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지애(千年至愛) 청룡은 주작을 사랑했다고?]
"아 그럼 너는 원래 여기 정천 학관에 다녔었는데 우리가 못 본 거 뿐이구나?"
내가 흑주를 곰 인형 안듯이 안고 있는 자세로 물었다.
준후는 대굴대굴 구르고 있었고 남궁환은 수련을 한다며 나가 버렸다.
"뭐...대충 이야기 하자면 그런 거지만...난 올해 17세로 2학년 이걸랑?"
백호의 후계자인 준후가 싱긋거리며 말했다.
준후 준호...이름이 비슷비슷 한데 성까지도 같다..
먼 친척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전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수령은 16세 미연은 15세인데...수령과 미연이 같이 들어가서 둘 다 1학년 이야"
"푸웃"
이 대목에서 미연이 실실 쪼갰다.
"뭘 쪼개!"
수령이 소리쳤다.
"푸하하하!!!"
"시끄러!!!"
"니들이 더 시끄러워"
준후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넌 검을 쓰지?"
준후가 물었다.
"응. 후계자에 따라서 각자 사용하는 무기가 다른가 봐?"
"그렇지"
"넌 무슨 무기를 사용하는데?"
"나는 주술."
컥...이게 웬 말이냐?
보통 어떤 무기를 사용하냐는 말을 들으면 꼭 주작이 주술을 하고 현무가 검을 들고 백호가
활을 쏘며 청룡이 도를 휘두르는 모습이 떠오르는데...
어째 청룡 빼고 각각 다르냔 말이냐?
게다가 백호가 주술?
"주술...이라니?"
"하핫...주술이라고 꼭 바람을 일으키는 것 만이 아니야. 돌풍을 부르기도 하고 칼날을 만들
어 내기도 하고...하여간 가지가지야."
"헉...그럼 현무는?"
"현무? 강기야. 아까 너에게 쏜 화살...사라졌지?"
그러고 보니 쏜 직후 정신이 없어서 못 봤는데 화살이 보이질 않았다.
"그 화살은 미연의 강기로 쏘아진 거야. 그러니까 곧 사라지지"
강기로 화살을 만들어 쏘다니...
대단한 실력자 인가 보다.
"청룡은 그럼 그냥 도야?"
"그렇...게 되나? 하핫...저 녀석은 뇌를 이용하기 때문에 힘을 쓰면 도에 뇌전이 감쌓이니
까...약간은 조심하는게 좋을꺼야."
"심하게 약간이겠다?"
"하핫..."
"근데! 너 남자 맞어?'
갑자기 미연과 신경질을 내다 말고 수령이 물었다.
"그럼 넌 내가 여자로 보이니? 내가 젠던 줄 알어?"
"말도 안돼!!!! 주작의 서는 여성용 이란 말이다!!! 여자가 익히기 적합한 무술이라고!!!"
그 말에 나는 뜨끔했지만 다시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혹시 알어? 내가 특이 체질 인지..."
무림에서 특이 체질이 많지는 않지만 유명한 사람을 보면 꼭 무공을 익힐 수 없거나 타고난
무공을 익히게 되어있는 체질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들먹였다.
"그랬다면...넌 이미 정천 학관 의술관인 자알고쳐 의원에게 끌려 갔을 껄?"
.....이름이 왜 저럴까...
여기있는 사람들의 이름은 정말 정말 특이하다.
그들의 부모가 특이하거나 여기 모인 인간들이 특이한지 둘 중하나 일 것이 분. 명. 하다...
이름이 뭐?
푸웃...자알고쳐? 푸하하하!!!
"큭큭..."
"웃지마. 이름에 콤플렉스가 있는 인간이야"
"가 봤구나?"
수령의 질린 듯한 얼굴을 보고 내가 물었다.
"하핫...수령이는 전에 다쳐서 갔다가 뇌신의 기를 모르고 숨기지 못했거든...그래서 일 주
일간 실험대상이 되어서 온갖 고생 다 하고 나왔지"
준후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웃었다.
"잘 한다. 인과응보! 당해도 싼 짓이었겠지"
"으윽...뭬야?"
"흥이다!"
