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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배형규 목사님을 비롯한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님에 대한
인터넷상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과장,왜곡된 사실들을 읽으면서
어느 누군가 내막을 잘 아시는 기독교인들이 사실을 바로 잡아주시길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이제 더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어서 한동안 실컷 울고 나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글을 씁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싫어하시는 기독교인이었고,
지금은 그 기독교에 큰 회의와 자괴감, 냉담에 빠져 교회 발걸음을 끊은지 12년째되는 사람입니다.
기독교의 부패와 비리, 감추고 싶은 비밀스런 죄악들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고,
그에 대한 혐오감을 누구보다 심하게 느끼고 분노하며, 이땅을 뜨는 날까지 교회는 다니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살아왔습니다.
이번 피랍사건이 처음 보도되었을때 명단에 있는 샘물교회 배형규 목사님 이름을 보고 긴가 민가 했다가
제가 전에 도움 받았던,참 고마웠던 바로 그 목사님이라는걸 알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잊고 있던 몇년 전 일이 기억이 났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이 가까운 사랑하는 제 오빠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저희 가족들 모두 거의 패닉 상태까지 갔었던 적이 있어요.
원래는 정통 기독교에 속한 모 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우연히 한 친구를 통해 그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어
어떤 말도 통하지 않고, 남들 부러워 하던 직장도 때려치고, 심지어는 집까지 나가서 혼자 그 교회 근처 쪽방에 자취를 하며 살았습니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사람이 변해버리고 심하게 비이성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도무지 제정신인 사람이라고는 볼수 없는 사고를 하며
가족도 버리고 친구도 버리고 기존에 다니던 교회에 대한 적대심에 사로잡혀 비난하고...
워낙 당사자와 가족들이 받은 상처가 많았던 사건이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라,
가족들 사이에서는 약속이라도 한듯 입밖에 내지 않는 사건이 되었고,
그 사건의 여파는 제 오빠에게 지금도 후유증으로 남아있습니다. 제 자리로 돌아왔지만, 상처는 남아있는거지요...
어떻게 해서든 제 오빠를 돌아오게 하려고 우왕좌왕,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었지요.
저는 그때 교회에는 발길을 끊은지 오래된 상태였고, 제가 기독교를 멸시하고 교회에 환멸감을 보이면서
기존의 기독교인 친구들과 다 절연한 상태였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일단 그 교회가 정통 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내려면 기존 교단에 문의하고 도움을 얻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만난 기독교계 관계자들과 목사라는 인간들 때문에 저는 더더욱 큰 환멸과 실망감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분당 샘물 교회의 배형규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저는 그분을 만나면서 개신교회에 대한 새로운 희망같은걸 느끼게 되었어요.
그분이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문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마음을 써주시고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 관심과 도움을 주셨었는지...
시간 단위로 쪼개어 쓰는 바쁜 목회와 봉사 일정 속에서, 제 오빠한테 모욕까지 당하시면서도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쓰셨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요.
그때 정말 하나님 믿는 사람이 다르긴 다르구나...사람을 사랑하는 분이구나...느꼈었지요.
그런데, 사람 존재라는게....제 자신이 참 부끄럽습니다.
제가 그때 그분께 댓가없이 도움을 받을때 느꼈던 마음속 깊은 감사가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던지..
하루 이틀 바빴던 제 일상속에서 그분에 대한 순간의 걱정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그 쪽 지역 그런 일 자주 발생하고 풀려나기도 곧잘하니까
뭐 별일 있겠어...하는 마음으로 바쁜 제 개인사때문에 며칠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배형규 목사님의 살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인터넷을 찾아보니
온몸에 총탄을 입은 만신창이 시신이 거적대기같은 담요에 싸여 트럭뒤칸에 실려 이송되고 있을 그 시간에,
그분은 예전에 처음 뵈었을때의 환한 미소 그대로 인터넷 속 사진 속에서 웃고 계시더군요.
그제서야 현실이 현실로 느껴졌고,
갑자기 감정의 전원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제 마음속에 갑작스럽고 참을 수 없는 슬픔이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밤을 꼴딱 새고 새벽 5시경에 있다는 최후 협상을 기다렸습니다...
그당시 저에게 보내주신 메일들을 다시 찾아서 읽었었는데.....
읽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이분이 이런 분이였었지...하면서요.
그 분의 목숨이 풍전등화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무심하고 무신경했던 저의 딱딱한 심장과,
필요할땐 염치없이 도움을 청했다 일이 해결되면 그 도움을 쉽게 잊는 간사한 제 인격에 대해
마음 깊이 반성하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어짜피 이 글이 여러분들의 생각이나 이 사건에 대해 굳어진 시선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인터넷에서 유포되고 있는 잘못된 정보나 왜곡으로 인해, 국민적 분노를 사고 비웃음을 사서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목사님의 죽음이 너무 안타까워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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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분당 샘물 교회에 대해서 제가 알고 있던 사실에 대해서 알려드리고 싶어요.
