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방식대로 산다, 그게 내 삶이다
김지운 감독 인터뷰 녹취 파일을 찾아냈다. 작년 12월 인터뷰였나. 기사는 피처로 내보냈는데, 무려 11장짜리 이 인터뷰 기록이 참 아깝더라고. 김지운 감독의 팬이라면, 분명 좋아할 만한 얘기가 곳곳에 포진되어 있으니, 길더라도 참아 보시라! (아, 그리고 기사용이 아니기에 만연체와 비슷하게 이야기하는 감독님의 화법을 일부러 살린 것이니, 불평은 참아 주시길)
-----------------------
요즘 바쁘시죠? <아열대의 밤>이 1월에 크랭크인 한다는 기사가 나왔던데, 맞나요?
네, 1월 말에 크랭크인이에요.
(사무실 내부 사진들을 둘러보며) 다 헌팅 사진인가 봐요? 참, 캐스팅은요?
헌팅 사진은 아니고 이미지 컷이에요. 네, 일단 최민식 씨만 됐어요. 이병헌이랑 같이하려고 했는데 이번에 뭐가 터져가지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당시 이병헌 씨 스캔들이 한창이었다). 또 <지 아이 조> 스케줄 때문에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는데 저것 때문에 더 못하게 될지 모르죠.
원래 시나리오가 최민식, 한석규 씨가 출연한다고 해서 화제가 된 그 시나리오잖아요.
네, 옛날에, 그때는 제가 관여를 안 했고요, 한 3개월 전부터요. 원작이 워낙 힘이 있는 시나리오인데요, 힘이 있는 만큼 그 반대로 거칠고. 뭐라 그럴까 그런 것들이 좋은 게 있어서 내가 시나리오를 고쳐봐야겠다 생각을 했었고, 바뀐 거에 큰 거는 영화적인 툴을 만들었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으로 바꿨어요. 시추에이션이나 에피소드도 많이 넣고 전체를 약간 매끄럽게 작업했죠. 한 30, 40% 바뀐 거 같아요.
시나리오는 아직 못 봤지만 세다는 소문이 돌던데요.
내가 한 영화 중에 수위가 높고 가장 과격하지 않을까.
<달콤한 인생>의 공사장 시퀀스가 더 세졌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달콤한 인생> 같은 경우는 액션에 맞춰져 있다면 이번엔 폭력적이고, 심리적인 폭력도 강하고 잔인한 장면도 많이 나오고요.
드디어 감독님이 스릴러 장르를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반가웠던지요. 제가 제일 기대했던 것이 감독님이 만든 스릴러거든요.
스릴러는 워낙에 테크니션들이 해야 되고 그들이 해도 사실은 철저한 밀도감과 관객들을 잡고 가는 심리를 놓치지 말아야 해서 장르 중에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어떤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연출의 공력이 있어야 가능한 장르가 아닌가 싶어요.
스릴러는 쟁여놨다가 도전하는 장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번에 선택하신 걸 보면 시나리오가 확 당기는 매력이 있었나 봐요.
쉽게 얘기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누군가 정말 죽이고 싶은 사람은 살면서 한 명쯤 있잖아요. 초, 중, 고등학교 때 쭉 살아오면서 반에서 괴롭히는 사람도 있었고, 살면서 죽이고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상상을 할 때는 머리 속에서, 마음속에서는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그 사람을 고통을 주고 싶어 하는데, 그런데 현실은 그런 게 가능하지 않고 현실로 돌아오면 항상 그 모습이고. 그런데 이 영화는 시도하고 보여주는데 어떤 쾌감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좀 덜 윤리적이고. 우리가 그것을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어서 인데, 그 용기의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윤리성이잖아요. 얘를 들면 저런 개가 짖는다고 내가 또 그렇게 짖을 순 없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도 그렇게 판단을 내렸을 때도 뭔가 뒤에 켕기는 게 있는데 그건 뭘까, 내가 용기가 없는 것일까. 그런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이죠. 아주 하찮은, 내가 또 다른 사람한테 피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여러 이유들이 집합되면서 못하게 되고, 또 한쪽으로는 윤리적인 부분이 크게 되는데, 이 주인공이 이런거 저런거 다 따지지 않고 그냥 우리가 상상했던 것들을 잘 때 상상하다가 깨어나면 없어져버리는 것들을 실제로 한다는데 묘미가 있었어요.
그 어떤 카타르시스일까요?
그런 것들이 카타르시스가 있는데 한편으로는 또 괴롭죠. 이것이 진짜 내가 짐승을 잡기 위해 짐승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니까요.
벌써 인터넷 쪽에서는 올해 스릴러가 많다, <추격자> 얘기도 비교하는 분위기에요. 박찬욱 감독님은 특유의 죄의식이 있긴 하지만, 완성되면 분명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아요.