내가 흑주 머리 위에 턱을 올려 놓고 혀를 쏙 내밀며 말했다.
"칫칫...어떻게 저 애가 남자인 거야? 그렇게 빌고 또 빌었는데...그렇게...빌고..또..."
"뭐?"
내가 수령을 보고 말하자 수령은 얼굴이 시뻘게진 체 밖으로 나가 버렸다.
"제 왜 저러니?"
내가 준후를 보고 물었지만 준후와 미연은 얼굴이 굳어진 채로 씁쓸하게 웃을 뿐 이었다.
"이봐 뭔데..."
내 말에 준후가 나를 돌아보았다.
"정말 기억 안나?"
"뭐가?"
"너 정말 남자야?"
"뭐 때문에 그러는데!!!!"
"이런 바보...역시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어..."
"뭐가!!!!"
내가 버럭 화를 내며 물었다.
그러자 입을 열지 않았던 미연이 나를 향해 말했다.
"심경의 구슬...역시 허세였어..."
심경의...뭐?"
내 말에 미연이 짜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심경의 구슬!!!! 멍청이 같으니라고!"
한 살어린 꼬맹이 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 참 기분 나쁘다...
수령이 왜 화를 내는지도 대강 이해가 간다.
"그게 뭔데!"
"심경의 구슬은 '애'(愛)를 이루어 주는 구슬이야."
"미연 그만..."
"하지만!!!"
"저 녀석은...아니 잖아...말 해봤자 도움이 안돼"
웬지 모르게 싸늘한 모습의 준후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더니 둘은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 모습을 흥미롭게 보던 준호가 물었다.
"무슨 소리야 유하?"
"나도 몰라"
흑주의 머리에 얼굴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흑주의 머리에선 향긋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향이 났다.
내가 푸욱 빠질 정도로 말이다.
* * *
".........수령...내 말이 맞았지?"
".............."
"그만둬 미연...."
준후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하아...억울하다..."
수령의 한 깊고도 슬픈 말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난.....난....천년이나 지났어도 바랬고.....기억도 해 주었는데...왜 남자지? 역시...허락
을 해 주시지 않는 건가..."
"....그게 아니야 수령! 심경의 구슬은 이미 처음부터 거짓이었던 게..."
"하지만 우리 외숙부는 이루어졌었잖아...이 천년 전의 외숙부는...이루어 졌는데...왜 나
는..."
"...............무언가 착오가 있을 꺼야 수령. 너무 심려하지 마"
"위로는 고맙다 준후"
"위로가 아니다"
"너의 그 딱딱함은 천년이 지나서도 여전하군...유들유들하게 보이려고 유하라는 아이 앞에
서 그런 거냐?"
"남이 나를 딱딱하게 보는 것이 별로 좋지 않거든"
준후가 어깨를 으쓱 해 보이며 말했다.
"...........정말 억울해..."
수령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난 오직 그녀 만을 바라보기 위해...천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계속..."
그러자 미연이 수령의 머리를 자신의 품 안으로 감쌌다.
"울고 싶으면 지금 여기서 실컷 울어"
"큭...흡...나는...나는..."
"사내 새끼가 나잇살이나 먹어서 울기는..."
"크흑...불행한 걸 어떻게! 이런...이런..."
수령은 미연의 품에서 한 없이 울어댔다.
* * *
"준호. 너는 사랑 해 봤냐?"
"어? 아니...갑자기 왜?"
"니가 지금 정말 귀여워 보여서"
"장난이지?"
"쳇 이제는 안 속네..."
예전에 준호한테 이런 말을 꺼냈다가 준호의 얼굴이 확확 달아 올라서 새 빨게 지는 아~주
아주 재미난 꼴을 봤던 것이다.
보통 남자가 들었다면 그렇구나 할 수 있겠지만 내가 여자인 것을 아는 준호는 얼굴이 달아
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려 10번 후로는 준호가 속아 넘어 가지를 않았다.(준호가 바보냐?/ 10번 속아 넘어
가면 바보지...)
"내가 바보냐?"
"10번이나 속아 넘어갔으면 바보지!"
"크흥..."
괜히 찔리는 준호는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는 다시 말했다.
"근데 그 녀석들에게 말 안 해도 돼?"
