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지역에서는 강남구청이 기반시설 확보를 위해 재건축 용적률 관련 용역을 발주하자 ‘개포지구 용적률을 올릴 것’이라는 헛소문이, 송파지역은 ‘초고층 빌딩에 대한 건축허가가 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재건축 아파트 호가가 올라가고 있다.”(건설교통부 서종대 주거복지본부장)
잠잠하던 강남권 재건축 시장이 꿈틀댈 조짐을 보이자 지난 19일 주택정책의 사령탑인 서 본부장이 직접 구두 개입에 나섰다. 국지적인 상승기류가 자칫 재건축 시장 전체로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재건축 시장은 그동안 집값 폭등의 진원지이자 도화선이었다. 재건축 고삐가 풀리면 ‘시장 안정’이란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걱정인 듯하다.
강남권 재건축 시장 움직임
중앙일보조인스랜드와 한국부동산정보협회에 따르면 강남구 재건축아파트는 1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줄곧 하락했으나 5월 중순부터 반등, 7주 연속 상승세다. 노무현 정부가 발동한 소형 평형 의무비율, 임대주택 의무건설,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 안전진단 강화 등 다중 규제가 먹혀들다가 주춤하는 모습이다.
지금도 개포 주공, 대치 은마, 잠실 주공5단지, 고덕 주공 등 이른바 ‘재건축 빅4’를 비롯한 대다수 재건축 단지들은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개포 주공 7개 단지 1만3000여 가구는 강남구청이 2002년 마련한 개포지구 단지별 용적률(전체 200%, 고층 222%, 저층 177%) 배분안에 주민들이 반대해 5년간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강남 집값을 견인하던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재건축 논의 자체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은마아파트는 지금까지 세 번의 예비 안전진단을 받았지만 매번 통과하지 못했다.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도 안전진단 강화로 재건축의 꿈이 더 멀어졌다. 그동안 송파구청과 주민들이 추진했던 상업지역 용도변경은 서울시의 반대로 진척이 없다. 게다가 단지 내 리모델링파와 재건축파가 주도권 다툼을 벌이면서 사업 추진은 안개 속이다. 그럼에도 최근 호가는 크게 올랐다.
왜 오를까
뚜렷한 이유가 없어 이런저런 해석들이 등장했다. 우선 종부세 부과 기준일인 6월 1일 이전 지난해 3분기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진 급매물이 사라지면서 호가가 정상으로 회복된 측면이 있다. 이른바 급매물 소진에 따른 가격 반등설이다.
대선을 앞두고 재건축 규제가 완화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형성돼 있다. 대선후보들이 표 앞에서 재건축 규제 완화를 공약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재건축 규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비판이 많았다.
주로 '강남에서 공급을 늘리려면 재건축 규제를 풀어야 한다 '좁은 땅에서 주택공급을 늘리려면 용적률을 높여 초고층을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일시적으로 오르겠지만 결국 공급이 많아지므로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는 주장들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주택시장이 안정될 때까지는 절대 풀 수 없고, 앞으로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전체 집값 급등을 부채질할 재건축 규제 완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단기적으로 불쏘시개가 된 것은 용적률 상향 기대감이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청이 개포동 주공 저층 아파트 단지의 용적률을 현행 177%에서 190%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호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건설교통부는 “용적률 상향은 도로 용지의 기부에 따른 것일 뿐 연면적은 전혀 늘어나지 않아 가격이 오를 이유가 없다”고 긴급 진화에 나섰다.
재료가 있는 곳에서 국지적으로 오른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있다. 잠실 제2롯데월드 부지 부근의 잠실5단지 34평형의 경우 최근 많게는 1억원 넘게 올라 호가가 12억원대에 이른다.
정부에서는 ‘소문’이라고 일축했지만 집주인들은 초고층 제2롯데월드 신축에 반대해온 군이 오는 27일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서 동의하는 쪽으로 돌아서지 않겠느냐고 기대한다. 주민들은 제2롯데월드가 들어서면 교통정체가 심해지겠지만 인근 지역의 주택 수요가 늘고, 상권도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재건축뿐만 아니라 잠실지역 일반 아파트 호가도 최근 들어 강세다. 두리공인중개 박수현 대표는 “주변 오피스텔 가격도 오름세를 타고 있다”고 말했다.
동탄2 신도시에 대한 실망감이 강남의 희소가치를 높였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가 6개월 이상을 끌며 발표한 분당급 신도시는 강남 출퇴근이 쉽지 않은 동탄2 신도시다.
이를 계기로 그린벨트인 하남과 양재~과천 일대, 자연보전권역인 광주 오포와 용인 모현 등에는 신도시가 들어서기 어렵다는 것이 확인됐다. ‘강남만한 곳을 만들 수 없고, 강남과 가까운 곳에는 신도시를 지을 땅도 없다’는 인식만 굳혀준 셈이다. 정부가 발표한 위례(송파) 신도시도 강남권이긴 하지만 임대주택을 50% 넘게 배치, 강남의 가치만 부각시켰다는 평가다.
시장 에너지 취약
재건축 아파트는 거래가 활발하지 않다. 부동산114 김기선 전무는 “재건축 매수세가 일부 있지만 아직 호가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호가 차이가 크면 매도 호가가 더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매도자는 세금 부담 증가분이 있어서 쉽게 호가를 떨어뜨리지 못하고, 매수자는 향후 하락에 대비해 손실위험을 줄일 수 있는 가격을 원한다.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가을 이사철에 줄다리기가 이뤄지면서 가격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주택시장이 소강 국면에 접어들면서 몇 가지 특징적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호재가 나타나도 들썩이는 기간은 길어야 한 달 정도로 짧아졌다. 동탄신도시 발표로 오산 등 일부 지역이 영향을 받았지만 국지적 현상에 그치고 있다. 차별화도 더 심해지고 있다.
강남권 재건축의 경우 강남구에서 주로 오르고 서초구에서는 상승흐름이 미약하다. 시장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얘기다. 주택시장의 차별화 양상은 ‘수도권 대 비수도권’에서 ‘수도권 내 버블 세븐 대 그외 지역’→‘강남권 내 핵심지역 대 주변지역’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강남 뱃살론’이 들어맞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뱃살론은 살이 찔 때는 뱃살(강남)부터 나오지만 반대로 살이 빠질 때는 뱃살이 가장 나중에 빠지는 ‘뱃살’의 속성을 주택시장에 빗댄 이론이다.
대다수 전문가는 이번 국지적 반등세가 재건축 시장의 흐름을 뒤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일과성 재료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건교부는 “투기억제장치 가동과 신도시 주택공급 확대, 8~9월 강남·송파지역 6000여 가구 입주 등을 고려하면 강남권도 조만간 하향 안정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중 투자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쏠리고 있는 것도 재건축 시장에는 악재다. 재건축 아파트는 주거의 질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실수요자가 대출을 끼지 않고서는 사기 어렵기 때문에 투자자금이 몰려야 탄력이 생기는 경향이 있다.
함영진 부동산서브 부동산연구실장은 “자금이 많은 사람이 달라붙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대출 규제가 강력하므로 가격 오름세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