그건 뭐 어떻게든 자유로워 질 수 없는 것 같아요. 장르라는 것들이 계속 특정 장르에는 특정 이야기의 꼴이 있는 거고, 컨벤션을 우리가 피해간다고 해도 장르의 컨벤션이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거고요. 익숙한 것을 어떻게 새로운 경험인 것처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연출력이고 관건이라 자유로울 수 없는 거고. 비교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어쨌든 이 영화의 새로운 부분들, 그리고 새로운 맛들, 조리법, 그런 레시피를 찬찬히 봐주시면 더 재미있을 것 같고. 그리고 분명히 그런 어떤 박찬욱 감독의 복수극들과 작년 한해를 풍미했던 <추격자>도 일어난 이야기들을 토대로 했으니까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은데, 이 영화의 세기와 모양새와 리듬과 분위기, 다른 뉘앙스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아주 어렸을 때보고 다시 보지 못했지만,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 같은 강렬하고 끈적끈적한 어떤 걸 그리고 있어요. 들어가기 전에 다시 볼 건데 그러면서 영화는 캐릭터가 완전히 상반돼서 한 사람은 완전히 뜨겁고 불같은 인간이고, 하나는 얼음장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두 인간이 충돌하고 부딪치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아요.
평소 시각적 이미지에 두각을 보이셨잖아요. 이번에는 어떤 이미지를 그리고 있나요.
이번에는 제작비도 조금 없고(웃음). 지금 책정이 45억이고 회 차도 많지 않고 넉넉하진 않아요. 예를 들어, 4년 전에 <달콤한 인생>이 47억이었으니까요. <달콤한 인생>은 워낙 미술에 돈이 많이 들어갔는데, 지금은 딱 그 수준으로 찍어야 되니까 <달콤한 인생?보다 못한 환경으로 찍어야 되고. 촬영 감독은 <장화,홍련>이랑 <놈놈놈> 찍었던 이모개 감독인데 계속 비주얼이나 룩에 대해 의논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러고 보니 촬영이 정말 안 남았네요.
룩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 미장센 안에 담는 것은 전과 다르겠지만 그걸 예를 들면, 미술적인 컨셉트가 도드라지는 건 아니고, 화면 안에 무엇을 읽을거리를 담는 건 똑같지만 다른 방법이 되진 않을까.
<놈놈놈>을 제외하고는요, 세트 활용을 잘 하시는데, 이번엔 스릴러니까 <놈놈놈>처럼 로케이션이 더 많은지요.
네, 로케이션이 많겠죠. 주 공간이. 강호순을 보면, 강호순도 경기도 일대에서 사건을 벌이고 다녔잖아요. 유영철도 마찬가지고. 서울, 대도시를 중심으로 그 외곽에 대한 어떤 공간적인 느낌들을 요번에 살려볼까 하고 있어요. 그게 지명이 확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살면서 서울에서 화성을 간다거나, 양수리나 양평을 간다거나 파주를 간다거나 그런 대도시와 근접해 있지만 뭔가 벗어나 있고 소외되어있는 근접도시와 근접 마을들에서 일어나는 그런, 또 그런 공간들에 사는 사람들이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 있는 어떤, 서울이란 도시가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물질적인 욕망의 총화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거기서는 벗어나 있고, 또 지리적으로는 멀지 않고요. 그런데 환경적으로는 너무나 박탈되어 있는 것들이 많고요. 그런 근접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느낌들. 오히려 그런 주변 큰 도시에 의해서 박탈되어 버리고 결핍되어 있는 공간의 황폐함 때문에 갖게 되는 정서들. 그런 것들을 이번 영화에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역시 말씀만 들어도 여타 스릴러들과 비교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추격자> 같은 경우는 서울 안에 있는 약간 중심을 벗어난 조그만 올드타운 같은데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면, <살인의 추억>은 농촌에서 일어나잖아요. 근데 이 영화는 그 사이의 경계에 있는 듯한, 대도시와 가까이 있으면서도 버려진 농촌이나 다름없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되게 낙후되어 있는데 저 건너편에는 빌딩들이 서 있는 걸 보면서 사는 정서들, 이런 것 들이 담겨지지 않을까. <살인의 추억>이나 <추격자>도 공간을 막 얘기하는 것은 없지만 그런 느낌들이 오는 거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 영화도 그럴 것 같아요.
워낙 공간을 잘 다루시잖아요.