"뭐가?"
"니 성별"
"닥쳐...나는 내가 인정한 사람 외에 가르쳐 준 적은 없어. 그 녀석들...아직도 잘 믿겨지
지 않는단 말이야"
"..........알았어. 하여간 기쁘다."
"뭐가?"
"나도 니가 인정한 한 사람이잖아"
"그래. 그건 그래"
"근데 너도 머리 꽤 자랐지?"
"응. 남궁환 처럼 위로 둥굴게 묶기를 잘했지"
내가 내 묶은 머리를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상해. 넌 어떻게 남자처럼 보일 수 있는 거지?"
"바아보~ 이거야 이거"
내가 걸쭉한 것을 보여주며 말했다.
"뭐야 이게?"
"으응...취음초라는 건데...남자의 체향이 나는 거레. 취음초 마다 다른데..여기다가 매음초
라는 색 풀을 섞으면 이렇게 되. 그렇게 해서 매일 밤에 바르고 자면 다음 날 굳어서 괜찮
아 지거든."
"어떻게 알았어?"
준호가 신기한 듯이 물었다.
"흑주가"
"응. 그렇구나. 고녀석 참 다재다능하네..."
준호가 내 품에 인형처럼 안겨 있는 흑주를 보며 말했다.
"그치 그치?"
내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청아야아~ 좋지? 좋지?"
-유하님이 좋으신다면 저도 좋습니다-
흑주가 수화로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어라? 청아가 먹을 때 말고도 웃는 때가 있어?"
내가 싱긋 웃으며 장난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흑주는 얼굴이 목 덜미까지 붉어지며 나에게서 빠져 나왔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준호가 고개를 절레 절레 지으며 중얼거렸다.
"정말 보여 선생이 아낄만 하군..."
그래서 내가 한 마디 덧 붙여 주었다.
"우리 청아는 천재라니깐?"
* * *
뭐 해가 언제 뜨고 질 새 없이 어느새 해는 저 버렸다.
남 궁환은 또 다시 공부에 빠져 있었다.
벌써 3시간 째다...
다리에 쥐 안 날려나...
하여간 나와 준호는 그런 남궁환을 신기하게 처다 보았다.
흑주라면 가능할까?
뭐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나와 준호는 집어 넣을래야 넣을 수가 없다)열심히 하고 있었다.
벌컥...
갑자기 문일 스르륵 열렸고 한 인영이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끅...딸꾹...주...주..자...아...악...주자아..."
술에 취했는지 약간 어눌린 발음이었다.
그리고 그 인영은 놀랍게도...
"어? 수령?"
준호가 놀라서 물었다.
"흐끅...흐끅...바래...흐윽..."
"왜 갑자기 들어와서 방해를 하시는지요?"
남궁환이 갑자기 들어온 방문객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지만 수령은 술 냄새를 폴폴 풍기며
내 쪽으로 왔다.
"흐끅...흐끅...흐윽...흐읍.."
그러더니 나에게 폭 안겨서 서글프게 우는 것이 아닌가?
어쩌라는 건지...
놀란 흑주가 수령의 목을 베려고 순간적으로(어디서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짧은 단검을
꺼내 목을 내리 치려고 하였지만 내가 손을 들자 손을 떨구었다.
"흑흑..."
"대체 무슨 일 이시죠? 술 냄새가 독하군요..아직 미 성년자 이실텐데 말이에요"
남궁환이 아주 질색이라는 듯이 눈살을 심하게 찌푸리며 말했다.
"아시는 사이 인 거 같은데...실례지만 나가 주시지 않겠나요? 공부에 방해가..."
"아 그래...왕자병 환자님...약은 꼬박 꼬박 챙겨 드시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남에 일에 그렇게 무관심하게 자기 일이 아니라고 모르는 척 남에게 떠 밀려는 그의 행동에
내가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느끼며 그를 안고 밖으로 나갔고 흑주와 준호도 내 뒤를 따랐
다.
생각보다 그의 몸을 가벼웠다.
마치 6살짜리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그 만큼 말랐다는 뜻인데...
이 아이도 나처럼 불행하게 자랐던 것일까?
