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칙 세존염화 世尊拈花 5칙 세존염화 世尊拈花1) 1) 세존께서 꽃을 든 염화(拈花)와 가섭이 그에 화답한 미소(微笑), 이 단적인 두 가 지 사실에 이 공안의 모든 요소가 드러나 있으므로 그것에 덧붙여지는 것은 모 두 헛된 분별로 귀결된다.
[본칙] 세존께서 영산(靈山)에서 설법하실 때 하늘에서 네 가지 꽃이 비 오듯 이 내렸다. 세존께서 마침내 꽃을 집어 대중에게 보이자 가섭이 미소 지 었다. 세존께서 말씀했다. “나에게 정법안장이 있으니 그것을 마하가섭 에게 전하노라.”〈어떤 본에는 ‘세존께서 청련목2)으로 가섭을 돌아보자 가섭이 미소를 지었다’라고 되어 있다.〉 世尊在靈山說法, 天雨四花. 世尊遂拈花示衆, 迦葉微笑. 世尊云, “吾有正法眼藏, 付囑摩訶迦葉.” 〈一本, 世尊, 以靑蓮目 顧視迦葉, 迦葉微笑.〉 2) 靑蓮目. 푸른 연꽃과 같은 눈. 세존의 32상(相) 중 하나인 연목상(蓮目相)을 나타 낸다. 이것은 진청안상(眞靑眼相 abhinīla-netra)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눈은 감청(紺靑)의 색깔로 청련화와 같으므로 이렇게 비유한다.『大智度論』권11 大 25 p.141c4,『大乘義章』권20 大44 p.874c14 참조.
[설화] 영산에서 설법하실 때 하늘에서 네 가지 꽃이 비 오듯이 내렸다 :『법화경』의 구절 을 요약했다.3)
나에게 정법안장이 ~ 마하가섭에게 전하노라:『열반경』의 구절을 요약했다.4)
꽃을 집어 대중에게 보이자 가섭이 미소 지었다[拈花微笑]:경전의 문구를 요약했 지만 완전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경전이나 논서에는 상응하는 문구가 없는가?5)
또한『인천보감』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서왕(舒王)6)이 혜천 선사(慧泉禪師)7)에게 물었다. ‘선가(禪家)에서 「세존께서 꽃을 들어 보이 자 가섭이 미소 지었다」라고 하는 말은 어떤 책에서 나왔습니까?’ ‘대장경 의 교설에는 실려 있지 않습니다.’ ‘제가 최근 한림원(翰林苑)에서 우연히 『대범천왕문불결의경』3권8)을 발견하고 열람을 해보았더니 그 경 중에 대 단히 상세한 내용이 실려 있었습니다. 곧 대범천왕(大梵天王)9)이 영산회 상에 이르러 금색의 우바라화(優波羅花)10)를 부처님께 바치고 몸을 던져 법좌로 삼고서 부처님께 모든 중생들을 위해 설법해 줄 것을 청하였습니 다. 세존께서 법좌에 오르는 순간 대중에게 꽃을 들어 보이자 백만억의 대 중이 모두 어리둥절하였으나 오로지 가섭만이 파안미소를 지었습니다. 이 에 세존께서 「나에게 진리를 보는 바른 눈이 있다」11)라고 운운하셨던 것 입니다.’ 법천은 그의 박식한 연구에 감탄하였다.”12) 이 이야기는 『매계집 (梅溪集)』에 나온다. 곧 이는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의 문구에서 나온 이 야기인 것이다.13) 선경14)선사는 이렇게 말한다.15) “선가에서 대장경의 교설 과 관련된 인연을 인용한 예는 제법 많고, 이러한 인연에 따라 궁극적 깨 달음을 얻은 자도 적지 않다. 가령 세존께서 꽃을 든 인연, 아난(阿難)의 문 앞의 찰간을 쓰러뜨린 것,16)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말이 있는 것도 말 이 없는 것도 묻지 않았던 인연,17) 문수(文殊)가 백추(白槌)를 울린 인연,18) 두 여인이 시체를 두고 평가를 내린 견해,19) 다섯 가지 신통을 갖춘 선인 (仙人)이 부처님께 6신통에 대하여 물은 인연,20) 수보리(須菩提)가 바위굴 에 앉아 좌선하면서 부처님의 법신을 보았던 인연21) 등이 그것이다. 이것 들과 유사한 인연에 대하여 왕왕 경론을 강설하는 무리들은 경전과 논서 에는 상응하는 문구가 없다고 여기고 멋대로 의심하며 믿지 않는다. 그러 나 달마대사 이래로 문자와 말씀 그대로 따르는 것만이 옳다고 여긴 적은 없었다.” 당시의 대중들이 우연한 일이라 생각했기에 결집하여 경전에 포 함시키지 않았을 뿐이다. 오직 대가섭만이 홀로 은밀하게 부처님의 마음 과 하나가 되어 인가를 받은[密契] 다음 이것을 아난(阿難)에게 전하였고, 아난은 상나화수(商那和修)에게 전하였으며, 이처럼 대대로 이어가다가 중국에까지 전해진 것이니, 이것은 별전22)의 종지를 나타내는 징표로 간 주되었다. 어찌 반드시 경전이나 논서에 수록되었는지 수록되지 않았는지 또는 경전에 온전히 들어 있는 이야기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따져서 증명 할 필요가 있겠는가! 만약 책에 실려 있는 이야기라면 교승23)과 완전히 같 을 것이다. 또한 종도자24)는 “경전이나 논서에는 상응하는 문구가 없다는 이유로 의심을 일으키지 마라”고 하였다. 이것은 모든 부처님과 조사가 교 설과는 별도로 전하신 미묘한 종지이기 때문이다. 靈山說法, 天雨四花, 節法華經文. 吾有云云迦葉, 節涅槃經 文. 拈花微笑, 節經來未盡耶? 經論無文耶? 又人天寶鑑錄云, “舒王問慧泉禪師曰, ‘禪家所論, 世尊拈花, 迦葉微笑, 出自何 傳?’ 泉云, ‘藏乘所不載.’ 王曰, ‘某頃在翰苑, 偶見大梵天王 問佛決疑經三卷, 因閱之, 經中所載甚詳. 大梵天王, 詣靈山會 上, 以金色優波羅花獻佛, 舍身爲床座, 請佛爲羣生說法. 世尊 才登座, 拈花示衆, 百萬億衆, 悉皆罔措, 獨迦葉破顔微笑. 世 尊云,「 吾有正法眼藏」云云.’ 泉歎其愽究.” 出梅溪集. 則大 梵天王問佛決疑經文所出也. 善卿師云, “禪家所引, 涉藏乘之 緣, 頗多, 由是緣而獲證悟者, 盖不鮮少. 只如世尊拈花·阿難 門前倒刹竿·外道問佛有無言·文殊白槌·二女評屍·五通問 佛·須菩提巖中宴坐. 似此等緣, 往往講學之輩, 謂爲經論無 文, 輒疑而不信. 然而吾祖之來, 未嘗以文字言辭爲能事也.” 盖當時大衆, 謂爲偶然, 不結集在法藏. 惟大迦葉, 獨得密契, 以此傳阿難, 阿難傳商那和修, 轉展相承, 傳之華夏, 以爲別傳 之摽致, 何必徵於經論載不載, 經來盡未盡也! 若在簡牘, 則 完同於敎乘矣. 又宗道者云,“ 莫以經論無文而生疑”也. 此是 諸佛諸祖別傳之妙也. 3)『法華經』의 경문은 다음과 같다. “이때 하늘에서 만다라화·마하만다라화·만 수사화·마하만수사화를 비처럼 내려 부처님과 대중들에게 흩뿌렸고, 모든 부 처님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法華經』 권1 大9 p.2b10. 是時, 天雨曼陀羅華·摩訶曼陀羅華·曼殊沙華·摩訶曼殊沙華, 而散佛上, 及諸大衆, 普 佛世界, 六種震動.):“만다라화는 소백단화(小白團花)라 한역하고, 마하만다 라화는 대백단화(大白團花)라고 한역하며, 만수사화는 소적단화(小赤團花)라 고 한역하고, 마하만수사화는 대적단화(大赤團花)라고 한역한다. 비록 네 가지 꽃이 있지만 합하면 두 쌍이 된다. 앞의 두 가지 백단화는 재가의 두 대중(우바 새·우바이)을 비유하고, 뒤의 두 가지 적단화는 출가의 두 대중(비구·비구니)을 비유한다.”(『法華義記』권1 大33 p.582c28. 曼陀羅花者, 譯爲小白團花;摩 訶曼陀羅花者, 譯爲大白團花;曼殊沙花者, 譯爲小赤團花;摩訶曼殊沙花者, 譯 爲大赤團花也. 雖有四花, 今合爲兩雙. 前二白團花, 譬在家二衆;後二赤團花, 譬出家二衆.) 4)『涅槃經』의 다음 대목을 말한다. “그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그대 들은 이와 같이 말해서는 안 된다. 내가 지금 지니고 있는 최상의 정법을 모두 마하가섭에게 전하였다. 이 가섭이 장차 그대들에게 근본적인 의지가 될 것이 니, 마치 여래가 모든 중생에게 의지할 근본이 되는 것과 같다.’”(36권본『大般涅 槃經』권2 大12 p.617b24. 爾時, 佛告諸比丘, ‘汝等不應作如是語. 我今所有無上 正法, 悉以付囑摩訶迦葉. 是迦葉者, 當爲汝等, 作大依止, 猶如如來, 爲諸衆生, 作 依止處.’) 5)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의 종지를 대표하는 선종의 설화이며, 가섭을 인도 전법의 초조(初祖)로 내세우는 조통설(祖統說)의 근거가 되기도 한 다.