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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즉 후기를 써놓았는데 교지에 싣는다고 재촉하길레 이제사 수정해서 올립니다. 쑥스럽구만....
제주에 갈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2002년 말 처음 마라톤을 시작하여 이듬해 봄에 풀 코스를 달릴 때도 이렇게 까지 설레진 않았는데. 그리고 2년 전 철인 클럽에 가입하여 올림픽 코스와 O2대회에 수차례 다녀왔지만 맘속 한구석에는 항상 IRON MAN King course 완주를 꿈꿔왔었기에.
하지만 막상 기회가 주어진다면 잘 해낼 수 있을까? 가평 O2대회에 다녀온 후 뒤풀이에서 회원들이 제주대회에 함께 참가하자고 재촉하는 바람에 마음이 돌아섰다.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결국 마지막 날 접수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지면서 마치 이미 대회를 완주해낸 듯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잽싸게 클럽 카페에 들어가 회원들에게 공지를 했다. “나도 함께 간다. 제주에.” 이제 남은 것은 강도 높은 훈련뿐. 다행히 방학기간이라 보충수업은 하지만 늦은 오후에는 여유가 있어 MTB를 이용하여 주 3-4회 정도 미륵산 중계 탑 도로 오르기를 반복하고 늦은 밤에 사무실에서 10여 Km떨어진 집까지 뛰어서 출퇴근을 하였다. 그리고 쉬는 날에는 회원들과 함께 진안쪽과 금강 하구둑, 웅포 일대를 다니며 장거리 훈련을 하느라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에 가족들과 계곡 한번 찾을 시간이 없는 게 무척 미안했다. 세 종목 중 가장 취약한 수영에 더 공을 들여야 하는데 가평에서 입은 정강이 부상 때문에 물에 들어갈 수 가 없어서 마음에 걸린다.
제주 출발을 며칠 앞두고 이동 방법을 결정하고 준비물을 챙기는데 가슴속이 서서히 덥혀지기 시작한다. 일행 6명중 정철형님, 래옥, 병현과 나는 비행기로, 영욱이와 정석이는 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배로 이동하기로 했다. 25일 군산공항에 도착하니 이미 전북 철인 클럽 선수들이 도착해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마치고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서귀포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배로 온 일행과 합류하여 월드컵 경기장내에 마련된 등록처에 도착했다. 절차를 마치고 물품가방을 받아들고 나니 대회가 임박했음이 실감난다. 장비전시를 하는 엑스포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고 제주 국제 컨벤션 센터에 있는 만찬장으로 향했다.
참가비만 무려 35만원에다 국제 아이언 맨 대회다보니 외국선수들도 눈에 많이 띄었고 행사규모 자체가 여느 대회와는 비교되지 않는다. 다양한 이벤트를 곁들인 흥겨운 행사와 만찬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짐을 정리하는데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다. 대충 정리를 마치고 내일 새벽 수영적응을 하기 위하여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꼭두새벽에 기상하여 준비해간 부식으로 식사를 끝내고 중문으로 이동하였다. 파도도 없고 날씨가 화창하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 후 물속으로 첨벙. 제주바다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수십번 와봤지만 철인3종을 시작한 후로는 시간의 여유가 없어서 정말 오랜만이다.
적응 훈련이라 무리하지 않고 한참을 나가는데 조류에 몸이 자꾸 우측으로 밀린다. 더구나 우측 목이 수트에 마찰되어서 쓰려오기 시작했다. 무리했다간 내일 대회에 지장을 받을 것 같아 천천히 물 밖으로 나왔다. 오후에는 차량을 이용해 사이클 코스를 둘러보기로 했다 전 구간을 둘러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성산 쪽 에서 부터 가장 힘든 코스라고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돈내코 언덕을 돌아보기로 했다.
막상 둘러보니 차량으로 이동해서 그런지 평소 훈련하던 미륵산이나 운장산 고개보다 어렵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100Km 정도를 달린 후 오르막에 도착했을 때 만만치는 않을 것 같고 그 언덕을 넘어서도 고개가 몇 개 이어지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지는 않는다. 코스 분석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여 각 물품가방을 최종적으로 점검하는데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마음이 들뜨면서 심란하다.
