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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멍해 있어?"
"응?"
물레가 저 혼자 돌아가고 있다.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는지 손에 묻은 흙들이 허옇게 말라있고, 물레 위에 놓인 접시에도 쩍쩍 금이 가 있다. 한참 전부터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물레에서 손을 땐채 텃밭을 향해 멍하니 시선을 주고 앉은 하연을 보며 혜진이 걱정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집에 무슨 일 있는거야? 왜 그렇게 기분이 다운됐어?"
"일은....그냥 바깥풍경이 휑한게 좀 우울해서 그래. 빨리 겨울이 끝났으면 좋겠다 그지?"
"매일보는 풍경인데 새삼스럽게.....정말 아무일 없는거야?"
"아무일 없다니깐. 그러는 넌? 너 도현씨랑 잘되고 있는거야?"
"아이구 참! 말을 잘도 돌린다니깐."
투명스러운 말과 달리 혜진의 눈은 웃고 있다. 전화를 잡으면 끊으려고 하질 않는다. 별로 할말도 없으면서 괜히 트집 잡기도 하고, 하여튼 남자들은 애라는 말이 딱 맞는거 같다. 투덜거리는듯 하지만 혜진의 표정을 행복해보인다. 혜진의 말투나 표정으로 봐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일도 없는듯 하다. 근래 보기드물게 행복해하는 모습에 괜한 기우를 한거같아 미안해지기까지 하다. 원컨대 이 행복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말라버린 흙덩이를 물레에서 떼어 낸 하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 메이드에 불을 켰다. 이런때 굳이 자신의 기우를 말해 혜진의 기분까지 우울하게 할 필요가 없다.
"후후훗~ 도현씨랑 찬혁 오빠가 우리더러 여우라더라."
"뭐 여우? 우리가 왜 여우야?"
"혼을 쏙 빼놓는다구. 우리가 여우가 둔갑해서 여자가 된거래. 그래서 자기들 혼을 쏙 빼놓은거래."
"얼씨구~ 무슨 여우가 이렇게 너저분하다든."
"뭐가 너저분해."
부인하고 싶지만 거울 속의 두 여자는 너저분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긴 항상 흙 먼지가 잔뜩 묻은 옷에 손은 다 터서 여자손인지 남자손인지 구분도 안가지, 머리는 동네 아줌마 마냥 빗질 한번 제대로 안한채로 아무렇게나 틀어올려져 있다. 여우가 아니라 미련 곰탱이가 딱 어울린다. 아무래도 그 두 남자는 전설의 고향도 안봤나 보다. 자고로 여우란 남자를 홀리기 위한 미모쯤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야하는 건데, 어딜 봐서 여우라는 건지.
"그러네.............혜진아 우리 머리하려 갈까?"
뜬금없이 하연이 머리를 하려 가자 제안한다. 머리? 하긴 미용실 간지도 오래됐다. 학교 다닐때 부스스한 머리를 아무렇게나 질끈 끈으로 묶고 다니던 과 여학생들과는 달리 하연은 공주님처럼 예뻤다. 그렇다고 지금 못생겼다는 말은 아니다. 그때는 그냥 모습자체로도 부티나고 있어보였다.
"공주님? 그래 공주님 맞다."
매일 눈을 뜨면 누군가의 시중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잠이 드는 순간까지 끊임없는 잔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치장을 한다. 날 위해서, 혹은 날 좋아해주는 사람을 위한 치장이 아닌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매일 치장을 했다. 혜진은 누가 자신을 아침부터 밤까지 치장해주고 꾸며주고 그러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등은 터져있고, 손톱 밑에는 흙이 잔뜩 끼어있어 누군가에게 손 내미는 것이 창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연이 지금이 좋다. 손등이 터져있어도, 손톱 밑에 흙이 잔뜩 끼여있어도, 여자손이 아니라 노가다 아저씨들 마냥 울퉁불퉁 수세미처럼 보이는 손이라해도 지금이 좋다.
"넌 찬혁씨가 손 잡을때 안 창피해? 어!!! 너 손에 그거 뭐야!!"
혜진의 넋두리에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이던 하연이 커피를 건낼때였다. 커피를 건네받던 혜진은 하연의 손에서 반짝이는 반지를 발견하곤 눈이 휘둥그레진다. 여지껏 하연이 반지를 끼고 있는걸 본적이 없다. 물런 흙을 만진다는 이유로 자신 역시 반지를 끼지않았지만 지금 하연의 약지 손가락에서 빛나고 있는건 분명 반지다.