『聯燈會要』권1 卍136 pp.440b18~441a2에 다음과 같이 완성된 형태로 나온다. “세존께서 영취산의 법화회상에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 대중이 모두 말이 없었으나, 오직 가섭만이 파안미소를 지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정법을 꿰뚫어 보는 눈, 열반의 현묘한 마음, 형상을 벗어난 진실한 상, 미묘한 법문이 있다.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교설 밖에 별도로 전하니 그것을 마 하 가섭에게 부촉하노라.’”(『聯燈會要』권1 卍136 p.440b18. 世尊, 在靈山會 上, 拈花示衆, 衆皆黙然, 唯迦葉, 破顔微笑. 世尊云,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 微妙法門. 不立 文字, 敎外別傳, 付囑摩訶迦葉.’) 6) 왕안석(王安石 1021~1086). 북송의 시인이자 문필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한 사람이다. ‘서왕’은 휘종 때(1113년) 추증한 호이다. 7) 장산불혜법천(蔣山佛慧法泉). 생몰연대 미상. 활동 시기는 송대(宋代)이다. 속성 은 시(時)씨, 수주(隨州:湖北省) 출신이다. 운거효순(雲居曉舜)의 제자로 대명사 (大明寺)에 머물다가 천경(千頃)·영암(靈巖)·남명(南明)·장산(蔣山) 등에 두루 주석했다. 8) 2권본『大梵天王問佛決疑經』卍87 p.930a2와, 1권본『大梵天王問佛決疑經』卍87 p.976a10 등을 가리키지만, 이는 위경(僞經)으로 이 <설화>에 대한 경전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설화>에서 3권이라 한 것은 2권 또는 1권을 잘못 본 것이다. 9) mahā-brahmā-deva, tshans-pa-chen-po. 마하범(摩訶梵)·범마삼발(梵摩三 鉢) 등으로 음사한다. 범천왕(梵天王)·범천(梵天)·범왕(梵王)·대범(大梵) 등이 라고 한역하며, 범동자(梵童子)·세주천(世主天)·사바세계주(娑婆世界主)라고 도 한다. 우파니샤드 이후 우주의 중심원리를 의미하는 최고신의 지위를 가진 신격이었으나, 불교에 도입되어 색계(色界) 초선천(初禪天)의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천으로 간주되었다.『大般涅槃經後分』권상 大12 p.905c15,『大智度論』 권38 大25 p.340b15,『立世阿毘曇論』권1 大32 p.174b4 참조. 10) udumbara, udumbara, udumbara. 우담발라(優曇跋羅)·우담발라(優曇鉢羅)· 오담발라화(烏曇盋羅花)·우담파화(憂曇波花)·오담발라화(鄔曇鉢羅花)·우담화 (優曇花)·울담화(鬱曇花) 등이라고도 한다. 한역어는 영서화(靈瑞花)·공기화 (空起花)·기공화(起空花) 등이다. ‘우담’은 우담발라의 약칭. 상서로운 현상에 감응하여 나타나는 천화(天花)로서 인간 세상에는 없는 꽃이라 한다. 인간 세 상에 우담발라가 출현하는 것은 마치 부처님이 계신 세상이나 정법(正法)을 만 나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長阿含經』 권4 大1 p.25a11, 『增壹阿含經』권7 大2 p.578a17, 60권본『華嚴經』권37 大9 p.637b2 등 참조. “우담화<범어의 옛날 음역(音譯)으로 잘못 줄인 것이다. 범어의 바른 음 사는 오담발라이다. 한역하면 상서롭고 신령하고 기이한 하늘의 꽃이라는 뜻의 상서영이천화(祥瑞靈異天花)이다. 세간에 이 꽃은 없다. 만약 여래께서 (4대주 를 모두 통치하는) 금륜왕으로 하생할 경우 세간에 이 꽃이 출현한다. 금륜왕에 게는 큰 복과 덕의 힘이 있기 때문에 이 꽃이 나타나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一切經音義』권8 大54 p.351c13. 優曇花<梵語古譯訛略也. 梵語正云, 烏曇 跋羅. 此云, 祥瑞靈異天花也. 世間無此花. 若如來下生金輪王, 出現世間. 以大福 德力故, 感得此花出現.>) 11) ‘열반의 깊고 미묘한 마음, 형상을 벗어난 진실한 상이 있으니, 그것을 마하가섭 에게 전한다’라는 구절이 생략되어 있다. 12)『人天寶鑑』卍148 p.140a12 참조.『禪林疏語考證』권1「解制」卍112 p.803b6 등 에도 전한다. 13) <설화>의 저자는 이 경이 위경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4) 善卿. 생몰연대 미상. 호는 목암(睦庵). 동월(東越) 출신으로 속성은 진(陳)씨, 이 름은 사절(師節)이다. 1108년(대관2)에 『祖庭事苑』 8권을 지었다. 15) 이하는『祖庭事苑』 권2 卍113 p.52b17의 인용이지만, 부분적으로 첨삭이 있다. 예를 들면 ‘세존염화’는 이 공안을 설명하기 위한 인용이므로 첨가되었고, ‘세존 설부정법(世尊說不定法)’은 삭제되었다. 16)『禪門拈頌說話』81則 참조. 17) 위의 책 16則 참조. 18) 위의 책 6則 참조. 19) 위의 책 18則 참조. 20) 위의 책 14則 참조. 21) 위의 책 7則 참조. 22) 別傳. 경전의 문자와 교설을 벗어나 별도의 방법으로 전한다는 교외별전(敎外別 傳)을 나타낸다. 법을 깨달은 한 사람이 다음 세대에 그 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 고 인가한 한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전하여 부단히 이어지게 하는 방식이다. 23) 敎乘. 교외별전·불립문자를 내세우는 선종과 대칭하여 경전을 근거로 갈라지 는 교종의 모든 종파를 나타낸다. 곧 십이분교(十二分敎)와 삼승(三乘)을 말하 며 교설(敎說) 또는 교법(敎法)과 같다. 고해의 이 언덕에서 해탈의 저 언덕으 로 건너게 해주는 수레라는 뜻에서 ‘승’이라 비유한 말이며, 선종에서는 교승 과 구분하여 마음을 종지로 삼는다는 뜻에서 종승(宗乘)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 한다.『景德傳燈錄』권21「羅漢桂琛傳」大51 p.371a21, 권26 「歸宗義柔傳」 大51 p.420b18 참조. “교승은 비밀의 법이라 주장하고 선종은 전할 수 없는 문 자라 내세우니, 어떤 길을 따라 수행할 것이며 어떤 문으로 들어갈 것인가? 만약 두 가지 모두 오로지 마음뿐이라는[唯心] 비결을 터득하지 못한다면 바른 믿음이 이루어질 근거는 없다.”(『宗鏡錄』 권9 大48 p.460b13. 今敎乘稱秘密之法, 禪 宗標不傳之文, 則向何路而進修, 從何門而趣入? 若不得唯心之訣, 正信無由得成.) 24) 宗道者. 누구인지 불분명하지만, 인용은 위에서 경론을 강설하는 자들에 대하 여 평가한 선경(善卿)의 말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네 가지 꽃:만수사화 등을 가리킨다. 들어 보인 것은 한 송이 꽃인가? 아 니면 네 가지 꽃 중에서 한 가지 꽃일까? 꽃을 집어 대중에게 보이자 가섭이 미소 지었다:무심하게 꽃을 집어 들고 무심 하게 미소를 지은 것일까? 별 뜻 없이 꽃을 집어 들고 별 뜻 없이 미소를 지은 것일까? 아니면, 부처님께서는 기틀에 당면하여 곧바로 가리키고, 가 섭은 그 기틀을 마주치고 깨달았던 것일까? 옛사람은 “기틀에 당면하여 곧바로 가리키더라도 벌써 멀리 돌아간 것이며, 기틀을 마주치고 깨달았 더라도 이미 어리석게 된 것이다”25)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 또한 흔적을 쓸어 없애기 위한 말일 뿐이니,26) 세존과 가섭이 만난 경지와는 전혀 상관 이 없다. 석가노자께서 이 요지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침묵하시면서 49년 동안 3백여 법회에서 제기하지 못하고 말로 다하지도 못하다가 마지막에 영산회상에서 비로소 제기하고 모두 말씀하실 수 있었다. 인천의 백만억 대중이 모두 어리둥절하였으나 오로지 대가섭만이 파안미소를 지었다. 이 것이 바로 두 번째로 마음을 전한 인연이다.
나에게 정법안장이 있다:잘못된 부분을 가려내는 것이 바르다는 뜻의 정 (正)이고, 궤지27)가 법(法)이며, 비추어 보는 것은 안(眼)이고, 거두어 간직 한다는 뜻이 장(藏)이다. 또한 바른 법[正法]은 눈[眼]과 같고 창고[藏]와 같다는 뜻이다.