근데 내가 여태 반성한 것 중에 하나는 공간에 너무 집착하다보니까, 영화는 사실은 시간의 매체인데, 시간을 다루는 건데 내가 공간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까 자꾸 이렇게 시퀀스를 자꾸 공간을 열고 닫는 걸로, 공간에 집착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한 시퀀스 안은 완벽한데 다음 시퀀스가 붙는 것들이 약간 뻑뻑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너무 물리적으로, 너무 긴 시간의 촬영 분량들이 있었고, 그런 것들을 공간별로 툭툭 끊다보니 리드미컬하게 넘어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특히 이제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를 더 강렬하게 묘사를 하면서 전체적인 영화의 시간에 의한 리듬을 많이 생각을 할 거 같아요. 내 생각에 이번 작업에 가장 큰 관건은 그런 리듬감을 어떻게 살리느냐, 공간을 해치지 않으면서, 공간의 강렬함을 죽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리듬감을 계속 살리면서 가느냐가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리듬감을 더 신경 쓴 다는 것에 대해, 일반 대중들에게는 더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할까요?
화법 자체가 설명적으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넘어갈 때 뭔가 한 공간에서 다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들이 있거든요.
제가 느끼기에는 완결된 기승전결에 대한 욕심으로도 읽히거든요.
그러니까 이걸 나눠야 되거든요. 링크들을 걸고 펼쳐 놓아서 전체 리듬을 살려야 되는데 너무 공간 집착적인 게 있어서 그런 것들을 못 살렸던 것 같아요. 어쨌든 영화 자체가 가진 호흡이 있는데 그 호흡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다 정도인 것 같아요.
집착이라는 표현은 좀 심한 것 같은데요(웃음). 저는 굉장히 영화적인데도 불구하고 미장센이나 음악이나 그런데도 굉장히 연극적이라는 느낌도 들었거든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공간을 쪼개 쓰고. 제가 연극을 할 때 배웠던 것 중 하나는 연기에 대한 디렉션이나 연기자를 이해한다는 부분과 무대 하나를 놓고 이 사람들의 여러 상황을 만들어야 하니까 공간에 대한 분배와 안배, 그러니까 핀 라이트 하나만으로 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뭔가 공간성을 조성하는데 세밀해 지는 부분이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흔히 얘기할 때는 하나의 막 다음에 그 다음 막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넘어가는데 있어서 큰 호흡 하나가 없어지는 느낌, 다른 호흡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약간 내가 얘기하는 리듬감을 못 살리는 부분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하는 거죠.
오히려 반대로 <놈놈놈>은 그걸 극대화시켜서 영화적인 쾌감을 준 거 잖아요. 그런 건 집착이 아니라 장점으로 승화시킨 것 아닌가요? 해외 영화제 반응은요?
해외 영화제 나가서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해 봤어요.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나에 대한 정보가 있고, 외국보다 훨씬 많을 테고, 그럼에서 생기는 어떤 선입견과 기대치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 선입견이 작용하면서 생긴 기대치에, 그니까 작품 자체로 온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자꾸 어떤 기대와 환상이 생기는 거죠. 거기에 부합되지 않으면 실망을 하는 것 같고. 외국은 그런 것들이 있어도 한국보다 덜 하니까 작품 자체에 더 충실하게 되는 것 같고. 또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영화를 볼 때 이야기를 따라가잖아요. 이야기가 어떤가에 대해 그 영화에 대한 평이 나오기도 하고요. 이야기가 어설프고 이야기가 거짓이어도 이야기의 형태의 꼴만 찾으면 그것이 곧 좋은 영화처럼 생각도 하고. 그래서 난 오해받고 있는 영화도 많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외국 사람들은 영화를 즐겁게 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있어서, 예를 들면, 이야기만 얘기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어떤 신에 대한 찍힌, 어떤 시퀀스에 미술적인 측면이 너무 좋았다. 어떤 시퀀스에 액션 디자인이 뛰어났다거나 하는 요소들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요. 그게 전체 영화의 느낌들과 더불어서 요소들이 빛나는 부분들이 있다면 그냥 매료당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야기 자체에 집착하다 보니까 아무리 다른 요소들이 빛나고 뛰어나고 눈부신 성과를 가져와도 이야기 자체에 완결성을 뛰지 않으면 접고 보는, 깎아 내리고 보는 관람법이 다른 것 같고요.
재미있게 보다가 끝만 틀어져도 재미없는 영화로 치부해 버리기도 하잖아요(웃음).
