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잠수함' 김병현(23)은 스프링캠프가 한창이던 지난 2월 말 메이저리그 데뷔 1,000일째를 맞았다. 뉴욕 메츠와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마이크 피아자를 삼진으로 잡은 게 지난 99년 5월30일. 스포츠투데이가 지령 1,000호를 발간한 오늘(30일)은 김병현의 메이저리그 데뷔 3주년이기도 하다. 스포츠투데이가 출범의 고동소리를 울릴 무렵 메이저리그에 첫발을 내디딘 김병현은 이후 스포츠투데이가 정상을 향해 약진하는 동안 역시 경이적인 탈삼진 행진과 세이브 퍼레이드,월드시리즈에서의 좌절과 우승 등 숱한 화제를 뿌려왔다. '창간둥이' 김병현의 메이저리그 1,000일 야화를 숫자로 풀어봤다.
▲ 0―스프링캠프 보낸 날 ‘0’
박찬호처럼 메이저리그 직행은 아니었지만 김병현의 ML행 역시 누구도 예상 못할 만큼 초스피드로 진행됐다. 99년 2월 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입단계약서에 사인한 김병현은 3월 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월 말이면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가 모두 끝난 시점. 싱글A부터 단계를 밟아올라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더블A 엘파소 디아블로스에서 미국야구의 첫발을 내디뎠다. 더블A에서 10차례 등판한 뒤 한 달 만인 5월 초 트리플A 투산 사이드와인더스로 승격. 트리플A에서 17이닝 동안 삼진 21개를 잡아내자 5월28일 메이저리그의 부름이 왔다. 김병현이 메이저리그 승격 전에 스프링캠프에서 보낸 날짜는 0일이다.
▲ 1―데뷔전서 첫번째 세이브
1-김병현이 첫 세이브를 따내는 데 걸린 경기수는? 단 한 게임이다. 김병현은 승격 이틀째인 99년 5월30일 뉴욕 셰이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애리조나-뉴욕 메츠전에서 처음으로 출격 명령을 받았다. 애리조나가 8-7 1점 차로 앞선 9회말 마운드에 오른 김병현은 에드가르도 알폰소를 중견수 플라이,존 올러루드를 좌익수 플라이로 잡은 뒤 4번 마이크 피아자를 헛스윙으로 잡고는 오른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데뷔 첫 등판에서 세이브를 따내는 순간. 김병현은 출발부터 달랐다.
▲ 3―월드시리즈서 홈런 3방
3-김병현은 데뷔 후 지금까지 총 25개의 홈런을 허용했다. 그 중 가장 뼈아팠던 건 역시 지난해 월드시리즈 4·5차전에서 맞은 홈런 3방이다. 두 개는 9회말 2사후에 티노 마르티네스와 스콧 브로셔스에게 맞은 동점 홈런,4차전 연장 11회말 데릭 지터에게 맞은 끝내기 홈런이었다. 우승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이 홈런은 모두 김병현에게 씻기 힘든 상처로 남았다. 올시즌 김병현이 맹활약하자 미국언론은 약속이라도 한 듯 '김병현이 월드시리즈 악몽에서 완전히 탈출했다'고 칭찬하고 있다. 그런 말이 나돈다는 것 자체가 아직은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 7―마무리 팀 최다 7탈삼진
7-2001년 5월19일. 고색창연한 시카고 리글리필드는 시끄러웠다. 6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김병현은 8회까지 아웃카운트 9개 중 7개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새미 소사는 상대 선발이 아닌 불펜투수에게 6회와 8회 두 번이나 헛스윙 삼진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7K는 애리조나 팀 창단 후 구원투수 한 경기 최다신기록.(이 기록은 두 달 후 애리조나 랜디 존슨에 의해 깨졌다)
▲ 34―ML 34번째 공 9개 3K
34-지난 12일 필라델피아 베테랑스타디움. 김병현은 보여주지 않은 게 아직 많이 남았다는 듯 또 하나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8회 필라델피아 중심타선인 스콧 롤렌과 마이크 리버설,팻 버렐 세 타자를 연속 3구 삼진으로 잡아냈다. 메이저리그 통산 34번째 9구 3탈삼진. 일주일 뒤인 지난 19일 보스턴-시애틀전에서 메이저리그 최고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1회 9구 3탈삼진으로 김병현의 뒤를 이어 35번째 기록 수립자가 됐다.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물론 생애 처음 작성한 기록이었다.
