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극단적 흰빛 ●지은이_고철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4. 12. 13
●전체페이지_136쪽 ●ISBN 979-11-91914-73-3 03810/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2,000원
극단적 세상과 삶이 흰빛의 시가 되었다
고철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극단적 흰빛』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예닐곱 살에 보편적 가족생활이 단절된 보육원 출신의 아이가 성장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지난한 과정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형제자매 없이 외로움과 슬픔을 껴안고 살아가면서 가족의 따듯한 품과 사랑이 그립고 간절한 만큼 담담히 보여 준다. 시인은 지혜롭게도 사람 관계에서 생기게 되는 이질감과 모멸감 등의 서글픔과 세상 곳곳 외롭고 분노했을 극단적 삶의 무늬를 눈물방울이 하얗게 빛나도록 펼치고 있다.
새벽 일어나 똥 누고 이빨 닦고 세수하고
작업복을 입는다
새벽 일어나 똥 누고 이빨 닦고 세수하고를 빼면
작업복만 남는다
어제 먹은 해장국이 어금니에 끼었다
어제 먹은 해장국을 빼면
어금니만 남는다
작업복과 어금니
작업복과 어금니를 빼면
깡다구만 남는다
깡다구만 남는다를 빼면
나만 남는다
나만 남는다를 뺀 적은 없다
―「깡다구」 전문
시인은 이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극단적으로 살아온 거 같은데 다행스럽게도 그 극단적 삶의 결과가 더럽게 느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면서 시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일상생활이 아무리 극단적으로 치달아도 “나만 남는다를 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깡다구만 남는“ 노동 현장의 애환과 외롭고 고된 삶의 비의가 조용히 ‘어금니‘를 물게 한다.
강원도 간다/강원도 간다/섬 없는 강원도 간다/묻지 마라/강원도 간다//섬 되고 싶을 때 있다/투덜거리며 혼자되고 싶을 때 있다/두리번거려도 만져지지 않는/섬 되고 싶을 때 있다//섬에 살면서도/섬 되고 싶을 때 있다//강원도 간다/강원도 간다/내가 섬인 줄 모르고/강원도 간다
―「강원도에는 섬이 없다」 전문
세상으로부터 던져진 존재의 슬픔이 ”혼자되고 싶“다는 비장하고 결연한 고독으로 나아간다. 시설(보육원)에서 보낸 일련의 사건과 가족해체에 대한 제도적 모순, 집단적 사회로부터의 외면으로 ”섬 되고 싶을 때“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내가 섬인 줄 모르고“ 사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집의 다른 이름인 ’강원도‘와 고독의 또 다른 이름 ’섬‘으로 자신을 이끌어 ”극단적 흰빛“으로 승화하고 있다.
안성탕면을 먹다가/강아지 짖는 이유가 궁금해서/밖에 나갔다//낙엽 떨어지는 깜깜한 밤/추워서 들어왔다//상호 간 참 외로웠던 모양이다
―「가을밤」 전문
홀로 라면을 끓여 먹다가 ”강아지 짖는“ 소리에 밖으로 나가본다. 바람 불고 ”낙엽 떨어지는 깜깜한 밤“ 시인은 밖의 강아지가 ”궁금해서“ 귀를 열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 강아지 밥을 먼저 챙겼을 것인데 ”추워서 얼른 들어왔다“는 것은 강아지 집에 넣어줄 모포라도 들고 나갈 것이 분명하다. 시인이나 강아지나 서로 외로움을 끌어안고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며 살고 있음이다.
가을볕이 좋아서/가족들 앞세워 하늘 구경을 했다/사나운 바람 기다란 장대비 온데간데없고/뭉게뭉게 피어난 구름의 덩어리들이/아이들 좋아하는 곰 인형을 닮아서/나도 아이들도 아내도 참 행복했다/채송화도 들판 허수아비도/코스모스도 웃고 담장의 해바라기도/마음껏 웃던 하늘//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산다고 했다//가족사진을 찍었다/해바라기는 자기 키를 한 뼘이나 줄여서/우리들의 기념을 축하해 주었다//우리는 웃으면서 찍혔다
―「가족사진」 전문
김미옥 작가는 「발문」에서 이 시는 ”어른이 되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겠다는 추측성 시“라고 한다.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라 찍혔다“, ”행복이 타인의 시선으로 규정될 수 있음을 한 줄로 날카롭게 드러낸다. 그의 시가 특별한 것은 사람에게 버림받고 사람으로 일어나며 자신을 타자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호젓한 마음이나 얻으려고 산길을 걷고 있는데/겨자씨만 한 개미들이 산 지렁이 사체를/힘들게 부수는 걸 보았다/도끼 낫 쇠스랑 부엌칼 도마 망태/리어카 톱 호미 삽 망치 괭이/담아갈 수 있는 건 죄 가지고 나와서/가르고 쪼개느라 분주하다/한 삽 거들까 하다가 그만두었다//비운다는 건 좋은 건데/나는 누가 가볍게 해 주나/뒷산 오를 자격도 없는 나를/부끄러운 게 많은 나를/누가 저처럼 쪼개고 갈라서/한 죽음을 가볍게 해 주나/다르게 생각해 봐도 산길 오르는 일이/다 헛헛한 것인데/또 한 사람이 나를 피해/산길을 오르고 있다
