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도(烏瞰圖) : 시 제1호
이상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오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조선중앙일보』 1934.7.2.4)
[어휘풀이]
-아해 : ‘아이’의 한자식 표기
[작품해설]
“모든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은 기교를 낳고, 그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고 소리쳤던 이상. 만약 우리 문학사에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땅의 문학은 참으로 무미건좋였을 것이다. 이상을 현대시의 기수(旗手)라며 천제적 시인으로 높이 평가하는 평자(評者)가 있는가 하면, 당시 일본문단에 유행했던 시 경향의 단순한 모방일 뿐이라며 낮게 평가하는 평자도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쪽의 평가를 받든지 간에 그는 분명 ‘이상(異常)한’ 시인이자 소설가요, 수필가로서 대단한 주목을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20세기의 정신으로 19세기의 현실을 고민하였다고 하는 이상은, 자신의 말에 따르면 2천 편이 넘는 작품에서 30편을 골라서 당시 『조선중앙일보』 문화부장으로 있던 이태준에게 넘겨 「오감도」라는 이름의 연작시로 발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게재 첫날부터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 전화와 비난투서로 인해 결국 15회로 중단하고 말았다. 이렇게 발표 때부터 문단 내외의 주목을 받아 온 그의 시에 대해 많은 문학 연구가들뿐 아니라 심지어 수학자나 정신과 전문의까지 연구하고 있으나, 어느 누구도 속 시원히 설명해 주지 못할 만큼 그의 시는 난해하기만 하다. 어쩌면 정신병자의 장난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의 시는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등 기존 문법 질서의 파괴와 숫자, 기호, 도표의 사용으로 인해 더욱 그 의미를 알아내기가 어렵다.
모든 시의 미학을 부정하고 새로운 시 형태를 취하는 일종의 다다이즘(dadaism) 또는 초현실주의 경향의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독자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상태의 도면을 일러 ‘조감도(鳥瞰圖)’라 하지 ‘오감도(烏瞰圖)’라고는 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국어사전에도 없는 이러한 단어를 시의 표제로 삼은 것부터 평범하지 않다.
이 작품에서 시적 자아는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을 조감하고 있는데 ‘조감도’를 ‘오감도’로 바꾼 의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나타난 현상으로만 보면, 풍경을 조감하는 시적 화자가 자신을 새가 아니라 까무귀와 동일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이자 불길한 새의 표상인 까마귀가 아해들이 질주하는 풍경을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이 작품은 곧 자기 풍자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 작품의 감추어진 의미을 찾아내기란 매우 힘들지만, 표면적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전체의 내용은 크게 4단락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단락 :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한다.
둘째 단락 : 13인의 아해 모두가 무섭다고 한다
셋째 단락 : 그 중의 어떤 아해가 무서운 아해든, 무서워하는 아해든 상관없다
넷째 단락 :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않아도 좋다
여기서 먼저 의문점이 생기는 것은 ‘13이라는 숫자이다. 이것의 의미는 ①당시 우리나라의 도(道)가 13도였다는 것으로 식민지 족국을 상징 ②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예수와 12제자의 상징 ③무수(無數)의 상징 ④‘13의 금요일’처럼 가장 불길한 숫자로서의 상징 ⑤일종의 국외적(局外的 )성격을 띤 사물을 상징’ 등 다양하게 해석된다. 이 작품에서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으나 ‘오감도’의 까마귀의 불길함과 연관지어 볼 때, 이 13이라는 숫자도 불길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13인의 아해 모두가 ‘무섭다’며 질주하는 것은 공포심 때문이다. 아해들이 질주하는 길이 막다른 골목이기에 그들이 공포에 떤다고도 할 수 있지만, 마지막 연에서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상관없다고 한 것을 보면 아해들의 공포에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뚜렷한 이유가 없는 공포는 곧 불안에 가까운 것으로 도로를 질주하는 13인의 아해는 결국 불안을 앓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질주하는 행위는 자신들이 정체 모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불안감을 갖고 있는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을 까마귀가 내려다보는 풍경이란 더욱 불안하고 음산한 느낌까지도 준다.
그런데 질주하는 13인의 아해 중, 무서운 아해나 무서워하는 아해가 몇이든 상관없다고 한다. 그것은 13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로 이루어져 있지만, 누가 무섭고 누가 무서워하는지 굳이 따질 필요가 없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13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자 무서워하는 아해라는 반어적 성격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 무섭고, 무서워하는 사이가 되어 13인의 아해는 더욱 불안해 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스스로가 불안을 느끼는 존재요, 스스로가 불안을 느끼게 하는 존재이므로 질주하는 곳이 막다른 골목이건 뚫린 골목이건 건에 어디에서도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도로로 질주해도 결국은 불안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에 마지막 행에서는 13인의 아해가 질주하지 않아도 좋다고 하는 것이다.
어디를 가건 불안에 떨며 절망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그들. 이것이 바로 시인 이상의 눈에 비친 현대인의 모습이 아닐까? 그러므로 바로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고 불신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불안 의식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13인의 아해는 맹목적인 자신의 삶을 향해 그저 질주할 뿐이다. 그 불안한 모습을 바라보던 까마귀 이상은 아마도 더욱 불안해 하며 암울한 식민지 시대를 가슴졸이며 살았을 것이다. 이 시는 현대인의 소외와 불안, 고독을 막다른 골목으로 삼아 절망적이고 암담한 현실 상황을 보여 주고 있으며, 뚫린 골목으로 나타난 희미한 희망의 불꽃이라도 잡아 보려고 하는 현실의 위기의식을 도식적으로 구도화하고 있다.
[작가소개]
이상(李箱)
본명 : 김해경(金海卿)
1910년 서울 출생
1924년 보성고보 졸업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졸업
1930년 『조선』에 소설 「12월 12일」을 발표
1931년 조선 미전(朝鮮美展)에서 「자화상」 입선
1934년 구인회에 가입
1936년 동경행
1937년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일경에 체포, 감금됨
1937년 4월 17일 동경 제대 부속 병원에서 사망
시집 : 『이상선집』(1949), 『이상시전작집』(1978), 『이상시전집』(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