마하가섭에게 전하노라:믿음을 얻은 바로 그 순간에 지혜의 빛이 후세에 널리 퍼졌다는 뜻이다. 四花者, 曼殊沙花云云. 拈起地一枝花耶? 四花中一花耶? 拈 花示衆迦葉微笑者, 閑拈花閑微笑耶? 但拈花但微笑耶? 當機 直指, 當機悟達耶? 古人云, “當機直指, 早已迂曲了也;當機 悟達, 早已鈍痴了也.” 然, 此亦拂迹之談, 於世尊迦葉相見處, 了沒交涉. 釋迦老子, 久默斯要, 四十九年三百餘會, 提不起說 不盡, 末後靈山會上, 始提得起說得盡. 人天百萬億衆, 悉皆罔 措, 唯大迦葉破顔微笑. 此是第二傳心. 吾有正法眼藏者, 揀邪 爲正, 軌持爲法, 照了爲眼, 含攝爲藏. 又正法如眼如藏也. 付 囑云云迦葉者, 取信當時, 光揚後世. 25) 누구의 말을 인용했는지 미상이고 정확히 일치하지 않지만, 그 대의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과 통한다. “경정(徑挺):기틀에 당면하여 곧바로 가리키고 결코 회 피하지 마라. 머뭇거리는 순간 흰 구름 너머 저편으로 아득히 멀어질 것이다.” (『禪林寶訓音義』卍113 p.296a6. 徑挺:當機直指, 絕無迴避. 擬議之間, 白雲 千里.);“곧바로 가리킨다고 말한 것이 벌써 한참 돌아가고 만 결과가 되었다.” (『天目明本雜錄』「示養直蒙首座」卍122 p.779a9. 說箇直指, 早已迂曲了也.); “옛날에 달마대사가 바다를 건너고 사막을 넘어 와서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 리킨다[直指人心]는 설로써 중국의 평범한 사람들을 어지럽게 미혹시켰다. 그 러나 그는 인도를 아직 떠나기도 전에 벌써 먼 길로 한참 돌아갔다는 사실을 전 혀 모르고 있었다.”(『希叟廣錄』권4「坦講師求子直序」卍122 p.258a18. 在 昔老臊胡, 踰海越漠, 以直指人心之說, 惑亂大唐人家男女. 殊不知, 未發足竺乾時, 早已迃曲了也.) 26) 여기서 흔적 또는 자취란 ‘곧바로 가리킨다[直指]’는 말과 ‘깨닫는다[悟達]’는 말 이 지니고 있는 집착의 실마리를 나타낸다. 이러한 말의 자취를 없애려는 이야 기이지만 그것 자체가 벌써 또 다른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뜻이 들어 있다. ‘자 취를 감추려다가 도리어 또 하나의 흔적이 생긴다[拂跡成痕]’라는 상용구가 그 뜻이다. “비유하자면 신령한 거북이 진흙에 꼬리를 끌어서 자취를 지워 없애려 다 도리어 꼬리의 자취가 생기는 것과 같으니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다가 더 욱 병이 깊어지게 되는 것이라 할 만하다. 진실로 마음을 밝힌다면 마음 밖에 법 이 없고 법 밖에 마음이 따로 없어서 마음과 법이 이미 없거늘 다시 무엇을 단번 에 없애려 하는 것인가!”(『禪林僧寶傳』권23「寶覺祖心傳」卍137 p.531b17. 譬如靈龜曳尾于塗, 拂跡跡生, 可謂將心用心, 轉見病深. 苟能明心, 心外無法, 法 外無心, 心法旣無, 更欲敎誰頓盡耶!) 27) 軌持. dharma의 한역어인 법(法)에 대한 해설 중 하나. ‘궤’는 일정한 틀 또는 법칙·규범을 나타내는 궤칙(軌則)·궤범(軌範)을 뜻한다. ‘지’는 자신의 본성[自 性]을 유지하고 지킨다[住持]는 뜻이다. “법이란 궤지라는 뜻이다. 궤는 궤범의 뜻이니 대상에 대한 이해를 낳게 하는 근거이고, 지는 주지(住持)라는 뜻이니 자신의 고유한 특징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다.”(『成唯識論述記』권1본 大43 p.239c4. 法謂軌持. 軌謂軌範, 可生物解;持謂住持, 不捨自相.)
대홍보은(大洪報恩)의 송 면전에서 다 드러내 보였거늘 헤아릴 것이 무엇이더냐? 번개 치고 유성 흐르는 짧은 순간 천만 리로 멀어지리.28) 향기 실은 바람 대지를 감돌며 때도 없이 불고 있으니, 우담화29)가 인간 세상에 나타난 것이로다. 〈냄새 맡으려 하면 뇌가 찢어지리라.〉30) 大洪恩頌,“ 覿面相呈何所擬? 電閃星流千萬里. 香風匝地吹 無時, 優曇花現人閒世.”〈 齅着則腦裂.〉 28) 세존의 염화와 가섭의 미소에 다 드러나 있지만,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분별한 다면 눈앞의 진실과 멀어진다. 29) 優曇花. 주석10) 참조. 30) 2구의 뜻과 같다. 면전에서 다 드러내 보인 것(1구)과 향기 실은 바람(3구)이 서 로 호응한다.
남명법천(南明法泉)의 송
매서운 바람이 마른 풀뿌리를 휩쓸며 부는데, 벌써 돌아온 봄소식을 누가 알아차릴 것인가? 대유령 매화31)만이 그 소식을 처음 누설하니, 가지 하나가 홀로 눈 속에서 꽃 피웠다네. 南明泉頌,“ 霜風刮地掃枯荄, 誰覺東君令已廻? 唯有嶺梅先 漏洩, 一枝獨向雪中開.” 31) 영매(領梅). 대유령(大庾嶺)은 매화가 많이 피어 매화령(梅花嶺)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남과 북을 가르는 분기점으로 남북의 기후 차이 때문에 매화의 남쪽 가 지가 떨어지는 시기에 북쪽 가지에서 비로소 꽃을 피우는데, 이것으로 인하여 옛날부터 잘 알려져 있다.
[설화] 대홍보은과 남명법천의 송은 세존과 가섭이 서로의 속뜻을 알아차린 경지를 밝혔다. “냄새 맡으려 하면 뇌가 찢어진다”라고 한 말은 일정한 법 도에 얽매이지 않는다32)는 뜻이다. 大洪南明, 明世尊迦葉相見處也. 齅著則腦裂者, 不存軌則也. 32) 부존궤칙(不存軌則). 일반적으로 ‘근본적인 작용이 눈앞에 드러나 있다’라는 뜻 의 ‘대용현전(大用現前)’ 뒤에 이어지는 구절이다. 곧 염화와 미소는 ‘근본을 드 러내는 작용’으로서 이미 눈앞에 드러나 있으므로 헤아리며 분별하기 위한 인 식의 범주에 따라 이해할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景德傳燈錄』권9「大安傳」 大51 p.267c23,『雲門廣錄』권중 古尊宿語錄16 卍118 p.354a4 등 참조.
운거요원(雲居了元)의 송
세존이 꽃 들자 가섭이 미소 지었다 하니, 물속의 물고기요 하늘을 나는 새로다.33) 미륵을 관음으로 오해한 것과 같으니, 다리미 불과 차 끓이는 불은 같은 화로를 쓰지 않노라.34) 雲居元頌, “世尊拈花迦葉微笑, 水底魚兮天上鳥. 誤將彌勒作 觀音, 慰35)斗煎茶不同銚.” 33) 물고기와 새가 각자의 영역에서 자유롭듯이 세존의 염화와 가섭의 미소가 서로 다른 입장에서 본분을 자유롭게 펼쳤다는 뜻. 34) 미륵과 관음 두 보살의 역할이 다른 것은 마치 다리미를 덥히거나 차를 끓일 때 쓰는 화로가 각각 틀린 것과 같다. 주석33)과 통하는 말이다. 35) ‘慰’는 ‘熨’의 오식.
[설화] 세존 ~ 하늘을 나는 새로다:다른 전거에서 ‘(물고기들이) 물에서 서로 잊고 지내고, (새들이) 높은 하늘에서 마음대로 난다’라고 한 말과 같다. 미륵을 관음으로 ~ 같은 화로를 쓰지 않노라:‘조금이라도 헤아리면 마주 보고 있으면서 천 리의 거리로 떨어진 것과 같을 것이다’36)라고 한 말과 같다. 雲居:世尊至天上鳥者, 如他處云,‘ 江湖相忘雲天得志也.’ 誤將至同銚者, 如云,‘ 擬心一絲對面千里也.’ 36) 굉지정각(宏智正覺)이 혜충국사(慧忠國師)의 ‘노사나불(盧舍那佛)’ 화두에 대하 여 읊은 게송에 나오는 제2구와 제3구이다. 그 제1구는 “새가 허공을 날고, 물고 기는 물에서 헤엄친다.”(鳥之行空, 魚之在水.)이다. 이 구절이 운거의 제2구와 같 은 데서 착안한 <설화>이다.『宏智廣錄』권2 大48 p.22b16 참조. 한편 ‘江湖相忘’ 은『莊子』「大宗師」의 다음 구절에 따른다. “샘이 말라서 물고기들이 뭍에 놓인 것과 같게 되자 서로 숨을 내쉬어 축축하게 해 주고 서로 물거품을 튕겨 적셔주 지만, 물에서 서로 잊고 지내느니만 못하다.”(泉涸, 魚相與處於陸, 相呴以溼, 相濡 以沫, 不如相忘於江湖.)
천복본일(薦福本逸)의 송 1
세존께서 손으로 꽃을 집었을 뿐이거늘, 가섭이 얼굴 전체에 환한 미소를 짓네. 두 성인은 한 쌍의 오래된 송곳37)이었으나, 향상하는 하나의 통로는 아직 몰랐노라.38) 薦福逸頌,“ 世尊自手拈花, 迦葉破顔微笑. 二老一雙古錐, 未 知向上一竅.” 37) 고추(古錐). 날카로운 송곳으로 요소를 찌르듯이 핵심만 가려내는 선기(禪機)를 말한다. ‘古’는 단지 오래되었다는 말일 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변함 없다는 뜻이다. 38) ‘몰랐다’는 말은 관문(關門)이자 효와( 訛)이다. 아래 <설화>에 그 뜻이 보인다.
