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구라를 치고 있다>
우리는 현란한 말재주로 거짓말을 참말처럼 엮어내는 재주꾼을 볼 때 “구라친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어사전에도 “구라”는 ①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 ②이야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 ③거짓이나 가짜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그러면 “구라”라는 말은 언제부터 “거짓말을 잘한다”는 뜻으로 사용하게 되었을까?
“구라”는 입 구(口)자에 비단 라(羅) 자를 합친 구라(口羅)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예부터 비단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천으로 이름나 있다. 그런 비단을 짜는 원료인 비단실을 뿜어내는 누에처럼 화려한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것을 두고 “구라친다”고 한데서 연유한다는 것이다.
이런 어원을 가지고 있는 “구라”라는 말은 일본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그러면 왜 “구라”가 일본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일본어의 “사쿠라니쿠(さくらにく)”는 색깔이 벚꽃과 같이 연분홍색인 말(馬)고기를 가리키는 말로써 쇠고기인 줄 알고 샀는데 먹어보니 말고기였다는 뜻으로 겉보기는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사쿠라니쿠”가 “바람잡이 정치인, 변절자 정치인”을 뜻하는 은어(隱語)가 되자 말하기 좋도록 ‘니쿠’를 줄여 ‘사쿠라’라고 했다. 지금도 정치 환경이 바뀌면 옛날의 자기 조직을 이탈하는 변절자 정치인을 “사쿠라”라고 비하한다. 바로 이 “사쿠라”라는 말이 경음화되는 과정에서 첫 자인 ‘사’의 발음이 약화되고 나아가 묵음화되어 “쿠라”가 되었다가 다시 “구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는 입으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다. 옛날 무성영화시대 때 변사(辯士)라는 직업이 있었다. 무성영화와 함께 변사가 등장한 시기는 1900년대였다. 무성영화가 보급되면서 배우들의 연기를 관객들에게 알기 쉽게 해설할 필요성이 생기자 미국이나 유럽 영화계에서부터 변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동양에서 변사의 존재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구미영화(歐美映畫)를 주로 수입했던 일본과 한국이었다. 변사들의 유창한 줄거리 해설과 배우들의 대사를 대독하는 변사들은 작품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생생한 극적 감동마저 주었으므로 변사는 무성영화 시대 때 빼놓을 수 없는 인기인이었다.
우리나라에 변사가 등장한 시기는 1910년 전후부터였다. 영화가 활동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공개 상영된 것은 1903년이었지만 변사의 등장은 극장가가 형성된 1910년을 전후해서였다. 서울과 지방에 상설영화관이 문을 열면서 직업적 변사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서울에서는 우미관(優美館), 단성사(團成社), 조선극장(朝鮮劇場) 등이 주 무대였다. 그렇게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변사는 1935년 제작된 최초의 발성영화(發聲映畫, talkie film) “춘향전”이 상영되면서 무성영화시대의 종말과 함께 변사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게 변사라는 직업은 사라졌지만 오늘날에도 변사라는 말이 지닌 뜻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직업은 많다. 라디오 연속극의 성우(聲優)는 그런 변사(辯士)에서 유래된 직업이고, 변호사, 변리사도 옛날의 변사(辯士)와 같은 변(辯)자를 사용하고 있는 직업이다. 그런데 이런 변(辯)자가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말(辯)로 먹고사는 직업은 아주 많다. 방송국의 아나운서도 그렇고, 미술관의 큐레이터, 숲 해설가, 고궁 및 유적지 해설가 등등도 그렇다.
이 같은 현대판 말쟁이 변사들 중의 최고 변사는 바로 정치인들이다. 정치인들이야말로 1원 한 푼 생산을 통해 돈을 버는 일이 없다. 오직 말을 통해서 잘 먹고 잘 아는 고등 한량들이다. 정치인들과 변론인들은 닮은 점이 많다. 이들에게는 옳으냐 그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옳게 만드느냐 그르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변호사는 죄가 있어도 현란한 말솜씨로 죄를 없게 하거나 중죄(重罪)를 경죄(輕罪)로 만드는 일이 직업인 사람들이고, 정치인은 잘못된 정책도 현란한 말솜씨로 잘된 정책으로 둔갑시키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이다.
실제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해 왔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1968년, 경부고속도로가 착공되었을 때 당시의 야당 인사들은 차도 없는데 고속도로가 왠 말이냐며 공사 현장에 드러누워 “나를 깔아 뭉게기 전에는 공사를 할 수 없다”면서 반대를 하고 나섰다. 그랬던 그들은 죽기 전까지 “그때는 그것이 옳은 판단이었다”고 강변할 뿐이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성인으로서 입에 담을 수 없는 패륜적 쌍욕을 퍼붓고서도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당당해 하는 사람이 버젓이 대통령에 출마했고, 모든 국민들이 못살겠다고 난리인데도 우리 경제는 튼튼하다면서 오늘도 구라를 치고 있다. 한 마디로 필부(匹夫)보다 못한 자들이 3부의 요직에 앉아 큰소리를 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나서는 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