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귀농학교 후배이고 대학후배이며 또 같은 연두자립마을 회원인 최성찬님으로부터 친숙한 전화 한통을 받았읍니다.
내가 관여했던 마지막 시절 당시의 부산귀농학교는 학교의 노선문제로 일일히 학교 운영진과 각을 세우고 학교카페에 다소 급진적인 표현을 했던 터에 자연스레 권력 다툼에 밀려 山으로 들어가겠다고 하고서 부산귀농학교랑 연을 끊고 지금은 토종자립마을에서 이렇게 잘 살고 있읍니다. 2인 이상이 하는 행위는 바로 정치적인 행위입니다. 끊임없이 자기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또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자신의 의식으로 남의 소견을 이해시키는 것이 바로 정치적인 행위이지요.
자본주의 시대에 시민운동만이 예외가 될 수 없읍니다. 자본주의의 특징인 外主化(외주화)가 시민운동에서는 그 본질이 굴절되고 왜곡된 현상으로 표현되기 쉽읍니다. 자본주의시대에 돈이 되는 곳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나쁘다고만 할 수 없읍니다. 하지만 부산귀농학교 개설前부터 몇몇 분과 함께 귀농활동을 해온 저로서 부산귀농학교에 가진 애착은 누구보다도 특별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부산귀농학교에서 집행부의 일부로써 잘 행동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부산귀농학교에 도시농업 카리큐럼이 남아있다는 것을 꼽고 싶읍니다. 모든 일이 자본주의 관점으로 해석되는 마당에 생태귀농학교에 도시농업 과정이 없다면 딱 꿂어죽기 십상입니다. 실제로 초창기 귀농학교와 달리 도시농업에 관심도가 증가되는 추세에 수익성이 높은 도시농업만 따로 떼어달라는 일부 집행부 움직임이 있었지요. 그러한 기도를 깨뜨리는데 내가 선봉장 역할을 했었지요.
저는 그후 운동을 넘어 계산적인 개인적 이익이 투영될 때 마다 마찰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내가 가진 운동의 가치를 상실한 조직에 몸을 담글 수가 없었지요. 그러한 사건들로 공개적으로 入山을 선언하고 오랫동안의 학교와의 聯(연)을 단절하였지요.
그후에 부산귀농학교 몇분한테 회유의 전화도 받았지만 서로가 묵고 사는데 큰 문제가 없었기에 다시는 재접촉을 가질 필요를 느끼지 못했읍니다. 내가 느끼기에 세월은 운동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학교는 시장을 잃어버린 조직으로 변한 것 같읍니다.
이제 지난 일은 부질없는 것이라 치고 새로운 마인더로 또 새로이 인연을 이어가고 싶읍니다.
제가 막연한 이론적인 소농의 개념을 구체화한 것은 '얀 다우 판 더르 플루후'의 저서를 읽고 20여년의 귀농생활 경험하였던 것을 이론적인 부분에 맞춰 볼 수 있었읍니다.
먼저 영어로 농부 'farmer'는 자본주의적 농기업 뿐만이 아니고 자본주의 이전부터 땅을 경작한 자를 'farmer'라고 하였고 봉건제 이후 역사적, 계급적인 설명으로써의 농부는 'peasant'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peasant의 실제적인 의미는 대지주가 볼때 이제 갓 소작을 벗어난 촌 시골뜨기같은 농부를 가르킬 때 쓰는 小자작농을 의미합니다.
소농의 의미와는 약간 다른 가족농은 유럽의 경우에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가족농 'family farmer'는 FAO가 정의한 용어로써
1) 주로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에 의존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 노동력에 의존하기도 한다.
2) 부족한 소득 때문에 다른 경제활동을 병행하면서 자신의 자원을 집약적으로 사용하는 농부라고 정의합니다.