[설화] ‘향상하는 하나의 통로’란 무슨 통로일까? 말해 보라! 세존과 가섭은 그 것이 있는 줄 알았을까, 몰랐을까? 만약 그것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면 옛 성인의 은혜를 등지는 결과가 되고, 그것이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면 우리의 자손들을 망치게 될 것이다.39) 아래 나오는 천복의 상당은 위의 송에 나타난 뜻과 같다. 薦福:向上一竅, 是什麽孔竅? 且道! 世尊迦葉, 知有不知有? 若言不知有, 辜負先聖;若言知有, 喪我兒孫. 薦福上堂, 前頌 意一般也. 39) ‘몰랐다’는 말에 대하여 몰랐다는 것과 알았다는 것 중 어느 편으로도 확정하지 않고 꿰뚫고 나갈 관문으로 제시한 해설이다. 세존과 가섭이 몰랐다고 한다면 그들의 염화와 미소를 완전히 등지게 되고[背], 알았다고 한다면 후손들이 그들 의 염화와 미소를 그대로 따르다가 그것에 예속될 것[觸]이라는 말이다. <설화> 전반에서 즐겨 쓰는 배촉관(背觸關)이다.
천복본일의 송 2
교설 벗어나 별도로 전한 일 중 가장 기특한 것은, 도라면같이 부드러운 손40)으로 꽃을 들었을 때로다. 법회 중에 계봉의 노인41)이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한없이 맑은 향기를 그 누구에게 전했으리오? 又頌,“ 敎外別傳事最奇, 兜羅綿手擧花時. 會中不得雞峰老, 無限淸香付與誰?” 40) 도라면수(兜羅綿手). 부드럽기 그지없는 부처님의 손. 80종호 중 하나이다. ‘兜 羅’는 tūla의 음사어로 도라(堵羅)·투라(妬羅)·두라(蠹羅) 등으로 음사하고 면(綿)·세면(細綿) 등이라 한역한다. 도라면(兜羅綿)은 범어 음사어와 한역어를 합친 말이다. 식물의 꽃에서 채취하는 솜 종류를 총칭한다. “사문 구담은 손발이 지극히 미묘하고 유약하며 부드럽기가 마치 도라화와 같다.”(『中阿含經』권41 大1 p.686b8. 沙門瞿曇, 手足極妙, 柔弱軟軟, 猶兜羅華.);“부처님께서 아난에 게 말씀하셨다. ‘만약 세간 사람들이 이것이 거꾸로라고 한다면, 세간 사람들은 무엇을 바르다고 하겠느냐?’ 아난이 아뢰었다. ‘여래께서 팔을 세워 도라면과 같이 부드러운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면, 바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楞嚴經』 권2 大19 p.110c11. 佛告阿難, ‘若世間人, 以此爲倒, 卽世間人, 將何爲正?’ 阿 難言, ‘如來竪臂, 兜羅綿手, 上指於空, 則名爲正.’) 41) 계봉(雞峰)은 계족산(雞足山)에 있는 산봉우리 중 하나. 또는 계족산 자체를 가 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산에는 세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그 모양이 닭발이 세 갈래로 된 것과 같으므로 계족산이라고 한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으로부터 가 사(袈裟)를 받은 뒤 계족산에서 입적할 때 그 가사를 미륵불(彌勒佛)에게 전할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하였으므로 가섭을 이렇게 부른다.『增壹阿含經』 권44 大2 p.789a5,『付法藏因緣傳』권1 大50 p.300c10 등 참조.
해인초신(海印超信 : 정혜초신)의 송
따뜻한 봄기운 바야흐로 돌아오니, 땅 밑 흐르는 물이 먼저 알았노라.42) 영매43) 벌써 눈 속에서 꽃망울 터뜨렸건만, 모든 꽃들 여전히 봄볕을 기다릴 뿐이라네.44) 가섭파여, 가섭파여!45) 알건 모르건 좋은 기회에 속박된 듯하도다.46) 定慧信頌,“ 暖氣方歸, 地脉先知. 嶺梅已向雪中綻, 百花猶自 待春輝. 迦葉波迦葉波! 知不知也似落便冝.” 42) 봄기운이 돌아왔으나 아직은 땅 밑에만 흐르고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말. 봄기운은 부처님이 들어 보인 꽃, 땅 밑으로 흐르는 물은 부처님의 깊은 속을 들 여다본 가섭을 각각 비유한다. 43) 주석31) 참조. 44) 가섭을 깨달음의 꽃망울을 터뜨린 영매에 비유하고, 봄볕을 기다리는 여타의 꽃들을 이것과 대칭시키고 있다. 45) 迦葉波. 가섭의 온전한 음사어. Kāśyapa, Kassapa. “가섭<범어의 생략된 음사 어이다. 바른 범어 음사는 가섭파(迦攝波)이며 ‘가’는 강(薑)과 거(佉)를 반절한 음이 고, 섭파는 천축국의 대성(大姓)이다.>”(『一切經音義』권11 大54 p.370b20. 迦葉 <梵語略也. 正梵音云, 迦薑佉反, 攝波卽天竺國之大姓也.>) 46) 낙편의(落便冝). 편의로운 순간에 그 편의에 떨어져 속박된다는 뜻. 기대와는 달 리 좋은 기회를 상실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가섭이 비록 꽃을 들어 보인 소식을 알았다고는 하나 오히려 그것에 떨어져 안주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가섭의 소득 까지 물리치고 있다.
동림상총(東林常總)의 송
교설 밖에 온전히 들어 비로소 달리 전하니, 음광47)은 눈을 감고 말없이 웃음 지었다네. 가엾다, 영산의 10만 대중들이여! 눈앞의 절묘한 한 수 알아차리지 못했구나.〈돌!〉 東林總頌, “敎外全提始別傳, 飮光閉目笑無言. 可憐十萬靈山 衆! 不薦當頭一着玄.”〈 咄!〉 47) 飮光. 가섭파의 한역어.
법진수일(法眞守一)의 송
한 번 깜박인 연꽃 같은 눈동자 누가 알았을까? 백만 대중 가운데 오로지 음광뿐이었다네. 그 법안 지금까지 전해져 끊어지지 않으니, 연이어진 전통 땅과 하늘처럼 길이 변함없구나. 法眞一頌,“ 蓮眸一瞬孰能當? 百萬衆中唯飮光. 法眼至今傳 不絶, 綿綿地久與天長.”
보령인용(保寧仁勇)의 송
꽃 든 우리 부처님 영산에 계실 적에, 가섭두타48)가 문득 파안미소 지었다네. 금구49)의 은밀한 말씀 직접 전하시니, 천상과 인간의 세계뿐만이 아니리라. 保寧勇頌, “拈花我佛在靈山, 迦葉頭陁忽破顔. 金口密言親付 囑, 不唯天上與人閒.” 48) 가섭을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하는 데 따르는 말. 본서 33則 주석22) 참조. 49) 金口. 부처님의 입 또는 그 입에서 나오는 작용[口業]으로서의 말씀. 부처님의 황금 색신(色身)에 갖춘 입이라는 뜻이다. “금구란 여래의 황금 색신에서 나오 는 구업을 가리킨다.”(『止觀輔行傳弘決』권1 大46 p.147a11. 金口者, 此是如 來黃金色身口業.)
곤산찬원(崑山贊元)의 송
가섭의 잔잔한 미소 외롭지 않았으니, 세존께서 성현의 무리 잠깐 곁눈질하시네. 눈 마주치고 마음의 요체 전했다고 하나, 밥이라고 아무리 말한들 배가 부르던가?50) 崑山元頌, “迦葉微微笑不孤, 世尊聊眄聖賢徒. 若言目擊傳心 要, 說食還曾飽也無.” 50) “세상 사람들이 종일토록 입으로 반야라고 외우지만 자기 성품의 반야를 모르 니, 마치 밥에 대하여 아무리 말한들 배가 부르지 않는 것과 같다.”(宗寶本『壇 經』大48 p.350a16. 世人終日口念般若, 不識自性般若, 猶如說食不飽.)
삽계일익( 溪日益)의 송
영취산에서 꽃 들어 상근기에게 보이시니, 물에 뜬 나무가 눈먼 거북 만난 것과 같네.51) 가섭이 잔잔한 미소를 짓지 않았다면, 한없이 맑은 향기 그 누구에게 전했을까? 霅溪益頌, “靈鷲拈花示上機, 肯同浮木接盲龜. 飮光不是微微 笑, 無限淸香付與誰?” 51) 불법을 만나기 어려운 것을 나타내기 위한 비유이다. 꽃을 들어 보인 것 이상으 로 깨달음을 지시하는 기회가 없다는 말이다. “세상에 태어나 사람이 되기가 어 렵고, 부처님 계시는 세상을 만나기가 또한 어렵다. 그것은 마치 눈먼 거북이 바 다에 떠도는 나무토막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다.”(40권 본『大般涅槃經』권2 大12 p.372c22. 生世爲人難, 値佛世亦難, 猶如大海中, 盲 龜遇浮孔.) 雜阿含15『盲龜經』大2 p.108c7.
승천회의 송
선서52)는 꽃을 집어 묘한 작용을 펼쳤고, 가섭은 미소 지어 천기를 누설했다네. 이로부터 그 말이 인도와 중국을 떠돌아, 죄 없는 사람들 이끌어 시비에 빠뜨렸네.53) 承天懷頌, “善逝拈花施妙用, 飮光微笑洩天機. 從玆流落東西 土, 引得平人陷是非.” 52) 善逝. 부처님을 가리키는 열 가지 칭호[十號] 중 하나. 피안으로 넘어가서 다시 는 생사(生死)의 바다로 물러나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진실 그대로의 도를 타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로 잘 오셨다는 뜻인 여래(如來)와 대칭되는 뜻이 다. sugata. 음사어는 수가타(修伽陀)·소게다(蘇揭多)·수가다(修伽多) 등이 다. 선거(善去)·선해(善解)·선설무환(善說無患)·호설(好說)·호거(好去) 등으 로도 한역한다. 53) 염화는 묘한 작용이고 미소는 천기누설이라는 생각 자체가 시비를 일으키는 함 정이다. 단지 염화와 미소가 있을 뿐이다.
