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태의 소명]
1600년,
캔버스에 유채, 322×340cm,
콘타렐리 채플,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로마
稅吏 마태가 예수의 제자로 부름을 받는 순간을 묘사한 [성 마태의 소명 Calling of Saint Matthew]에는 이후 그의 종교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카라바지오 양식의 두 요소 곧 ‘사실적인 인물 묘사’와 ‘대담한 명암법’이 잘 드러나 있다.1세기 이스라엘에서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는 16세기 로마인의 복장으로 한 무리의 한량들과 함께 연극무대 같은 선술집의 도박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 그를 부르러 고전적 복장의 예수와 베드로가 화면 오른쪽에서 등장한다.
사실적인 인물들의 일상 장면 같은 그림에 종교화로서의 신비감과 성스러움을 부여하는 것은 화면 오른쪽 위에서 들어오는 ‘빛’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배경에 중간 단계 없이 강한 빛을 병치시키는 이러한 조명법은, 13세기 이래 이탈리아 회화가 화면에 입체감을 주기 위해 개발해온 명암법인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에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어서 이에는 ‘어두운 방식’이라는 뜻의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었다. 연극의 인공조명처럼 다소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키아로스쿠로라고 할 수 있는 테네브리즘은, 당대부터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켜 로마에 와 있던 화가들을 통해 전 유럽에 퍼졌고 특히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에서 수많은 모방자를 낳았다.
이 빛은 실제 창문이 있는 위치에서 들어와 ‘나를 부르는 것이냐’는 손짓을 하고 있는 마태의 얼굴을 비추는 ‘자연의 빛’인 동시에, 깨닫지 못하는 죄인들의 어두운 세계를 비춰 각성을 가져올 ‘신적인 빛’이기도 하다. 또한 이 빛은 추하고 더러운 몸에 누더기를 걸치고 이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남루한 일상에서 연극의 한 장면처럼 주목받을 만한 순간을 찾아내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의 빛’이기도 하다. 스스로 ‘세상의 빛’을 자처한 예수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채플 천장화의아담의 손동작을 반복함으로써 ‘제2의 아담’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준다. 예수와 마태 사이에 선 베드로는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 역할을 하는 사제를 상징하여, 이 작품에 반종교개혁 가톨릭적인 메시지를 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