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좋은 시 다시 읽기
거미가 없는 거미줄에서
한수재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그 흔적들과 기억을 소환하며 남겨진다.
길모퉁이에 옛날식 꽈배기 가게가 들어왔다
날마다 펄펄 끓는 기름에 튀겨지는 꽈배기를
옛날식으로 바라보았다
바람이 창살에 매달려 끊임없이 제 몸을 흔들며 운다
나도 바람의 송곳니에 찢어지면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퇴근길 아버지가 내밀던 봉지 속
설탕에 묻혀있는 꽈배기를 생각한다
삶은 꽈배기 같은 거라며
꽈배기 같은 세상을 건널 땐
설탕 맛에 속지 말라던
꽈배기는 끓는 기름에 뛰어들기 전
이미 꼬이고 뒤틀린 생애였다고 말해주던 아버지
아버지가 그리운 저녁이면
밀가루와 물을 비율대로 섞으며 치대어 반죽을 만든다
말랑거리는 반죽을 새끼줄처럼 꼬아
끓어오르는 기름의 바다에 던지면
통째로 부풀어 오른 몸
복제된 삶이 잠시 후에 떠오르는 것이다
사는 동안 한 번은 달콤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아버지를 버리고 자의적으로
펄펄 끓는 기름에 튀겨진 하루를 설탕에 굴려
옛날식으로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돌진하는
- 김양숙 「옛날식 하오」 전문
설탕에 속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생에 딱 한 번 달콤하게 부풀어 오르고 싶은 것은, 꼬이거나 뒤틀린 사건과 세상과는 무관하다.
울부짖는 허공에
내걸린 현수막 하나 흩날리고
뜬구름 같은 이름이 피고 졌어
- 최귀례 「오미크론 시대」 중에서
그렇게 흔하디흔한 죽음과는 다르게 하나의 생이 무모하리만큼 각별하고 은밀하게 진행되는 독립성을 생각하면 얼마나 경이로운지. 무언가가 복제되고 있지만, 전혀 다른 온도와 색으로 부푸는 일은 옛날식이라고 할 수 없다. 누구의 식도 아닌 식으로 복제되고 있는 것은
엇비슷 몸을 잇대어 서거나
나란히 스크럼 짜듯 서거나
모두 한 방향 보는 것은
저 푸른 하늘을 꿈꾸어 왔기 때문이다
필시 한 뿌리로 발 담그고 서서
골고루 뿌려지는 햇살을 함께 나누고
광풍 따위는 툭툭 끊어내는 오늘
- 김순규 「무등산 입석대」 중에서
한 뿌리 위로 저마다 다르게 쏟아지는 햇살, 다르게 끊어내는 오늘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한 곳에서 만나는 지점이, 만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
주파수 맞지 않아
라디오를 팔아
바다를 샀다고
덤으로
쏟아지는 별사탕을 얻었다고
좋아하다가
그 바다가 생때같은 아들을
빼앗아갔다고
거품을 물다가
파도와 파도가
흐느끼면서도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는 것을 보고
서글퍼 서글퍼하면서도
꾸덕꾸덕
살고 있다, 하십니다
- 신미균 「서귀포 이모」 전문
흐느끼면서도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며, 꾸덕꾸덕 서글프게 살아있는 슬픔은 잠시 숨을 돌리고 먼바다를 보듯, 지평선 하늘을 보듯, 오래된 과거와 더 오래된 미래가 아닌, 너와 내가, 모르는 우리가 유일하게 현재로 만나는 지점이다. 끔찍하고 지루하기 그지없는 인간이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빛날 때이기도 하다. 어쩌면 한 존재가 잠시 빛나기 위해 식별이 어려운 죽음의 꼬리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죽음을 팔아 살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것이 생존의 바탕이기도 하다. 이 또한 얼마나 엄숙한 일인지. 슬픔은 죽음을 무덤이 아닌 삶이 되게 하는 통로라는 것을, 조삼현 시인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머니 무덤가에 엉겅퀴꽃 피었다
너도 필시 내 어머니 늑골에 빨대를 꽂아
탐스럽게 피었으리, 그러고 보니
너와 나는 한 뿌리 남매구나
허릅승이 이 오라비 어느 변방 떠돌다
느닷없는 천둥 소나기에 등짝
억수억수 두들겨 맞고 흠뻑 젖어, 불쑥
재채기처럼 터져버린 그리움
목젖 갉아대는 그리움에 우우
억새 바람으로 울고 있을 때, 네가
어머니 곁 자줏빛 조등弔燈 환히 걸었구나
누이야, 진자리는 아니더냐
어머니 처소가 춥지는 않더냐
눈물 한숨 설움 고단 보릿고개 이런
배고픈 오색 나물에 입맛 다시다가
애들아, 너흰 이런 것 먹지 말고
진미珍味 드시게, 하시지는 않더냐
누이야, 네 꽃말은 건드리지 마
네가 흙이 되고 내가 재가 되는 날 우리
엉겅퀴 엉키엉켜 어머니를 만들자
어머니를 낳아 어머니 사랑
딱 그만큼만 어머니를 키워보자
등골이 휠 때까지, 관절염 두 다리
질- 질- 유모차에 끌려갈 때까지
- 조삼현 「어머니를 낳고 싶다」 전문
어머니의 시간과 삶이 시인의 슬픔 속에서 복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엉겅퀴와 함께 어머니를 낳을 것이다. 아니, 살아있는 모두는 어머니를 낳게 될 것이다. 등골이 휘고 유모차가 두 다리가 될 때까지 끌려다니다가 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비슷한 봉분이 만들어지고 비슷한 뼛가루가 날리지만,
너를 목에 두르고
너의 호흡과 숨결을 어깨에 걸치고
팔랑 이는 결 따라 짜르르 미끄러지게
맘껏 자유로운 리듬을 느끼고 싶어
- 오영미 「TV를 틀어놓고 옷장을 열어 보다」 중에서
복제된 삶의 기호들은 다음의 시간으로 이어져서 마치 완벽한 죽음은 없는 듯이 어딘가에서, 어떤 모양으로든 남겨지고 살아지는 것이다.