불안청원(佛眼淸遠)의 송
무수한 인천의 중생이 들려주기를 바랐으나, 꽃 들자 웃음 지으니 크게 어긋나 버렸다네.54) 업식(業識)이 아득히 쌓인 수많은 사람들이여! 묻느라 애쓰며 부글부글 물 끓듯 떠드는구나.55) 佛眼遠頌, “百萬人天望擧揚, 拈花微笑大乖張. 幾多業識茫茫 者! 問着勞生沸似湯.” 54) 분명하게 말로 설명해 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과 교설을 벗어난 세존의 염화와 가섭의 미소가 그것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말. 55) 염화미소의 뜻을 알고자 헛되이 애쓰는 모습을 묘사했다.
불감혜근(佛鑑慧懃)의 송
빛나는 윤수56)로 꽃을 든 그 순간, 금색두타만 환하게 눈살을 폈다네. 우습도다, 영산의 무수한 대중이여! 눈앞의 붉은색 향기로운 맛 몇이나 알았을까? 몇이나 알았을까? 그가 감파했노라고 인정하셨으니, 계봉의 늙고 오래된 송곳57)이로다. 佛鑑懃頌, “光明輪手擧花時, 金色頭陁獨展眉. 堪笑靈山千萬 衆! 紅香撲面幾人知? 幾人知? 却許伊勘破, 雞峯老古錐.” 56) 輪手. 손가락마다 바퀴살 무늬가 새겨져 있는 부처님의 손. “즉시에 여래께서 금 빛의 팔을 아래로 드리우시고 윤수로 아래를 가리켜 아난에게 보이며 말씀하셨 다.”(『楞嚴經』권2 大19 p.110c9. 卽時如來, 垂金色臂, 輪手下指, 示阿難言.) 57) 노고추(老古錐). 송곳처럼 날카롭게 핵심을 찌르는 노련하고 원숙한 종사를 비 유한다. ‘노’와 ‘고’는 법력이 높은 노덕(老德)과 고덕(古德)을 가리킨다. 주석37) 참조.
장령수탁(長靈守卓)의 송
세존께서 꽃을 드시니, 가섭이 미소 지었다네. 궁상에 속하지 않으니,58) 이것은 무슨 곡조일까? 옛 골짜기에 부는 바람 맑고, 차가운 못에 잠긴 달 밝도다. 그대에게 알리노니, 반드시 깨우친다면, 융봉59)에서 가장 아름답게 우는 새 되리라. 長靈卓頌,“ 世尊拈花, 迦葉微笑. 不落宮商, 是何曲調? 古洞 風淸, 寒潭月皎. 報君知, 須曉了, 融峯最好音聲鳥.” 58) 불락궁상(不落宮商). 일반적인 인식의 틀이나 문자의 형식으로는 그 뜻을 포착 할 수 없는 선어(禪語)의 특징을 나타낸다. 곧 염화와 미소는 일정한 틀에 예속 되지 않아서 정해진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소식이라는 뜻이다. 궁은 탁한 음, 상은 맑은 음이다. 고전음악에서 사용하는 궁(宮)·상(商)·각(角)·치(徵)· 우(羽)의 5음계 중 기본이 되는 두 가지 소리이다. 오행설(五行說)에 입각하여 만물을 분류하는 기본적 단위를 다섯 가지로 취하는데, 그것을 소리에 적용한 것이다. 각각 5행의 토·금·목·화·수에 대응한다. 59) 축융봉(祝融峯)의 줄임말. 형산(衡山)의 최고봉.
불적기의 송
석가모니께서 영산에서 대중에게 설법할 때, 이채로운 꽃을 든 순간 웃으며 눈살을 폈네. 누가 웃음에 숨겨둔 진실한 소식 알리오? 한없는 풍경 남김없이 그에게 전했다네. 佛跡琪頌, “釋主靈山示衆時, 異花拈處笑開眉. 誰知笑裏眞消 息? 無限風光盡囑伊.”
숭승원공(崇勝院珙)의 송
부처님의 염화여! 국자 점의 헛소리로다.60) 가섭의 미소여! 평지에 험한 산 솟구치네. 정법안장이여! 쉰밥과 먹다 남은 국이로다. 가섭에게 전함이여! 다리 부러지고 새는 솥이로다. 崇勝珙頌,“ 大覺拈花兮! 杓卜虛聲. 飮光微笑兮! 平地崢嶸. 正法眼藏兮! 餿飯殘羹. 分付迦葉兮! 折脚漏鐺.” 60) 표복허성(杓卜虛聲). ‘표복’은 국자를 물에 띄워 놓고 멈추는 방향에 따라 점을 치는 것, ‘허성’이란 국자로 점을 쳐서 나온 결과에 대하여 말해 주는 허황된 소 리. 곧 국자 점에 따라 횡설수설하는 소리라는 뜻. 근거 없이 분별하는 것을 비 유한다. “표복:풍속에 국자를 던져 놓고 그것으로 길흉을 점치는 것을 표복이 라 한다.”(『祖庭事苑』권6 卍113 p.174a12. 杓卜:風俗抛杓, 以卜吉凶者, 謂 之杓卜.)
대혜종고(大慧宗 : 운문종고)의 송
한 송이 꽃을 집어 들자, 풍류61)가 그 자리에서 흘러나왔다네. 만약 심법(心法)을 전했다고 여긴다면, 세상 일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지리.62) 雲門杲頌,“ 拈起一枝花, 風流出當家. 若言付心法, 天下事 如麻.” 61) 風流. 비범한 아름다움. 속세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떠돌며 사는 멋. 여기서 는 세존의 염화에 나타나는 격외(格外)의 면모를 가리킨다. 62) ‘염화’로 드러난 단적(端的)인 뜻에 ‘심법’ 등의 개념이 개입되면서 마(麻)로 만 든 삼실의 타래처럼 복잡하게 조작된다는 뜻. 이와는 반대로 심법을 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단적인 뜻에 어긋난다.
죽암사규(竹庵士珪)의 송
바닷물 뒤집어져 솟았다 세차게 아래로 흐르니, 물고기들과 새우와 게 그대로 가라앉았다 뜨네. 불쌍하구나, 금색두타여! 지금껏 그 웃음 그치지 않았구나. 竹庵珪頌,“ 海水飜空袞63)底流, 魚龍蝦蟹信沈浮. 可憐金色頭 陁子! 直至如今笑未休.” 63) ‘袞’은 ‘滾’과 통한다.
목암법충(牧庵法忠)의 송
염화와 미소로 진실한 기미를 드러내니, 밀계와 단전64)의 소식은 작자만 알리라. 갈고리에 매달린 단적인 뜻을 알 일이지, 저울 첫 눈금에서 또 무엇을 분별하는가!65) 牧庵忠頌, “拈花微笑顯眞機, 密契單傳作者知. 領取鉤頭端的 意, 定盤星上復何疑!” 64) 밀계(密契)는 빈틈없이[密] 들어맞음[契], 단전(單傳)은 오로지 마음만 전함. 세 존과 가섭의 경지가 서로 어긋남이 없이 일치하며, 특정한 교설에 의지하지 않 고 그 마음만 주고받은 것을 가리킨다. 65) 실물(實物)이 저울의 갈고리에 매달려 숨김없이 드러나 있는데, 기준이 되는 첫 눈금[定盤星]에서 분별하며 그것을 실물로 오인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정해진 분별의 틀(저울)에 의존하여 염화와 미소를 이해하려는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말이다. 본서 2則 주석71) 참조.
육왕개심(育王介諶)의 송
서리 맺힌 새벽 아득한 하늘에 기러기 날아온 뒤, 모든 숲속 시든 잎 이끼에 떨어진다. 동쪽 울타리 적막한 곳에 핀 한 송이 국화여! 취한 왕손(王孫)의 잔엔 들어가지 않는구나. 育王諶頌, “霜曉長空鴈已來, 千林黃葉委莓苔. 東籬寂寞一枝 菊! 不入王孫醉後盃.”
백운지병(白雲知昺)의 송
꽃 들어 대중에게 보이니 누가 알까? 가섭두타 홀로 활짝 웃어 응답했다네. 한없이 펼쳐진 구름도 감추지 못하여, 다시 흐르는 물 따라 인간 세상에 떨어졌네.66) 白雲昺頌,“ 擧花示衆誰相委? 迦葉頭陀獨破顔. 無限白雲藏 不得, 又隨流水落人間.” 66) 하늘에 뜬 달을 무수한 구름이 가리려 해도 결국은 강물에 비치듯이 세존의 염 화라는 달이 가섭의 미소에 그대로 각인되었다는 상징이다.
무위자의 송
세존께서 꽃을 드시자, 가섭이 미소 지었다네. 재앙이 자손에 미치니, 선조가 마치지 못한 탓이라네.67) 無爲子頌,“ 世尊擧花, 迦葉微笑. 殃及子孫, 上祖不了.” 67) 아직 마치지 못하여 결론이 나지 않은 공안을 말한다. 언제나 시비의 여지가 남 아 있는 것이 모든 공안의 본질이다. 이는 교외별전의 소식도 아니고 불립문자 라는 이해도 허용되지 않는다. 본서 1則 주석62), 2則 주석132), 181則 주석57) 참조.
