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계, 노동절에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명시한 ‘특별법’ 발의
취업한 적 없기에 실업자도 될 수 없는 중증장애인
중증장애인 10명 중 8명이 ‘비경제활동인구’
“장애인고용법은 실패한 법, 노동 패러다임 바꿀 ‘특별법’ 주목해달라”
133주년 세계노동절이자 2회 장애인노동절인 1일,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 및 고용 활성화를 위한 공공일자리 지원 특별법안(아래 특별법)’ 발의를 알리는 기자회견이 국회에서 열렸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아래 전권협) 등과 함께 1일 오전 10시 40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제도화를 위한 첫걸음을 뗐다.
133주년 세계노동절이자 2회 장애인노동절인 1일,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 및 고용 활성화를 위한 공공일자리 지원 특별법안’ 발의를 알리는 기자회견이 국회에서 열렸다. 사진 전장연
- 중증장애인 10명 중 8명이 ‘비경제활동인구’
전장연, 전권협 등은 재활 중심의 장애인 노동 패러다임을 벗어나 ‘가장 노동능력이 없다’고 평가받는 최중증장애인을 국가와 지자체가 우선 고용하여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일자리란 ‘권리중심공공일자리’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대한민국 정부에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노력해야 한다’고 한 권고를 근거로, 공공이 고용한 최중증장애인이 협약을 홍보하고 장애인 권리를 모니터링하는 일자리다. 중증장애인 노동자는 3대 직무(권익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인식개선활동)를 통해 이 업무를 수행한다.
지난 2020년 7월, 서울을 시작으로 이 일자리는 현재 경기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강원도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각 지자체에 고용된 천여 명의 중증장애인들은 최저임금을 받으며, 자본의 이윤을 창출하는 대신 ‘장애인 권리’라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해 낸다. 그러나 현재는 지자체 조례를 근거로 시행하고 있어서 고용이 불안정하다. 중앙정부 차원의 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장애계가 이러한 일자리를 고민한 배경에는 민간에 떠맡겨진 경쟁고용시장에서 ‘노동할 수 없는’ 존재로 취급받아 온 최중증장애인의 처참한 노동 현실이 있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15세 이상 등록장애인은 258만 3530명이다. 이중 취업자는 94만 575명, 실업자는 4만 4424명이다. 이 둘을 합해 경제활동인구가 98만 4999명이다. 나머지(159만 8531명)는 비경제활동인구다. 정부는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한다. 달리 말하면, 취업할 수도 없고, 취업 된 적도 없기에 실업자조차 될 수 없는 장애인의 현실을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이러한 비경제활동인구가 전체 장애인의 61.9%를 차지한다.
장애정도로 나눠서 살펴보면, 중증장애인의 노동실태는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경증장애인의 경우, 55.2%가 비경제활동인구인데 반해 중증장애인은 77.1%에 달한다. 경제활동참가율도 중증장애인은 경증장애인의 절반인 22.9%에 불과하다. 반면, 전체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4.9%다.
해당 법안을 대표 발의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국회 방송 캡처.
- 비장애 중심 능력주의 탈피한 ‘특별법’, 노동 패러다임 바꿀 것
해당 법안을 대표 발의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 사업은 주로 경증장애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은 사각지대에 있다”면서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아래 장애인고용법)’이 제정된 지 33년이 됐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기보다 부담금 납부로 대체하면서 법의 정신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차원에서 재정 지원을 통해 사회적 가치 생산 직무를 일자리로 개발해 중증장애인에게 ‘진짜’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한다”면서 “이번 특별법 제정이 중증장애인도 불안에 떨지 않고, 차별받지 않으며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법안은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를 “국가와 지자체, 공공기관이 중증장애인의 사회참여 촉진과 노동할 권리 보장을 위해 장애인에 대한 권리증진, 사회적 인식 개선 및 사회통합 기여 등 사회적 가치 생산 직무를 일자리로 개발하여 중증장애인에게 제공하는 일자리”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 장관이 ‘중증장애인 고용촉진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여 시행하도록 하고, 중증장애인 고용촉진과 공공일자리 지원에 관한 사항을 심의·평가하거나 자문에 응하는 ‘중증장애인 고용촉진 등을 위한 특별위원회’ 설치를 명시했다. 또한, 국가와 지자체가 비경제활동 중증장애인의 실태를 조사하고, 장애인이 노동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사업 실시 내용 등을 담았다.
박경석 전권협 대표는 “이 특별법은 새로운 노동 패러다임을 만들어 갈 매우 중요한 법안”이라면서 “1990년에 제정된 장애인고용법은 장애인 고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쟁과 능력, 시장 중심으로 고용을 해결하려고 했던 실패한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이제까지 지독한 차별의 구조 속에서 장애인 노동권은 시혜와 동정의 문제로 취급됐다”면서 “이 특별법은 시장 중심과 능력 중심,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탈피해 장애로 인해 능력이 없다고 여겨진 최중증발달장애인을 공공이 책임지고 고용할 것을 명시한다. 이를 통해 이들은 노동 속에서 자기 존재의 가치를 누리고 지역사회 변화를 만들어 갈 것이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이 법안을 제도화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김수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시지부장은 “발달장애인에게 노동은 단순히 경제적 소득을 얻기 위한 일자리가 아니다. 사회적 관계를 맺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일할 기회를 통해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서 “만약 일할 수 있는 직무를 개발하고 이들을 지원한다면, 발달장애인도 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2020년 서울에서 처음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시작한 후, 많은 중증장애인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전에는 모두 노동시장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면서 “이 법이 제정되어 꼭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이 보장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장연에 따르면 현재 30여 명의 의원이 특별법에 공동발의의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