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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침신대 신대원 91학번(11기)동기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용구목사
임마누엘 마태복음 1:18-25 221127(주일오전)
기독교는 성탄절을 4주 앞두고, 그 기간을 대강절(待降節)로 지키고 있습니다.
대강절(Advent)이란 말은 '옴(coming)', '도착(arrival)'을 의미하는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미리 기대하며 준비하는 성탄절 전의 4주간을 가리킵니다. 대강절(待降節)의 또 다른 명칭으로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대림절(待臨節), 강림절(降臨節) 등이 있습니다.
대강절은 '이 땅에 예수께서 오셨다'라고 하는 과거적 의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총체적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첫째는 육신으로 곧 탄생하실 주님을 기다리던 이 천년 전의 상황을 기념하고 재현함으로써 우리의 마음과 삶을 경건히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둘째는 오늘날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역사를 사모하며, 삶의 현장에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더욱 더 집중하는 시기입니다.
셋째는 세상 종말에 심판주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구원을 완성하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며 기쁨으로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물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실제적인 날이 12월 25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은 그 누구도 정확히 모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 부분에 대하여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다만 예수께서 이 땅에 왜 오셨고 무엇을 이루셨는가에 대하여서만 강조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교도들이 밤보다 낮이 더 길어지기 시작한다는 12월 25일에 태양을 하나님으로 숭배했었는데, 태양이 하나님이 아니고 태양을 만드신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며, 세상의 빛이 되시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이 땅에 오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우리가 그 날에 이 땅의 빛으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이 마땅한 것임을 보여주려고 그 날을 성탄절로 지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그 날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의미가 중요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의미에 있어서 성탄절의 설계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와, 그 일이 아름답게 성사되도록 감싸주시고 역사해 주신 보혜사 성령님과, 실제로 이 땅에 오사 성탄절을 이루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 바로 이 성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영광 돌리고, 그분을 찬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성탄절에 실제로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은 제외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들끼리만 축하하고 선물을 주고받고 행사를 합니다. 분명 이것은 성탄절의 잘못된 관습들입니다.
언제인가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성탄절의 의미'에 대해서 물었더니, '산타클로스의 생일'이라고 대답한 학생이 무려 64%나 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성탄절이 되면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백화점이나 호텔에서 보내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성탄절에 최신형 스마트폰과 같은 선물을 받기 원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생각은 아예 없습니다. 친구들과 영화 보러가고 선물을 주고받고 하는 일들만을 계획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이들만 나무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과연 성탄절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이번 성탄절은 어떻게 보낼 계획이십니까?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1. 죄인 된 우리의 모든 저주를 친히 짊어지신 예수님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장 18절에 보시면,
(마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예수님은 요셉과 정혼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갈 4:4-5)[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슈퍼맨처럼 날라서 이 땅에 오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본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동정녀의 몸을 의탁해서 순수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그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의지해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모든 죄악과 저주의 벽들이 허물어지고 하나님께로 가는 구원의 길, 부흥의 길이 열려졌습니다.
온 우주만물의 창조주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사람을 사랑하사 모든 좋은 것들을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에게 복이 아닌 저주가 임하고 좋은 것들이 아닌 나쁘고 악한 것들이 임하게 되었습니까? 때때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고 불러도 왜 응답이 없는 것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 59:1-2)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렘 5: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좋은)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우리의 허물과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복과 사랑이 막혀버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그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죄 없는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 친히 죄인 된 우리 모든 사람들이 죄의 대가로 겪어야만 하는 인생의 모든 고통, 아픔, 수치, 고생, 고민, 가난을 모두 다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죄 없는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죄 있는 사람들 중에 사시다가 죄인으로 취급받으시고 죄 없는 사람으로 죄인의 저주를 짊어지셨고, 부요하신 분으로 가난의 저주를 짊어지셨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의인으로, 생명의 주님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침례요한이 인자로 이 땅에 오신 주 예수님을 향하여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라는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마태와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삶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마 8:16-17)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악과 그것으로 인한 모든 저주들을 친히 담당하시고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연약함, 질병, 상처, 고통, 가난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어떻게요? 그분이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죄 없는 사람으로 친히 오셔서 우리 모든 죄인들의 모든 죄악과 그 죄악으로 인하여 생긴 모든 저주와 악한 것들을 그 몸으로 친히 짊어지심으로 그렇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3년 6개월 동안 예수님과 동행하였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한 사도 베드로가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벧전 2:24-25)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성탄절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없는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 있는 사람들의 모든 아픔과 저주들을 친히 체휼하시고 짊어지셨다는 것을 상기하게 만드는 거룩한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그 죄악으로 인한 저주의 결과들을 짊어지신 결과가 무엇입니까?
