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의집단 해병대(5) 해병 가족도 해병>
87년 경기도 안산시의 해병 전우들이 치안부재 현상이 일어나자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방범활동을 벌인 것이 발족의 계기가 되었다. 강남해병전우회 기동대장 안만영(安萬永·56세·해병 157기)는 기동대의 역할에 대해 이와 같이 설명한다.
『범죄예방 차원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사법권이 없기 때문에 선도차원에서 일을 하지만 경광등을 단 기동순찰대 차량이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면 범죄가 줄어들 건 분명한 사실이죠. 가끔 주민들이 고맙다며 드링크나 라면을 들고 올 때면 보람을 느낍니다』
서울 강남전우회 회원은 약 280명 정도인데 이들은 주 4회 교대로 교통정리와 야간순찰을 한다. 교통정리는 오전 7시부터 9시, 야간순찰은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하게 된다. 취약지구인 양재천 주변 순찰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주로 20대들이 술에 취해 말썽을 많이 일으킨다고 한다. 술 취한 사람들을 차에 태워 집에 데려다 주기도 한다.
『부인들이 도와주어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부인들이 돌아가면서 밤마다 간식을 준비해 줍니다. 해병 가족들도 해병이 다 되었지요』
안만영씨는 해병 행사 때면 온가족이 해병 복장을 입고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일러준다. 강인한 성격의 해병들이지만 부인들에게는 부드럽다는 설명과 함께 그래서인지 부부문제로 고민하는 해병은 별로 없다고 전한다.
기동봉사대 외에도 친목단체로 90개 단체가 가입되어 있는데 직능별로 공병, 보급, 헌병, 보병, 재무, 택시 기사회, 기독선교회 등이 있으며 직장별로는 창원공단 천자봉 연합회, 안산 기안산업 해병전우회, 울산 현대해병 전우회, 9·28 친목회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해병전우들의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 기동봉사대는 주로 자영업을 하는 40~50대 중년들이 참여를 하고 20~30대는 직장 내에 조직되어 있는 기동봉사대에서 활동한다. 또한 각 대학마다 해병전우회 모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면을 걸고 사는 사람들>
지금도 조직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지난 4월1일 아산만 기아자동차 해병 봉사단 발대식이 있었다. 행사 때마다 해병들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하는 등 활동을 하자 회사측에서 정식으로 발족식을 하라고 권유를 했던 것이다.
이날 발대식에 전국의 해병전우회 위원장들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었는데
해병대 행사가 있을 때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지는 것이 해병만의 전통이다.
『해병 위장복을 입고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우리 해병들은 몹시 좋아합니다. 그 옷을 입고 싶어서 행사에 참여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예요. 누가 경비를 주는 것은 물론 아니죠. 어디서 해병 행사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모두들 자비를 들여 달려가서 축하를 하는 겁니다. 해병기동대 차량도 모두들 회원들이 스스로 갹출을 하여 마련한 것이지 누가 도와준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해병이 좋아서 함께 모여 일하는 것뿐입니다』
김기수씨는 아무런 이권도 어떤 특혜도 없는 일이지만 모두들 즐겁게 참여한다고 덧붙인다.
해병기동전우회가 단순히 마을 순찰만 도는 것은 아니다. 위급할 때는 발벗고 나서서 재난을 막아낸다. 문민정부 들어서서 네 번이나 대통령 표창을 받았는데 아시아나 항공사고시 인명구조(목포 해병전우회), 폭우시 인명구조봉사(영월 해병전우회), 위도 해난사고시 봉사(군사 해병전우회), 엑스포 행사시 봉사(대전서구 해병전우회) 활동 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활동을 벌일 수 있었던 배경을 유화선(劉和善·54세·해간 32기)씨는 설명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역이건 예비역이건 「나는 해병」이라는 일종의 자기 최면을 걸고 사는 것이 해병입니다. 인간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를 증명해 보고 그 한계를 넘어섰을 때 「죽자」고 하면 죽을 수도 있는 게 해병정신이죠. 대통령 표창을 받은 영월 해병전우회의 일입니다. 폭우가 내려 사람이 섬에 갇혔어요. 상황이 위급했는데 악천후 때문에 헬기로도 구조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예비역들인 해병 인명구조 요원 세 명이 보트를 타고 가서 사투 끝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했어요. 잠시 후 그 작은 섬은 물에 잠겼어요. 이건 구조 기술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나는 해병」이라는 자기 최면, 자부심, 명예를 늘 지니고 있다가 용기가 필요한 그 순간에 적용하는 기질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실제로 어떤 해병은 자녀의 생활기록부 종교란에
해병대라고 써넣었다고 하는데
해병대를 신앙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해병들은 스스럼없이 말했다.