내가 보기에 말도 안 되게 엉성한 영화인데도 이야기의 끝마무리만 잘 하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생각도 들고(웃음). 그리고 화면 안에 담겨져 있는 걸 보는 걸 보는 관람법도 다른 것 같아요. 미술적인 것도 그렇고 소품이나 또는 인물들을 놓는 배치나 카메라 앵글을 담는 거나 여러 가지요. 좀 더 영화를 보고 즐기는데 우리나라처럼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되게 다양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제 영화가 그런 다양함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이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것 때문에 온도차가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장르적인 것들을 가지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보려고 한다는 거, 이런 것 들도 잘 쳐주는 것 같고요. 그리고 또 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영화들이 약간 거짓 화해를 하는 영화를 싫어하는데요. 제 영화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예를 들어 말도 안 되는 신들을 만들어 놓고 뒤에 적당한 감동과 적당한 이야기의 형태와 적당한 기승전결로 명확해 지고, 이런거에 대해 되게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관객들이 많으니까요, 외국에는. 안전빵으로 다 있느냐 이런 거죠. 그런 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고. 그런 시각차, 온도차가 있는 것 같아요.
장르영화는 그 장르답게 만드는 것이 최고잖아요. 그거에 덧붙여서 독창성이 깔리니까 해외 관객들이 더 좋아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달콤한 인생>도 해외에서 그렇게 많이 좋아할지 몰랐으니까요. 외국관객들이 보기에도 독창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감독님 영화들이 다 그렇게 인정을 받고 있는 거잖아요.
여태까지 주욱 얘기한 거에 대해 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장점들을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해 주는 것 같아요.
참, 할리우드 작품은 늦춰진건가요?
미국 걸 준비하다가, 배경이 필라델피고 또 겨울에 찍고 싶어서 이번 1월 달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 과정이 굉장히 복잡해요. 내가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뛰어나게 해서 소통이 빨라서 영문을 영문으로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한글로 고치면 그걸 번역을 해서, 그 번역본을 가지고 미국에 가고 또 프랑스에도 가야 되고, 거기서는 읽고 나서의 느낌들을 또 번역해야 하는 두, 세 번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요. 그런 것들 때문에 한 번만 더 고쳐봐 하면 한달이 넘어가는 거예요. 난 마지막 버전을 쓰기 직전까지, 쓰고 나서 모두 다 좋다고, 들어갈 만하다고 해서 이번 겨울엔 찍겠구나했는데, 미국 작가 한 명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쳐보겠다고 하는 순간 넘어가는 거죠. 그럼 한달이 넘어가는 건데 그럼 때를 놓치게 되는 거고, 내가 미국 영화에 목숨 건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해보려고 하는 건데 시기를 놓치면서 까지 내가 원하지 않는 걸 하는 건 아 닌거 같아서 내년으로 넘겼고, 그 사이에 이번 프로젝트를 하게 된 거죠.
할리우드 진출이 감독님에게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거의 가시화 된 건데, 감독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체계화된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감독님만의 작가주의적인 인장을 찍어야 하는 건데요.
이것저것 생각하면 여기서 하는 게 편하죠(웃음). 다 버리고 가야하는 거니까. 이태까지 10년을 넘게 여기서 쌓아왔던 편한 게 있는데, 기득권이라고는 말할 순 없는, 여기 살면서 한국말로 한국배우들과 작업하는 게 편해진 게 있는데, 거기 가면 다 외국인들과 처음 시작하는 기분으로 해야 되는 상황이어서. 굳이 내가 할리우드에 목을 맨 사람이 아닌데 굳이 갈 필요가 있는가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해요. 근데 쉽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내가 분명히 그 사람들이 만든 영화에 좋은 거, 싫은 것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남들도 높게 평가하는 부분도 있고, 또 싫어하는 영화들도 영화를 바라보는 눈은 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 영화를 그들이 좋아한다면. 분명히 내가 여기서 뭔가를 보여줄 게 있다는 생각도 되고.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일 끝나면 밥 먹을 거고(웃음), 집에 들어가면 잘 거고 똑같은데. 언어에 대한 문제는 큰 것은 없지 않을까. 물론 언어가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있지만은. 또 다른 환경, 다른 시장, 다른 사람들과 해 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거기는 또 내가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도 많고요. 살면서 저런 배우들하고 작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웃음).
그렇담 함께 하고 싶은 배우는요?
너무 많죠.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 나왔던 배우들이긴 하지만, 브래드 피트도 있고, 조쉬 브롤린도 있고, 하비에 바르뎀도 있고. 그리고 이번에 만난 시에나 밀러도 있고, 조지 클루니도 있고, 클라이브 오웬도 있고, 같이 작업하고 싶은 사람은 정말 많죠.
부산에서 브라이언 싱어와 자리도 마련됐었는데, 어떠셨나요?