▲ 100―홈구장 등판경기 100 ‘―3’
100-시애틀 매리너스와 뉴욕 메츠 등 4∼5개팀의 러브콜을 받았던 김병현이 사막의 땅 피닉스에 위치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한 건 숙명이다. 애리조나의 홈구장 뱅크원볼파크는 메이저리그 구장 중 쿠어스필드에 이어 두 번째로 해발 고도가 높은 데다 돔구장이어서 투수에게 별로 유리할 게 없다. 그러나 김병현은 홈경기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 29일 현재 뱅크원볼파크에서 벌어진 게임에 97차례 등판,홈경기 100회 출격에 3게임을 남겨두고 있다. 97경기에서 거둔 성적이 7승3패29세이브(방어율 3.43)로 원정경기 성적(89경기 등판·7승11패17세이브)보다 훨씬 좋다.
▲ 300―통산 300 탈삼진 달성
300-김병현은 지난 27일 LA 다저스전에서 3탈삼진을 추가하면서 통산 300K를 기록했다. 데뷔 후 225⅓이닝을 던져 300삼진을 잡아냈다. 선발과 구원투수를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지만 박찬호는 지난해 234이닝을 던져 데뷔 후 가장 많은 삼진 218개를 잡아냈다. 지금까지 김병현에게 제일 삼진을 많이 당한 타자는 새미 소사로 김병현 상대 6타석 6삼진을 기록 중이다. 1,000K의 제물은 누가 될까.
▲1000―메이저리거 1000일 돌파
1,000-데뷔 3주년인 30일은 김병현이 메이저리그에 오른 지 일수로 정확히 1,097일째 되는 날이다. 1,000일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김병현은 참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것을 이뤘다. 그러나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1,000일이 김병현에겐 더 중요하다. 김병현의 꿈인 선발투수 자리에 오르는 데 또 며칠이 걸릴 지 세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런일도…
메이저리그 데뷔 4년째. 김병현(23·애리조나)은 이제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수준의 마무리투수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김병현은 성공하기까지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그 중에서도 지난 월드시리즈의 홈런 악몽은 김병현에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사건. 월드시리즈 5차전 9회말 2사후. 김병현은 뉴욕 양키스의 스콧 브로셔스에게 통한의 동점홈런을 맞고 머리를 감싸며 그대로 마운드에 주저앉았다. 바로 전날(4차전) 9회 2사후 티노 마르티네스에 동점홈런,연장 10회 데릭 지터에 결승홈런을 맞은 뒤였다.
“앞이 캄캄했다. 홈런을 맞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어떻게….”
물론 팀이 7차전에서 승리,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김병현은 한동안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어쨌든 한국인 첫 월드시리즈 우승멤버로 주위의 관심은 높아졌지만 김병현으로선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사건’이었다.
“팀이 우승했기에 다행이었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지금 여기에 없을지도 모른다.” 김병현이 지난 겨울을 보내고 올시즌에 들어가기 앞서 특파원과의 식사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얘기다.
데뷔 초 문화적 차이 때문에 겪은 ‘파스 퇴장사건’도 김병현이 잊을 수 없는 기억. 99년 6월. 김병현은 전날 어깨가 뻐근해 집 근처 한약방에서 구입한 파스를 붙이고 시카고 컵스전에 등판했다. 그런데 투구 중 어깨 부근에 붙인 파스가 떨어졌다. 당시 컵스의 마크 그레이스(현재 애리조나 팀 동료)가 우연히 마운드 근처를 노려보다 이물질을 발견하고 주심에게 어필했다. 김병현이 룰(투수가 투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물질을 몸에 부착해서는 안 된다)을 어긴 셈이 됐고 결국 마운드에서 쫓겨났다.
잠이 많아 훈련시간에 늦는 일도 많았다. 게임이 없는 날 낮잠은 김병현에게 더없는 낙이었다. 하지만 그 낮잠을 자다가 마이너리그로 떨어졌던 일도 있었다. 메이저리그 데뷔 초창기인 99년 7월 말쯤. 마침 어머니가 뒷바라지를 위해 애리조나에 머물 때다. 소파에서 낮잠을 자던 김병현은 잠결에 ‘복숭아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에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다가 삐끗했다. 그리고는 그해 9월까지 김병현은 부상자명단에 올라 마이너리그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해 5월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고 한창 물이 올랐던 상태에서 뜻밖에 당한 횡액이었다. 김병현의 진가를 좀더 일찍 발휘할 수 있던 것을 한 해 뒤로 미룰 수밖에 없던 웃지 못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