깊은 산골에 음식 한 번 제대로 못 먹고...
"흑흑..."
그는 이제 정말 서럽게도 울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바둥대던 나를 준호가 붙잡아 밖으로 끌고 나가 뒷쪽 수련 공터에 데
려왔다.
"여기면은 아무도 없을꺼야. 지금은 밤이니까 말이야"
"주작 주작....어째서...흑흑..."
"근데 우는 이유가 뭘까?"
내가 흐느끼는 청룡 수령을 보며 중얼거렸다.
"....헉헉...미연아!!! 여기 있어!!!"
갑자기 준후의 목소리가 내 앞에서 들려 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준후가 숨을 헉헉대며 미연에게 손 짓을 하고 있었다.
"이 녀석...여기 있었네..."
"아 마침 잘 왔어. 이 녀석 좀 대리고 가. 술에 잔뜩 찌들었다"
내가 수령을 준후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아이고 술 냄새..."
준후가 수령을 안아 들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녀석...일잔천일취라도 마신건가?"
미연 역시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잔천일취...말 그래도 마시면 한잔을 마시면 바로 천일을 잠잔다는 아~주 아주 독한 술이
다.
게다가 일잔이라니...일잔이면 아주 고가품임이 틀림없었다.
아....하여간...물어보려던 것이 이게 아니지...
난 준후를 보며 물었다.
"이 녀석 왜 이래?"
내 말에 그 둘의 안색이 약간 굳어졌다.
"알 것 없어"
준후가 약간 쌀쌀 맞은 투로 말했다.
그러자 나는 픽 웃었다.
"뭐? 알 것이 없다고? 야! 다시 말해봐!"
열 뻗힌 내가 악에 받힌 목소리로 꽥꽥 소리를 질렀다.
"뭐가 알게 없어! 알게 없기는!!! 이 녀석 꼴을 봐라! 뭘 알아야 위로를 해 줄꺼 아냐! 다음
에도 나한테 오면 어쩌라고! 어쩌라고! 그냥 손 놓고 니네만 오기를 기다릴까? 내가 부처
야? 성인 군자야? 그렇게 내가 마음이 넓고 푸근한 인간인데다 인내력이 넓은 줄 아냐
고!!!! 차라리 가르쳐 주지 말 꺼면 이 녀석 관리를 잘 하던가! 내가 니네 놀이감이냐? 괜
히 이 녀석이 와서 내 호기심만 부풀렸잖아! 잊으려고 했는데! 어쩔꺼야! 책임져!!!!"
역시 내 말발은...어딜가나 손색이 없다.
내 말발에 눌린 준후와 미연은 멍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뭘 그렇게 혼 빠진 눈으로 나를 봐! 니들이 시체야? 송장이야? 빠딱 안 불어?"
이제는 내가 눈을 치켜 뜬 체 물었다.
알껀 알아야지...
"정말...넌 이상한 애였어"
준후가 킥킥 거리며 말했다.
"와...어떻게 천년이 지났는데도 말발은 여전 한 거지? 난 전혀 늘지 않았다고!"
"미연아 진정해라. 이야기 해 주자"
난 그들의 대화에 머리가 약간 혼란스러워 졌다.
천년이라니?
"후훗...기억 안 나지? 우린 천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고 그 때로부터 천년 후에 환생한 사람
이라는 거.."
준후가 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듣고 있던 준호도 놀라서 외쳤다.
"뭐라고?"
"쉿...목소리를 낮추라고. 후후후"
준후는 즐거운 듯이 말했다.
보다 못한 미연이 말했다.
"미친 놈..."
"아 미연아...오빠한테 그런 결례를..."
"너같은 미친 놈 한테 그런 소리 듣느니 차라리 수령한테 오빠라고 하겠다"
"에고...미연이도 천년 전과 같이 말발은 약하지만 독설로 정곡을 콕콕 찔러 내 여린 마음
을 아프게 하는 구나..."
그러자 나와 준호 그리고 미연이 동시에 외쳤다.
"미친 놈!"
그러자 준후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알았어 알았다고...미안해..."
그러더니 살짝 눈을 찡긋해 보이더니 말했다.
"우리는...약 삼 천년 전에 태어났어..."
