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이야기 망우리 시민공원에서 선각자를 만나며...

[이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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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 시민공원에서 선각자를 만나며...

글/사진: 이종원

몇 주만에 태양을 본 것 같습니다.

야속한 님아..그대가 숨어있는 동안 '비'라는 놈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혔는지 몰라.

이제 자주 좀 보자구요..

"자기야..오늘 날씨 쨍쨍해"

"어라..오늘 비 온다고 했는데..."

"어디 좋은데 가자."

아내가 정수 여름캠프 데려다 주고 오면서 화창한 날씨를 보고 내게 전화를 했답니다. 주말인데 밖으로 나가면 지옥같은 교통 때문에 힘들 것이고 가까운 망우리 시민공원과 용마산을 찾기로 했습니다. 원래는 그 능선을 종주해서 고구려의 아차산성까지 계획했답니다. 그러나 워낙 거리가 길고..우리가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용마산 정상까지만 오르고 하산했답니다.

하산길. 길을 잘못들어 캄캄한 밤에 절벽길을 조심스레 내려왔다. 어찌나 험하고 경사가 깊던지.....서울의 뒷산이라고 얏본 것이 후회스럽답니다. 그렇게 힘들게 내려와서 택시 타자고 했더니 아내는 집까지 걸어가자고 합니다 그 길도 족히 7km는 될텐데... 첫째 이유는 내 뱃살을 빼는 것이고 둘째는 성수에게 힘을 가르쳐주기 위해...3시에 집을 나서서..집에 도착하니 밤 10시랍니다. 그러니까15km를 6시간동안 꼬박 걸은 겁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지도 못하고 그냥 뻗었답니다.

'다시는 아내랑 등산 안갈꺼야. '

밤 9시가 넘어 동네 시장에서 세수대야 냉면을 먹었는데... 어찌나 그릇이 큰지...성수 목욕탕 같습니다..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성수는 밥도 못먹고 쿨쿨.... 불쌍한 내 아들

예식장 앞  꽃으로 장식된 차에 쓰여진 글귀가 ...

"아기 만들어가요. 양보해 주세요."

망우리 고개

망우리 시민공원에 갈려면 망우리고개에 올라서야 합니다.  이 곳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면 기분이 묘합니다. 빽빽한 무덤 밑에는 아파트가 뺑 둘러쳐 있어요.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공존하는 곳이지요.

태조 이성계가 그의 능지를 둘러보고 서울로 들어오는 길에 이 고개를  이르러 "이제야 근심을 잊었구나" 라고 해서 '忘憂里'라는 이름을 얻었답니다.  얼마나 좋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망우리근처에 산다고 하면 듣는 사람  표정이 좋지 않네요.  '망우리'라는 어감이 좋지 않은가 아니면 공동묘지가 가까이 있어서 그런가

저는 이 고개를 넘을 때마다 근심을 잊을려교 애쓰고 있어요.  넘어가면 근심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이 길을 따라 왕의 행차가 있었겠지요. 동구능을 향해 문무백관들이 길게 늘여선 모습은 아마 장관이었을겁니다.  

13도 창의군탑

1907년 전국에서 모인 의병들이 이곳 망우리 고개로 집결하기로 했답니다. 총대장은 이인영, 군사장은 허위였답니다. 그 손자가 모놀에서 소식을 접했던 게오르규씨랍니다. 허위의 300명 군대는 서울로 진격하다가 일본군과 싸우다 중과부적으로 결국 퇴각하고 맙니다.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외치는 고귀한 뜻을 새겨봅니다.

망우리시민공원 산책길..한여름에도 숲이 우겨져 이곳에 들어가면 그다지 덥지 않습니다.

아이고 목말라.

송촌 지석영묘

누구나 팔뚝에 우두자국은 있을 겁니다. 어머님의 자국은 큼직한 도장이고, 저는 작은도장 , 제 아들은 희미한 자국이더군요. 그런데 요새는 발바닥에다 주사를 놓는다고 합니다. 만약 이 주사를 맞지않았다면 천연두로 죽어갔으며, 살았다 하더라도  평생 곰보로 살아야 합니다. 성형수술 잘 못했다고  자살까지 하는 세상인데...곰보로 살아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천형을 면해주신 분이 바로 지석영선생님이랍니다. 종두법에 관심을 갖고 홀로 부산에 내려가 일본인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종두법을 익힙니다. 그걸 임상실험을 해야한는데.. 선생은 충주에 있는 장인을 찾아갑니다. 2살된 처남에게 종두를 실시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장인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것은 일본인이 조선사람을 죽이기 위해만든 약이다. 그걸 어찌 어린 처남에게 놓느냐"  
그리고는 지석영을 미친놈 취급을 합니다.  그 길로 지석영은 짐을 싸고 떠날려고 합니다.
"왜..떠나려고 하는가?"
"믿지 못할 사위가 어찌 처가에 있겠습니까?"  장인은 지석영의 성의에 감탄하고 우두시술을 허락합니다. 얼마나 조마조마 했을까요?  혹시 잘못되면 어떻하지.. 전전긍긍하면서 3일을 보냈는데 드디어 우두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선생은 일생을 통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훗날 회고합니다. 그리고 조선에서 천연두를 몰아냈습니다.