생각보다 되게 진지한 사람이었고, 그 사람도 워낙 영화광이고. 그래서 그런 영화광들이 만나서 영화 얘기할 때 인종과 국가를 막론하고 제일 재미있잖아요. 좋아서 얘기하고 신나서 얘기하는 좋은 시간을 가졌던 것 같아요. 브라이언 싱어도 어떤 형태로든 작업을 같이 해봤으면 좋겠다, 그가 프로듀서를 하고. 브라이언 싱어도 제 영화를 다 봤더라고요. 워낙 영화를 많이 보고 한국영화 팬이고요. 또 한국을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되게 좋은 시간을 같이 보냈고. 하여튼 생각보다 훨씬 쿨 하고 스마트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 전에 생각을 나쁘게 했다는 건 아니지만(웃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요.
앞으로 미국 가시면 또 기회가 있을 거잖아요.
네, 미국가면 그렇게 되겠죠. 미국 가면 조금씩 할리우드 지인들이 생겨나서 감독들이나 할리우드 피플들하고 친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또 생각보다 많은 영화인들이 한국영화를 좋아하고 또 내 영화도 많이 보고 해서, 그런 어떤 서로에 대한 존경심으로 작업을 해야겠죠.
예전에 그런 얘기도 하셨더라고요. 자기는 촬영 기자재나 기술적인 것은 잘 모른다. 영화라는 본질이, 미학이 중요하다. 그것도 비슷한 맥락아닐까요?
저도 어렸을 때 부터, 그게 팁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AFKN을 즐겨봤는데, 금, 토는 좋은 영화들을 많이 하니까요. 어렸을 때 <이지라이더>도 AFKN에서 봤고, 무수히 많은 좋은 영화들을 거기서 봤어요. 언어를 모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카메라를 담는 공기라든가 정황이라든가 사람들의 표정이라든가, 그걸 읽어나가면서 이런 얘기인거 같다 했을 때 내가 나중에 자라서 책을 들쳐보고 설명을 듣고, 또 자막 있는 영화를 봤을 때 크게 틀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어떤 사람의 표정들, 또는 어떤 카메라를 담을 때 미장센은 공통어가 분명히 있는거 구가 하는 생각을 했고. 예를 들면, 그 시대 유행하는 개그라든가 유행어라든가 그런 걸 기민하게 쓰지 못할 순 있겠지만 보편적인 사람의 얘기를 할 순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영화가 가져다주는 보편적인 즐거움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어떨 때는 소리나 말을 모르고 영화를 볼때 훨씬 더 그 영화에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것 같고.
저는 그게 더 영화적인 것 들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죠. 영화적인 것들을 훨씬 더 봐야 되는데, 영화적인 것들을 더 빨리 정확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이것도 하나의 예이긴 한데, 저는 영어 하나도 모르고 그 나라말 모르면서도 유럽여행을 하면서 그 나라말 잘 하는 사람보다 실수 안 하고 실패 없이 6개월 동안 무전여행을 다녔었어요. 가만 생각하니까 말이 안 통하니까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근데 말이 되는 사람들은 언어가 가지고 있는 뭐라고 해야 되나, 전달체계에만 의존을 하게 되니까 그런 어떤 도량화 된 것만 받아들이니까 그 사람의 이면이나 실제의 느낌들을 포착을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말을 안 하고 그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봤을 때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구나, 어떤 형태의 사람이구나 더 잘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말 통하는 사람들은 사기도 많이 당하고 그러는데(웃음).
해석의 여지가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그렇죠. 예를 들면, 언어라는 것은, 그러니까 의도라는 게 있잖아요. 사람들이 말을 할 때는 의도라는 게 있는데, 예를 들면, 식사 했니? 이런 간단한 말도 그것을 얘기하는 의도가 있을 거잖아요. 같이 밥을 먹자는 건지, 내가 식사하러 나가야된다는 건지, 그냥 인사치레인지, 여러 가지 의도가 있을 수 있잖아요. 나는 언어를 모르니까 그 의도를 먼저 알게 되더라는 거죠. 그리고 분명히 영화에서 대사라는 것은 대사 자체보다는 그 대사를 할 때 동기를 만들어내는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뜬금없는 얘기일지라도, 예를 들면, 느닷없이 “하늘이 파랐네”, “오늘 비가 오겠네” 하는 뜬금없는 얘기도 어떤 순간에 그것이 되게 어떠한 관계에 적합한, 그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얘기보다도 훨씬 더 울려 올 때가 있는 것처럼, 사람의 대화는, 말에는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고, 그 대사보다는 그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 영화, 연극이라는 매체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을 더 빨리 파악하는 눈썰미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AFKN 얘기하면서 예전 얘기해주셨고, 직접 쓰신 <숏 컷>에서도 그런 얘기 하셨는데 어떤 그런 예민함이 영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시는 것 같아요.