2. 우리의 모든 문제와 저주가 제거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와 저주의 근원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습니까? 죄악입니다. 죄악의 결과가 질병입니다. 가난입니다. 사망입니다. 고통입니다. 영원한 지옥의 형벌입니다.
독초를 제거하려면 독초의 잎사귀만 떼어낸다거나 독초의 가지 혹은 원줄기를 잘라내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독초의 근원인 뿌리를 잘라내고 뽑아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게 찾아오는 모든 저주의 근원은 죄악입니다. 죄악이 모든 저주의 근본뿌리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죄악의 뿌리를 잘라내지 않는 한 우리 인생의 삶 속에서 저주가 떠나가지 않습니다. 바로 이 모든 저주의 쓴 뿌리인 죄악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8절에 보시면 “ ···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몸으로 친히 우리의 모든 죄악의 쓴 뿌리를 품으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심으로 모든 죄악의 쓴 뿌리를 끊어내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 마태복음 1장 21절에 주의 사자인 천사가 요셉에게 말합니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여러분! 우리 모두는 참으로 여러 가지 많은 저주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의 저주, 질병의 저주, 상한 마음으로 불안에 떠는 저주, 근심의 저주, 슬픔의 저주, 가문에 흐르는 저주의 문제, 악한 영에게 짓눌림의 저주 등등 참으로 많은 문제의 저주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 모든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요? 죄악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이 모든 문제들의 근원이 죄악이라고 말씀합니다.
본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창 1:26-28)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사람들이 범죄하여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죄악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그 결과 하나님이 주시는 그 모든 복들이 차단되었음을 성경이 말씀합니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복)에 이르지 못하더니』
(렘 5: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죄악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가난, 질병, 상한 마음의 불안, 근심, 슬픔, 가문에 흐르는 저주, 악한 영에게 짓눌림 등등의 참으로 많은 문제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마태복음 1:21에 보시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는 말씀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사람으로 오신 이유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바로 이 부분을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예언해 주셨던 것입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53:3-6)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분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죄악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해결해 주시는 그분은, 죄악의 결과인 질병과 마음의 상처, 가난과 저주 등의 모든 문제들까지도 모두 다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다 처리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질병을 다 치료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의 모든 상처를 다 치료하십니다. 주님은 이를 위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성탄절의 의미를 우리는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창 20: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렘 30:17, 개역)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며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한즉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출 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의 모든 죄악을 처리하시고 우리의 모든 질병을 치유하시며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처리해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바로 그 사건이 성탄절의 사건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오심, 즉, 성탄의 의미를 더 이상 흩트려서는 안 됩니다. 그분의 오신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바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 받을 것입니다. 질병이 치유될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가난이 떠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이 목적을 올바로 정확하게 아는 것이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 진리를 잘 모르기에, 너무도 막연한 태도로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진리를 잘 몰라서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죄인 된 우리와 똑같은 입장에 서서 우리의 모든 죄악의 저주들을 친히 담당하시고 짊어지심으로 그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의 문제와 그 결과들을 말입니다. 완전히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분의 성육신의 의미를 올바로 정확하게 기억하시고 온전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탄절의 진정한 또 다른 의미는 무엇입니까?
3.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장 22-23절을 보십시오.
