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스본이 철공소 형태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100여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중소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는 권오현 사장의 사업마인드가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그중 첫번째가 ‘제품개발에 중점을 두는 경영방침’이다.
이전까지 자동차 정비기기를 생산하던 회사들은 대부분 외국회사의 하청업자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나라에서 정비기기를 생산하는 곳이 몇 군데 되지도 않았지만, 자사의 이름을 내걸고 제품을 생산하기보다는 외국기술을 받아들여 그에 걸맞는 제품을 찍어내는데 급급했다. 거기다 회사를 꾸려나가기도 버거웠던 1980년대, 정비기기 생산업체는 대부분이 생산량을 유지하는데 주력할 뿐 제품개발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권오현 사장은 하청업자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데 앞장섰다. 특히 기업에게 있어서 ‘서비스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 그는 기술력이 바탕이 되는 제품이 출시될 경우 헤스본의 시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쓰기 편리하고 질 좋은 제품에 철저한 서비스가 더해진다면 헤스본이라는 상품을 마다할 고객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려운 시기였지만, IMF 이전인 1997년과 동일한 매출을 올리는 것에 용기를 얻었어요. 이 정도라면 외국 경쟁력을 갖추는데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죠. 리프트야 우리 제품이 최고였지만 그것만으로는 더 이상의 시장개척은 힘들다고 보았습니다. 단순히 작동되는 하드웨어가 아닌 기술력이 축적된 제품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확고한 결심을 한 권사장은 제품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무모한 짓이라는 말을 들어가면서도 제품개발을 늦추지 않았던 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널리 보급될수록 좀더 편리하게 자동차를 정비하고자 하는 욕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확신, 이것이야말로 권사장을 도전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20여종이 넘는 새로운 제품이 개발되었다. 타이어의 기압상태를 쉽게 체크할 수 있는 타이어 바란스부터 공해물질의 배출상태를 알 수 있는 환경보호 측정기까지 헤스본이 선보인 제품은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이는 보다 빠르고, 정확한 정비를 요구하는 소비자들과 이를 만족시켜야만 하는 정비소 관계자들의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켜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헤스본의 제품을 찾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고도 할 수 있다.
나아가 강화된 서비스 정신은 헤스본의 매출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타회사의 경우 제품만을 판매하고 사후처리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하는 경우도 많았고, 조립을 주로 하는 회사는 기계가 망가져도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실 어떻게 보자면 제대로 된 사업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헤스본은 정비에 필요한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물론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에 대해 빠른 애프터서비스를 해주었기 때문에 소비자들로부터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틈새시장에 대한 최적의 전략
오르지 못할 나무를 마냥 쳐다보기보다는 적당한 나무를 정복하는 것, 이것이 권오현 사장의 또다른 경영마인드다. 권사장은 자동차 정비관련 제품이야말로 우리 나라 경제실정에 적격인 생산아이템이라고 말한다. 특히 대기업 위주의 생산체계를 갖춘 국내에서 중소기업이 브랜드를 내건 제품으로 승부하기란 힘겨운 일이다.
따라서 권사장은 척박한 국내 정비기기 산업에 과감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나아가 미래시장에 대한 예측력도 크게 작용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동차 산업이 번창할 것이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동자 정비 산업도 번창할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우리 나라는 1970년 이후 급속도로 경제발전이 이뤄지면서 동시에 생활환경도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이와 동시에 나타난 현상이 바로 한 가구당 차 한대 갖기. 권사장의 앞을 내다보는 안목은 딱 맞아 떨어졌다.