제가 배형규 목사님을 만나면서 일시적으로나마 기독교에 대해서 다시 호의적인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분당 샘물교회에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까지도 해 볼 정도였습니다.
아마 집이 너무 멀지만 않았으면 한번쯤 가보기도 했을거 같네요.
목사 세습에, 저질 스포츠신문 발행에, 사장으로 앉힌 아들은 탈세혐의로 해외도피중인 교회,
담임 목사랑 여신도랑 불륜을 저지르고도 교인들이 쉬쉬 가려줘서 취재도 못하게 하는 교회,
툭하면 시국선언하면서 종로에서 노대통령 규탄대회나 하고, 광기어린 적개심으로 북한을 주적이라 선언하는 보수꼴통 교회들,
이런 교회들 다 놔두고 왜 샘물교회가 네티즌들에게 이렇게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어안이 벙벙할 뿐입니다.
제가 살아 생전 만에 하나 교회를 다닌다면 샘물 교회를 다녀볼까 생각했던 건전한 그 교회가
다른 썩어빠져 냄새나는 교회 다 놔두고 집중 폭격을 받고 있다는 게 참...
한때 교회 목사세습 문제와 갖가지 추문들때문에 이슈화가 되었던 때가 있었는데요,
샘물교회는 그 당시 MBC PD수첩에서 '건강한 교회'로 취재되어 방송되었던 교회입니다.
또 한겨레 신문에도 모범적인 교회로 기사가 실렸었지요.
분당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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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은 사람. 복이 많은 사람. 박은조 목사(53)가 그런 사람이다. 얼굴이 티 한 점 없이 해맑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주고 내려놓을 줄 아는 마음이 상대를 편하게 하는지 모른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교차로의 상가 건물에 자리한 샘물교회에선 아이들이 종달새처럼 재잘대는 소리와 엄마들의 대화가 어우러져 싱그럽다. 박 목사가 샘물교회를 개척한 것은 1998년. 박 목사는 원래 서울 논현동 영동교회에서 17년간 일한 담임목사였다.
비우면 채워지는 게 세상 이치던가. 잘 나가는 목사들의 대부분이 ‘규모’의 가치를 추구하며 대형교회를 만들기 위해 매진할 때 그는 교회를 과감히 분가하기 시작했다. 그가 영동교회에 재직 중이던 90년 한영교회, 93년 일원동교회, 94년 서울남교회가 영동교회 신자들을 데리고 차례로 분가했고, 98년엔 마침내 자신이 분당으로 분가했다. 영동교회에서 그렇게 분가한 교회가 무려 8개. 이들이 분가하지 않았더라면 대형교회를 이뤘겠지만 박 목사는 “큰 교회가 큰 사업을 추진할 수 있지만, 공동체성이 사라져 목사와 신자, 신자들끼리 인격적인 교제가 어렵다”며 분가를 단행했다.
공동체를 위한 정신이 반영된 것은 분가만이 아니다. 샘물교회에서 월급을 받는 교역자는 박 목사를 포함해 모두 20명. 이들은 업무에 따른 수당은 다르지만 기본 생활비는 모두 같다. 1인 당 100만원을 기본으로 부모와 아내, 자녀 등 한 가족 당 19만원씩이 추가된다. 직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양가족 수를 기준으로 생활비를 받는 것이다.
“대형교회 공동체성 희박”
담임목사 17년동안
교회 8개나 분가시켜
교역자 월급체계도 합리화
장애인 시설·대안학교 추진도
젊은 시절 교회를 다닐 때, 60대 담임목사는 이미 자녀들을 모두 교육시켜 지출이 많지 않은데도 월급을 많이 받고, 부목사는 한창 자녀들 교육비가 많이 들 때인데도 담임목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느낀 그는 영동교회에서 자신이 담임일 때 과감히 이런 생활비 지급 방안을 도입했다. 다른 교역자들의 생활비를 담임목사가 받는 생활비만큼 끌어올리기엔 교회 재정이 감당할 수 없어서, 담임목사 생활비를 깎아야 했다. 그래서 장로들은 “어떻게 많지도 않은 담임목사님의 생활비를 깎느냐”며 반대했지만, 박 목사는 이 제도를 단행했다.