무진거사의 송
세존과 가섭은 서로 알지도 못하면서, 호랑이 빠뜨리는 기관 각자 펼쳤다네.68) 정법안장과 열반묘심과 진실한 상이여!69) 영산회상에서 그 누구에게 전하였던가?70) 無盡居士頌, “世尊迦葉不相知, 陷虎機關各自施. 正眼妙心眞 實相! 靈山會裏付他誰?” 68) 염화와 미소는 앎의 대상으로 설정한 것이 아니다. 두 가지 모두 호랑이를 함정 에 빠뜨려 잡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세존의 염화를 가섭이 알아서 미소 지은 것 은 아니고, 가섭이 지어보인 미소의 뜻을 세존이 인정하여 정법안장을 전한 것 이 아니다. 들어 보인 꽃에는 아무 뜻이 없고, 그것을 알아차린 가섭도 헛된 웃 음으로 세존의 반응을 기다린 것이므로 모두가 일종의 함정과 같은 기관인 것 이다. 69) 세존이 가섭에게 전했다는 정법을 꿰뚫어 보는 눈[正法眼藏], 열반의 현묘한 마 음[涅槃妙心], 형상을 벗어난 진실한 상[實相無相] 등 각 구절을 줄여서 표현했 다. 주석5) 참조. 70) 기관이었을 뿐 전한 자도 받은 자도 전한 그 무엇도 없다는 취지.
열재거사의 송71) 71) 할아버지 유산에서 꽃가지 하나를 가보로 전했기에 후손들은 뼈저리게 가난한 신세가 되었다는 상징으로 이 공안의 핵심을 보인 게송이다. 부처님께서는 한 편으로는 화려하고 값진 경전의 온갖 구절을 유산으로 남기셨지만, 다른 한편 으로는 그것들을 모두 버리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유산을 전했다.
할아버지 유산 풀어놓고 모두들 잔치 벌이는데, 꽃가지 집어내어 대대로 전수된 가보라 했다네. 후손들마저 가난에 연루시켜 뼛속까지 사무치니, 어머니 치마 빌려 입고 어머니께 절을 올리노라.72) 悅齋居士頌, “抛他祖父大家筵, 拈出花枝作正傳. 帶累兒孫貧 到骨, 借婆裙去拜婆年.” 72) “그렇다면 결정적인 시절이 이르러 그 이치가 저절로 드러난다면 또한 어떻게 그것을 체득할 것인가? 어머니의 치마를 빌려 입고 어머니께 절을 올리고, 경치 를 남김없이 사들여도 한 푼의 돈도 들이지 않는다. 정면에서 다가올 때 회피하 지 말 일이니, 바로 이 사람 안에 태어난 까닭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네. 참!”(『宏 智廣錄』권1 大48 p.12c14. 祇如時節若至, 其理自彰, 又作麽生體得? 借婆裙子拜 婆年, 買盡風光不著錢. 劈面來時莫回避, 箇人裡許有生緣. 參!) 이 밖에 『頌古聯 珠通集』권3 卍115 p.30a15에 나오는 불성법태(佛性法泰)의 송(頌) 등에 나오는 구절 참조.
천복본일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하였다. “비록 스승과 제자가 만나 바늘이 겨자 씨에 어김없이 꽂히듯이 서로의 마음이 일치했지만, 문제는 얽매인 몸 을 벗어날 길은 없었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문 안에서 얽매인 몸을 벗 어나기는 쉽지만 자신의 몸 안에서 남들에게 문을 열어 보이는 것은 어 렵기 때문이다.73) 지금 이 법회에 자신의 몸 안에서 남들에게 문을 열어 보일 납승은 없는가? 있다면 대중 앞에서 증명해 보라.” 잠깐 침묵하다가 “도둑을 끌어들여 집안의 재산을 모두 털릴 뻔했구나!”74)라 하고 한 소리 크게 내질렀다. 薦福逸, 上堂, 擧此話云, “雖則師資會遇, 針芥相投, 要且, 未 有出身之路. 何也? 門裏出身易, 身裏出門難. 今此會中, 莫有 身裏出門底衲僧麽? 對衆證據.” 良久云,“ 幾乎敎75)賊破家!” 喝一喝. 73) 남들이 설정한 방편의 문이 가리키는 본질을 깨우치고 번뇌망상의 얽매임을 벗 어나는 문리출신(門裏出身)과 자기 자신 속에서 가르침의 방편을 이끌어내어 남에게 보여주고 그로 하여금 벗어나도록 인도하는 신리출문(身裏出門)을 대 칭시킨 말이다. 한편은 쉽고 한편은 어렵다고 했지만, 이러한 대립은 관문을 잠 그는 두 가지 빗장일 뿐 실제로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쉽거나 어려운 것은 아니 다. “법좌에 올라앉아 말했다. ‘문 안에서 얽매인 몸을 벗어나기는 쉽지만 자신 의 몸 안에서 남들에게 문을 열어 보이는 것은 어렵다. 겨울에 봄의 연중행사를 치르는 것은 접어두고, 어떤 길에도 들어서지 않는 한 구절은 어떻게 말해야 할 까?’ 잠깐 침묵한 뒤 ‘온 집안사람들을 고기잡이배로 보낸다’라 말한 다음 법좌 에서 내려왔다.”(『雲峰語錄』古尊宿語錄40 卍118 p.678b16. 上堂, ‘門裏出身 易, 身裏出門難. 冬行春令, 卽且置, 不涉程途一句, 作麽生道?’ 良久云, ‘渾家送 上釣魚船.’ 便下座.)『宏智廣錄』권8 大48 p.99c20에는 문리출신과 신리출문의 각 뜻을 게송으로 읊었다. 74) “그 뒤 위산이 앙산에게 물었다. ‘이 두 존숙(황벽과 임제)의 뜻은 어떤 것인가?’ 앙산이 말했다. ‘화상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식을 길러봐야 비로소 어버 이의 자애를 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도둑을 끌 어들여 집안의 재산을 털리는 것과 같습니다.’”(『臨濟語錄』大48 p.503a25. 後潙山問仰山, ‘此二尊宿, 意作麽生?’ 仰山云, ‘和尙作麽生?’ 潙山云, ‘養子方知 父慈.’ 仰山云, ‘不然.’ 潙山云, ‘子又作麽生?’ 仰山云, ‘大似勾賊破家.’);“열리 면 막을 수 없으니 도적을 끌어들여 집안의 재산을 털리고,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도리어 혼란을 맞이한다.”(『黃龍語錄』大47 p.633a2. 開不能遮, 勾賊 破家;當斷不斷, 返遭其亂.) 75) ‘敎’는 ‘勾’의 잘못으로 보인다.
해인초신(海印超信)의 소참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하였다. “서천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조사들과 천하의 노화상들 중 그 누구도 이 공안에 대하여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내가 오늘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76) 그대들에게 판단을 내려주겠다. 세 존은 여덟 방을 맞아야 하고, 가섭은 열세 방을 맞아야 한다. 그대들이 말 해 보라! 그들의 잘못은 어디에 있는가? 안목을 갖춘 자는 한번 점검해 보라.” 定慧信, 小參, 擧此話云,“ 自西天洎此土, 祖師天下老和尙, 未斷此箇公案. 山僧今夜, 不惜眉毛, 爲諸人斷却. 世尊八下, 迦葉十三. 你且道! 過在什麽處? 具眼者, 試驗看.” 76) 본서 181則 주석66) 참조.
[설화] 세존은 여덟 방을 맞아야 하고, 가섭은 열세 방을 맞아야 한다:방의 숫자에 대해 서는 출처를 알 수 없지만, 그 뜻은 잘못이라고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말해 보라 ~ 잘못은 어디에 있는가:어떤 잘못이 있는지를 물은 말이다. 定慧:世尊八下, 迦葉十三者, 棒數出處未知, 義則與過也. 且 道至麽處者, 有什麽過.
황룡조심(黃龍祖心)의 염
“납승의 해골을 꿰뚫고 납승의 눈동자를 바꾸어 버리는구나! 위태로움77) 에 닥치고도 남을 두려워하는 상태에 놓이지 않으니,78) 어디서 석가노자의 속뜻을 마주칠 수 있을까?” 黃龍心拈, “穿過衲僧髑髏, 換却衲僧眼睛! 臨危不在悚人, 向 甚處見釋迦老子?” 77) 세존께서 꽃을 들어 보인 것을 말한다.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 진퇴양난의 험 난한 낭떠러지 또는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같기 때문에 이처럼 말했다. 78) 몰골이 송연한 진실을 보여주었으나 그것을 모른다는 뜻. 설두중현(雪竇重顯) 의 말에도 보인다. 설두는 모든 것을 다 허용하는 입장을 설정해 놓고 그것이 위 태롭다고 했다. “설두가 말했다. ‘큰 보시의 문이 열려 막힌 구석이 전혀 없지만, 만일 납자 하나가 나타난다면 설두는 8백 리 멀리 나자빠지고 말 것이다. 왜 그 런가? 위태로움에 닥치고도 남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宗門拈古彙集』 권40 卍115 p.980a9. 雪竇曰, ‘大施門開無擁塞, 忽然有箇衲子出來, 雪竇倒退八百. 何故? 臨危不悚人.’) [설화] 해골이란 정식(情識)의 보금자리이고, 눈동자는 정식이 사라진 경계를 말한다. 세존께서 꽃을 든 것은 하나하나의 정식을 꿰뚫고 낱낱의 눈동자 를 바꾸어 버린 것이다. 위태로움에 닥치고도 남을 두려워하는 상태에 놓이지 않으니:아마도 ‘남을 두려 워하는 것은 위기에 닥쳤기 때문이 아니다’라는 말을 잘못 쓴 것으로 보 인다. 黃龍:髑髏則情識窠窟也, 眼睛則無情識處也. 世尊拈花, 則 一一穿却換却也. 臨危不在悚人者, 疑悚人不在臨危之誤也.
