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관저
구 관저(舊 官邸)는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했던 곳으로 노태우 대통령 재임기간인 1990년에 준공되었다. 대통령 가족의 사적인 공간이기에 청와대 내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공간으로 취재진에게도 잘 공개되지 않았다. 이후 노무현이 재임 중인 2003년 3월과 11월에 관저 입구를 공개한 적이 있었으며 이명박도 재임 중에 가족 생활과 관련한 모습을 공개한 적이 있다. 문재인도 재임 중에 관저 입구에서 출근하는 모습을 몇 번 공개했었다.
박근혜가 재임 중일 당시 계약직으로 근무하며 집사 노릇을 했던 김막업이 훗날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박근혜의 일상이 공개되었다. 이때 관저의 구조도 알려졌는데 그의 진술에 따르면 관저는 내실과 별채로 나뉘며 별채는 경호원이 상주하는 곳이었다. 당시 내실은 침실, 서재, 피트니스 룸, 소식당, 한실, 파우더 룸 등이 있었으며 대통령 침실엔 침대, 화장대, 서랍장, TV, 책상, 노트북, 인터폰 등이 비치되어 있었다. 별채에는 경호실, 조리실, 대식당, 접견실 등이 있으며 대식당은 외부 방문객이 식사하는 곳이고 접견실에는 회의용 탁자, 원형 식탁, TV 등이 있었다.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떠날 때 전두환·노태우·노무현은 임기 마지막날도 청와대에서 머무른 뒤 다음 날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 청와대를 떠났으며 김영삼·김대중·이명박은 임기 마지막날에 청와대를 떠나 자택에 간 뒤 자택에서 자정까지 대통령으로서의 임무를 맡았다. 한편, 최규하와 박근혜는 후임 대통령이 정해지기 전에 물러났는데 두 사람은 모두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도 며칠 더 청와대에 머물렀다가 떠났다. 한편,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과 동시에 입주하였으나 문재인은 시설 정비 사유로 취임한 지 3일째가 되어서야 입주했다. 이는 관저 준공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노태우 때 지금의 본관과 관저를 신축하기 전에는 구 본관의 1층을 대통령 집무실로, 2층을 대통령 관저로 사용했다. 이때는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에 2개의 셔터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노태우 때 구 본관 뒤편에 지금의 관저 건물을 지었는데 주거 공간의 기능을 최대한 살리면서 전통 건축 양식을 도입했다. 생활 공간인 본채와 접견 행사 공간인 별채를 배치하고 앞마당에는 전통 양식의 뜰과 사랑채를 만들었다. 대문은 인수문(仁壽門)이라고 하는데 '이 문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질고 인덕이 많으며 장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관저 근처에는 오운정이라는 정자와 침류각(枕流閣)이라는 건물이 있다. 원래 지금의 관저 자리에 위치했지만 신축 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이동됐다. 오운정 외에도 청와대 경내에 2~3개 정도의 정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철거하고 남아있지 않다. 오운정과 침류각 모두 지어진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190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북궐도형에 두 건물이 모두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승만 시대에 지어졌을 거란 얘기도 있는데 지금 오운정 현판도 이승만의 친필 글씨다.
소위 미남석불로 불리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도 관저 주변에 위치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원래 경주시에 있었지만 일제 시대 때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이 총독 관저로 옮겼다고 한다. 1930년대 관저를 신축하면서 불상도 함께 옮겼다가 1989년 청와대 관저를 신축하면서 다시 지금의 자리로 이동했다.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함께, 관저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구 관저로 변경되었다.
청와대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