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주세요
7일째(1월 7일 수요일) - 컴퓨터를 배우는 하나에요
잠시 볼일이 있어 밖에 나갔다가 1시쯤 돌아왔을 때 하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폐인의 모습이었다. 이불속에 파묻혀서 손에는 언제 사왔는지 모를 포테이토칩을 들고 입은 계속 먹고 있었던 듯 오물거리면서 시선은 TV에 고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보고 있는 프로그램은 유선방송으로 재방송하는 드라마. 어째서 그런걸 보고 있는 거야! 아줌마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이 중생에게 나는 갱생의 의지를 주기로 했다. 우선 운동이라도 시켜 봐야겠다.
"하나야!"
"네?"
하나는 부스럭대던 과자를 급히 추스르면서 내 쪽으로 돌아보았다. 눈이 멍하게 풀린 것이 내가 모르는 하나의 모습이라는 건가!
"너 운동 같은 거 할줄 알아?"
"에… 달리기라면."
"좋아 달리기 하러 나가자."
"네? 지금요?"
아쉽다는 표정과 떨떠름한 표정이 교차하고 있다. 뭐 마찬가진가? 아무튼 옷을 가볍고 따뜻하게 입고 나는 하나를 데리고 나왔다. 하나는 별로 추워하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얼굴이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자 여기서부터 저 끝에 있는 공원까지 시합하자."
"네?"
"준비, 땅."
나는 하나를 믿고 있다. 즉 전력을 다해서 달렸다. 어느 정도나 달렸을까 나는 문득 하나가 따라오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뒤를 돌아봤을 때 하나는 지평선 끝의 조그만 점이 되어 있었다. 저 바보 엄청 느리네. 나는 하나가 따라오기를 기다렸다가 하나에게 말했다.
"달리기는 중지."
"에에? 어째서요?"
"이 상황 때문에."
"에에? 무슨 이야기에요 그게?"
"잘 생각해봐. 내가 달린다. 너도 달린다. 두 사람은 모두 열심히 달리고 있다. 하지만 한사람은 앞선다 그리고 한사람은 뒤쳐진다. 결국 뒤쳐진 사람은 미아가 된다. 앞에 가던사람은 뒤에 가던 사람을 기다린다. 하지만 미아가 된 사람은 제시간에 오지 못한다."
"그러니까 제가 느리다는 거죠?"
"바로 그 말이야."
"우우.."
하나는 꽤나 분한 얼굴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달리기는 포기하기로 하고 나는 하나와 걷기 시작했다. 따끈따끈한 햇살아래 나란히 걸어가는 두 사람.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어쩌면 사이좋은 오누이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연인 사이로 보기엔 내가 너무 늙어 보인다. 아니 그것보다 하나가 어려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건 그렇고 이 녀석 무언가 다른 잘하는 건 없는 걸까?
"하나야."
"네?"
"달리기 말고 다른 자신 있는 건 없니?"
"있어요!"
대답은 시원스럽게 했지만 하고 나서 손가락 꼼지락꼼지락……
"어떤것?"
"그러니까 그게 요리라든지…"
"기각."
"에에? 어째서요?"
그건 물어보는 네가 이상한거다.
"당연하잖아! 지난번에 나의 냉장고를 전멸시켰으면서!"
"그 그 그 그 그렇지만…있는 재료로 프랑스 요리를 만들기에는 부족했어요."
"프랑스요리 할줄 알아?"
"아뇨."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것보다도 프랑스가 어디 있는 나라인지는 알고 있을까?
"그럼 요리 말고 잘 하는 건?"
"에에? 꼭 말해야 해요?"
뭐 굳이 그렇게 까지 거부한다면 말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하나에 대해 알고 싶어서 묻고 있는 것이니까 대답해 주면 좋겠는데…
"뭐, 싫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대답할게요! 좋아지려고 노력할게요!"
무지무지 싫은 건가?
"뭐…… 그래, 컴퓨터라도 배워볼래?"
"컴퓨터?"
"응 요 며칠 하나랑 노느라고 안 썼지만 집에 있거든."
"아아 알아요! 그거 책상위에 있는 하얀색 바탕에 안쪽은 검은색인 것! 그리고 켜면 불 들어오는 거죠?"
의외로 자세하게 알고 있네 미묘한 부분을…
"으응 비슷한데 용도가 조금 다르지."
"용도 알고 있어요! 수상한 아저씨나 수상한 아줌마나 수상한 아가씨나 수상한 청년이나 수상한 어린애가 들어오면 그걸로 삑삑 소리 내서 쫓는 거잖아요?"