해회단79)의 염 79) 海會端. 백운수단(白雲守端)을 가리킨다.
“가섭은 바람과 구름을 잘 살피고 그 기운과 빛깔을 잘 분별하였다. 비 록 그렇기는 하지만 정수리가 무거운 줄 느끼기는 했는가?” 海會端拈,“ 迦葉, 善觀風雲別氣色. 雖然如是, 還覺頂門重麽?”
[설화] 정수리가 무겁다:마치 ‘머리는 무겁고 꼬리는 가볍다’라는 말과 같아서 거꾸로 떨어지지 않을 수 없다.80) 海會:頂門重者, 如云,‘ 頭重尾輕’, 未免顚墜也. 80) 도끼의 머리가 무겁고 자루는 가벼운 모습에서 나온 비유.
해회단의 거
다시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하였다. “대를 이어 전했기에 끊어지지 않도 록 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대중들이여, 만약 정법안장이라면 석가노 자에게도 자격이 없을 뿐이거늘 무엇을 나누어 주었겠으며, 무엇을 전했 겠는가? 어째서 이와 같이 말하는가? 하물며 여러분의 본분에 각각 정법 안장이 있어 날마다 일어나 옳으니 그르니 분별하거나 남이다 북이다 갈 라놓거나 드러내는 갖가지 행위들이 모조리 정법안장의 그림자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정법을 보는 이 눈이 뜨이는 순간 하늘과 땅과 대지 전체, 해와 달과 모든 별들 그리고 빽빽이 펼쳐져 있는 만물의 형상이 바로 눈 앞에 드러나더라도 그들 사이에 털끝만큼의 차별된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눈이 아직 뜨이지 않았을 때는 그 모든 것이 여러분들 의 눈동자 속에 있을 것이다. 오늘 이미 눈이 뜨인 자는 이런 한계에 속하 지 않겠지만,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자가 있다면 내가 손을 아끼지 않고 여 러분들에게 이 정법안장이 뜨이도록 해 주겠다.” 이윽고 손을 들어 두 손 가락을 세우고 말하였다. “자세히 살펴라! 만약 보았다면 일마다 같은 집 안의 일이 되겠지만,81)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거듭 게송 한 수를 읊 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지닌 정법안장이여! 어떤 성인도 대적하지 못하리라. 그대에게 한 가닥 길 터주리니, 번득이는 빛 당나라에 가득하리. 수미산은 바다 속으로 내달리고, 유월에 모진 서리가 내리누나. 내가 비록 이렇게 말은 했지만, 헤아릴 수 있는 구절은 없다네. 대중들이여! 내가 이미 입 가득히 말해 놓고서, 어째서 헤아릴 수 있는 구절이 없다고 했을까?” 이어서 할을 내지른 다음 말하였다. “두 곳에 몸 을 나누어 보라.”82) 又擧此話云,“ 次第流傳, 無令斷絶, 至于今日. 大衆, 若是正 法眼藏, 釋迦老子自無分, 將箇什麽分付, 將箇什麽流傳? 何 謂如此? 況諸人分上, 各各自有正法眼藏, 每日起來, 是是非 非, 分南分北, 種種施爲, 盡是正法眼藏之光影! 此眼開時, 乾 坤大地, 日月星辰, 森羅萬像, 只在面前, 不見有毫釐之相, 此 眼未開時, 盡在諸人眼睛裏. 今日已開者, 不在此限, 有未開 者, 山僧不惜手, 爲諸人開此正法眼藏看.” 乃擧手竪兩指云, “看看! 若見得去, 事同一家, 若也未然, 山僧不免重說偈言. 諸人法眼藏, 千聖莫能當. 爲君通一線, 光輝滿大唐. 須彌走 入海, 六月降嚴霜. 法華雖恁道, 無句得商量. 大衆! 旣滿口道 了, 爲什麽却無句得商量?” 乃喝云,“ 分身兩處看.” 81) 운문문언(雲門文偃) 등의 어록(『雲門廣錄』권상古尊宿語錄15 卍118 p.349b13)에 나오는 말. “깨달으면 일마다 같은 집안의 일이지만, 깨닫지 못하면 천차만별로 달라질 것이다.”(『五祖法演語錄』古尊宿語錄20 卍118 p.425a12. 會卽事同一家, 不會萬別千差.);“깨달으면 일마다 같은 집안의 일이지만 깨닫지 못한다면 천차만별 로 달라진다. 깨닫지 못하면 일마다 같은 집안의 일로 보이지만 깨달으면 천차 만별에 다 통한다.”(『無門關』16則「頌」大48 p.295a21. 會則事同一家, 不會萬別 千差. 不會事同一家, 會則萬別千差.) 82) 하나의 무차별을 차별로 나누어 분별의 세계로 연다는 뜻. 헤아릴 수 있는 구절 이 없는 경계에 머물지 말고 분별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운신해 보라는 뜻이다.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밝은 성품을 등지는 짓이며, 고금의 공 안을 제기하는 것은 앞서 간 조사들의 뜻을 매몰시키는 짓이라 합니다. 이 두 가 지 잘못된 길을 떠나서 어떻게 하면 될까요?’ ‘두 곳 모두에다 몸을 나누어 보 라.’”(『大慧語錄』권1 大47 p.811c7. 問, ‘一問一答, 辜負己靈;擧古擧今, 埋 沒先祖. 去此二途, 如何卽是?’ 師云, ‘分身兩處看.’);“남전보원(南泉普願)이 고 양이를 베어버린 화두:오색 고양이를 두고 있는 힘 다해 다투다가, 남전이 칼 휘둘러 베어 버리고 나니 양편 모두 맹인과 같네. 남전이 두 곳에 몸을 나누어 거듭 가르쳐주자, 대지를 흔드는 자비의 바람 일어났다네.”(『佛眼語錄』古尊 宿語錄34 卍118 p.594a17. 南泉斬貓兒:五色狸奴盡力爭, 及乎按劍總生盲. 分身兩處重相爲, 直得悲風 動地生.)
[설화] 그 모든 것이 여러분들의 눈동자 속에 있을 것이다:정법안장이라면 석가와 가 섭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니, 사람이면 누구나 본분에 본래부터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손을 들어 두 손가락을 세우고 말하였다:정법안장과 빽빽이 펼쳐진 만물의 형상이 한 손의 두 손가락에 상응한다. 그러므로 ‘일마다 같은 집안의 일 이다’라고 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지닌 정법안장 ~ 대적하지 못하리라:빈틈없이 들어차 있지만 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대에게 ~ 당나라에 가득하리:뚜렷하게 어디에나 드러나 있다는 뜻이다. 수미산은 바다 속으로 내달리고:수미산이 모조리 사라져 이름도 잊힌다는 뜻이다. 바다는 생사의 바다이니, 열반이 곧 생사라는 말이다. 유월에 모진 서리가 내리누나:유월에는 끓는 듯한 열기가 당연함에도 모진 서리가 내린다는 것은 추위가 대단히 위세를 떨친다는 뜻이다. 생사가 곧 열반이니 사실은 모두 무생(無生)이라는 뜻이다. 내가 비록 ~ 헤아릴 수 있는 구절은 없다네:종일토록 말했으나 말한 적이 없 다는 뜻이다. 할을 내지른 다음 ‘두 곳에 몸을 나누어 보라’고 한 말:말로 표현하건 아무 말도 하지 않건 모두 하나의 할(喝)일 뿐이다. 앞서 두 손가락을 세운 동작과 이렇게 두 곳에 몸을 나누어 보라는 말은 그 깊이에 있어 같지 않다. 앞서 해회가 제기한 염(拈)의 뜻은 염화미소뿐만 아니라 세존께서 자리를 나누 어 가섭도 함께 앉도록 한 것 또한 인정하지 않고 그 이상으로 향상하는 하나의 통로를 가리키고 있다. 곧 여기서 대중에게 준 법어[示衆]는 그 두 곳의 만남이 하나의 할이 아님이 없었다는 취지이다. 又擧:盡在諸人眼晴裏者, 若是正法眼藏, 非局釋迦迦葉, 人 人分上本自具足也. 擧手竪兩指者, 正法眼藏, 森羅萬象, 一手 之兩指也. 故云, ‘事同一家’也. 諸人法眼藏, 至能當者, 密密 難見也. 爲君至大唐者, 堂堂成現也. 須彌走入海者, 須彌相盡 名亡, 海則生死海, 則涅槃卽生死也. 六月云云者, 六月鬧熱 義, 降嚴霜則寒威威地. 生死卽涅槃, 其實皆無生也. 法花至商 量者, 終日說末曾說也. 喝云分身兩處看者, 道不道, 皆是一喝 也. 前竪兩指, 此兩處分身, 深淺不同也. 前之拈義, 非但拈花 微笑, 分坐令坐, 亦不許, 指向上一竅也. 則此示衆, 二處相見, 無非一喝也.
