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당에게 신이한 연적을 전한 서산대사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와 사명당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는 서산대사와 사명당의 모습을 그린 진영(眞影)이 소장되어 있다. 서산대사의 진영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50-1호, 사명당의 진영은 제45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산대사와 사명당은 스승과 제자 관계로써 깊은 불심으로 불도를 닦으면서도,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아 왜군과 싸워 공을 세운 위대한 업적이 있다. 특히 사명당은 전투에 관한 활약 이외에 일본과의 외교에서도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된다. 이런 서산대사와 사명당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서산대사가 준 신이한 연적으로 일본에게 항복받은 사명당 예전에 서산대사가 길을 떠돌다 임진사의 집에 가게 되었다. 그 집에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서산대사가 살펴보니 재주가 비상하였다. 서산대사는 임진사에게 “ 제가 데려가서 공부를 가르칠 것이니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임진사가 “그건 안됩니다. 이 아이는 우리 집안의 삼대독자입니다. 그러지 말고 스님께서 저희 집에 계시면서 아이의 스승님이 되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라고 하자 서산대사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임진사의 집에서 그 아들을 가르치며 지냈다. 임진사의 아들이 바로 사명당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어떤 동자가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주역(周易)을 짊어지고 와서 사명당과 함께 글을 배웠다. 모르는 부분을 물어가며 배우더니 공부를 마치자 그 동자가 서산대사에게 자기의 집인 서천 서해국으로 가자고 하였다. 서산대사가 동자를 따라가보니 동자는 용왕의 아들이었다. 서산대사는 후한 대접을 받으며 잘 지냈는데 얼마 후 동자가 “스승님 속세의 시간은 벌써 삼 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돌아가셔야 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시거든 다른 것 말고 꼭 연적을 받겠다고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서산대사는 용왕으로부터 연적을 선물 받고 나왔다. 그 연적에 물을 담아 밥이라고 쓰면 밥이 나오고 군사라고 쓰면 군사들이 나오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연적이었다. 서산대사는 연적을 가지고 돌아왔다.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서산대사는 죽음을 앞두고 사명당에게 연적을 전하며 “일본에 가서 이것을 잘 이용하여 꼭 항복을 받아오거라.” 라고 하였다.
사명당이 연적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사람들은 사명당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얼마나 신통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 사명당이 머무는 방 아궁이에 불을 많이 뗐다. 사명당은 연적을 사용하여 ‘물 수(水)’자와 ‘눈 설(雪)’자를 써서 뜨거움을 피할 수 있었다. 또 일본 사람들이 쇠로 말을 만들어 뜨겁게 달군 후에 사명당에게 타보게 하였다. 사명당은 연적으로 ‘비 우(雨)’자를 쓰니 비가 와서 쇠로 된 말을 식혀 앉을 수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사명당의 신이한 능력을 보고 놀라며 두려워하였다. 사명당은 자신을 죽이고자 시험한 일본 사람들이 괘씸하여 “네놈들이 우리나라에 몹쓸 짓을 많이 했으니 용서를 받고 싶으면 처녀 총각 삼백 명의 가죽을 벗겨서 바쳐라.”라고 호통을 치고 항복을 받았다고 한다.
임진왜란에 대한 심리적 분노가 탄생시킨 영웅 이야기 서산대사와 사명당의 이야기는 임진왜란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두 대사가 활약을 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비범한 능력을 가진 영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산대사가 용궁에서 연적을 가지고 오고 사명당이 그 연적으로 일본에서 도술을 펼치는 부분은 대단히 허구적인 내용이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생긴 일본에 대한 분노과 증오에 심리적인 보상을 받으려는 욕구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명당이 일본에 가서 외교에 대한 업적을 남긴 역사적 사실의 일부를 허구로 꾸며내어 민중의 영웅으로 탄생시킨 이야기다. [출처] 사명당에게 신이한 연적을 전한 서산대사 [출처] 사명당에게 신이한 연적을 전한 서산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