일반대회와는 다르게 상당히 복잡한 준비를 하는데 뭔가 빠뜨린 것은 없는지, 포기하지 않고 무사히 잘 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서로 사이클 점검부터 이런저런 준비물들을 챙겨주며 한참을 떠든 후에 새벽 기상을 위해 초저녁부터 잠을 청한다. 한참을 엎치락 뒤치락거리다가 금방 잠이 든 것 같은데 휴대전화 알람이 울린다. 새벽 3시 30분. 이 시간에 식사를 마치고 컨디션을 조절해야 원활하게 대회를 치를 수 있기에 기상시간을 앞당긴 건데 창밖에선 세찬 바람과 함께 소나기가 퍼붓고 있다
일기예보에 일요일은 비가 내린다고 했지만 어제 까지만 해도 그렇게 화창했는데. 하지만 이 정도로는 경기가 중단될 것 같지 않아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아직 깜깜한 새벽에 중문대회장으로 향하였다. 수영코스인 바다에는 하얀 파도가 계속 밀려오면서 여전히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고 있지만 오히려 대회장을 가득 메운 철인들의 결의가 다부져 보인다.
넘실대는 파도와 쏟아지는 빗방울을 아랑곳하지 않고 벌써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는 사람들, 스트레칭을 하며 준비를 하는 사람들, 이들 사이로 여기저기서 방송국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느라 카메라를 들이대며 축제분위기를 한껏 돋우는데 아직까지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이제는 천둥과 번개까지 가세를 한다. 코 앞 바다에는 성난 파도들이 물에 떠 있는 안전요원들의 보트마저 삼켜버릴 듯 가만두질 않고 이리저리 내동댕이친다.
수영 시작 시간인 7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 아무런 지시가 없는 게 낌새가 심상치 않다. 2004년도에도 태풍 때문에 수영이 취소됐다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결국 대회 주최 측에서 안전을 이유로 수영불가를 선언하자 분위기가 술렁대면서 일부 참가자들은 강행을 주장하지만 인명사고를 우려해서 1시간을 늦춘 8시에 사이클을 출발시킨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물론 저런 파도 속 에서 3.8Km를 수영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 자신의 인내력을 시험하기 위하여 여기까지 왔는데 아쉽다. 결국 수영을 포기하고 사이클을 출발하려는데 바람이 잦아지면서 바다가 잔잔해진다. 빌어먹을 제주의 날씨.
이윽고 8시가 되자 배번 순서대로 사이클 행렬이 180.2Km의 대장정을 향하여 서서히 중문을 빠져나간다. 주말 훈련을 하면서 130Km정도는 타봤지만 180Km는 처음이라서 초반전부터 속도를 내서는 안 될 것 같다. 분위기에 휩싸이지 말자고 다짐을 하면서 앞 선수들의 뒤꽁무니를 따라 열심히 페달을 밟는데 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비가 내리면 시원하기는 하지만 노면이 미끄럽고 앞 선수의 뒷바퀴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우측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해안도로를 달리는데 앞에 휠체어 사이클을 탄 선수가 열심히 팔로 페달을 돌리고 있다. 신체의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그분이 위대해 보이고 무사히 완주하시길 빌었다.
한 50km쯤 달렸을까? 갑자기 뒷바퀴 기어에 이상이 생겼다. 변속할 때마다 한 칸씩 옮겨지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서너 칸씩 건너뛰는 바람에 바짝 긴장해서 뒷바퀴기어를 변속할 엄두를 내지 못 했다.
여기서 자전거에 이상이 생겨 경기를 포기하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 되었지만 내려서 처치할 엄두가 나질 않아 천천히 달리면서 확인해보니 가운데 무언가 시커먼게 끼어서 같이 굴러 가고 있다. 도대체 뭘까? 어쨌든 90km지점의 보급소 까지는 아무 탈이 없기를 바랐다. 조심조심 보급소에 도착해서 살펴보니 손잡이에 감아 놓았던 검은 테이프가 떨어지면서 그 속으로 들어갔던 모양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자원봉사자들이 건네주는 내 보급품을 받아들고 빈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해결하는데 식사를 마치고 빠져나가는 선수들을 보니 마음이 급해서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다.