해병기동봉사대 못지 않게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단체가 바로 해병 예비역들로 조직된 청룡 환경연합회와 한국 환경경영 연합회이다. 청룡환경 연합회는 정식 등록단체로서 환경평가 때 공식 초청되는 단계에 이르렀고, 한국 환경경영 연합회는 22개 지부를 두고 활발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애경사가 있을 때면 해병들의 단결력은 또한번 빛을 발한다. 특히 상(喪)을 당한 해병전우는 손쉽게 장례를 치를 수 있다. 해병전우가 사망했을 경우 해병 정복을 입고 와서 마치 군대장처럼 운구에서부터 장지 뒷마무리까지 절도있게 처리해 준다. 가끔 해병들의 끈끈한 의리를 보고 기동대 차량을 제공할테니 명예해병으로 가입시켜 달라는 청탁(?)을 해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예전에
해병대의 육성과 발전에 이바지한 인사들에게 명예해병증을 수여한 적은 있다. 국어학자 이희승 박사, 고려대 김성식 박사, 여류작가 이명온 여사, 문산농고 이경재 교장, 종군 작가 김중희씨 등이 그분들이다.
해병의 발전을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해병들도 많다.
해병대 하교 160기인 최돈수 씨는 302면에 달하는 「해병사」를 혼자서 발간해 내는 저력을 보였으며, 해병정훈동지회 회장 정채호(鄭采浩)씨는 해병에 관한 책을 10권 이상 출간한 바 있다. 또 변기룡씨는 1년6개월간 작업한 끝에 49년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지금까지
해병대 장교들의 주소와 전화번호 인적사항을 총망라한 「해병장교가족」이라는 책을 펴냈다.
<너무 설치는 거 아닙니까?>
개인이 이런 무모한(?)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해병의 특유의 돌파력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해병들은 입을 모은다.
46년간 배출된 70만 해병 예비역들이 사회 요소요소에 활동하고 있다. 홍사덕·박찬종·장석화·박구일·허재홍의원 등 현역 국회의원과 정창화 3선 의원을 비롯한 전직 국회위원 다수와 김성은 전 국방장관, 김기춘 전 법무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을 다수 배출한 바 있다.
언론인으로는 현소환 연합통신사 사장, 안병훈 조선일보사 전무, 윤혁기 서울방송 사장 등이 있으며 김용철 전 대법원장, 선남식 전 고법판사, 김문희 현 헌법재판소 판사를 비롯해 많은
해병대 출신 법조인들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체육계에서도 해병 예비역들의 활발한 활동이 펼쳐지고 있는데 김정남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 94월드컵 국가대표 김호 감독과 허정무 코치, 한양대 축구부 감독인 이회택씨 등이 모두
해병대 출신이다.
경제계 인사로는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 엄종일 건영 대표이사 등이
해병대 출신이다. 소설가로는 김용성·오유권·정건영·천금성씨 등이 눈에 띄고 패션 디자이너 이동수씨도
해병대 출신이다.
원영무 인하대학교 전 총장, 이필원 KIST 시스템공학실장, 차문섭 단국대학교 대학원장, 서울대 김진세 교수, 중앙대 최정호 교수 등 학계에
해병대 출신이 유독 많다.
신영균 예총 회장, 장수봉 PD, 작곡가 정풍송씨, 코미디언 구봉서·임희춘씨, 탤런트 임채무씨 등도
해병대 출신이다.
특히
해병대 출신 가수들이 많은데 최희준·남백송·박일호·오기택·남진·박경원·윤항기·진송남·김흥국씨 등이다. 박양원 전 경희의료원장, 장익열 전 한강성심병원장, 민병철 현대 중앙병원장 등 의료인 중에도
해병대 출신이 많다.
