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34]아름다운 사람-가수 박인희(82)
<인간극장> <우리말 겨루기> 등을 빼고는 TV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어제 오후 너무 덥고 답답해 본채 대청소를 하면서 TV를 틀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반가운 얼굴이 나왔다. <가수 박인희>.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 언제때 박인희인가? 전혀 몰랐던 근황이 유재석의 친숙한 질문으로 줄줄줄 나온다. 미국생활을 하다 2016년 한 팬과의 기막힌 인연으로 귀국하여 35년만에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콘서트를 딱 한번 하려했다는데, 전국 순회 12회가 전석매진 성황이어서 본인도 놀랐단다. 언젠가 한번, 박인희가 미국에서 <섬집아기>를 불렀는데, 벽안의 외국인들조차 노랫말도 모르면서 줄줄줄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같다. 국민자장가 <섬집아기>는 진짜 박인희가 불러야 딱 ‘제맛’이다. 70년대 후반 20대 초였던 우리에게는 잊지 못할 가수들 몇몇이 있다. 박인희, 정미조, 이연실, 양희은, 송창식, 김민기 등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모두 추억의 이름이고, 고마운 연예인(가수)들이다.
<모닥불> 노랫말을 흥얼거리지 못한 자는, 그때 그 젊음을 그냥 ‘통과’한 것이리라. 그건 게으른 일이고 슬픈 일이다. 나같이 음악에 어떤 조예도 없고 음치 주제에도 박인희의 노래를 생각해보니 서너 곡도 더 알고 있는데 말이다. <세월이 가면> <끝이 없는 길> <하얀 조가비> <스카브로의 추억> <방랑자> <봄이 오는 길> <그리운 사람끼리> 등. 한국포크음악사에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는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고, 1980년대초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 망각의 가수가 된 박인희, 가수 이장희 등과 LA에서 <라디오코리아> 방송국을 만들었다한다. LA폭동때 노래를 제쳐놓고 교민들의 구호와 화합에 일익을 담당하며, 진짜 찐팬을 만나 감동을 받고 귀국하여 노래를 부르겠다고 결심한 일화는 또다른 감동을 주었다. 한없이 청아하고 맑은 음색, 문학적인 노랫말은 당시 우리들의 감수성에 화살처럼 꽂히지 않았던가. 이미자, 패티김, 김추자 등과 또 달리 그는 고마운, 언제나 보고 싶은 연예인이기도 했다. 정태춘-박은옥 부부에 앞서, 1969년 가수 이필원과 함께 국내 첫 혼성 듀엣 <뚜아 에 무아>(Tot et Moi)로 등장, 통기타 청바지와 함께 불어닥친 ‘청년문화’를 한껏 풍요롭게 하고, 대학가의 대중문화를 흔들었던 거의 ‘전설’이 된 가수. 우리는 그들이 있어 가난하지 않았다. 이후 동아방송 등에서 아예 방송인이 되어 명DJ로 이름을 날렸다.
어제 처음 알았다. 풍문여중을 다니며 수녀 이해인과 단짝 친구, 서로 길이 달라 소식이 끊겼는데, 훗날 골목길에서 우연히 만나 지금껏 68년째 절친이라는 것도, 불문학을 전공하며 시를 쓴 게 인연이 돼 이름이 비슷한 댄디스트 시인 박인환의 시를 노래로 많이 만들었다는 것도, <얼굴>이라는 자작시를 박인환의 시로 착각한 이해인 수녀는 그녀에게 그 시 한번 낭송해달라고 했다는 얘기도, <섬집아기>를 고등학생(조용필의 ‘단발머리’ 등의 작사가 박건호)이 지은 동시였다는 것도. 해방동이이니 우리 나이로 82세. 어쩌면 저렇게 곱게 늙어갈까? 그리고 목소리는 왜 늙지도 않는 걸까? 그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 마음을 언제나 깨끗하고 한가롭게 가지려 노력하면 저렇게 되는 걸까? 말을 하는데도 군더더기가 ‘1도’ 없다. 참 보기가 좋았다. 어제 직접 불러준 국민자장가 <섬집아기> <모닥불>을 감상하며 잠시잠깐 행복했다. 그분도 무한히 행복할 듯하다. 그러면 됐지,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덕분에 오늘 새벽 유튜브에서 <박인희 노래모음> 17곡을 모두 들었는데, 어쩌다 한 곡, 한 곡 들을 때보다 ‘듣는 맛’은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무엇보다 결혼 등 사생활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흘러나오지 않게 하는 그분의 '공인'(公人)의 철학이 좋았다. "저는 노래하고 글쓰고 방송하는 박인희입니다"라는 소개말을 저렇게 수줍게 얘기하는 할머니의 건강을 기원한다.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인생은 연기 속에/재를 남기고/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덧붙임: <아름다운 사람>의 넘버링은 '67'이지만, 굳이 넘버링을 붙일 필요는 없을 것같다. 나와 어떤 인연도 없는 분을 <아름다운 사람> 주인공으로 올린 것이 처음이지만, 앞으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름다운 인간'이라면 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