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에서의 생각4 (조선한양의 황성복원)
조선이 망하면서 한양과 황성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대륙조선사를 한반도로 옮기다 보니, 불필
요한 한양과 황성은 없어져야 했다. 증거 소멸이다. 철저하게 파괴되어야 한다.
조선에는 그당시 황성이 한개 밖에 없었다. 누구든 황성을 다른 곳에서 만들 수는 없는일.. 황제가 천도
나 그의 마음대로 별도로 별궁을 만들 경우는 언제든 가능하다. 그러나 휘황찬란한 황성은 동시대에 조
선에 유일하게 한개 이어야 한다. 그런데 조선의 황성은 현재 중원대륙에 보이질 않는다. 백성들은 황
성이상으로 자택을 지을 수 없게 법으로 되어 있었다. 황성은 9999칸이고, 양반최고의 저택은 99칸을
넘길수가 없었다.
그런데 조선황성이 파괴된 이후에 복원된 황성이 대륙에 새로이 등장하고, 한반도에도 별안간 생겨났다.
동시대에 동일한 인물에 의해서 북경과 서울을 오가며 복원한 것이 분명하다.
시안(서안,서울,한성,한양)의 조선황성을 파괴하는 대신 북경에는 명청의 황성을, 한반도에는 새조선의
황성을 만들었다. 둘다 대륙조선의 시안 황성을 모델로 만들어 졌으리라. 신증동국여지승람등 조선의
사서의 참고는 필수적이다.
북경의 황성은 시안의 크기와 같게 하면서 신증동국여지승람등 사서와는 좀 다르게 지어야 한다. 조선의
황성과는 차별화를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의 높이나 건물의 높이는 시안과 같다고 하겠다. 넓
이면에서 시안과 같게 할 수는 없었다. 왜냐면 고구려성을 기초로 개축했기 때문에 거기에 준하게 지어야
했다. 시안의 황성배치도를 보면 자금성보다도 엄청크다. 지금 시안외성은 모두 없어진 상태이고, 내성의
황성에는 현대식 건물만 가득하다.
조선의 건물의 특징인 기둥의 배흘림은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기둥이 거의 90도의 수직을 유지하면서,
콘크리트로 지었다. 짓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배흘림을 만들려면 거푸집을 짜기가 너무도 힘들고 모양새
도 잘 나오지 않는다. 콘크리트는 현대건축재료의 상징이다. 페인트를 입히니 재료가 목재인 것처럼 보
인다. 그러나 두둘겨보면 콘크리트임이 확연히 드러난다. 현재 건물의 처마마다 새들의 접근을 막는 철
망을 씌워 놓았다. 그러나 재료를 잘 못보게 가린 것 같은 느낌이다.
한반도 서울의 황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같은 조선의 사서를 적극 참고했다. 지붕모양이나 배흘림,등
그러나 규모는 축소되었다. 크게 지으면 황제국가의 지위의 상징이므로 소국의 제왕국가로 꾸며야 하기
때문에 성벽은 아예 만들지 않았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집인 양 돌담으로 대신하였으며, 담장안의 건물
들은 불탔다고 하면서 몇 개만 대표적으로 지어졌다.
그래서 어느 고궁담당 한국가이드는 경복궁의 건물이 사서와 비교해보면 10~30%밖에 지어지지 않았다
고 한다. 배치형태도 일본의 신하국가인양 일본의 왜왕신사를 남산에 만들어 놓고 그 곳을 바라보게 건물
축을 만들어 놓은 형태로 시공하였던 것이다. 동선을 유지하면서 사람이 사는 집으로 유기적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산 흔적도 없고, 마당에 그당시 잡초가 무성하였던 것이 사진에 포착되었다.
그리고 일본인건축가가 동참하였기 때문에 서울의 경복궁은 일본의 정원뉘앙스도 풍기고 그 모양이 사찰
과 비슷한 이상한 형태가 되버렸다. 신경을 들 쓴 것이다. 역사적 고증이 부족하고 시간이 부족하였다는 증
거이다.
그당시 건축당사자는 북경과 서울을 번갈아 오가며 계획설계하면서도 하나의 오점과 오차를 남겨서는 안
되었다. 확연히 구분하여 짓고, 이 건축사업을 통하여 중원과 한반도와의 조선의 역사적 고리를 완전히 끊
어야 했다.
따라서 조선의 황성을 복원하자면 규모면에서는 북경의 황성이상으로 해야하고 건축물의 모양이나 양식
은 서울의 황성(경복궁등)을 참고하면 안성맞춤이 된다. 이 둘의 건축물집단을 잘 조합하면 그대로 조선
의 황성이 되는 것이다.
자금성은 시안의 조선황성을 거의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고 따라서 그 배치방식이나 규모는 조선황실에서
쓰던 모습이라고 보면 이상할 것이 없다. 끝.
첫댓글 현중국에 관광가서 보면...동굴에도 콘크리트로 도배를 했습니다...
중국관광지의 전형적인 특징이자 국책사업의 일환입니다. 문혁으로 다 부셔버리고 새로 명 청 건물로 재건 후 개방, 짭짤한 관광수입, 국민의 국가 자존심과 당에 대한 충성심 고조. 머 이러한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