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등딱지부터 챗GPT까지, 점괘의 발달
3500년 전 상나라 왕 우딩 시기의 갑골문을 보면 거북의 등딱지가 갈라진 모양을 보면서 점을 쳤음을 알 수 있다. 갑골 위에는 비가 며칠 뒤에 올지를 묻는 내용이 적혀 있다. 강인욱 교수 제공
《우리 삶에서 점(占)은 언제나 함께해 왔다. 수많은 기술과 기계가 출현해도 미래는 언제나 불안하고, ‘용한 집’이 있다면 귀가 솔깃해지는 경험을 누구든 해보았을 것 같다. 심지어 엔지니어나 수학자들이 슈퍼컴퓨터를 새로 들일 때도 축복을 하고 고사를 지내는 모습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점을 쳐서 미래를 알고 또 마음의 평안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사슴뿔의 관과 짐승의 가죽을 쓰고 춤을 추며 사람들의 앞날을 예언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힘든 삶의 순간순간에 점을 보기도 한다. 점의 시작, 그리고 미래에 대해 살펴보자.》
‘쩍’ 갈라진 뼈로 국운 점쳐
점이라고 하면 참 종류가 많다. 별을 보며 점을 치는 점성술, 태어난 날과 일로 보는 사주, 꿈을 푸는 해몽, 나뭇가지를 뽑는 산통, 그리고 관상, 타로 카드 등 인간은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점의 대상으로 삼았다. 점은 축구경기에도 사용되는 동전 던지기처럼 경우의 수가 정해져 있지만 결과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 진화의 역사는 바로 점의 역사이기도 했다. 점을 치면서 발달한 점성술이나 연금술같이 인간에게 꼭 필요한 학문도 발달했으니, 인간의 역사는 점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점을 치는 능력은 고대에 권력의 주요한 원동력이었다. 요즘 같은 일기예보나 정보가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 샤먼의 예지력은 곧 백성들의 생명을 지키는 수단이었고, 또 인류가 각종 자연재해와 전쟁에도 멸종하지 않고 살아오게 한 원동력이었다.
2000년 전 마한에서 발견된 복골은 사슴의 어깨뼈를 이용해 점을 보던 도구였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앞날에 대한 걱정은 점을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오랜 풍습으로 만들었다. 강인욱 교수 제공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점을 치는 방법은 바로 복골(卜骨)이다. 복골의 원리는 얇은 뼈를 구우면 쩍 소리와 함께 갈라지는데 그 방향과 흔적을 보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돼지나 사슴의 어깨뼈(견갑골)를 주로 사용했다. 갈라지는 뼈의 방향과 크기에 따라 다양한 길흉화복을 예견하는 이 방법은 국가를 운영하는 데에도 사용됐다. 3500년 전 중국의 고대 국가 상나라가 대표적이다. 상나라의 왕은 자기 밑에 수십 명의 정인(貞人)이라 불리는 점치는 사람들을 측근으로 두고 함께 점을 쳤다. 그들은 밤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엄청난 양의 술을 마시며 연회를 벌이고 갑골로 점을 쳤다. 이렇게 왕과 정인들은 한 나라의 대소사에 대해 점을 치고, 그 복골 위에 점괘를 기록해 문서보관소에 넣었다가 필요한 때가 되면 꺼내서 그 점을 보고 일을 결정했다. 워낙 점이 많다 보니 점괘의 위에 그 내용을 새겼는데, 이것이 지금의 한자로 이어지는 갑골문의 시작이다. 특히 상나라의 수도 샤오툰 유적에서는 갑골을 쌓아놓은 구덩이가 발견됐다. 점괘가 기록된 공문인 셈이다. 상나라의 귀족들은 남방의 바다에서 구한 귀한 거북이의 등딱지를 사용하기도 했다. 거북이는 신성시되었고 등의 뼈가 얇아서 잘 깨지기 때문에 중요한 일을 점칠 때 쓰였다.
‘백제는 보름달, 신라는 초승달’
복골의 풍습은 한국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다만, 글자가 없을 뿐 기본적인 사용법은 중국과 비슷했다. 남한에서는 약 2000년 전 삼한 시대에 남해안의 조개무지를 중심으로 이런 흔적이 많이 보이는데 주로 사슴의 어깨뼈를 사용했다. 삼국유사에 백제가 멸망할 때를 기록한 내용을 보면 “백제는 보름달이고 신라는 초승달”이라는 글이 거북이의 등딱지에 쓰여 있었다고 한다. 가야에서도 거북이의 등에 쓰인 글자가 예언을 했다고 나오니, 아마 왕족들 사이에서도 갑골문의 풍습은 삼국시대에 널리 퍼졌던 것 같다.
