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4 – 9. 10 갤러리엠(T.02-735-9500, 인사동)
Learning to Fly
박지만 초대전
글 : 김종원(예술감독 )
박지만 작가의 기호로 나는 법을 배우다.
‘채우려고 할 때 느껴지는 상실 그리고 고독감, 비우려고 할 때 비로소 만끽할 수 있는 자유로움.’ 박지만 작가의 <불완전한 기억: incomplete memories> 시리즈에서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그의 <불완전한 기억: incomplete memories> 시리즈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보다 철저한 자신과의 대면을 통해 느껴지는 고독한 싸움과 같은 것, 우리는 그것을 발견 할 수 있다. 박지만 작가의 작품은 그의 타고난 날카롭고도 섬세한 특성과 개인적 삶에 의해 탄생하는 절대적인 몽상의 결과물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인 <Learning to Fly> 와 <불완전한 기억: incomplete memories>의 섬세한 변화를 감지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작가가 침묵하는 가운데 문득 작품에서 ‘일반적인 기호가 아닌 박지만 작가로의 기호’를 발견한다.
이전의 <불완전한 기억: incomplete memories> 시리즈에서 그는 넓은 초원의 방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타자로 동참하길 바랐다면, <Learning to Fly> 에서는 좀 더 세밀하고도 내밀한 자신만의 의지이자 근원적인 힘을 자신만의 기호로 나타내며, 그 기호를 통한 몽상에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박지만 작가는 까다롭고도 섬세한 작가이다. 이전 작품 역시 내면성과 외면성이 서로 공생하고 있었기에 쉽게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뿐더러 시리즈와 시리즈 사이에 사유의 틈은 그 모호함을 가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 속에는 고요한 진화가 숨어있다. 마치 우리가 매일 거울을 보며 늙어가는 것을 인지 못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스며드는 작가의 그 어떤 메시지가 존재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함과 권태로움 그리고 그 틈 사이에 스며드는 먹먹함과 조응한다. 일상의 조응 속에 물질로도 채워지지 않는 틈 사이로 박지만 작가만의 기호이자 내밀한 몽상들이 스며든다. 잠시 멈춰서 현실을 내려놓은 채 현실의 잔망스러운 가벼움에 관한 침묵과 함께 작품에 관한 깊은 몽상의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다.
박지만 작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기호들 - 한 조각의 산, 혹은 바다, 날카로운 라인, 의자, 풍선, 구름 등은 일반적 현실 기호의 의미와는 다른 박지만 작가 현실 속의 또 다른 기호이며 창조물이다. 이것이 박지만 작가의 잠재된 내면의 힘이다.
박지만 작가는 작가와 작가 자신 그리고 작가와 작품의 투영이 아닌 對自적 입장으로 작품과 조응한다. 이것은 완성이 아닌 정립하는 의식이며 또한 삶을 향한 철저한 투쟁이다. 이러한 의식 속에 작가는 자기 관계적 존재를 성립시키고 비로소 작가만이 느낄 수 있는 無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박지만 작가에게 닦아내기란 중요한 행위이자 의식이다. 보통 작가가 예술의 작품을 행할 때, 더한다는 개념이 있다면 그에게는 칠하고 닦아내는 행위의 반복이 존재한다. 이것은 일방적인 작가의 강요적 행위로 그려지는 그림이 아니라 작품에 또 다른 자신을 부여하고 끝없는 되묻기를 실현하는 예술의 탄생이다. 그 속에는 많은 투쟁이 있다. 그 투쟁 들은 불완전한 것들이며 작품으로 탄생하기까지 무수한 변화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들로 작가의 몽상 속에서 유영한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이 박지만 작가가 말하는 불완전한 기억이며 그리고 그 불완전한 기억을 고요하게 진화 시켜 나가는 원동력일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닦아냄과 그리기를 반복한 사물들은 어딘가 모르게 고독한 정서를 지닌다. 하지만 확연하게 드러낸 의도적인 고독함은 아니다. 마치 누구에게나 갖고 있을 우리의 삶 속에 고독함, 그것을 표현하고 있는 건인지도 모르겠다.
앙상한 의자, 가벼운 깃털, 풍선 등은 인간의 삶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각자의 고독을 조응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박지만 작가의 작품을 낯설지만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자기의 작품을 통해 드러낸 고독함을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느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던져주는 울림을 준다는 것이다.
작품에서 그려진 물질들은 말 그대로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시각적으로는 존재로서 가볍거나 금세 터지거나 부서질 것 같은 나약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작가와 끊임없이 투쟁하고 對自한 불완전한 존재들은 결코 가볍지 않고 오히려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만의 기호로 완성되어 간다. 그가 보여준 가벼움의 반전은 우리 삶의 고독에 의미를 넘어선 치유, 정화, 위안의 초월성을 보여준다.
박지만 작가는 항상 그림과 마주하며 자신과 조응한다. 그리고 닦아내고 채우기를 반복한다. 행위의 모습은 고요하나 작가 자신의 모습은 치열하고도 강한 울림을 갖는다.
그에 있어 이미지의 가치획득은 합리적이고 객관적 개념을 떠난 이미지와의 직접 대화를 통해서 얻어내는 과정이다. 작가는 스스로 몽상의 자유를 얻으며 비로소 새로운 이미지의 변형과 자신만의 기호생성을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 박지만 작가가 작품의 탄생까지 자신의 의지 중심을 바꾸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의지가 그러한 것이다. 의지에 따라 선택된 색이나 시각성은 모방한 색과는 다른 박지만 작가만의 기호로서의 작품을 탄생시킬 것이다. 인간은 어쩌면 작가가 바라본 불완전한 기억에 의해 지나간 현재를 바라보며 도래 할 현재를 몽상하는 현재성를 체험하는지도 모르겠다. 박지만 작가가 생성하게 될 수많은 기호가 또 다른 내면의 힘으로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