―「산의 말씀」 전문
신산한 삶을 걸어가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을 더욱 고요하게 들여다보는지도 모른다. 사람 관계에서 겪게 되는 모멸감, 외톨이가 된 마음으로 ”호젓한 마음이나 얻으려고 산길을 걷“는데 ”산 지렁이 사체를/힘들게 부수는“ 개미들. 온갖 연장을 들고 일하는 자신처럼 개미들을 보다가 ”한 삽 거들까 하“지만 그만둔다. 우리 삶이 결국 비우고 가볍게 하면서 나아가고 그렇게 ”다 헛헛“하게 떠난다는 걸 시인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로 하여 ”크게 울기도 했고 귀엽게 웃기도“ 하고 ”많은 위로를 받“으며 ”삶의 행간마다 시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시를 위로해 주고 싶다“는 「시인의 말」이 뭉클하고도 희망의 빛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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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제1부
깡다구·11
성탄절 선물·12
꽃골·13
US 1달러·14
보육원 생각·16
대통령 하사품·18
극단적 흰빛·20
가을밤·22
어쩔 수 없어서 울었다·23
시가 안 되는 날·24
참회록·26
길이 사는 방법·28
어느 천년에·30
가족사진·31
비 구경·32
신년 계획을 가을에 쓴다·33
저 달이 내 생일이다·34
108번뇌·36
SUPER MOON·37
여름 방학·38
내가 신봉하는 유일신·39
정답을 적었는데도 맞았다·40
대광인력사무소·42
물푸레나무 속살 같았던 여름 이야기·43
제2부
강원도에는 섬이 없다·49
구름과 나·50
임종·51
산의 말씀·52
새벽까지 비 내릴 적에·54
공원 체험·56
겨울새·58
아침 바람 찬바람에·59
그림자 살기·60
가마우지 관찰법·61
네! 라고 대답했다·62
감자의 눈·63
국화꽃 우리는 아침·64
천 년의 한쪽을 살아가듯이·65
도둑질하고 싶다·66
해서는 안 되는 일·68
제3부
욕봤다·71
보헤미안·72
특 2호실 고별사·73
깐깐한 동물·74
사람아 사람아·76
하울링·78
풍선껌의 용도·80
백수의 꿈·81
바람에게 배우다·82
납작한 무기·84
쓰레기 헹궈 먹기·85
나에게 혼났다·86
마당에 앉아 있으면·88
두 사람이 젖을 만큼·90
늦밤에 첫눈이·92
너가 오는 아침·94
터닝 포인트·95
제4부
교감 언어·99
생업과 부업·100
하얀 꽃 눈송이처럼 날릴 때·102
껍질이 전하는 식사법·104
불멍·106
변방의 새·107
나와 딱따구리가 사는 법·108
이러고 있다·110
시골 시인·112
쉽지 않지·114
흰, 눈·115
밟는 게 능사는 아닌데·116
사회주의와 나의 모순·118
혈맹 관계가 들어간 꿈을 꾼 적 있다·120
그림자·122
더러운 다큐멘터리·123
잡아당기는 힘·124
끝·126
지우개 설법·128
나쁜 시인·129
발문|김미옥·131
시인의 말·135
■ 시집 속의 시 한 편
깜깜했다
끝닿은 낭떠러지처럼
한 발 물러설 수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때
깜깜해서야 집으로 왔다
돌아다니다가
별 성과도 없이 집으로 왔다
집 안의 불을 끄지 않고 나갔을 때가 있었다
딸깍 소리가 무서워서 불 켜지 않았다
담배 하나를 물려다 그만두었다
주방이 보이고 아침 먹던 숟가락이 보였다
실감 나지 않는 빛이 생겼다
엄마, 하고 부르려다 그만두었다
기다렸던 전화기가 조잘조잘 울려서
거실 등을 켰다
극단적 어둠들이 차츰차츰 흩어졌다
―「극단적」 흰빛」 전문
■ 시인의 말
극단적으로 살아온 거 같은데 다행스럽게도 그 극단적 삶의 결과가 더럽게 느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건방지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삶의 행간마다 시라는 것이 있었다
어찌 보면 취미이고 어찌 보면 놀이이기도 했다 그 놀이로 인하여 크게 울기도 했고 귀엽게 웃기도 했었다
고백하자면 시 때문에 많은 위로를 받으며 살았다
이 겨울 내 마음 일부를 수정하고 싶은데 이제는 내가 시를 위로해 주고 싶다
귀한 손 포개 주신 김미옥 작가님과 정병윤 시인께 마음 다듬어 고마움 전한다
2024년 12월 영월 자취방에서
고철
■ 표4(약평)
축사를 쓰다가 이 시집은 해석도 발문도 필요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철 시인의 시는 평가 대상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이토록 처연한 한 시인의 생을 감히 글로 재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나의 글은 "고철 시인의 시를 읽고" 쓴 짧은 감상문으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눈물을 질질 흘리다 웃음을 터트리다 미친년처럼 읽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_김미옥(작가·서평가)
■ 고철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춘천(춘천 후생원)을 거쳐 홍천(홍천 명동보육원)에서 성장했다. 2000년 『작가들』에 「꽃상여」 외 4편의 시로 등단하고 시집으로 『핏줄』, 『고의적 구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