"풋 그럼 삼 천살?"
준호가 놀라서 외쳤다.
"말 끊지마. 잇기 힘들어"
준후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알았어"
"훗...그래 우리는 삼천 년 전에 태어나서 천년 마다 환생을 거듭해서 3번이나 이 곳에 존재
한 거야!"
준후가 두 손을 활짝 벌려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나는 그 믿기지 않는 말에 멍~ 해졌다.
"처음에는 우리가 태어난 목적이 있었어. 즉 신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시키기 위
해 만든 심부름 꾼이었지. 그 목적은 아직도 달성되지 못하고 있어..."
삼 천년 간이나?
아니지...환생을 거듭했으니까..생이 짧았을 수도 있겠구나.
"그 임무란 게 뭔데?"
내가 물었다.
"곧 말할꺼야. 말 끊지마."
준후가 나를 째리며 말했다.
흥...지가 째리면 어쩔껀데?
나 역시 째려주자 그는 지쳤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 말을 이었다.
"단 한 명의 사람을 파괴하기 위해 서지..."
준후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단 한...사람이라고?"
"그래. 단 한 사람. 그는 이 세상에 내려진 징벌자나 다름이 없어. 우리는 그 사람의 파멸
을 위해 무려 세 번이나 환생했다는 거지...물론 그도 계속해서 환생을 거듭하고 있어. 우리
랑 같이 말이야...하지만 이런 식으로는...후우...끝이 날 것 같지 않아..."
".........3번이나 우연적으로 환생하기는 쉽지 않을텐데...신이 도와주기라도 한 건가?"
"아...그건 아니야...신은 우리에게 심부름을 맡겼으니 이 세상에 개입을 할 수 없을테니
까...나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그럼 어떻게..."
"윤회의 술수...백호 최강의 주술이야. 나는 죽기 전에 우리 모두에게 윤회의 술수를 걸어주
었어. 덕분에 나는...내가 그토록 좋아하던...무공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지...단전 자체
를 만들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준호의 눈은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우리는 전생의 기억을 되 찾자 마자 널 찾았지. 사실 우리 셋이 만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 무려 10년의 시간이 말이야. 솔직히 전생의 기억을 기억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
고 그걸 미연과 수령에게 일부로 일깨워 준 사람도 나야. 사실 그래야 좋다고 생각했거든.
아 요지를 벗어났군...나는 사실 사파의사술을 쓰는 집안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미연은 마교
에서, 수령은 산 속에 은거하는 무림인에 손에서 자랐더군..."
다들 힘든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 혼자만...힘들었던 게 아니었다고...
"나중에 우리 셋이 정천 학관에 입학했을 때 만해도 널 만날 생각은 못했지. 너는 대체 어디
서 자랐니?"
"화산"
"어?"
미연이 반문했다.
"화산파. 나는 매화검을 쓰는 화산파에서 자랐어. 덕분에 매화검을 조금 쓸 줄 알어"
"오 그래?"
"응.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지?"
"아 그래"
준후가 미안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뭐 그렇게 넷이 만난건데...더 할 이야기는 없어. 사실 우리 넷이 만나면 난 그들의 기억
을 일일이 일깨워 주고 그를 해치울 방법만을 궁리했거든. 너도 기억을 일깨워 줘야겠지?"
준후가 웃으며 말했다.
"아...하지만 나중에 해 줄께...이 둘의 봉인을 깨는데만 해도 엄청난 힘이 필요했거든...
몇 달 후에 시전해 주마"
준후가 큰 인심을 쓰는 사람처럼 말했다.
"근데 너는 왜 가명을 써?"
조금은 조용히 있었던(흑주보다는 못 했으니까)미연이 물었다.
"뭐가?"
"니 본 이름은 은 유하 레며?"
"맞어"
"근데 왜 백 아령이라는 가명을 쓰지?"
"화 천유...화산파의 후계자가 여기에 있거든. 사실 난 가출한 거야. 여기 있는 청아라는 이
름을 사칭하는 흑주와 함께 말이야."
"아...니 본 이름이 흑주였구나?"
미연이 말했지만 흑주는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덧 붙여 주었다.