실제로 1980년대 들어 우리 나라에 자동차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했으며 현재는 집집마다 차 한, 두대 정도는 보유하고 있다. 자동차가 많아지는 것에 비례해서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이 정비소다. 특히 요즘같이 자동차 판매가 한계에 다다를 때일수록 정비소에 들르는 일이 잦아지므로 정비업계에는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이같은 경제상황과 고품질의 제품이 개발되면서 우리 나라 정비소에서는 헤스본이라는 이름이 내걸리게 되었다. 권사장의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적중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일인자가 되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나 마찬가지지요. 외국에도 판매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진정한 일인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일본은 고임금으로 제조업이 휘청거리고 있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도 가격이 워낙 비싸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 일본에 비해 고임금이 아니면서도 일본과 유사할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권사장은 중소기업이 자사 제품을 생산하기가 버거운 우리 나라에서 황무지라 할 수 있었던 정비기기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이는 틈새시장의 성장가능성을 파악, 그에 적절한 전략으로 승부하고자 했던 권사장의 경영마인드가 적중한 것이다.
그러나 권사장은 “회사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인은 사장 개인의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전직원의 일치단결이다.”라며 그 모든 공을 직원들에게 돌린다. 제품을 개발하는 연구소 직원들이나 제품을 만들어내는 생산부 식구들 모두 남이 아닌 내 일처럼 일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는 것이다.
대리점 사장도 주주인 회사
“우리 직원들은 각자가 회사의 주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합니다. 따라서 생산성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헤스본에서 근무하는 100여명의 직원들은 장기근속자가 대부분이다. 철공소 형태에 지나지 않았던 지난 날부터 정비업계의 신화적 회사로 떠오른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직원들이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권오현 사장의 노력 때문. 권사장은 눈앞의 수익성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비기기를 생산하면서 서비스정신을 도입한 것도 바로 이런 마인드 때문이다. 이는 고객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적용된다. 현재 팀별로 운영되는 경영방식은 직원 스스로가 목표를 정하고 그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일하면서 느꼈던 불만을 다음 업무에서는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회사를 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또한 직원들뿐만 아니라 헤스본의 제품을 판매하는 대리점 점장 역시 헤스본을 자신의 회사처럼 여긴다. 바로 28개 대리점장이 주주로 참여하는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 이에 대해 권사장은 자신의 권유가 아니라 헤스본의 미래성을 믿고 너도나도 주주로 참가했다는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한미은행, 신한은행 역시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이는 헤스본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공공성까지 갖출 수 있게 해주었다.
헤스본이 수출을 중심으로 급속히 성장하자 코스닥 등록을 권유하는 의견도 많다. 권사장은 코스닥 상장에 대해 억지로 추진하는 것보다 아직은 회사의 내실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더구나 코스닥 상장같이 중요한 결정은 자신이 아닌 주주총회를 거쳐서 판단할 것이라고 한다.
“저는 헤스본이 벤처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이 하나같이 내일처럼 앞장서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특허나 실용실안을 통한 매출신장이 50%가량을 차지하는 것을 봐도 그렇지요. 항상 도전하는 벤처정신으로 회사를 꾸려나가고자 하는 것이 제 마음이기도 하구요.”
경영은 예술이다
헤스본이 중점을 두는 내년도 경영목표는 다름 아닌 수출 증대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전략제휴만 해도 100억원이 넘는 수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권오현 사장은 수년간 축적되어온 신기술과 적절한 서비스가 이같은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의 시장은 아시아가 아닙니다. 헤스본은 전세계 자동차 인구를 고객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다 편리하게 자동차를 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헤스본이 추구하는 목표입니다.”
헤스본을 굴지의 중소기업으로 만들어낸 원동력은 미래를 내다 볼 줄 아는 안목과 불도저처럼 밀어붙인 기술개발, 그리고 철저한 서비스 정신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탄생했다. ‘경영은 예술이다’라는 말은 결코 빈 말이 아닌 듯하다.
“정비시장에 서비스라는 새로운 정신을 도입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나 할까요. 남들은 하지 않았던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같은 중소기업이 해야할 몫이라 생각합니다.”
중소기업인의 표본을 몸소 보여준 권오현 사장, 그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넓은 시장을 향해 도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