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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3일 [주님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루카 24,35-48
누가 성경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드디어 당신 사도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사도들은 많은 이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믿기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또 음식도 먹어 보이십니다.
마지막에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신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대로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심을
몸소 증명하시기 위해 사셨다는 말과 같습니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성경 말씀엔 무엇이 쓰여있을까요? 하느님께 순종하면 부활의 영광을 누린다는 말씀이 써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도로 쓰였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당신 스스로 이루셨습니다.
아버지께 순종하시어 돌아가셨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비로소 성경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성경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대로 하면 됩니다.
곧, 하느님께 순종하면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고 영원히 살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을 스스로 증명해내면 그 사람의 말은 성경이 됩니다.
말에 권위가 입혀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말에 권위가 없는 이유는 그 말속에 담긴 죽음과 부활을 몸소 증명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유튜브에서 동기부여 강사 중에 가장 감명 깊게 들었던 연설이 있습니다.
바로 레스 브라운(Les Brown)입니다.
그는 사업가에다 백만장자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동기부여 강사로 이름이 높습니다. 그가 자기 생애를 바탕으로 한 강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레스 브라운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습니다. 5학년 때 지적 장애 판정을 받습니다.
그래서 4학년으로 유급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랬습니다.
그는 대학에 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자신의 삶을 바꿔줄 선생님을 만납니다.
그는 레스 브라운에게 칠판에 자신이 말하는 것을 쓰라고 합니다.
레스는 자신이 선생님의 학생도 아니고 자신은
정신지체자이기 때문에 교육이 가능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그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말은 다시 하지 말게. 누군가의 의견이 자네의 현실이 될 필요는 없는 거라네.”
레스는 심장이 빠르게 뛰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말합니다.
“레스 브라운, 삶에서 가치 있는 어떤 것을 하고 싶으면 굶주려야 해!”
레스는 그 말 뜻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워싱턴 선생님, 저는 DJ가 되고 싶어요.”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그러면 DJ가 되는 걸 매일 연습해라!”
지금은 가진 것이 없고 직업도 없지만, 기회가 왔을 때 능력이 없는 것보다 기회가 오기 전에
능력을 키우는 게 낫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자신을 패배자로 여겼고 교육 불가로 여겼던 레스 브라운의 삶은 이 순간부터 180도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계발하면서 마이애미 해변의 WNB에 DJ로 지원하였습니다.
밀튼 버터볼이란 간부를 찾아갔지만 당연히 그를 거절하였습니다.
방송 일도 해본 적이 없고 대본을 써 본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워싱턴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대부분 사람은 부정적이어서 승낙하기 전에 일곱 번은 거절할 거야. 다시 돌아가게.”
그래서 그다음 날도 찾아갔습니다.
정직당하거나 해고당한 직원이 있을까 봐 찾아왔다고 말하였습니다.
버터볼 씨는 브라운을 미친 사람 취급하였습니다. 물론 그다음 날도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버터볼은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됐네. 저기 있는 커피나 가져오게!”
그렇게 취직이 되었고 조금씩 자기 능력을 발휘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굶주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굶주리세요. 자기 내면의 위대함을 알기 시작하면, 여러분 중 한 명이라도 자신이 축복받고 있다고 여기고, 목표에 도달하는 걸 좋아하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여러분 중 한 명이라도 ‘당신은 위대하고 그 위대함을 드러낼 책임이 있다’라는 말의 본질을 파악했다면 당신은 부모님과 학교를 자랑스럽게 만들 수 있으며 수백만 명의 목숨을 건질 수 있습니다.
당신의 세상은 예전 같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새로운 길에 들어섰기 때문이죠.
멈추지 마세요. 멈추지 마세요.”
그의 강연은 마치 성경 말씀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의 말대로 굶주렸고 배불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조리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느님은 그 말씀을 하셨고 예수님은 그 말씀대로 사셨습니다.
그러니 그분의 말에 능력과 권능이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의 말이 어떻게 십자가와 부활의 내용이 담긴 성경을 깨닫게 할 수 있을까요?
성경이 우리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도 권위가 있으려면 말씀을 믿고 굶주리고 결국엔 배부른 부활의 삶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말도 성경 가르침이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4월13일 [주님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루카 24,35-48
주님 부활이 없다면 우리들의 부활도 없고 영원한 생명도 없습니다!
예수님 부활의 최초 목격 증인인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에 비해 열두 사도들의 부활에 대한
확신과 믿음은 더디기만 합니다.
엠마오 길의 두 제자에 이어 예수님은 다시 한번 사도단 앞에 발현하십니다.