"말은 못 하지만 듣기는 하지. 하지만 방금 그건 무시한 거야. 널 신뢰하지 못하니까"
준호와 함께 있던 일을 알던 내가 미연에게 말하자 미연이 약간 뿌루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근데...화산파 장로가 너 못 살게 굴었어?"
준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못살게 굴어? 이 봐 더 심하다고!"
갑자기 울분이 받힌 내가 화산파의 매화곡에 갇혀서 얼마나 억울한 나날들(?)을 보냈는지 좔
좔좔 설명해 댔다.
나도 그 동안 쌓인 게 많았나 보다...
나의 열변에 준후가 나를 진정시켰다.
"아...알았어...지...진정해"
"결국 너는 가출해서 화 천유의 눈에 띄면 안되겠네? 화 천유가 니 정체를 알면 큰일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이름을 바꿨잖아"
내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준후가 무언가 궁금한 점이 있다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흑주가 쿡쿡 찌르며 수화를
보내왔기에 잠시 묵살되었다.
-질문의 요지가 벗어난 것으로 아뢰옵니다. 본래 질문은 이 녀석이 왜 그런지 아니었습니
까?-
흑주가 수령을 가르키며 물었다.
"아 맞어!"
그 말에 준호와 내가 동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수화를 모르는 미연과 준후는 아하 하는 나와 준호를 어리둥절하게 보았다.
나는 씨익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이봐 질문의 요지가 벗어났어. 난 분명 이 녀석이 왜 이러고 있냐 였거든?"
내가 잠든 수령을 가르키며 말했다.
그 말에 준후와 미연이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말하기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흐음...기억이 안 나니...하는 수 없지..."
준후가 중얼거렸다.
"잘 말해봐"
내가 성인 군자처럼 말하자 그들이 날 보고 픽 하고 웃더니 준후가 입을 열었다.
"천년지애! 이 얼마나 멋진 말이냐?"
엥?
그게 무슨 말이야?
"천년지애...천년 동안 계속되는 사랑...우리가 환생하는 것은 천년 만에 한 번인 거 알고
있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준후가 말을 이었다.
"삼 천년 전 수령은 너 짝사랑했어. 알긋냐?"
"풋! 뭐?!"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준후가 다시 말했다.
"수령이 너 좋아했다고. 삼 천년 전에. 그래서 삼 천년 전하고 이 천년 전에는 항상 수령이
먼저 죽었어.너 지키려다 말이야. 뭐 천년이 지났어도 항상 느끼는 건데 넌 무~지 무지 둔하
거든? 특히 그런 쪽에서는 말이야."
그 말에 흑주를 제외한 미연과 준호가 킬킬댔다.
준후 역시 킬킬대더니 말했다.
"다시 두 번째 환생을 한 뒤 기억을 찾은 수령은 너에게 꼭 고백하겠다고 마음먹었지. 하지
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니? 둔한 니가 말이야. 결국 수령이 생각해 낸 방법이 심경의 구슬
이야. '애(愛)' 를 이루어 준다는 그 구슬 말이야."
준후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말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마음에 웬만해서는 사랑을 이루어 주지 않는 심경의 구슬은 그
소원을 이루어 준거야. 심경의 구슬은 정말 간절히 바라는 사람만을 이루어 주거든"
이게 무슨 큐피트의 화살 부러지는 소린가?
그런 게 있기나 하는 건가?
"그런데 재수 싸갈딱지 없게도 수령은 심경의 구슬에 소원을 빈 바로 다음 날 징벌자에게 죽
임을 당했어. 그 다음 심경의 구슬이 깨지면서 안에 있던 내용물이 사라져 버렸지."
"허억..."
내가 운 없다는 듯이 수령을 바라보자 준후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 심경의 구슬이 거기서 사랑을 멈추어 주겠냐? 원래 윤회의 술수는 남자로 태어날지 여
자로 태어날지 알 수 없어. 나 혼자라면 윤회를 할 때마다 나를 남자를 하겠지만 다른 사람
은 그러지 못해. 따라서 남자일지 여자일지 모른다는 거야. 뭐 믿거나 말거나 지만 사실 미
연이도 천년 전에는 남자였거든?"
"준후!"
