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지평을 넘어
색이 바래 낡은 종이 냄새가 풍기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영혼의 자서전》을 다시 읽는다. 그의 순례 여정은 계속된다. 거룩한 산, 아토스산에서 40일 동안 친구와 수도원을 섭렵하고 성탄절 전야에 내려왔다.
기적이 그들을 기다렸다. 한겨울임에도 초라하고 작은 어느 과수원에 꽃이 핀 편도 나무가 있었다.
그는 친구에게 ”순례를 하는 동안 줄곧 우리 마음은 수많은 복잡한 문제로 괴로움을 받았어. 그런데 이제 답을 얻었구나.“
친구는 푸른 눈을 꽃이 핀 나무에서 떼지를 않은 채 기적을 행하는 거룩한 성상 앞에서 십자가를 그었다. 한참 동안 말문이 막힌 듯하더니 짧은 시를 읊었다.
”나는 편도 나무에 말했노라.
그대여 나에게 신의 얘기를 해다오.
그러자 편도 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거쳐 시나이산으로 갔다. 사막을 지나 산을 올라 수도원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식사 시간에 강론 신부는 ’돌아온 탕자‘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다. 아버지 집에서 멀리 떠난 탕자의 고통과 굴욕, 그리고 돼지처럼 쥐엄나무 콩을 먹고 살다가 어느날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그 우화를 들으며, 카잔차키스는 정신적인 불안과 반항에 민감한 현대인을 위해 또 다른 이야기를 지어낸다.
”그 날밤 그가 잠을 자려고 푹신한 침대에 누운 다음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막내 남동생이 들어온다. ’난 떠나고 싶어요.‘ 그가 말한다. ’아버지 집은 너무 답답하게 느껴져요.‘ 패배해서 방금 돌아온 형은 그 얘기를 듣고 기뻐한다. 그는 동생을 껴안고 어떻게 해야 하며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되는지를 알려주고, 자기보다 용감하고 자존심이 강해서 아버지 ’외양간’(그는 아버지의 집을 그렇게 불렀다) 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는 문까지 동생을 배웅하고는 악수하며 생각에 잠긴다. 혹시 동생은 나보다 강해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지.”
이 우화는 자신 내면에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정신적인 불안과 반항에 민감한 현대인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어찌하든 보통 성정을 가진 자들의 허를 찌르는 그의 상상력은 가히 놀라움 자체이다. 성서에는 ‘돌아온 탕자’를 환대하는 아버지의 처사에 불만을 토로하는 형의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202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