선생은 의학자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은 한글 학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개화가 늦어지는 이유가 어려운 한문 때문이고  널리 교육을 펼치기 위해 한글을 쓸 것을 주장하셨답니다. 동래 부사까지 지낼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도 있었지요. 그러나 한일합방이 되고  일본의 구애도 뿌리친째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재야에 묻혀 생을 마감하신 분이랍니다.

지천에 널려있는 무덤 속의 사람들도 선생의 도입한 종두를 어깨에 하나씩 달고 있겠지요. 그리고 천연두 때문에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선생의 애민정신.... 죽어서도 그런 민초들과 함께 누워 있습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

어린이 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분이지요. 어찌보면 어린이 노동위원장이기도 하지요.. 선생의 비문에 나온 글이 하도 좋아서 이곳에 일부 옮겨봅니다.

"사람이 오래 살기를 어찌 바라지 않을까마는 오래 살아도 이 민족이 겨레에 욕된 이름이 적지 않았건만 불과 서른 셋을 살고도 이 나라 이 역사위에 찬연한 발자취를 남긴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소파 방정환 선생이다. 나라의 주권이 도적의 발굽아래 짓밟혀 강산이 통곡과 한탄으로 어찌 할 바를 모를 때 선생은 나라의 장래는 오직 이 나라의 어린이들을 잘 키우는 일이라 깨닫고 종래 '애들, 애놈'등으로 불리면서 종속윤리의 틀에 갖힌 호칭을 '어린이'라고 고쳐 부르게 하였고 그들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존대말을 쓰게 부르짖었으니 이 어찌 예사로운 외침이라고 하겠는가? 선생은 솔선하여 어린이를 위한 모임을 만들어 밤을 지새워 '사랑의 선물'이란 읽을 거리를 선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라는 잡지를 만들고 어린이날을 제정하여  이를 실천하였다...."

문일평 선생은 민족주의 사관(史觀)에 입각한 국사연구에 힘쓰신 분입니다. 방형의 묘에 꽃이 한아름 놓여 있네요.

오세창 선생묘

완당평전에서 오세창 선생을 처음 만났습니다. 추사의 글과 그림을 감식하고 정리하는데 큰 일을 했을 뿐 아니고 금석학의 대가라고 들었답니다. 본인 스스로도 전서와 예서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33인의 한 분으로 구학문을 바탕으로 신학문을 전개한 분이지요. 육당 최남선, 위당 정인보도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후배랍니다

만해한용운 선생님 묘

일제시대 만해 한용운 선생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지키고 실천했던 분도 없을 겁니다.  만해를 이렇게 가까이 뵐 수 있는 것도 제게는 큰 영광이랍니다. 3.1운동때 33인 중에 한사람이고 일생을 저항문학에 앞장선 분이지요.  만해 같은 분이 지금도 계셨다면 통일운동에 앞장섰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입구에는 변함없이 일본식 정원수로 꾸며 놓았더군요. 우리나라 최고의 저항시인인데...묘지가 너무 초라해요.

죽산 조봉암

이 곳에 비문이 없은 묘소가 하나 있답니다 . 이승만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죽산 조봉암 선생님 묘소지요. 59년 진보당사건으로 간첩혐의로 사형된후  창령 조씨문중에서 지금까지 비문제작을 거부했기 때문이랍니다.

죽암은 비운의 정치인이지요. 제헌국회의원 , 초대 농림부장관, 2대국회의원, 국회부의장까지 탄탄대로였지요. 52년, 56년 대선때 이승만과 맞서 선전했지만 낙선합니다. 그러나 무려 200만표나 얻었기에 이승만의 최대 정적으로 올라섭니다. 독재자의 입장에서 최악의 선택을 합니다. 호시탐탐 노리다가 기어코 진보당에 붉은 색을 입혔고 죽산을 간첩혐의로 잡아들여 사형을 언도합니다.

죽산은 "정치적으로 조작된 사건이니 사형아니면 무죄를 달라" 라고 당당하게 최후진술을 합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정치활동을 했다는 것밖에 없오. 마지막으로 술이나 한잔 주시오"   그러나 그 마지막 청도 거부한채 서대분 교도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됩니다.

밋밋한 비문이 무언의 항의를 합니다. 'x'를 그린 마스크를 착용한 것 같습니다. 조작된 사건에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빨리 복원되어 선생의 이력과 철학이 가득 채워지길 바랄 뿐입니다.

다음에 올 때는  술이나 한병 사 가지고 와야겠습니다. 마직막 유언이나 다름없는..."술이나 한잔 주시오." 라는 소원을 풀어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이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이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 <조봉암 어록>

성수가 선각자들을 생각하며.....'삶과 죽음은 오묘한 것이여.'