하지만 그 말에 준호와 내가 킬킬대며 웃었다.
말도 안돼...
남자라니 푸하하!!!
내 웃는 모습에 준후가 말했다.
"사실이라니깐? 미연이가 남자였다고! 그래서 성격 그대로 나오지 않냐? 냉철했던 그 성격말
이야. 여자로서는 별로 사랑받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얼굴이 이쁘니까..."
"너 죽을레? 뒤질레?"
"아...살게 해줘. 말이 아직 안 끝났거든"
준후가 유들거리며 말했다.
미연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순순히 물러나 주었다.
근데 순간 미연이 공과 사를 구별하는 성인 군자로 보였다는 것은...내 착각이겠지?
"심경의 구슬은 기회를 주었지"
"어떤 기회?"
준호가 물었다.
"청룡을 남자로. 주작을 여자로 태어나게 하는 것 말이야."
"그걸 어떻게 알어?"
내가 살짝 인상을 쓰며 물었다.
"심경의 구슬 사용법에 나와 있지. 예외 편에 말이야."
참 친절한 책이다.
그런 거 까지 일일이 해 주다니...
"거기에는 이렇게 써 있어. 만약 심경의 구슬이 이루어 주려던 사람 중 이루어 지기로 한,
한 사람이 죽으면 그대로 남자와 여자로 이어서 환생시켜 주기로 말이야. 그것도 시전자 쪽
은 전생의 기억은 갖고 있게 하고 말이야. 물론 우리는 심부름꾼이고 윤회의 술수까지 사용
하고 있기에 전생의 기억은 봉해지긴 하였지만 수령꺼는 약해서 내가 별 힘을 쓰지 않아도
되었지만...역시 힘들었지..."
"요점이 뭐야?"
내가 투덜거리며 물었다.
마치 요점을 뱅뱅 돌려 말하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수령은 심경의 구슬이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아서 실망한 거야. 넌 남자 잖아?"
"그 뿐?"
내가 물었다.
"아니. 그게 간단한 문제처럼 보여? 수령은 정말 전생의 너를 사랑했어. 죽을 만큼 말이야."
"............"
나는 잠시 잠든 수령을 보았다.
"으윽...이런 나쁜 놈들..."
갑자기 수령이 눈을 부시시하게 떴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단 말이다"
수령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아 미안 청룡...심기 건드렸니?"
준후가 물었다.
"아니 백호...심기 까지는 아니야...후후...심경의 구슬은 역시 거짓이었게지..."
아니...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심경의 구슬은 정말 소원을 이루어 주었다.
그리고 수령의 슬퍼 보이는 눈을 보자 그냥 털어놓고 싶었다.
내가 여자인 것을 밝힐 테니...내 마음을 가져가 보라고...
그런 속마음으로 나는 수령의 얼굴로 내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화끈...
수령의 얼굴이 갑자기 붉게 물들였다.
'내...내가 남자한테 얼굴을 붉히다니!!! 나에게 게이 체질이...'
수령이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하는 지도 모른 체 나는 묶었던 긴 머리를 푸르고 그냥 희고 넓
은 옷 소매로 얼굴을 스윽 닦았다.
밤에 금방 발라 놨던 거여서 그런지 금방 지워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수령을 똑바로 처다 보았다.
수령은 기절할 듯이 놀랐다.
자신보다는 약간 검게 탄 얼굴에 약간 묽은 색 입술 색깔과 머리 위로 묶은 머리 때문에 완
벽한 남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머리를 푸르자 허리까지 검고 긴 생머리가 찰랑거리며 내려오고 얼굴을 소매로 한 번 슥 닦
자 잘 눈에 띄지 않았던 우주를 담아 놓고 그 안에 별빛을 넣은 듯한 검은 흑요석의 짙은 눈
에 빛나는 눈동자...
햇빛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을 증명해 주는 듯한 너무나도 깨끗한 피부에 꽈악 물어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붉은 입술...
얼굴을 닦을 때 얼핏 보았지만 그녀는 양 손에 묵주를 차고 있었다.
가녀린 듯한 여자가 끼기에는 너무나...여자?
나는 다시 유하의 얼굴을 보았다.
여자로 보였다.