(마 1:22-23)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그분이 탄생하기 약 700년 전에 이미 예언된 사건입니다. 구약시대 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는 예언의 말씀을 주셨고, 신약시대에 와서 실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탄절의 매우 중요한 의미 가운데 하나가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떠나가시는 분이 아니라 영원무궁토록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23편 4절에서 다윗 왕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살다보면 때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는 듯한 암울한 시간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상황 가운데 처한다고 할지라도 사망의 공포가 우리를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해악도 우리에게 다가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처럼 사자굴에 들어가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절대 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풀무불에 들어가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머리터럭 하나도 상하지 않습니다. 요셉처럼 애굽으로 팔려가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총리가 됩니다. 출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광야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반석에서 샘물이 솟아나고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업장이 아무리 큰 어려움에 처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잘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되는 사업장이라도 하나님의 복된 손길이 떠나가면 한 순간에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사랑과 은혜와 복과 지혜와 총명을 허락하십니다. 머리가 되게 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만사형통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언제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까?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도 세월이 흐르면 먼저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에는 끝이 있지만,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떤 결과가 있습니까?
형통한 역사가 일어납니다(창 39:2-3).
(창 39:2-3)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담대해지고 두려움이 떠나갑니다(신 31:23).
(신 31:23)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
(민 14:9)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르되)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존귀하게 됩니다(삼하 7:9).
(삼하 7:9, 개역) 『(다윗)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창대하게 됩니다(대하 1:1).
(대하 1:1)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 가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사 심히 창대하게 하시니라』
보호받게 됩니다(시 23:4).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승리하게 됩니다(렘 15:20).
(렘 15:20)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태까지 여러분이 하나님께 복을 받고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려움과 고통과 환난, 실패와 좌절과 절망 가운데 살았다면, 죄악의 저주를 끊어내지 않았거나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부터 모든 죄악을 내려놓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회개하며 “하나님, 나와 함께 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5세기 독일의 유명한 성자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 1380∼1471)는 “예수가 함께 하면 모든 일이 다 선하게 되고 아무 어려움도 없지만, 예수가 없으면 모든 게 힘들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영국에 있는 한 출판사에서 상금을 내걸고 “친구”라는 말의 정의를 독자들에게 공모한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를 정의하는 수천 통의 응모 엽서 가운데는 “기쁨은 곱해 주고, 고통은 나눠 갖는 사람”, “우리의 침묵을 이해하는 사람”, “많은 동정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 등 많은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등은 “온 세상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글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친구를 배신하며 이용하는 악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온 세상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여전히 나와 함께 하는” 진정한 친구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남편이 진정한 친구가 되겠습니까? 아내도, 부모도, 자식도 언젠가는 다 떠납니다. 우리의 진정한 친구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현세와 내세에 영원한 친구요, 친구 중의 친구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동행하며, 사랑에 보답하여 축복 받고 능력을 받는 사람은 인생이 그다지 고달프지 않습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친구가 늘 그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친구만 찾지 말고 세상 끝 날까지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진정한 친구로 삼으십시오.
성탄절은 한마디로 “사랑의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이 세상의 모든 사건 중에서 가장 큰 사랑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위대한 사랑의 사건입니다.
우리와 같이 되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셔서, 저와 여러분이 겪어야 할 모든 죄악의 저주와 아픔과 고통을 친히 짊어지셨고, 그 고난과 아픔을 십자가상으로 가지고 올라가셔서 못박히사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는 죄악을 십자가의 피로 처리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채찍에 맞으신 주님의 손길이 우리에게 임함으로 질병도 치유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도 아물게 되며 회복되는 것입니다. 재정적인 압박도 풀리는 것입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친구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좌절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임마누엘로 오신 성탄의 주인공 예수님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예수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예수 사랑 참 좋은 예수 사랑
예수 사랑 참 좋은 예수 사랑
괴로울 때 다가와서 마음에 평화 주는
신실하신 나의 참 친구
외로울 때 찾아와서 친구가 되어 주는
사랑 많은 나의 참 친구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 할 때까지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 할 때까지
예수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예수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예수 사랑 참 좋은 예수 사랑
예수 사랑 참 좋은 예수 사랑
세상에서 제일가는 금으로 유혹해도
예수님만 사랑하겠네
세상에서 제일 높은 명예를 준다 해도
예수님만 따라 가겠네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 할 때까지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 할 때까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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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침신대 신대원 91학번(11기)동기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용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