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안에 있을 때야 자식이지. 크면 다 부모 곁을 떠나는 거야.”
지난해 겨울. 중앙대 감독 김용수(52)를 만났다. 기러기 아빠인 그에게 가족 안부를 물었다. 그는 캐나다에 있는 자식 얼굴이 생각났는지 빙그레 웃다가 “품 안에 있을 때야 자식이지. 크면 다 부모 곁을 떠나는 거야”하며 자못 대범한 표정을 지었다.
맞는 말이다. 나이가 차면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하는 게 자식이다. 떠나 보내는 부모야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인생사의 순리인 것을.
김용수는 7월 1일 자식 같던 무언가를 다시 떠나 보내야 했다. 바로 그가 보유하고 있던 통산 세이브 기록이다. 김용수는 개인 통산 227세이브로, 이 부문 역대 1위에 올라 있었다.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 같던 이 대기록은 그러나 삼성 오승환이 통산 228세이브를 기록하며 결국 2위로 내려앉았다.
오승환의 기록 경신 장면을 지켜본 김용수는 담담한 표정으로 “어차피 기록은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라며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후배 오승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3, 4이닝 마무리는 기본이었던 ‘원조 소방수’ 김용수
7월 1일 개인 통산 228세이브로 역대 세이브 부문 1위에 오른 삼성 오승환
김용수는 오승환의 통산 228세이브 달성 장면을 TV를 통해 지켜봤다. 어쩐지 예감이 이상했다. 그래서 일찍 귀가해 집에서 TV를 틀어놓은 터였다. 김용수는 오승환이 통산 228세이브를 기록하자 자기도 모르게 “수고했다. (오)승환아”하며 손뼉을 쳤다. 김용수의 표정에서 서운함이란 찾기 어려웠다. 그는 진심으로 오승환의 대기록 작성을 기뻐하고 있었다.
김용수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기록이 깨질 때, 어떤 감정이었을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김용수는 “원래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건데, 무슨 감회가 있었겠느냐”면서도 “누구보다 아끼는 후배가 내 기록을 깨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사실이었다. 지난해 오승환이 180세이브를 돌파했을 때부터 김용수는 “승환이가 아프지 말고, 롱런해 꼭 내 기록을 깨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여러 번 밝혔다. “승환이처럼 마무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자기 관리를 잘하는 선수가 내 기록을 깨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김용수는 오승환이 대기록을 달성하고서 언론과 야구계의 집중조명을 받자 자신이 대기록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몹시 기뻐했다.
“1991년 8월 10일 프로야구 최초로 100세이브를 기록했을 때, 별다른 축하를 받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야구계에선 세이브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했다. 신문에서만 간단히 ‘김용수 100세이브 달성’이란 기사를 실었을 뿐, 많은 이가 ‘세이브가 그렇게 중요해?’하는 눈치였다.”
따지고 보면 그뿐이 아니었다. 김용수는 당대 최고 마무리였지만,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매일 불펜에서 대기하며 팀을 위해 전력투구했으나, 연봉은 선발투수보다 낮았고, 몇몇 야구인은 마무리를 ‘승패가 결정된 뒤 경기 마지막에 등판하는 팔자 좋은 투수’라며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김용수에게 ‘팔자 운운’하는 건 ‘영’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었다. 반대였다. 그는 차라리 박복한 인생을 타고난 이였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게 김용수는 현역시절 무늬만 마무리였다. 실은 선발급 마무리였다. 예가 있다.
프로 2년 차이던 1986년. 김용수는 고(故) 김동엽 감독의 요청으로 마무리를 맡았다. 김 감독은 “승리를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경기만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다. 김용수는 리드하는 경기는 물론 지는 경기에도 등판했다. 요즘 개념의 ‘1이닝 마무리’는 그에겐 호사였다. 그는 5, 6회는 고사하고 1회 2사부터 마운드에 올라 9회까지 던지기도 했다.
그해 김용수는 9승 9패 26세이브 평균자책 1.67을 기록했다. 세이브 부문 단독 1위였다. 9승도 모두 구원승이었다. 기록은 영락없는 마무리였지만, 그는 이해 무려 178이닝이나 던졌다. 웬만한 선발투수보다 더 많은 이닝이었다. 이해 60경기에 등판했으니 경기당 평균 3이닝가량을 던진 셈이다.
1986시즌 MBC 청룡 김용수의 등판 기록. 대부분의 등판은 3회 이후 이뤄졌다. 심지어는 그는 1회부터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오르기까지 했다 [그래픽] 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실제로 김용수가 등판한 60경기 가운데 1이닝만 책임진 건 단 10%에 해당하는 6번뿐이다. 2이닝 이상이 13번, 3이닝 이상이 15번, 4이닝 이상이 8번, 5이닝 이상이 5번, 6이닝과 7이닝 이상이 각각 1번씩, 8이닝 이상 투구도 2번이나 됐다. 이 가운데 선발은 3번이었다. 선발 가운데 한번은 1회만 던졌고, 또 한 번은 5회, 마지막은 8회까지 투구했다. 3번의 선발을 뺀 57번의 등판만 보자면 김용수가 3이닝 이상 투구한 건 무려 30번이었다. 3이닝 이상을 던지고 헛품만 판 경기도 수두룩했다.
