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괴롭고, 지칠 때, 마음이 우울해지고 외롭게 느껴진다. 그럴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갈 수 있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고 희망을 주시어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신다. 이것이 신앙의 가장 큰 힘이다. 우리가 문제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고 낙담의 경우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해 주시는 이는 하느님 아버지시다. 우리가 그분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가장 큰 위로를 받는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하는데 하느님이 우리를 그늘에 버려두실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정대로 그분도 함께 느끼신다. 이러한 감정은 단지 그분이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살이고 뼈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슬프면 그분도 슬프고 우리가 고통스러우면 그분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신체가 정교할수록 감정도 섬세하다. 인간의 신체가 동물 중에서 가장 정교하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이 가장 섬세한 것이고 인간과 비슷한 동물이 또한 감정이 크다. 이 원리를 모르는 '노아'라 이름한 고대의 사람도 동물을 식용으로 삼는데 있어서 매우 조심하였다. 동물, 특히 포유류는 감정이 다른 물고기나 조류보다 섬세하기 때문에 죽음의 고통을 더 크게 느낀다. 그래서 노아는 동물을 식용으로 어쩔수 없이 사용하리라는 마음을 먹으면서도 그 고통을 헤아리는 마음이 있었기에 피를 생명의 근원으로 보고 하느님께 돌려 보낸다는 의미에서 땅에 부은 것이다. 동물의 죽음에서 느끼는 고통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마음에서 느끼는 감정이 곧 신의 명령으로 새긴 것이다. "미안하다. 먹거리가 부족해 육류를 먹을 수밖에 없는 처지이니 우리를 이해해다오. 하지만 너희 생명은 다시 하늘에 되돌려 주마" 라고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모든 것은 넓은 범위에서 우리의 형제들이다. 그러므로 인간 사이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우선적이겠지만 다음은 동물과 인간, 나아가서 모든 사물 사이에 평화가 필요하다. 각 사물이 자기 위치를 지키며 역할을 다할 때 '피조물의 신음 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이며, 하느님은 최적의 복된 상태가 될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정복자가 아니라 관리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육류를 삼가고 생선을 먹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농사와 생선 잡는 어부 일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오늘도 돼지 갈비를 먹고 있다. 맛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