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이게 다 돈인데...’분리수거 함에다 신문지와 빈병을 넣을 때마다 혼자 중얼거린다.
내가 신혼살림을 할 때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자가 귀했다.
특히 70년대 초‘오일 쇼크’때는 돈이 있어도 물건이 없었다.
빨래비누를 구하러 친구네 동네까지 멀리 간 적도 있었다.
지금은 분리수거함으로 직행하는 신문지도 그때는 엽서 크기만 하게 잘라 변소에서 사용했다.
부드러운 화장지가 화장실에 내걸릴 때까지 고단한 세월이 흘렀다.
요즘 아이들이 상상이나 할까?
그 당시엔 골목골목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고물을 사가는 늙수구레한 사람들이 많았다.
빈병이나 헌책, 신문지, 쇠붙이, 옷가지 등도 흥정의 대상이었다.
이런 물건을 모아두었다가 한 번씩 돈으로 바꾸는 재미가 쏠쏠했다.
못 쓰는 물건 치워가고 돈까지 받으니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격이었다.
사가는 사람도 수집상에 넘겨 이익을 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았다.
시부모님이 애주가라 우리 집엔 빈병이 수월찮게 모였다.
다 쓴 치약 튜브도 한몫했다.
지금이야 치약의 종류가 다양하고 튜브도 말랑말랑한 재질로 되어있지만 그 당시엔 알루미늄 튜브에 담긴‘럭키치약’뿐이었다.
더 이상 치약이 나오지 않으면 칼등으로 힘주어 튜브를 훑어가며 끝까지 알뜰하게 꺼내 썼다.
동그란 입구에 남은 치약은 이쑤시개로 한 바퀴 돌려 말끔하게 파냈다.
마지막으로 알루미늄인 빈껍데기도 버리지 않았다.
“고물 삽니다.”
대문을 여니 예상과 달리 젊은 남자였다.
나는 수북하게 쌓인 빈병과 치약 튜브를 들고 나갔다.
고물장사는 치약 튜브를 보고는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새댁이 참 알뜰합니다. 이런 일은 처음 봅니다.”
놀라면서 감동하는 표정에 나는 칭찬 받는 초등학생처럼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공무원인 남편의 월급봉투는 시부모님과 아픈 시동생까지 다섯 식구의 생활비로는 얄팍했다.
아무리 근검절약한다 해도 늘 빠듯했다.
그런 중에도 적금까지 들자니 자린고비가 울고 갈 지경이었다.
시부모님이 계시니 고향에서 찾아오는 친척들의 방문도 잦았다.
이래저래 지출이 늘어갔다.
허리끈은 점점 조여졌다.
지갑의 푼돈으로 시부모님 상차림에 소홀함이 없게 하려니 신경이 많이 쓰였다.
시부모님은 아들의 봉급이 흔히 쥐꼬리에 비유될 만큼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 절대로 믿으려 하지 않으셨다.
가난한 농촌에서 아들을 서울의 명문대학에 보낸 부모님의 자부심은 늘 하늘을 찔렀다.
경제기획원에 근무하는 아들이 부모님에겐 세상 최고였다.
하얀 와이셔츠와 넥타이차림으로 출근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눈길은 언제나 따스한 봄 햇살이었다. 이들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절약뿐이었다.
수돗물도 확 틀어놓으면 계량기가 더 돌아갈까 봐 중간 물줄기로 받아썼다.
연탄도 더 오래 타게 하기 위해 공기구멍을 작게 열어놓았다.
신문지 한 장, 빈병 하나라도 함부로 버리지 못했다.
다 쓴 치약 튜브도 당연히 모아서 돈으로 바꿨다.
그 옛날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분리수거함에는 멀쩡한 주방기구나 가구 가전제품 가방 옷 등이 많다.
주인에게 버림받고 애절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하다.
새것 같은 유모차도 버림을 받았다.
이것들은 한 때 귀족으로 태어나 천민으로 전락한 슬픔에 잠겨있을지 모른다.
30년도 더 된 알루미늄 냄비를 아직도 쓰고 있는 나는 그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미련 없이 버리고 새것을 사는 것이 제조업을 활성화 하고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는 요인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도 궁핍했던 시대를 살아본 나로서는 아깝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분리수거를 통해 모인 것들이 재활용된다니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2016.3.20
첫댓글 제 어릴적 어머니가 살림하시던 모습과 똑 같습니다. 그당시 부모님들은 얼마나 열심히 사셨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존경스럽습니다.
오늘 아침에 생쓰레기 버리면서,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쓰레기봉투, 재활용 분리수거, 생쓰레기 진짜 잘했다구요.
지난번 비엔나 갔을때 상주하는 우리나라 가이드가 말을 하더라구요. 그곳은 음식물, 일반쓰레기를 잡동사니로 버려서 냄새가 말도 못한다구요. 비닐종이하나라도 재활용으로 분리해서 철저히 재생산이 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친구들이 알뜰하다고 하는데,선배님 알뜰히 사는 모습에 비하면 신발 벗고도 못 따라가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아우님과는 띠동갑일 가능성이 높네요.
어머님 세대는 저보다 한참 위시니 당연히 그리 사셨겠지요.
눈부신 발전으로 요즘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얘기같은 우리 젊은날 삶이었지요.
습관이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도 않지만 또 금방 고쳐지지도 않잖아요.
이래저래 젊은이들 눈에는 궁상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네요.
아우님은 똑 부러지는, 솜씨도 야무지게 살림을 잘할 것 같아요.
유한한 물자를 마구 써버리면 후손들에게 빚지는 거죠.
재활용은 마땅하고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3.29 15:19
요즘은 분리수거가 손에 익어 라면봉지 한장도 손이 저절로 분리해지네 ...
습관이 무섭규나. 부피있는 물건은 돈딱지를 붙여 버리고 ....많이 변했제...
분리수거, 바람직하지요.
돈 딱지 붙은 물건도 여럿 나와 있어요.
언젠가 자개가 박힌 화려한 문갑이 딱지가 붙은채 내쳐져 있더군요.
옛날 우리 부모 세대에 처음 번쩍거리는 '호마이카'가구가 나왔을 때 문화재급인 화류장 갖다버리고 호마이카 장롱 들여놓았던 웃지 못할 헤프닝도 있었습니다.
글이 간결하고 재미있어 추억에 머물다 갑니다.
재미있다 하니 또 쓸 용기가 납니다.
컴 앞에서 쓰고 올리고 댓글 보는 재미에 심심할 틈이 없어요.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