샘물교회는 분당 동원동 1만여 평에 장애인 복지시설과 ‘초·중·고 대안학교’를 짓기로 하고, 현재 교장과 교사를 모집중이다. 박 목사는 이곳 근무자들에게도 이런 월급체계를 적용하고, 학생들의 수업료도 한 가정에서 한 명을 보내든 3명을 보내든 수에 상관 없이 그 가정 수입의 일정부분을 내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샘물교회는 3200여 명의 출석 신자 가운데 30대 이하가 65%, 40대 이하는 80%를 차지한다. 한국에서 가장 젊은 교회 중 하나다.
샘물교회는 장애인들을 방과 후에 돌보는 사랑의학교를 운영하고 북한 동포 돕기에 앞장서는 한민족복지재단 운영을 주도하고 있다. 박 목사는 개신교계의 오마이뉴스로 각광 받는 인터넷 신문 <뉴스앤조이>의 발행인도 맡고 있다.
박 목사는 “내가 하는 일은 없고, 난 능력 있는 분들이 일을 잘 하도록 울타리만 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런 비움의 자세가 청소년과 능력자들을 샘물 교회로 모이게 하고 있다.
뉴라이트요?
기가 막혀요..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님은 기독교계의 오마이뉴스라고 할수 있는 뉴스앤조이라는 인터넷 언론사의 발행인이세요.
기존 교회들로부터 빨갱이 신문이라고, 이단이라고까지 공격받고 있는 매우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언론입니다.
기존 교회의 치부까지도 통렬히 비판하고 드러내는 기독교 언론이라 반감을 갖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많고 안티들도 많습니다.
한국교회의 반공(反共)성향에 대한 비판때문에 북한체제 옹호라는 공격까지 받았지요.
예전에 그 기독교뉴라이트 결성시(2004년인가요?)
제가 알기론 매우 개혁적이고 진보적이고 그래도 가장 존경할 만한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대거 함께 하였다가,
모임의 뜻이 변질되고 방향성도 다르고 해서 많은 분들이 거기서 나왔습니다.
샘물교회 목사님도 거기서 빠진 것으로 알고 있구요.
무엇보다도 현재 기독교 뉴라이튼지 뭔지 하는 곳 인터뷰에서도 분명히
샘물교회 목사님은 자기네쪽이 아니라 출처불명의 헛소문이라고 밝혔는데도
인터넷에서는 샘물교회 목사님이 뉴라이트라는 이유로 모진 매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그런 글들 많이 올라온 걸로 아는데, 옛날 뉴라이트모임 결성시 공동대표였다는 기사 말고
(누군가 검색해서 퍼온 결성 몇년전 기사 하나로 샘물교회=뉴라이트라고 네티즌들한테 확정된겁니다)
하나라도 근거 있는 기사가 있으면 제발 좀 밝혀주세요.
지금 인터넷에서는 너무 과장된 소문들이 많습니다.
왜 기독교인들이 이 상황에서 침묵하고 있기만 하고 사실이 왜곡된 부분을 정정하려는 시도를 안하고 있는건지, 교회 밖에 있는 저로서는 너무 답답합니다.
가만히 되짚어 보면,
<<27차례나 정부가 말렸는데도 갔다.
비행기 티켓 취소시켰는데도 갔다.
전용기 보냈는데도 갔다
샘물교회 목사가 뉴라이트다.
교회 건물이 140억 부자 교회에, 교인 헌금 엄청 벌어들이는 나쁜교회다.>>
라는 건 전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지 않았나요?
기본적으로 이런 헛소문때문에 처음 국민 여론이 이렇게 나쁜 쪽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거 잖아요..
기독교인들이 글 올리면 물타기라고 짜증내시죠?
제가 보기엔 위와 같은 소문들,직접 이번 23인들과 관련 없는 사건과 소문까지 전부 구석구석 끄집어 내서 죽을 죄인들로 만들어 낸 행위가 바로 물타기의 극치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무대포적 선교방식이나, 안전불감증에 걸린 한국 교회 선교, 다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지만,
저분들이 하지 않은 행동까지 왜곡시켜서 비난하면 어떡하나요..
저도 교회 싫습니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올때가 왔다 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평소 싫어했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별러왔다는 듯이 쏟아내는 네티즌들도 참 밉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에 댓글로 '안 슬프다'고 굳이 밝혀주는 우리나라 네티즌이 무섭습니다.
<출처 : 선영아 사랑해, 마이클럽 www.miclub.com>
자주가는 사이트에서 퍼온글이에요
요 며칠새,네티즌의 개신교에 대한 증오는 정말 무시무시하더군요
내가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느낌..우리가 뭘 그리 잘못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인간적인 생각을 하자면 정부가 그리 막았던곳,굳이 갔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복음이 전파되는곳,언제 환영받았던 역사가 있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