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무선호출기(일명
‘삐삐’)가
일반화하면서는 공중전화 부스 앞에는 알림을 확인하려는 사람들 줄이 늘어섰다.
삐삐를 대신하는 발신 전용 무선전화기(시티폰)가
보급되면서 전화 부스에 늘어선 줄도 많이 줄더니,
휴대전화가 등장하자 삐삐와 시티폰은 한순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비슷한 시기에
천리안과 하이텔,
나우누리 같은 PC통신은
컴퓨터로 세상을 연결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대중화하면서 PC통신은
점차 사라지고 사람들은 ‘다음
카페’와
‘한메일’로
세상과 소통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블로그와 뉴스,
쇼핑 등을 앞세운 네이버가 세계로 가는 입구였다.
막강한 구글도 한국에서는 네이버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최근 국내
인터넷 시장에서는 의미심장한 숫자가 나왔다.
2026년 7월
기준 구글 앱의 국내 월간활성이용자(MAU)가
네이버 앱을 처음 제친 것이다.
모바일인덱스 집계에 따르면,
구글 앱의 7월
MAU는
4702만2854명으로
네이버 앱(4684만5017명)보다
17만7837명
앞섰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21년
3월
이후 구글 앱이 네이버 앱을 앞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이
숫자로 구글이 한국 검색 시장에서 네이버를 제쳤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용자들의 정보 탐색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탄은 분명해 보인다.
기존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생성형 AI를
이용해 질문하고,
검색 결과를 요약해서 읽다가 추가 질문을 하면서 구매와 예약 등으로
연결된다.
챗GP와
제미나이(Gemini)
사용자가 늘고,
AI 검색 기능도 확대되는 상황에서 AI 검색은 구글 앱 사용을 촉진한 것이다.
PC통신과
다음,
네이버로 이어진 한국인들의 ‘인터넷
입구’는
이제 AI와
각각의 앱으로 나뉘고 있다.
구글은 일상의 정보 탐색 도구로 깊게 들어왔다.
새로운 검색 경험을 누가 더 편하고 빠르게 제공하느냐,
이용자들이 궁금한 게 생기면 가장 먼저 어디를 여는지에 기업의 생존
명운이 달렸다.
정당의
민주주의는 획일적인 순응 속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나와 다른 목소리,
불편한 진실을 인내하고 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지도력은 강제된
‘권력’을
넘어 진정한 ‘신뢰’로
거듭날 수 있다.
정당에서
윤리위원회는 흔히 ‘칼’에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진정한 윤리위원회라면 권력을 지키는 칼이 아니라,
권력을 엄정하게 비추는 거울이어야 마땅하다.
잘못이 있다면 누구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 정당정치의 기본이다.
그러나 반대파를 침묵시키고 당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징계가
활용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윤리가 아닌 ‘정치적
호위무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의 운영 과정을 지켜보는 시선은 착잡하기만 하다.
징계 대상자 대부분이 장동혁 대표에게 사퇴를 요구해온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권영진 의원은 당내 쇄신 모임을 통해 장 대표의 사퇴를 요구했고,
진종오 의원은 무소속 한동훈 의원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징계 대상에 올랐다.
조경태 의원 역시 당내 갈등 과정에서 윤리위에 제소됐다.
그런 가운데
윤리위 내부에서는 공정성과 운영 방식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 일부 위원들이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자리를 떠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처럼 윤리위 자체의 공정성이 논란이 된 상황에서 장동혁 대표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해온 의원들을 잇달아 중징계한 것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내세운 ‘당의
기강 확립’이라는
명분마저 스스로 훼손하는 모양새가 됐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강경한 징계는 반대파를 잠재우기보다 오히려 강력한 반발을 낳는 부메랑이 되곤 했다.
당내 비판 세력에게 “권력의
노선에 저항했기 때문에 부당하게 탄압받았다”는
피해자 프레임과 결집의 명분을 고스란히 쥐어주는 격이기 때문이다.
반대하면
징계하고,
징계로 당원권을 묶어 입을 틀어막는 정치가 과연 당의 기강을 세우는
길인가,
아니면 당대표의 1인
권력을 공고히 하는 길인가.
장동혁 대표가
진정으로 당을 쇄신하고 혁신하려 한다면,
국회에 5·18을
폄훼하는 세력에게 길을 터준 이진숙 의원의 제명안부터 돌아봐야 할 것이다.
나아가 눈에 거슬리는 반대파를 당에서 도려내기에 앞서,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사퇴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부터 성찰해야 마땅하다.
정당의
민주주의는 획일적인 순응 속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나와 다른 목소리,
불편한 진실을 인내하고 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지도력은 강제된
‘권력’을
넘어 진정한 ‘신뢰’로
거듭날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
윤리위원회의 차가운 칼날이 진정으로 당의 기강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당대표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방패에 불과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결국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통해 판가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