상당히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다. 물론 우리 집 컴은 산지 오래되고 관리 안한지 오래돼서 쿨러 돌아가는 소리도 심하게 나고 켜면 삐비빅 하는 비프음도 크게 난다…인데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너…그거 켜본거야?"
"에에? 네! 테레빈줄알구 켜봤어요. 그런데 이상한 파란 화면만 뜨고 아무것도 안 나와서 그냥 껐어요."
"그럼 켜는 법은 알겠구나. 끄는 법은?"
"으음 같은 단추를 눌러도 안 꺼지는 거니까 으음 역시 그때처럼 코드를 뽑아버리는 수밖에 없는 건가요? 불편할 텐데 끄는 단추쯤은 만들어 두지."
…….
"그건 그렇게 끄는 게 아니야."
화창한 날씨 따뜻한 햇살. 어이없어 하고 있는 나, 괴로워하고 있는 하나.
"좋아 집에 돌아가자."
우리는 다시 천천히 길을 거슬러 올라가 집으로 돌아왔다.
"자 이게 스위치고 이걸 오래 누르고 있으면 꺼지지만 그렇게 끄면 안 되고 끄는 법을 이따가 가르쳐줄게."
나는 하나를 컴퓨터 앞에 앉히고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자 한손은 여기 자판에 올리고 한손은 여기 마우스에 올려놔. 이게 기본자세야."
"에에? 마우스?"
"응. 자 봐라."
나는 하나의 오른손을 잡고 마우스 위에 올려놓았다.
"자 이렇게."
"와 됐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자 이렇게 하면 창문 오에스가 기동하는 거야. 그리고 여기서 마우스로."
"마우…스?"
"그래 이거 여기 이 쥐처럼 생긴 거. 뭐 솔직히 쥐하고 하나도 안 닮았지만 쥐처럼 생겨서 마우스래 이거 웃기지?"
"쥐?"
"그래."
하나의 얼굴표정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몰랐다. 단순히 호기심에 혹은 신기해서 그렇게 보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혼자 오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쥐라고? 쥐?"
"하나야?"
하나는 마우스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니? 장난치지 말고 진지하게 배워!"
하나는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우스를 계속해서 쓰다듬더니 한순간
"쥐면 죽여야지."
"하나야?!"
마우스의 선이 시작되는 부분을 마치 꼬리처럼 잡더니 아래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탕탕탕!
"하나야 그만둬!"
나는 하나를 흔들었다. 하지만 하나는 듣지 않고 그대로 마우스를 내리치고 있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으란 말이야아!"
하나는 천천히 그렇지만 또렷하게 말을 시작해서 마지막은 조금씩 흐렸다.
"죽어! 죽어! 죽어버려어어어!!!"
나는 사태가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하나를 필사적으로 컴퓨터로부터 격리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는 마치 쇳덩이처럼 움직이지 않고 계속해서 마우스를 내리치면서 울고 있었다.
"죽어! 죽어! 죽으란 말야!! 으허어엉."
있는 대로 소리를 질러대며 울음을 터트리는 하나. 나는 말릴 방법을 알 수가 없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죽어! 죽어! 제발 죽으라고!"
"그만해 하나야!"
나는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알 수 없는 감정에 그만 하나의 뺨을 갈기고 말았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하나가 고개를 푹 떨궜다. 나는 더럭 겁이 나서 하나를 끌어안고 얼굴을 살폈다. 잠시 아무 말 없던 하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에에?!"
평소와 같은 패턴. 자주 하는 말버릇. 하나의 눈빛이 잠시 변하는 듯 하더니 뺨을 감싸고 나를 노려보았다.
"오빠…아파요."
노려보는 모습이 아까전의 무서운 모습이 아니라 평상시의 하나였다.
"이제 정신이 들어?"
"정신? 무슨 소리에요? 아까 마우스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왜 때려요?"
아아 괜찮은 건가?
"으음 제대로 듣고 있나해서 미안미안."
나는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사과했다. 방금 전의 그건 혹시 내 착각이었던 걸까? 내가 환상이라도 본건가? 나는 그냥 무심히 넘기려고 하였다. 하지만 마우스 패드에 나 있는 파인 자국들은 그것이 내 환상이나 착각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다음회 예고>
8일째(1월 8일 목요일) - 하나는 나쁜아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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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나와 기 시작했다? 걷기겠지? 어쨌든... 쥐라는 단어에 갑자기 돌변하는 하나... 굉장히 광기스럽다는... (긁적) 어쨌든 건필해라~!
음. 무언가 서서히 시작되려 하는것 같네요. 건필!
하나가 이상해져가고 있어요;ㅁ;
오타와 잘못된 표현지적은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ㅁ- 하나의 귀여운 모습은 어디로!! 마우스를 패다니!
부제가 참 귀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