이제 사이클은 절반이 지났는데 사실 지금부터가 문제다. 바로 코앞에 이번 코스 중 가장 가파른 돈내코 언덕이 버티고 있고 이어서 낙타봉 등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 언덕을 오르기 전에 오른쪽 허리에 통증이 와서 미리 준비해간 진통제 한 알을 털어 넣었다. 제발 무사히 완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번 대회에는 180km 의 긴 구간에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적당하게 배치되어있었고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응원해주신 덕분에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중간 중간에 퍼부어대는 소나기와 자전거를 휘청거리게 하는 강풍 그리고 시야를 가리는 안개 때문에 애를 먹었지만 서서히 골인 지점에 가까워진다는 희망으로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어렵사리 사이클을 마치고 마라톤 준비를 하기 위해 탈의실로 가니 방금 도착한 래옥이와 정철이형님이 분주하게 마라톤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이에 마지막 남은 건 마라톤 풀 코스. 사실 십 여 차례 풀코스 완주 경험이 있지만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고난 뒤라 긴장도 되고 무사히 완주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마라톤 코스는 본부석인 월드컵 경기장 앞 도로를 3회 왕복하는 편도 7km를 6번 달려야 한다.
처음 두 바퀴는 힘을 비축하며 서서히 달리고 마지막 바퀴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기로 마음먹으며 래옥이와 걸음을 맞춘다. 이미 앞서서 달리는 병현이가 반환점을 돌면서 나에게 페이스 조절을 잘하라고 염려를 해준다. 이런 컨디션이 마지막까지 유지되어준다면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을 텐데. 한바퀴를 돌고 본부석 부근을 지날 때 만 해도 해가 중천에 떠서 훤할 때 경기를 마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갖기도 하였다.
헌데, 두 바퀴를 돌때쯤부터 체력이 나의 의지와 타협을 하려든다. 앞에서 걷는 선수들을 보면 정말 부러워 보이고 같이 걷고 싶은 마음이 나를 유혹한다. 겨우 두 바퀴를 마치고 이제 남은 건 마지막 한바퀴. 본부석 앞을 지나는데 이미 골인 한 선수들을 격려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들뜬 목소리가 내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래 달려야한다.
준비해간 멋진 글귀를 들고 환호하며 골인점을 향해 달려가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힘이 솟는다. 이렇게 한참을 달리는데 왼쪽 무릎과 발목에 통증이 온다. 다시 마지막 남은 진통제를 먹으며 통증 부위에 소염제를 쏟아 붓는다. 통증을 멎게 하기 위해 잠깐 걷다 보니 어느덧 “저기 보이는 언덕까지만 걷고 이제 끝까지 달리는 거야.” 하면서 나약함과 타협해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합리화 해버린다.
이러기를 수차례 반복한 후 겨우 저 멀리 월드컵 경기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제 골인 지점까지 가는데 별일이야 있으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주변은 깜깜해졌지만 자원봉사자들과 응원 나온 사람들의 격려를 받으며, 앞뒤를 살펴보니 다행이도 주자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번대회는 마지막 골인 할 때 특별 이벤트를 준비해 갔는데 시야를 방해 할 앞뒤 주자들이 없으니 아주 제격이다.
약 100m전방에서부터 준비해간 펼침막을 들고 미리 포즈를 취하면서 한발 한발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데, 장내 아나운서의 힘찬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Nine Nine Five. From Korea. Song Tae kyu. 약 50m에 이르는 결승점까지 마치 꿈을 꾸듯 구름 위를 나는 것 같은 기분으로 달렸다.
“ 아버님 어머님 사랑합니다. ”
“ 당신과 호선, 하늘이 사랑해. ”
나의 펼침막을 보고 양편에 늘어선 관중들의 함성과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드디어 결승점에 들어 왔구나 기어이 내가 해 냈구나 나도 모르게 가슴 저 밑바닥에서 진한 함성이 터져 나온다. 결승점에 우뚝서서 펼침막을 힘차게 흔들며 미소 짓는 이 순간만은 이세상의 모든 것들이 마치 나를 위하여 존재 하는 것 같다. 그 무덥던 올 여름, 쉬는 날마다 훈련한다고 집을 비우다보니 계곡물에 발 한번 담그지 못 했지만 불평하나도 없었던 아내 호선, 하늘에게 이 벅찬 순간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지. 다시 한번 건강한 심신을 물려주신 부모님과 나를 믿고 의지해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12시간 30분간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무리 했다.
첫댓글 후기 잘보았습니다,탱크성!올해도 제주도에 가야죠.....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의 감동을 나도 올해는 느껴볼수 있으련지....
형님 필 받습니다..... 래옥이성이 졌다고 인정을 안하는것 같으니 이번에(07)제주도에 가서 진검승부를 보여주셔야죠~~~~ 흐흐흐 (재미있는 승부가 될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