환경인 것 같아요, 환경. 예를 들면, 그게 제도적인 교육기관에서는 나올 수 없는. 몰개성적이고 획일적인 제도 교육 상황 안에서는 나올 수 없는데, 저는 어렸을 때 부터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그래서 새로운 외부 공간이라든가 새로운 환경에 대해 세심하게, 예민하게 파악할 수밖에 없고. 받아들인다기보다는 파악할 수밖에 없고(웃음). 이 동네는 무엇이 있고, 이 동네에서 놀 때는 어디 있고, 이 동네의 인적구성은 어떻고, 물이 어떻고를 예민하게 다 봐야 되잖아요(웃음). 또 부모님이 물려 준 거라고 생각 드는 것들은, 우리 부모님, 형제들이 다 예체능에 뛰어나세요. 노래 잘하고 그림 잘 그리고 영화 좋아하고. 그런 것들이 또 어떤 감성적인 것들을 취득하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고. 어렸을때 AFKN을 많이 봤던 것, 또 집에서 동네 극장의 포스터를 붙여놓는 바람에 초대권이 많이 생겨서 영화를 많이 보러 다녔고.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어쨌든 그림은 고정화면인데 미술가들이 보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다가 자기 작품의 동적인 요소들을 가고 싶은 욕망이 있거든요. 그래서 설치미술도 하고 오브제 작품을 하는 욕망이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저도 이런 그림이 일련의 연속성을 띄고 움직임에 대한 욕구들이 생겼겠죠. 그게 자연스럽게 영화라는 매체로 유사성 때문에 연결되기도 하고요. 어렸을 때 그런 환경들이 되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또 이사를 자주 다니면서 친구들과 보내야 되는 시간들보다 적응을 해야 되니까, 그 동네 친구들을 알기 전까지는 혼자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혼자 지내면서 혼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만들어냈던 환경들이 중요한 거죠.
게으름이나 예민함도 책에 쓰셨잖아요. 그게 연출하면서는 어떻게 발현되시는 것 같나요? 물론 영화 할 때는 굉장히 열심히 산다고도 얘기하셨지 만요.
예를 들어, 사람들이 하는 일상적인 기준이나 시각으로 본다면 게으른 거죠. 사람들 만나고 놀고, 시간 보내고 보통 하는 것들, 술 먹고 이런. 누구랑 약속을 해도 나갈 때 진짜 힘들게 나가요(웃음).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 만나러 갈 때도 그렇게 귀찮아하고 힘들어하고 후회하는데, 내가 가기 싫은 자리들, 행사 같은데 있잖아요. 그날은 스트레스 때문에 끔찍해요. 예전에 박지성이 그런 얘기한 적 있잖아요. 축구는 잘 하고 싶지만 유명해지기는 싫다는 걸 너무나 이해하는 게, 알게 모르게 주목받고 있다는 건 좋지만 겉으로 드러나게 주목받는 건 아직도 힘들거든요. 그런 것들. 일상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해야 되는 거, 고지서 나오면 정말 스트레스 받거든요(웃음).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그냥 내버려둬도 되는 건가. 전등 갈아 끼는 거 같이 아주 일상적인 거에 대해서는 너무나 귀찮아하죠. 밥 먹고 씻고 이런 것들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데 나에게 주는 유일한 즐거움들이 몇 가지 있잖아요. 영화 보는 거, 음악 듣는 거, 책 보는 거, 커피 찾으러 다니는 거, 이런 것들은 나한테 너무 큰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이런 것 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거죠. 나머지들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보다 스트레스를 주는 거니까 게으른 거고요.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은 열심히 하고. 또 그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다 혼자 할 수 있다는 거죠.
또 혼자 할 수 있고 영화 창작에 감흥을 주는 것들인 거 같아요.
문화적인 것들에 대한, 현실에 대한 희로애락 같은 제반 감정들은 저한테 크게 작용하지 않는데 문화적인 요소들이 주는 그런 감정들은 많이 휩쓸리는 편이에요. 음악 듣고 기뻐하거나 슬퍼한다거나. 나한테 충만 되는 것들이 더 강력하니까. 종교가 그런 것이잖아요. 신은 불변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도 변하고, 사랑도 변하기 마련이고. 그런데 신은 절대 불변하니까 사람들이 의존을 하는 것처럼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좋은 음악, 좋은 노래, 좋은 영화들은 불변의 법칙이 있고, 내가 점점 커지면서 고도화되는 어떤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것들이 싱거워질 수는 있지만, 그 시대 봤던 명작들, 그 시대 고전들은 나를 속이지 않는 부분이 있고 내가 감탄해마지 않는 부분이 있기에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는 거죠. 그 시간에 더 할애를 하려고 하는거 고요. 사람 만나는 거, 일상적인 의식주 같은 것에 대한 것은 줄어드는 거고요.