거미줄에 낙엽이 걸렸다
뼈다귀만 남은 노인의 눈빛이 마냥 흔들린다
재가 되고
눈송이가 되었고
물이 되고
꽃이 되었고
종기 터진 자리에 피고름 짜내던 계절을 지나
오색기 나부끼는 집, 무당은 마루에 앉아 거미줄처럼 주술을 푼다
희끗하게 풀어지는 먼 산
거미줄에 거미는 없다
- 정재원 「계절이 닫히고 나면」 전문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소환될 때까지 누군가는 자줏빛 조등弔燈을 환하게 걸고 누군가는 빈 거미줄에 휘청이며 자신을 걸어야 한다. 진지하고 엄숙한 존재로서의 죽음과 늘 먹는 밥이나 별과 달처럼 식상하고 무덤덤한, 상태로서의 죽음 사이에서 시인도 그렇게 누군가의 빈 거미줄에 자신의 무게만큼 휘청이며 걸려 있다. 죽음은 남겨진 자의 몸이며 옷이며 시간이다. 떠난 사람은 물이 되고, 꽃이 되고, 눈송이가 되고 자유가 되어,
너덜해진 발을 벗어 놓고
당신은 두 개의 비릿한 방에 자물쇠를 채웁니다
어쨌든 지금은 바다로 나가야 합니다
잉크 글씨를 물에 적셔 읽어내는
것만큼 당신의 발자국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눈이 걸어가는 거미
맥박 속에 어둠을 들여놓는 거미
물의 파장은 여러 번 기억을 잃고
그물망 서쪽에서 그만 갇혀 버렸습니다
눈 깜빡이면 밀물 차 들어오고
눈 밑 푸른 갯메꽃 따라 텅 빈 해안이 만들어집니다
철학의 균형을 바다에 대면
수평선은 어린 물고기의 언어를 뱉어낼 수 있을까요
고독이란 목숨과 무덤 사이에 깔린 모래사장이라고
당신은 거미가 되고 어린아이가 되어 거미줄을 타고 놉니다
파도가 된 것들은 너무 환해서
가끔 그림자가 사라지곤 합니다
어떻게 그 시간으로
어디까지 멀리 갔을까요, 다가가 보면 없는 방
눈 밑에 달라붙은 땅거미는
사라진 한쪽 세계를 붙잡고
바다가 돌리는 시계 초침에 수평선을 겁니다
- 정재원 「땅거미가 지는 방」 전문
그렇게 수평선을 걸어 놓고, 그때와 지금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그 다리에서는 그때와 지금과 나중이 뒤섞이고,
기억을 잃어버리고 그 기억에 갇혀
- 정재원 「흰 뼈 하나 남기고」 중에서
갇히다 보면, 꼬인 꽈배기처럼 누구의 거미줄이었는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종종 죽음이 두려운 것은 꿈꾸던 자유가 말의 껍질을 벗고 내 앞에 몸의 현실로 구현되는 경계심일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없다면 인류는 진작에 사라졌을 것이다.
넘을 수 없는 두려움, 믿을만한 두려움을 비빌 언덕으로 두고, 딱 그 만큼만의 자유, 죽지 않을 만큼만의 자유를 행해 집중하는 오늘도 오래되고 먼 것들이, 지금으로 와 시인의 시간이 되고, 멈춘 줄을 잇게 하는 일, 상태가 아닌 존재로서의 죽음으로 그 자유를 갈망하게 되는 일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닐뿐더러 그림자가 사라질 만큼 삶 속으로 뜨겁고 치열하게 몰입하게 하는 중요한 생존 장치이기도 하다.
빈손은 서로 잡으면 채워지지
나는 너의 소리를 믿고
너는 나의 소리를 믿고
그러면 소리들은 노래가 돼
꽃들이 모여 봄이 되고
작은 잎들이 모여 녹음이 되듯
같은 리듬으로 흔들리는 반음과 온음
물줄기들이 섞여서 강물이 되고
하늘이 되고 다시 빗물 되어 흐르고
내리는 눈처럼 잠시 세상을 뒤덮는
그런 꿈, 마르지 않는
우리에겐 그런 게 조금 필요해,
여럿이 겹쳐 한 곳을 누르는 무게가
오래 사라지지 않고 남을 체온이
하나 된 소리 속에 함께 흘러서
서로가 서로에게 묻어가고
마음속 구멍들이 녹아 메워지고
세상의 빈 소리들이 손을 잡는 꿈
- 김지윤 「화음」 전문
맞다, 우리에겐 그런 게 필요하다. 빈손이 다른 빈손을 잡고 서로의 무게를 올리는 체온으로
삶을 무모하게 채우는 게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사는 동안 한 번은 달콤하고 싶었던 삶임에도 뚝뚝 끊어 낼 수밖에 없던 수많은 오늘이 꾸덕꾸덕 살아지는 슬픔으로 소환되는 기억 속에서 무수한 아비와 어미를, 끝내는 나 자신이 거미 없는 거미줄에서 재탄생되어야 하는 이 길고도 무심한, 기적의 이야기들이 아프거나 슬프거나 연민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이.
오히려 그 너머의 에너지를 이미 자신의 것으로 만든 자유로움을 어찌나 잘 감추고 있는지. 너무 환해서 그림자가 사라질 만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