현재 우리농업에서 인지하고 있는 농토의 최소 기본단위는 300평(1.000m2) 정도로 기계화 하지않고 수작업 호미로도 가능한 규모라고 봅니다. 마르크스는 기계화가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하였읍니다. 일소가 없는 지금 농촌의 최소 동력기계는 관리기로써, 제초작업을 하는데 호미로 하루 5시간의 노동을 관리기로 30분 정도로 일할 수 있다면 30분/5시간 즉 10배의 생산(제초)능력을 보여야 채산을 맞출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농가 집집마다 관리기는 대개 갖추고 있기에 노동할 수 있는 경지면적은 3,000평 이상이 되어야 타산을 맞출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농생태학을 고려하여 다양한 작물을 재배할 수도 있지만 실제 일손이 많이 들어가기에 작업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단작 위주의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노동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소농의 범위를 300평에서 크게 잡아 5.000평이내의 땅을 경작하는 농민이라면 소농이라 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5,000평이 넘으면 관리기로써는 부족하고 최소한 트랙터가 들어가야 할 것 같고 규모에 따라 빚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므로 획일적으로 규정짓기는 힘들며 유럽농가와 비교하여 생각하면 대다수의 농가가 소농의 범주안에 들어간다고 보면 틀림이 없읍니다.
저는 농생태학이라 하여 따로 학문화 된 서적은 읽어볼 기회를 찾지 못하였읍니다. 애초의 생태학이란 간단히 얘기해서 유기물을 생산해내는 생산자, 그 생산자를 먹고사는 소비자, 생산자와 소비자가 죽은 후 생산자와 소비자를 분해할 수 있는 분해자의 순환고리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가톨릭농민회에서 주관한 해외 유기농업 탐방에서 쿠바의 농생태학 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농생태학은 이 순환고리를 농업에 응용한 학문으로 일반적인 작물의 생리, 생태학적인 부분도 같이 포함합니다.
가령 양지식물, 음지식물로 구분하여 작물을 배치한다거나 방향성의 작물을 진디물에 취약한 작물 사이에 사이짓기를 한다거나 질소 동화작용을 하는 작물의 성질을 이용하여 윤작을 한다는 것들이 농생태학에서 다루어 질 수 있는 범위라고 볼 수 있읍니다.
쿠바의 이러한 농생태학(유기농)운동들이 작물의 성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이상의 느낌을 갖지 못했읍니다.
우리의 토종농사 지식수준 그 이상도 아니었읍니다. 이미 단편적으로 농생태학을 이용한 많은 방식들이 제시되고 있읍니다.
작물의 배치를 중요하게 설정한 퍼머컬쳐, 노동력의 절감을 강조한 동양의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 분해자의 역할을 중요하게 다루는 자연농업, 우리의 음력절기와 비슷한 우주의 기를 응용한 서구의 루돌프 슈타이너의 생명역동농법등이 농생태학에서 언급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농생태학에서 언급할 수 있는 서구의 생명역동농법 농업방식은 우선 넓은 초지에서 풀의 끝을 주로 먹는 소를 먹이고 나서 그 다음에 땅의 뿌리까지 파먹을 수 있는 염소와 양을 기르며 염소와 양이 지나간 땅에는 질소동화작용을 하는 콩을 심고 그 땅을 분할하여 윤작을 하고 땅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효소처럼 증폭제로 사용하는 방식은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읍니다. 무수히 자란 잡초를 보고도 자연농법의 농부는 만족할 수 있겠지만 제초제를 사용하는 농부는 이런 자연농법을 혐오스런 표정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역동농법으로 농생태학을 응용하고 싶어하는 농부가 생산한 농산물이 실제로 자본주의 시대에 광고효과 그 이상 지속 가능성이 있겠는가 하는 것들이죠. 아무튼 이러한 노력들은 철학이 있는 소농이 아니고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작업들입니다.
농업은 인간이 필요에 따라 만든 작품이라 반드시 인간의 보살핌이 있어야 하며 거저 먹는 행위는 약탈행위입니다.
농업의 잉여는 어떤 式으로도 남아 있게 되어 있읍니다. 농업으로 생긴 환경파괴를 주변화하며, 농부가 떠난 노동력은 기계화가 필수가 되었읍니다. 기계화는 농생태학을 배제할 수 밖에 없읍니다.
소농이 시장을 따르지 않는 농생태학 운동으로 먹거리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소농농부에게는 참된 행복감과 보람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첫댓글 보라보리 잘 받았습니다
더운날씨에 감사합니다
맘이 불편하여 소포비는 이체했습니다
잘 키워 나눔 이어 보겠습니다
선배님 잘지내시죠
날도 이제 제법 가을로 가는것 같습니다
이대로 소식지에 올려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