용마산 정상까지..2.5km 어휴..저길 어떻게 올라가지?

숲길을 걷는 맛이 참 좋습니다.

구름도 바로 머리 위에....

깔딱고개앞에 섰어요.  아내보고..

"저길 어떻게 올라가...그냥 내려가자. 몸이 피곤해..쓰러지기 일보직전이야."

"따라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저길 올라갑니다.

능선 좌측에는 구리시가... 물이 빠지고 고수부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답니다.

이곳은 아차산성, 보루등...고구려의 유적이 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헬기장이 있으니..예나 지금이나 군사요충지임은 변함없어요.

만세 하라고 했더니..할렐루야를..

고구려의 보루....최근에 다시 복원시켰답니다.

조심조심.

남쪽으로는 광장동, 구의동이..천호대교 건너면 풍납토성이 나온답니다. 그 너머에는 몽촌토성이..... 강을 두고 고구려와 백제는 대치했습니다. 적의 동태를 훤히 볼 수 있는 이 아차산이 얼마나 귀한 역할을 했겠습니까?

장수왕이 이곳에 진을 치고....호시탐탐 백제를 노리다가  강을 건너 위례성을 공격하여 백제는 남쪽으로 유랑을 떠나게 되었답니다. 한강을 장악하는 자만이 삼국의 패권을 차지했답니다.

북어포를 안주삼아 맥주 한 잔..약통에 마요네즈를 담아서...

김밥먹어라..성수야.

다시 기어가다시피 해서...용마산 정상까지 왔습니다. 대장 체력이 많이 약해졌어요. 이런 산도 힘들어졌으니.....이곳에 삼각점이 있더군요.

중랑천과 한강을 한 눈에...중랑천이 성수동을 만나면서 s자로 휘어져 한강에 합류한답니다. 동호대교, 한남대교, 반포대교, 동작대교까지..한 눈에 보입니다.

중랑천...개미집이 따로 없어요. 내가 사는 공간은 작은 점입니다.

^^

슬슬 일몰이 시작됩니다. 노을이 참 예쁘지요. 얼마만에 본 태양인지...

중랑천도 황금빛으로...해는 북한산으로 넘어갑니다.

고구려 제 7보루성입니다. 나라는 없어졌어도 그 정신은 오늘날까지 살아있겠지요.

모놀과 정수 .....여행작가 이종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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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 (Trip Road)  

[Happy4U]

용마산 아래 제가 살던 곳인데.... 면목동... 예전 용마산은 매일 발파작업하느라 유리창 진동에 먼지가 뒤덮이기 일쑤였죠... ㅠ.ㅠ

[비움]

망우리 공원, 국립묘지이면서 역사현장이지요. 박인환, 방정환, 문일평, 조봉암,,,,,연보비 기념식하던 그해 그날이 생각나네요. 하늘도 넋을 기리기라도 한듯 비가 뿌렸고,,,,,저는 그때 이문재구청장께서 행사 원고쓰라는 명령(?)을 내려 우산을 받고 추워서 입술이 파래진 채 좇아다니며 메모를 했었지요. 그리고 망우리 공원에는 외래종이 아닌 순 우리꽃과 우리 식물을 폭넓게 만나고 관찰할 수 있는 식물체험학습장이기도 하여 산책할 때 좋지요.

[휘리릭]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가 ^^ 그리곤 슬며시 웃어보기도 했다가^^ 그렇게 잘 감상하였습니다.. .. 저도 술한잔 올리고 싶네요..... 훌륭하신 민족의 선각자님들....!!

[moonsun변창호]

벌써2년인가요3년인가요 다시한번가봐야겠네요

[똥구랑땡]

음...아차산꼭대기! "참 잘 해놨네.." 했더니, 용마산은 더 잘 해놨네요..아차산에서 용마산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나요? 몇년전에는 없어서 간신히 언니들 따라서 어딘가를 헤메고 다녀온 기억이 있는데요. 시간을 한번 내봐야겠어요. 가보고싶네요. 용마산 꼭대기...^^

[누야]

요기가 우리동네인디... 오후에 한번씩 올라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혼자 못간답니다. 묘비들을 보면 여러생각들이 교차하지요.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새롭네요^^

[여의도박]

등산 자주가세요...ㅎㅎㅎ

[柏香木(cedar)]

한번쯤 뒤돌아보는 좋은 기록물이군요. 한가지.. 대장님보다 성수가 매번 힘들겠어요.

[수레]

잘 아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대장님 덕분에 새로운 걸 많이 알게 됐습니다. 좋은 글, 사진 감사합니다.

[엄지왕]

성수맘, 멋져욤!

[요시]

매일 가면 배가 홀쭉해질텐데.ㅎㅎ

[겨울나그네]

용마산 다녀온곳인데... 사진으로 보니 숙연해지며 새로웁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