26년 후의 관점으로 본다면 혹사도 그런 혹사가 없었다. 그러나 혹사는 다음 시즌에도 여전했다. 1987년 김용수는 52경기에 등판해 141이닝을 던지며 9승 5패 평균자책 1.98을 기록했다.
김용수는 “지금 마무리들은 정상적인 세이브 요건이 갖춰진 상태에서 등판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3이닝 이상을 던졌다”며 “장담하기 어렵지만, 지금처럼 1이닝만 책임지는 전문 마무리로 뛰었으면 300세이브 이상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팀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김용수는 갖가지 부상으로 오랫동안 고생했다. 그래도 그는 마운드에 올랐고, 38살이던 1998년 18승6패를 기록하며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실력으로 증명했다.
김용수는 비록 자신이 보유하던 대기록이 깨졌지만, 통산 100승-200세이브 이상 기록이 남아있기에 서운함이 덜하다. 되레 그는 통산 세이브보다 통산 100승 200세이브 기록을 더 값지게 생각해왔다.
“난 전문 마무리가 아니었다. 거기다 통산 200세이브 이상 투수는 구대성도 있고, 오승환도 있다. 하지만, 통산 100승-200세이브 기록은 여전히 나 한 명뿐이다.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지 않으면 세울 수 없는 기록이다. MBC와 LG를 내 몸처럼 사랑했기에 세울 수 있었던 기록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통산 100승-200세이브에 더 애착이 간다.”
김용수는 통산 126승-227세이브를 기록했다. 팀이 원하면 선발과 마무리를 가리지 않았다. 현역 시절 그가 중시했던 건 언제나 개인 기록보단 팀 성적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LG에서 나와 아마추어 현장에 있다. 물론 그가 원했던 결과는 아니었다.
김용수 “오승환은 통산 400세이브 이상 가능한 마무리”
'노송' 김용수가 마무리에 대해 말하는 장면
김용수는 “오승환은 특별히 단점이 없는 마무리”라고 극찬했다. 다만, 지금보다 더 롱런하려면 보다 정확한 제구와 결정구로 사용할만한 변화구 장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승환이가 마운드 위에서 던지는 속구는 일품이다. 하지만, 제구는 좀더 다듬어야 한다. 여기다 속구가 아닌 변화구로 삼진을 잡을지 알아야 한다. 지금은 힘이 넘치지만, 나이가 들수록 구속이 내려가기 때문에 지금부터 대비할 필요가 있다.”
김용수가 권하는 구종은 컷패스트볼이다.
“공끝이 3, 4cm 정도 변화하는 컷패스트볼을 장착하면 어떨까 싶다. 원체 포심패스트볼이 좋으니까 공끝의 변화만 살짝 줘도 타자들은 더 힘겨워할 거다.”
덧붙여 김용수는 오승환에게 “몸 관리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투수는 30살이 넘어야 운동이 무엇인지 안다. 20대까진 힘으로만 승부하기 때문에 운동의 묘미를 모른다. 그러나 30살을 넘기면 힘이 떨어지고, 부상확률도 높아 그때부턴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보단 ‘힘을 어떻게 비축해야 하는가’가 화두다. 승환이는 몸이 건장하고, 자기관리도 잘하니까 러닝을 통한 체력단련에 힘쓰면 좋을 것 같다. 마무리 투수는 매일 대기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고, 체력적으로 힘들어 간혹 ‘오늘은 쉬고 내일 운동하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만약 승환이가 그 나태의 유혹에 넘어가지만 않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면 ‘원조 마무리’ 김용수가 예상하는 오승환의 통산 세이브는 몇 개일까.
김용수는 “앞서 지적한 단점만 보강하고,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 400세이브 아니 450세이브 이상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힘줘 말했다.
“오승환은 한국 프로야구를 넘어 아시아 최고의 마무리가 될 선수다. 먼 훗날 450세이브를 기록하면 승환이의 손을 잡고 꼭 해줄 말이 있다. 무슨 말이냐고? ‘선배는 네가 참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지금도 자랑스럽지만, 앞으로 더 자랑스러운 한국 프로야구 대표 마무리가 됐으면 좋겠다. 다른 선수는 몰라도 승환이라면 가능할 거다.”
김용수는 대학야구에서 ‘제2의 오승환’을 배출하는 게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난 날의 영광을 잊고, 대학감독으로서의 현실에 충실하고자 한다. 오승환이 450세이브를 달성하는 날. 야구팬들은 후대 마무리 투수들의 훌륭한 귀감이 돼준 김용수에게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우리는 당신이 누구보다 자랑스럽다”고.
현재도 김용수는 우리에겐 충분히 자랑스런 야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