음악 얘기도 해주셨는데요, 저는 감독님 영화 전체를 보면서요, <반칙왕>의 장영규 씨 음악이나 <놈놈놈>의 주제곡도 그렇고, 그런 음악들이 감독님 영화의 정수 같거든요. 저는 감독님 영화를 보면 이게 가장 먼저 떠올라요. 웃고 있는데 눈물이 나는 그런 느낌들. 감독님이 영화의 음악은 어떻게 만드시고 작업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내가 얼마 전에 신민아씨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는데, 영화를 왜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니까 음악이 있는 예술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최근에 그것보다 더 근사한 표현은 못 본 것 같아요. 음악 자체를 좋아하는 거고, 그게 어떤 영상에 입혀졌을 때 한층 강렬해지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동어 반복되는, 그림도 슬프고, 음악도 슬픈 걸 봤을 땐 동어반복이고 덜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언밸런스한, 조금 느낌이 다른 것들을 했을 때 아이러니컬하게 감정이 배가 되는 걸 느꼈었고, 저는 가끔 그렇게 음악을 사용할 때가 있어요. 슬픈 장면이었는데 음악을 오히려 다른, 경쾌한 음악을 넣음으로써 이상하게 더 아련해지고 슬픔이 도출되는 것이 매력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음악을) 입혔을 때 새롭게 획득되어지는 걸 느꼈었고. 그리고 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 음악 들을 때 그림들이 떠오르는 음악들도 많잖아요. 와 이런 그림에 이런 음악을 넣으면 어떨까, 와 이런 그림에 이런 음악을 붙이면 어떨까 상상을 하고, 그러면서 휘발성 있게 확 올라가는 시청각적 감정들을 고조시킬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음악으로 더 배가 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아요. 또 기본적으로 음악을 좋아하고.
새로 들어가는 ‘아열대’는….
지금은 <악마를 보았다>로 바꿨어요.
네, 새 작품에서는 어떤 음악이나 그림이….
지금은 너무 (인터뷰) 시간이 짧아서요. 음, 저는 작업할 때 항상 음악을 먼저 들어요. 영화가 어떤 형태를 갖추기 전에 반복해서 듣는 음악이 있어요. 예를 들면, <달콤한 인생>때는 ‘콜드 플레이’ 음악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놈놈놈> 때는 라틴 음악을 많이 들었고요. 그런 음악을 들으면서 그런 분위기를…. <달콤한 인생> 할 때 ‘콜드 플레이’ 음악을 쓰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콜드 플레이’를 들었을 때 느꼈던 음악의 분위기를 자꾸 영화에 넣으려고 그래요. <놈놈놈> 때는 쿵 짝 하는, 달려야 하는 느낌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라틴 음악을 많이 들었죠. 이번 영화는 서늘한 클래식을 많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든가. 들으면 되게 서정적이면서 서늘한 음악들 있죠. 그런 음악들이 내 몸 안에 배고 그 음악이 주는 정서와 리듬감과 호흡과 아우라가 영화에 투영될 수 있도록 작업할 때 마다 어떤 음악을 듣는 편이고. 도 영화들어가기 전에 음악 감독을 먼저 선정을 해서 내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어떤 음악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그 음악을 먼저 만들어달라 그래요.
배우보다 먼저요?
그럼요. 지금 그런 경우죠(웃음).
그럼 지금은 어떤 분이?
모그(MOWG)라는 베이시스트인데, 모를 거예요. 마니아만 듣는 연주자인데, 저랑은 단편 <선물>같이 했어요.
아, 제가 어제 <선물> 챙겨보고 왔는데, 음악 좋던데요.
음악을 세련되게 하고 실제 연주도 잘하고요. 그 베이시스트 친구가 음악을 만들었고 그 음악을 지금 듣고 있어요, 계속해서.
확실히 감독님은 종합예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 그럼요(웃음). 영화는 모든 분야에 교양을 가져야 할 것 같고요, 교양이 안 되면 감각이라도 키워야 할 것 같고요.
감독님을 규정하는 수사로 ‘스타일리시’가 많이 쓰이잖아요. 감독님 생각은 어떠세요?
그 스타일리시라는 것이 단지 영상이 스타일리시라고 한다면 난 반대에요. 이 사람이 어떠한 자기만의 영화를 만드는 스타일이 있다는 측면이 있다면 어떤 감독이든 듣고 싶을 것 같아요. 내 영화가 장르가 다 다르고, 그래서 다른 것이 보여 지는 느낌이나 정서가 다 다를 수 있지만, 공통된 어떠한 정서가 있다, 그게 그 사람의 스타일이다, 이렇게 된다면 만족하지만요. 예를 들어 <장화, 홍련>부터 시작해 <달콤한 인생>, <놈놈놈>까지 화면 느낌 때문에 스타일리시라고 얘기하면 조금 잘못된 거고. 그렇다고 하면 <반칙왕>과 <조용한 가족>은 이야기 중심으로 간 영화기 때문에 그러면 스타일이 없는 건가. 이야기의 스타일을 놓고 얘기한다면 저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듣고 싶어 하는 얘기인 것 같아요.