제자들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주님 부활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은 바 있지만, 아직도 스승님의 부활에 대한 큰 의구심과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만일 제가 예수님 같았으면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후 그들의 불신과 의구심에 대해 벼락같이 화를 내며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자네들 보자 보자 하니 참으로 한심하고 너무하네.
내가 공생활 기간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내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예고를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자네들은 하나같이 불신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가? 제발 정신들 좀 차리게!”
그러나 예수님께서든 절대 호통을 치시거나 윽박지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따뜻한 목소리로 제자들의 안부를 물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복음 24장 36절)
이어서 부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제자들을 향해, 정 그렇다면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라며 못 자국이 아직도 선연한 당신 손과 발을 보여주셨습니다.
스승님의 손과 발에 남은 뚜렷한 못 자국을 확인한 제자들은 크게 기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확고한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수단으로 구운 생선 한 토막을 그들 앞에서 손수 발라 드셨습니다.
아직 식사 시간도 아니고, 배도 고프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남아있는 불신과
의혹을 떨치도록 도와주기 위해 생선 한 토막을 맛있게 드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셨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강조하는 것이겠습니까?
주님께서 진실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환시처럼, 유령처럼 발현하신 것이 아니라, 온전히, 실제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우리 그리스도교 안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주님 부활이 없다면 수난도, 죽음도 빛을 바랩니다.
주님 부활이 없다면 우리들의 부활도 없고 영원한 생명도 없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2023. 4. 13. 목)(루카 24,35-48)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다.>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루카 24,36-43).”
이 이야기를 사도들의 ‘증언’으로 바꿔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우리는 처음에는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 주시면서 우리에게 만져 보라고 하셨고, 우리가 보는 앞에서 음식을 잡수셨다. 분명히 그분은 유령이 아니라 살아 계시는 예수님이셨다.” 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혹시 사도들이 예수님의 유령을 보았을 뿐인데도,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 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의심에 대한 반박이기도 합니다.
또 세속의 학자들 가운데에는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강하게 희망하고 염원하다가 어떤 심리적인(영적인) 현상을 겪은 것은 아닐까? 라고 의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안 믿을 이유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우리는 살아 계시는 예수님을 분명히 만났다.” 라고 증언했고, 자신들의 증언이
진실이고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 이야기에 묘사되어 있는 ‘사도들의 심리 상태’를 보면, 또는 이야기 전체의 ‘분위기’를 보면,
‘기쁨’이 아니라 ‘놀라움’과 ‘어리둥절함’입니다.
<사도들이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는 때는 ‘예수님 부활 직후’가 아니라, ‘예수님 승천 후’입니다(루카 24,52).
“참으로 기뻐하게 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또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는, “유령이라고 생각해서 무서워했다.”입니다.
사도들은 갑자기 나타나신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아보긴 했는데, 아직 부활은 생각하지 못하던
때였기 때문에 유령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무서워했습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이라고 해도, 유령으로 나타나면 무서워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람들 가운데에는 사별의 아픔과 슬픔이 너무 커서 유령이라도 보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경우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서 나타나는 것과 유령으로 나타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 주시면서 만져 보라고 말씀하신 것은 “나는 유령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다.” 라는 뜻이기도 하고,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은 바로 그 예수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잡수신 것도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 부활의 성격을 배우게 됩니다.
1) 부활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신 바로 그 예수님이시고, 수난의 상처를 그대로 지니신 채 부활하셨다.
2)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적으로만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돌아가시기 전과 똑같이 육체가 있는 분이시다.
3) 그러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즉 인간 세상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몸으로 부활하셨다.
<문이 잠겨 있는데도 갑자기 사도들 앞에 나타나셨다가 금방 사라지시고, 예루살렘에 나타나셨다가 엠마오에도 나타나시는 등의 모습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4-48)”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라는 말을 사도들의 증언으로 바꿔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성경 말씀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부활 신앙’으로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부활 신앙 없이 읽으면 그냥 옛날이야기 책이 될 뿐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설명해 주신 덕분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이유와 의미를
이해하고 깨달았고, 그 깨달음을 통해서 부활 신앙을 갖게 되었는데, 사도들의 경우에는 반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먼저 있었고,
그 만남을 통해서 부활 신앙을 갖게 되자 십자가 수난과 죽음의 이유와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깨달음과 신앙에 도달한 사도들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하셨는데, 그냥 임무만 맡기신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약속하신 대로 그 힘을 주셨습니다(사도 2,4).
<예수님은 일을 시키기만 하고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라 그 일을 해낼 수 있도록 끝까지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