취재 중에 타군 출신들에게
해병대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더니 너무 설친다, 너무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친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다, 할 일도 없다 등 대체로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해병이니까」라고 해병과 똑같은 답변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변기룡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각 지역에 있는 해병전우회 특히 기동봉사대의 활동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국민들이 없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러 해병 출신임을 내세워 폼만 잡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순수한 마음에서 기동봉사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확실히 보기 드문 일>
또다른 해병예비역들은 질투에서 나온 말이 아니겠느냐, 설쳐서 잘못된 것 있느냐, 많은 사람이 움직이다 보면 잡음이 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정도로 응수했다.
홍사덕 의원은 유난스러운 단합으로 간혹 배타적이라는 인상을 주기는 하나 반드시 그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타군에 비해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되어 자랑스럽습니다. 간혹 지나치게 극우적인 행태를 보인 적은 있으나 우리 사회에는 그런 부분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해병전우회로부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모든 해병의 자발적인 도움이 있었을 뿐이라고 얘기했다.
해병전우회는 어떤 정치색도 띠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순수 친목, 봉사단체이므로 정치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해병회보서 1년6개월간 수많은 해병을 만난 여기자 김경남(金炅南)씨는
해병대원들과 생활하다 보니 자신도 해병이 다 되었다고 한다. 언어습관도 많이 달라져 자신도 모르게 「새발의 피」가 아니라 「새발의 미스무시(무좀)」라고 말할 정도라며 웃는다.
『특수문화에 관심이 많아 입사했어요. 특수문화의 좋은 점을 일반문화화 시키는 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해요. 해병의 가장 큰 특징을 들라면 단결력을 들고 싶어요. 기수 하나로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기이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직업도 다양하고 성격도 틀리지만 이들은 해병이라는 이름 하나 아래 똘똘 뭉쳐 있는 것 같아요. 신기할 정도입니다. 기수에 따라 서열이 매겨질 뿐 다른 조건은 다 무시됩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지금까지 취재한 사람 중에서 서울 종로5가에서 문구사를 운영하는 사람과 안산에서 구두닦기를 하는 해병 예비역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문구사를 하는 사람은 종업원으로 취직하여 자수성가한 분인데 갑자기 불이 나서 알거지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다시 노력해 다시 사업을 일으켜 세우는 모습을 보고 그 정신이 놀라웠다고 전한다.
「자기 자신을 끌어 올리는 정신」
안산에서 구두닦이를 하는 사람은 서울 강변 포장마차 주변에서 활개치던 폭력배였는데 자기 주먹을 알아 줄 것 같아
해병대에 입대하였다가 적응을 잘 하지 못해 군대생활 내내 거의 영창에서 보내다 제대하였다. 제대 후에도 방황하다가 자신이 사회악이라는 자각을 한 후 전우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선후배들을 통해 그제야 해병의 참뜻을 깨닫게 된 그는 구두닦이를 시작하여 새 삶을 살면서 지금은 가출 청소년 7명을 돌보고 있다고 한다.
『
해병대들은
해병대 작대기 하나를 논 서마지기하고도 안 바꾼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녀는 해병정신을 「자기 자신을 끌어올리는 정신」인 것 같다고 정의했다.
중앙대학교 국문과 김선풍 교수(金善豊·해병 121기)는 해병들의 모임을 단순한 무리의식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의무감이 아니라 목적의식을 갖고 군대에 가서 혹독한 훈련을 거치고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제대 후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역정신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겁니다. 기독교 문화가 자본주의를 살찌게 했듯이 해병들의 건전한 리더십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풍요로운 사회가 되면서 사회정의가 흔들릴 때 의로운 일에 뛰어드는 집단이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요』
이익이 따르지 않는 일, 의무조항이 아닌 일. 그런 일을 해병예비역들은 하고 있었다. 그건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가며 살아가야 하는 요즘 세상에서 확실히 보기 드문 일이다. 그들은 스스로 의욕을 돋우며 서로서로 칭찬해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해병이 좋아서 해병에 미쳐서 해병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그들은 무작정 그렇게 하고 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필 ~~~ 씅!!
첫댓글 서산전우회의 선후배님들 보시면 좋아하실것입니다,,, 스크램해가겠읍니다,,감사합니다,,해~~~병
해~~~~~~~~~~~~~~~~~~병 !!!
잘읽었습니다. 나에게도 스스로 최면을 걸고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