정말 아름다운 여자...
그리고 수령의 머리를 울리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
"나 여자다. 이제 알았지? 숨긴 거 뿐이야"
"나 여자다. 이제 알았지? 숨긴 거 뿐이야"
내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목소리로 말해 보는 게 몇 달 만인지...
전에는 남자 목소리 내느라고 약간 굵직하게 내느라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익숙해 지니까 꽤
괜찮았지만 꽤 고성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가냘픔은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내보는 내 진짜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도 가냘픔이 살짝 깃들어져 있었다.
우우...(자신을 치켜세우니 좋냐?)
"유하야 말 해도 돼?"
"어차피 같은 동료래 잖냐? 너도 알았는데 이 녀석들이 몰라 서야 되겠어?"
내 말에 준후가 물었다.
"그럼 이 둘은 니가 여자인 거...아 흑주는 알았겠군...아니 청아지...하여간 준호는 유하
가 여자인 지 알았어?"
"응"
"왜 말 안 했어?"
"친구 끼리의 약. 속. 절대 불지 않 겠다고 했거든"
아 준호야...그 말에 내 가슴이 찡~해 지는 구나...
"너...너...그럼..."
수령이 더듬거리며 손가락으로 날 가르켰다.
"아 그래. 나 여자야. 준호도 내 얼굴 보는 것은 처음일껄? 목소리도 그렇고 말이야. 아...
얼마만에 들어보는 내 목소리냐...그치 흑주?"
-예...하지만 후자 꺼 보다는 처음 것이 나았다고 봅니다. 적어도 주인님을 멸시하지 못할
정도의 가냘픔은 없었으니까요-
내 생각을 흑주도 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
하지만 가끔 내 목소리도 내 주어야지.
난 그 굵직한 목소리를 평생 내기는 싫다고.
"왜들 그래?"
내가 패닉 상태로 있는 세 명의 이들을 보며 물었다.
그런제 갑자기 수령이 펄쩍 펄쩍 뛰었다.
"아자!!! 준후! 미연! 봤지 봤지?"
폴짝 폴짝 뛰는 그의 모습은 어린아이를 연상시켰다.
"봤지이?! 심경의 구슬!!! 소원을 들어 준거야!!! 하하하! 내가 이겼다!!!"
이겨...?
뭘 이겨?
내가 준후와 수령을 번갈아 보자 미연이 한숨 푹 쉬더니 말했다.
"천년 전 어느 날 둘이 싸운 적이 있어. 심경의 구슬은 바보 같은 거라고 준후가 버리라고
했거든. 그런데 수령은 아니라면서 둘이 빡빡 우겨댔거든"
그 다음은 안 봐도 뻔하다.
"그래서 둘이 내기를 했다...이거지?"
"그래. 내기에서 이긴 사람은 진 사람을 한 달간 노예로 부려 먹는 다는 조건 하. 에.
서..."
"으윽...유하 유하야...왜 말했니!!!"
준후가 절규했다.
뭘 왜 말해야...
쯧쯧...불쌍하게 되었군...
"불쌍하긴...니 운명을 받아들여라"
내가 절규하는 준후를 보고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수령이 나를 끌어 안았다.
"다시 봐서 기뻐 주작...심경의 구슬이 소원 이루어 준 거 맞지?"
"몰라. 아직 준후가 나 전생 기억 안 풀어 주었거든"
내가 매정하게 수령을 밀며 말했다.
"푸하하 준후!!! 내 수하여!!!"
"으윽..."
수령의 말에 준후가 절규했다.
"우하하!!! 신난다! 실컷 부려먹어야지!"
불쌍한 백호의 운명은 사악한 용에게 어찌 되는 걸까...
궁금하기도 하다.
뭐 나는 상관없으니까 말이다.
현무도 이 상황을 아~주 재밌게 보는 거 같고 말이야 하하하!!!
카페 게시글
로맨스판타지소설
○●주작의 서(朱雀 書)●○-제 13장 [쳔년지애(千年至愛) 청룡은 주작을 사랑했다고?!]
루루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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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12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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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행이에요!! 수령. 유하가 여자인거 알아서
나도 그 뭐시기 그뭐냐 그 술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