고목법성(枯木法成)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존경하는 선수행자들이여, 말해 보라! 전해준 것이 있는가, 없는가? 만약 전해준 것이 있다고 한다면 열반의 미묘한 마음은 사람마다 누구나 갖추고 있거늘 어찌 황면노자의 힘을 빌려 특별히 새롭게 되겠는가! 만약 전해준 것이 없다면 2천여 년 동안 조사들이 대대로 전하여 진리의 등불이 꺼지지 않고 이어진 사실이 어 찌 우연이었겠는가! 산승은 오늘 여러 해 동안 팔리지 않아 묵은 물건 을 사람들 앞에 펼쳐놓았다.83) 대중 가운데 이것을 모조리 가져갈 사람 있는가?”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변벽84)을 감정할 사람이 아무도 없 다고 누가 말하는가? 나는 ‘여주85)가 곳곳에서 밝게 빛난다’라고 말하 리라.” 枯木成, 上堂, 擧此話云,“ 諸禪德, 且道! 有分付無分付? 若 言有分付去, 涅槃妙心, 人人具足, 又何假黃面老子, 特地新 條! 若言無分付, 二千餘年, 祖祖相傳, 燈燈相續, 豈可徒然! 山僧, 今日, 將多年滯貨, 攤向人前. 衆中莫有承當得底麽?” 良久云,“ 誰言卞璧無人鑑? 我道驪珠到處晶.” 83) 오랫동안 팔리지 않은 물건과 같이 아무도 그 뜻을 몰라 가져가지 못한 염화와 미소를 제기해 보겠다는 말. 84) 卞璧. 변화(卞和)가 초(楚)나라 형산(荊山)에서 캐낸 옥. 본서 417則 주석25) 참조. 85) 驪珠. 여룡(驪龍) 곧 흑룡(黑龍)의 턱 밑에 있는 구슬. ‘변벽’과 마찬가지로 대단 히 귀중하고 얻기 어려운 것을 가리킨다.『莊子』「列禦寇」에 다음과 같이 제시 된다. “천금의 가치를 지닌 구슬은 반드시 9중 깊이의 연못 속 여룡의 턱 밑에 있다. 그 구슬을 얻으려는 자는 반드시 여룡이 잠든 틈을 이용해야 한다.”(千金 之珠, 必在九重之淵, 而驪龍頷下. 子能得珠者, 必遭其睡也.)
[설화] 모든 사람의 본분에 있는 정법안장을 곧바로 가리킨 것이다. 枯木:直指諸人分上正法眼藏也.
조계명의 상당
“세존께서 꽃을 집어 들자 가섭이 미소 지으니, 정법안장과 열반의 미묘 한 마음을 여기서 두 손으로 몸소 건네주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서 어지럽게 이리저리 내달리며 선(禪)을 구하거나 도(道)를 찾는 사람들 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진실에 부합하지 않으니 어느 시기에 목적을 이루겠는가! 산승은 평상시에 그들에게 ‘쉬어 라, 그쳐라, 지금 당장에 알아차릴 것이다’라고만 가르쳐 왔다. 그러나 나 의 이러한 말도 그들을 매몰시킬 뿐이다.” 曹溪明, 上堂云,“ 世尊拈花, 迦葉微笑, 正法眼藏, 涅槃妙心, 於是乎兩手分付. 直至如今, 天下紛紛, 犇南走北, 尋禪覓道, 數如恒沙, 轉不相應, 有何了日! 山僧, 尋常只敎他,‘ 休去歇 去, 直下承當去.’ 伊麽說話, 也是埋沒他了也.”
[설화] 조계의 뜻은 사람들이 염화와 미소에서 세존과 가섭의 본래 생각을 잘못 이해할까 염려한 것이다. 그렇다면 세존과 가섭의 본래 생각은 어떤 것일까? 曹溪意, 恐諸人錯會, 拈花微笑, 世尊迦葉本意也. 則世尊迦葉 本意, 作麽生?
불안청원의 상당
“부처님의 염화와 가섭의 미소는 한 치의 어김도 없이 딱 들어맞고 군 더더기 없는 요소이거늘 눈동자를 두리번거리며 이러니저러니 헤아려서 옛 성인의 가르침에 보답하려 든다. 먼 길로 돌아가지 마라! 무슨 까닭인 가? 완결된 글자에는 한 점도 덧붙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86)” 佛眼遠, 上堂云,“ 世尊拈花, 迦葉微笑, 親切親切, 省要省要, 眼目定動, 料料掉掉, 爲報先生. 莫打之遶! 何也? 文不加點.” 86) 문불가점(文不加點). 이 상당의 요지가 압축되어 있는 말이다. 염화와 미소 자체 가 완결된 화두이므로 오로지 드러난 그것이 있을 뿐 그 밖에 달리 어떤 분별과 뜻도 덧붙일 여지가 없다는 취지이다. 본래 명필의 붓글씨와 같이 완성된 글자 에는 점 하나도 덧붙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실현된 화두[現成公案]에 대해서 는 덧칠과 같은 쓸데없는 분별이 불필요하다는 뜻을 비유한다. “모든 중생은 본 래 성불한 것인데, 지옥의 중생은 어떤 까닭으로 고통을 받는가? 대신하여 답한 다. ‘제대로 도리를 아는 자가 거의 없구나.’ 잘 완성된 글자에는 점 하나도 덧붙 일 필요가 없는데, 이것은 어떤 사람의 경계일까? 대신하여 답한다. ‘붉은 진흙 을 덜 익은 홍시에 바르는 격이다.’”(『汾陽語錄』권중 大47 p.614a15. 一切衆 生, 本來成佛, 地獄衆生, 因何受苦? 代云, ‘知恩者少.’ 文不加點, 是什麽人境界? 代云, ‘赤土塗牛嬭.’);“도인이 무슨 마음 편안히 하는 방법[安心法]을 찾는가!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건너올 당시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던 것이다. 대중 들에게 묻겠다. 달마가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어떤 것을 가지고 혜가에 게 전했던 것일까? 주장자를 높이 세웠다가 한 번 내리치면서 말했다. ‘잘 써진 글자에는 덧칠할 필요가 없느니라.’”(『別峰寶印禪師語』續古尊宿語要6 卍119 p.143a12. 道人覓甚安心法! 達磨當時帶不來. 敢問大衆. 達磨旣帶不來, 後代將 何傳授? 卓拄杖一下云, ‘文不加點.’)
[설화] 한 치의 어김도 없이 딱 들어맞고[親切]:전혀 어김이 없고 척척 들어맞는다는 말이니, 치우침 없는 중간의 말을 기준으로 했다는 뜻이다. 군더더기 없는 요소:군더더기는 생략하고 절묘한 핵심만 추려냈다는 말 이니, 그 본질을 가리켰다는 뜻이다. (세존께서) 어김없이 들어맞고 다시 (가섭도) 어김없이 들어맞으며, 군 더더기 없는 요소이면서[염화] 다시 군더더기 없는 요소[미소]이니, 이 소 식은 염화와 미소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완결된 글자에는 한 점도 덧붙일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이다. 또 다시 머뭇거리며 분별한다 면 먼 길로 돌아가는 잘못을 모면하지 못할 것이다. 佛眼:親切者, 親親切切, 約中間言也. 省要者, 省略而要妙, 指其體也. 親切而又親切, 省要而又省要, 這箇消息, 不離拈花 微笑處也. 故云,‘ 文不加點.’ 更若擬議, 未免打之遶.
육왕개심(育王介諶)의 염
“전해주기는 분명히 전해주었지만, 머리는 무겁고 꼬리는 가벼웠던 것 을 어찌하랴!87) 왜 그런가? 계족산 봉우리에서는 졸 줄만 알았고, 용화회 상에서는 가만히 신통력을 드러내었다.88) 비록 찰간(刹竿)을 쓰러뜨리기 는 했으나,89) 눈살을 활짝 펴지는 못했다. 수행하는 자는 여기서 현녕90)이 보여준 안목을 판단하여 보라.” 育王諶拈,“ 分付則分付了也, 爭奈頭重尾輕! 何故? 雞足峰 前, 只知瞌睡;龍華會上, 謾逞神通. 雖然倒却刹竿, 要且, 眉 頭不展. 行脚人, 試向者裏, 辨顯寧爲人眼看.” 87) 바로 서지 못하고 거꾸러지고 만다는 비유. 주석80) 참조. 88) 계족산에서 부처님으로부터 전수받은 가사(袈裟)를 미륵불(彌勒佛)에게 전하 기 위하여 기다리는 가섭, 용화회상에서 설법하고 있는 미륵을 각각 나타낸다. 89) 이 일화에 관해서는『禪門拈頌說話』81則 본칙 참조. 찰간이란 그 영역에 조사 의 법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절 입구에 세워두는 표지(標識)이다. 보 통은 설법 등의 불사가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 90) 顯寧. 육왕개심의 사호(寺號).
[설화] 머리는 무겁고 꼬리는 가벼웠다:위에서 한 번 나온 구절이다. 존다:선정(禪定)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신통:유희를 나타낸다.91) ‘~할 줄만 안다’는 뜻의 지지(只知)와 ‘가만히 드러내었다’는 뜻의 만령(謾逞):모두 불필요한 글자이다. 찰간을 쓰러뜨렸다:불법의 전수(傳受)를 굳이 내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눈살을 활짝 펴지는 못했다:비록 전수를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또한 편안한 상태는 아니라는 뜻이다. 앞에서 ‘머리는 무겁고 꼬리는 가볍다’라고 한 의미가 이 대목에 이르러 비로소 간략하게나마 드러나게 되었다. 현녕이 보여준 안목을 판단하여 보라:겉보기에는 보여준 안목이 없는 듯하 기에 반드시 판단해야 된다는 뜻이다. 育王:頭重尾經, 已出上. 瞌睡者, 入定也. 神通者, 遊戱也. 只知謾逞者, 皆不立也. 倒却刹竿者, 不立傳受也. 眉頭不展 者, 雖然不立傳受, 亦未穩也. 前云頭重尾經之義, 至此方略辨 也. 顯寧爲人眼看者, 似無爲人眼看也, 須辨取始得. 91) 신통과 유희(遊戱)는 모두 선정에서 체득한 경지를 노닐듯이 자유자재로 부리 는 작용을 나타낸다. 80권본『華嚴經』권26 大10 p.780a2,『維摩經』권중 大14 p.544b1,『楞伽經』권1 大16 p.480a20 등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