중국과 남한에 복골이 있었다면 북방의 고구려와 부여에서는 소를 잡아 그 발굽의 형태를 보고 길흉을 점쳤다. 목축 동물의 내장이나 굽의 형태로 점을 치는 것은 지금껏 남아 있는 유목민들의 대표적인 풍습이다. 지금도 몽골의 유목민들은 양이나 염소를 통째로 요리할 때 칼로 배를 가르고 짐승의 내장 크기와 위치로 길흉을 점친다. 부여계 주민이 고구려와 백제로 유입되면서 그들의 놀이와 점복 문화는 삼국, 나아가 고려, 조선으로 이어졌다. 도축을 전문으로 하는 백정들도 짐승을 잡으면서 비슷하게 점을 치곤 했다.
2000년 전 흉노의 귀족 무덤에서 발견된, 뼈로 만든 주사위인 샤가이. 강인욱 교수 제공
유목민들에게 주사위도 빼놓을 수 없는 점치는 도구였다. 한국에서 쌀이나 동전을 뿌리면서 점을 치는 것처럼 몽골에서는 ‘샤가이’라고 하는 발가락뼈로 점을 친다. 고대 흉노의 무덤을 발굴하면 거의 빠짐없이 이 샤가이가 발견되는데, 그 겉에는 각자의 특이한 부호가 새겨져 있다. 몽골의 귀족 무덤에서 빠짐없이 이 주사위가 발견되니 생활에 부침이 심한 유목 생활의 불안함에는 위아래가 없었던 것 같다. 보드게임에서 주사위를 던지는 순간 게임 참여자의 운명을 건 모험이 시작된다는 영화 ‘쥬만지’의 스토리도 그 역사가 수천 년인 셈이다.
챗GPT 대화도 점괘와 비슷
상나라 은허에서 발굴된 갑골문 구덩이. 임상택 부산대 교수 제공
이렇듯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 속에서 여러 현상을 점과 연결시킨다. 현대에도 예외는 아니니 과학적으로 전혀 증명되지 않는 혈액형이나 성격유형지표(MBTI)를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이 발달하면서 마치 고대인들이 점을 치듯 활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연초부터 세계를 강타한 AI 기반의 챗GPT가 특히 그러한데, 문제를 넣을 때마다 다른 답이 나오지만 가끔씩 아주 그럴듯한 내용으로 사람들을 홀리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챗GPT로부터 자기가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질문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계속 묻곤 한다. 그 모습은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녀가 끊임없이 물어보는 거울, 또는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 신의 말을 해석해 주는 신관을 연상케 한다. 사실 갑골문도 비슷하다. 상나라의 갑골문을 보면 거북이의 등이나 사슴 어깨뼈에서 그 표면을 다듬고 구멍을 곳곳에 뚫고 금을 그어 원하는 방향으로 갈라지게 한 흔적이 있다. 나라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점괘이니 행여 나쁘게 나올까 봐 좋은 괘가 나오도록 미리 손을 쓴 것이다.
챗GPT는 GPT(사전 훈련생성 변환기)의 일종이지만 특히 챗(대화)에 특화된 프로그램이다. 챗GPT는 인간의 질문을 간파하고 그럴듯하고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를 나열해 답을 제시하는 알고리즘이다. 이는 우리가 점을 치고 신탁을 얻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점괘의 기본 핵심은 인간이 가진 과거 정보를 조합해 앞날을 예견하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점집을 가면 능력 있는 점쟁이는 의뢰인의 과거 정보를 족집게처럼 맞추어 자신의 능력을 먼저 증명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음이 무장해제된 의뢰인의 솔직한 대화에서 단서를 찾아가며 대화식으로 미래의 점괘를 얘기한다. 챗GPT 또한 대화식으로 구체적인 질문을 할수록 답도 구체적으로 나온다. 또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단어와 화법을 쓴다. 세부 내용은 틀려도 전반적으로 그럴듯하게 들리게 말하는 방법을 안다. 두루뭉술하게 답을 해 여러모로 해석되게 하는 점괘의 특성과 상당히 유사하다.
물론, 챗GPT의 목적이 점은 절대 아니다. AI의 목적은 훨씬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다. 문제는 언제나 불안해하는 인간이다. 수많은 자연환경이나 동물의 뼈에 신령함을 불어넣어 자신의 미래를 점치는 도구를 만들어 낸 인간은 이제 새로운 AI가 가진 점치는 기능에 집중할 것이라는 뜻이다. AI나 빅데이터에 기반해 미래를 예측하는 점집이 나올 날도 머지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답답한 속을 풀어주는 우문현답의 ‘용한’ AI 프로그램에 앞다투어 접속하는 때가 올 것 같다. 어쩌면 점은 인간의 탄생과 함께 계속되어 온 우리 삶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류가 생존하는 한 점은 계속될 것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