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노래 (정호승 시) ◼이동원 ◀귀천(歸天)(천상병 시) ◼이동원 ◀향수 (정지용 시) ◼이동원✕박인수 ◼포르테 디 콰트로 ◀가을 편지(고은 시) ◼이동원 ◼최백호
◉낮과 밤을 둘로 같게 나누는 가을날인 추분(秋分)이 내일입니다, 내일이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집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때입니다. 벌레는 땅속으로 숨어들고 물이 마르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가을걷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가을비도 쉬어가고 맑은 가을날이 이어집니다. 추분에 때맞춰 가을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노래가 된 가을 시(詩)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시인의 언어들이 노랫말이 되면서 가을의 정서와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노래들을 들으며 가을 분위기에 한번 젖어 봐도 괜찮을 듯합니다. 노래가 돤 시를 따라 가을 속으로 들어가 보면 사랑과 그리움, 이별과 아쉬움 속에 꿈과 희망이 있고 때론 기대와 긍정의 세상을 만나기도 합니다.
◉시로 된 노래를 많이 부른 가수를 흔히 가객(歌客) 또는 음유시인 이라고들 부릅니다. 이틀 전에 얘기했던 러시아의 바르드(Bard)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 음유시인 같은 가수로는 지금은 하늘에 별이 된 이동원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특히 가을에 어울리는 시인 가객입니다.
◉1984년 이동원은 그때까지 잘 알려지지 않는 ‘이별 노래’란 시를 들고 정호승 시인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 시로 노래를 만드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정호승이 등단 후 얼마 되지 않은 1970년대 어느 화장품회사 사보에 올렸던 시였습니다. 정호승은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그의 시가 이동원의 ‘이별 노래’를 통해 국민 애송시로 거듭나게 되는 출발점이었습니다. 작곡은 윤시내의 ‘열애’를 만들었던 최종혁이 맡았습니다. 또 이 노래는 1986년 ‘향수’가 태어나는 단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1985년 ‘이별 노래’를 담은 이동원의 다섯 번째 솔로 앨범이 나옵니다. 노래 속의 시어 ‘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가 앨범의 긴 타이틀이 됩니다. 백만 장 이상의 앨범이 팔렸습니다. 바빠진 이동원은 그해 KBS 10대 가수에 오릅니다. 이 노래는 또한 노랫말이 아름다운 가요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를 시작으로 정호승의 시는 이후 많은 작품이 노래로 만들어졌습니다.
◉정호승은 이 시는 이별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사랑을 노래한 시라고 말합니다. 이별을 사랑을 완성하는 고귀한 형태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 노래라고 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리지 않습니다. 대신 조금만 이별을 늦춰주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대가 떠나는 곳에 언제나 노을이 되는 것으로 사랑의 영원성을 노래합니다.
◉이동원은 2년 전 늦가을 일흔의 문턱에 올라서서 세상과 이별합니다. 지리산 전유성의 집에서 투병하다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별 노래’가 더욱 각별한 노래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노랫말처럼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줬으면 했지만 이동원은 조금 일찍 떠나갔습니다. 그래도 사랑을 노래하는 하늘의 별로 자리했으니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습니다. 2004년 50대의 이동원을 만나봅니다. https://youtu.be/1x2VCRbjKlw?si=bv2neQs8Hesh-x-h
◉강화도 건평포구에 가면 바다와 하늘과 노을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조그마한 공원이 있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 공원’입니다. 이곳의 바다와 노을빛을 사랑한 시인입니다. 여기서 시상을 떠올리며 삶이란 아름다운 소풍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바로 귀천(귀천: Return to Sky)입니다. 자신을 그렇게 힘들게 한 세상이지만 그 세상을 그는 아름답게 간직한다고 했습니다.
◉이동원 1984년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노래로 만들어 불렀습니다. 영화음악을 주로 하는 신병하가 이 시에 곡을 붙였습니다. 30대 중반에 부른 죽음에 관한 노래지만 이동원은 담담하면서도 생기있는 목소리로 소화합니다. 이 세상은 소풍처럼 그저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달관했던 시인의 태도를 닮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동원은 세상에 소풍 와 열심히 노래하다가 하늘로 떠났습니다. 소풍 다녀온 세상이 아름다웠다고 지금 노래하고 있을지?,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이동원이 나이 마흔 살이 되던 1991년 앨범에 다시 담은 노래로 들어보는 ‘귀천’입니다. https://youtu.be/0icCIfOEmzE?si=NUKmcQXdDH7bVwVL
◉이동원이 부른 시로 만들어진 노래에 향수(鄕愁) 이야기를 건너뛸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잘 알려지고 교과서에도 실린 시지만 한때 이 시를 읽을 수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시를 쓴 정지용이 6.25 때 납북된 것인지 월북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납북되던 중 폭격으로 숨졌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1988년 정지용의 시가 해금된 것을 가장 반긴 사람이 이동원이었습니다. 이동원은 당장 김희갑 작곡가를 찾아가 곡을 만들어줄 것을 부탁합니다. 김희갑은 곡을 붙이기가 어렵다고 난색을 보였지만 이동원의 끈질긴 요청으로 10개월 만에 지금 듣는 그 곡을 만들어냅니다. 김희갑은 음절 수가 맞지 않아 애를 먹어서 중간에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인 양인자 여사의 격려 등에 힘입어 근사한 곡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동원은 함께 이 노래를 부르기위해 서울대 음대 교수인 테너 박인수를 설득하는 일에 나섰습니다. 의외로 쉽게 박인수는 노래를 함께 부르겠다고 나섰습니다. 시가 좋고 곡이 좋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여기에 클래식과 대중가요가 다르다는 고정관념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박인수를 파문의 중심에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클래식을 하는 성악가가 딴따라의 노래를 부르다니!’ 그런 이유로 박인수는 국립오페라단에서 제명되는 파문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로 클래식과 대중가요가 접합하는 크로스오버의 문이 열렸습니다.
◉1989년 ‘향수’를 담은 앨범이 발매됐습니다. 앨범의 제목은 ‘향수-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였습니다. 앨범은 170만 장이나 팔려서 인세만 13억 원이 들어오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이동원의 기획에 동참해준 김희갑, 박인수의 열린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박인수는 공연 다니느라 오페라단에서 제명되지 않아도 오페라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한동안 바빴습니다. 덕분에 대중이 알아주는 테너가 됐습니다. 덕분에 집까지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박인수는 지난 2월말 여든다섯 살로 LA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음기사의 제목은 모두 ‘‘향수’의 테너 박인수 別世’ 였습니다. 지금은 하늘에서 만났을 박인수 이동원 두 사람의 ‘향수’를 들어봅니다. 1927년 일본 유학 중이던 정지용이 잃어버린 조국 땅의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독특한 시어로 그려낸 ‘향수’입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노래가 된 시입니다. https://youtu.be/h8V3bm8ioGM?si=0Z-Qladh4RQFzzIP
◉34년 전에는 생소한 도전이었지만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만남은 지금은 흔한 일이 됐습니다. 대세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크로스오버 음악을 위해 등장한 ‘팬텀싱어’ 팀만 해도 수십 팀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안에 정통 클래식을 공부한 성악가들이 즐비합니다. 그들이 대중가요를 부르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됐습니다. 팬텀싱어 시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