특히나 장르가 다 달리 만드셨고, 이야기 중심보다는 더 강조하는 게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또 봉준호 감독은 사회파, 박찬욱 감독하면 죄의식, 복수 하는, 대중이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어떤 카테고리가 없어서 오해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럴 수 있어요. 내가 영화에 대해 명확하게 얘기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어떤 이야기의 서사보다는 미장센의 서사로 추구하기 때문이고요. 그게 가장 극대화된 것이 <장화, 홍련>이나 <달콤한 인생>이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달콤한 인생>에서 빛과 어둠이 말을 한다는 것처럼, 이미지의 서사에 대해서 후반 세 작품은 그런 쪽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고요. 그런데 이번 영화는 다시 이야기에 집중하는, 그러면서도 내가 그 동안 해왔던 이미지를 얘기하는 방법과 같이 좀 더 밀착시켜서 영화를 만들 생각이에요.
사실 전 관객으로서 <장화, 홍련>에서 어떤 배신감을 느낀 1인이거든요(웃음). 사실 그래서 이번 <악마를 보았다>가 더 기대가 되고요.
작품의 모양새와 그 작품의 꼴을 가지고 방법을 찾는 거니까. 이번엔 전작들과 다른 어떤 틀과 모양새, 꼴의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걸 따라가는 거지, 내 영화에 어떤 화법이나 문법 자체가 바뀌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는 것이지.
감독님에게 장르라는 건 어떤 의미를 지닌다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장르를 선택하면서 주제를 선택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느와르를 선택했을 때 한 인간의 흥망성쇠를 다룬다고 생각했고, 한 사람의 어떤 파멸과 추락을 얘기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호러를 했을 때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 그런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것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 고요. 서부극을 했을 때는 뭐랄까, 서부극이 가진 기본적인 구도들, 최고인 상태에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 그 욕망을 쫓아가서 미친 듯이 달리는 욕망의 질주, 욕망의 속도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그 장르를 선택하면서 그 영화의 주제를 선택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한편으로는 그 장르가 내가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가 하는 일종의 팁일 수도 있고요. 관객들이 그 장르를 했을 때 그 장르를 선호하든 아니든 그 장르의 법칙에 맞춰서 영화를 따라 올 거라는 기대도 있는 거고.
일종의 관객과의 줄다리기인 셈이네요.
네, 관객과의 퍼즐게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숏컷>을 보면, 서문에 ‘중요한 것은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백수 생활 10년 사이에 사실 여러 가지 일을 하지 않으셨나요?
내가 한 게 연극연출이랑 광고 아트디렉터를 한 적은 있어요. 그런데 그걸 한 시간만 따지만 1년이 채 안돼요. 10년 넘게 한 백수생활 동안 그 기간을 모아놓으면 1년 밖에 안 되는데, 그걸 가지고 뭘 했다고 하면 좀 창피한 일이고(웃음). 중요한 건,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결국 내 삶이잖아요. 누가 책임져 주지도 않는 거고. 어떤 멘토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난 그런 멘토도 없었고. 내가 결정한 걸 했을 때, 그것이 어떤 결과를 봤을 때 나한테 돌아오는 것이지 남의 생각, 남의 말을 들었을 때는 결국 좋게 되도 후회하고M 나쁘게 되고 후회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가 들었을 때라도 내 책임이니까 원망할 일도 없고(웃음). 또 자기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거죠. 아, 내가 이런 것 들이 풍부하고 이런 것 들이 결핍되어 있구나. 이런 것을 자기가 온전하게 알 수가 있는 거죠.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 그래서 돌아온 결과에 대해 자기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렇게 살아온 거라고 자부하세요? 만족도 하시고요?
자부도 하고, 만족도 하고요. 절대로 남의 생각대로 살아오지 않았고 내가 내 삶을 결정한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달콤한 인생>의 선우가 그렇게 집착을 하는 군요?(웃음).
(웃음) 결국 다 자기에서 비롯된 일인데, 남한테 그러는 거죠. <달콤한 인생> 경우는 자기가 그렇게 된 것이 남의 탓인 줄 알고 계속 찾아다니면서 복수를 하는데, 되게 헛헛하잖아요. 결국 아무한테도 이유를 찾을 수가 없고, 결국 자기 자신한테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가는, 성숙하지 못한 한 남자의 이야기였죠.
|
첫댓글 님좀 짱인듯 ^-----------^v
와우! 감사합니다. 잘 읽을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