창윈
대한민국의 출발점이 된 임시 정부의 요인들
조국 독립을 위한 님들의
숭고한 헌신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연님
귀한 사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선열이
목숨으로 지킨 그 정신을 잊지 않고
이 나라에서 건강하게 사는 것이지요
늘 감사의 댓글
고맙습니다
@동연 좋은 일어 항상 일조하시는
동연 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어릴적 뛰어놀던 효창공원~~~
효창 국민 학교를 다녔지여
어릴 때 정든 곳이라면
반가운 곳이겠어요
학창시절 국사시간을
싫어햇습니다
우리나라 근대화역사를
들으면 마음이 우울해져서요
효창공원 오랫만입니다
예 ~~ 공감합니다
현장에서 보니 더욱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더욱 잘 살게된
이땅에서 즐겁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