"찬혁씨가 준거야? 너 원래 반지 안꼈잖아. 니가 샀을리는 없고, 찬혁씨가 준거 맞지."
낚어채듯 자신의 손을 끌어당기는 혜진의 호기심에 쑥쓰러운듯 하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혜진의 말처럼 흙을 만진다는 이유로 두 사람 모두 반지를 끼지않은지 오래되었다. 그런 하연의 손에 반지가 끼워져 있다면 눈치가 그리 빠르지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찬혁이 준 것이라는걸 금방 알아차릴수 있을것이다. 하연이 손가락을 쫙 펴보이며 자랑스럽게 혜진에게 손을 내밀어보인다.
"예뻐? 어제 오빠한테 선물 받았어."
"어제? 어제 집에....헉!!!!! 그럼 집에 안가고 찬혁씨랑 같이 있었던거야?"
혜진이 말하는 의도를 알아차린듯 고개를 끄덕이는 하연의 입가에 수줍은 미소가 번진다.
"미쳤어. 미쳤어. 이 기집애가 남자한테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만. 나한테는 집에 간다고 하고, 또 집에서는 여기 있는 줄 아실거고. 그러고는 찬혁씨랑 같이 있었어?"
" 당연한거 아냐? 그러니깐 너도 내가 집에 간다고 하면 도현씨 불러. 내가 알아서 자리 비켜주는건데 그걸 캐처하지 못하고, 맹추같이.....쯧쯧쯧."
"얼씨구~ 아주 당당하시네. 처녀가 애를 배도 할말이 있다고 하더니 이건..........니네 아버지 아시면 넌 그냥 끽!!!"
어이가 없어진 혜진은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해보였다. 흠짓해보이는 하연이 곧 포기라도 한듯 한숨을 내쉰다. 이제 아버지란 말을 듣기만 해도 골치가 아파오는것 같다.
"에고 에고, 벌써 아신다."
"뭐? 니네 아버지가 찬혁씨랑 만나는거 아신단 말야? 아니 어떻게? 니네 데이트도 몇번 안했잖아. 그것도 대부분 여기서....혹시 사설 탐정 고용하신거니? 아님 니가 말 실수라도 했어?"
"아니, 지난번에 술 마시다가 찬혁씨 오피스텔에서 잤잖아. 아버지가 윤 비서 아저씨한테 알아보라고 한 모양이야. 재수없게 딱 걸렸지 뭐야. 매도 빨리 맞는게 낫다고 얘기 했어."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어?"
"혹시나가 역시나지. 당장 주말에 선 보란다."
"선? 찬혁씨 정도면 괜찮지 않아? 도현씨 말 들어보니깐 찬혁씨 능력 있어서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받았다던데, 키며 인물이며 그만하면 어디가서 빠지지않고, 걸리는게 있다면 부모님이 안계시는.......너네 집 그렇게 대단한 집이야?"
"대단해서가 아니라 원래 부모란 사람들은 자기 자식이 제일 아까운 법이잖아. 그래서 그러는거야."
"아직 부모가 안되봐서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찬혁씨가 알면 기분 드럽겠다. 나처럼."
"너 무슨 일 있었던거 아니지?"
"너 아까부터 자꾸 왜그래? 지금 너랑 찬혁씨 얘기하는거잖아. 무슨일을 말하는거야?"
"아냐. 그냥 니가 자꾸 동병상련이니 그런 소릴하니깐 혹시나 해서 그러는거야. 작업이나 시작하자."
혜진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하연을 봤지만 하연은 모른척 라디오를 켰다.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 급하긴 했지만 혜진에게 다가올지도 모를 불똥이 더 걱정스러운 하연이다. 보이지않는 전쟁에서 최선을 다해 찬혁을 지키고 싶은 자신의 마음처럼 도현 역시 최선을 다해 혜진을 지켜줬으면하는 마음이다. 가능하다면 혜진이 알지못한채 전쟁을 끝내줬으면 좋겠다.
"회장님이 하연이 결혼을 서두는거 같아. 어떻게 하지?"
강남의 한 커피숖에서 장미를 만난 세라는 불편한 심기를 여지없이 들어냈다. 일하는 사람들의 시선조차 조심스럽기만하던 세라는 오랜만에 마음껏 숨을 쉬어본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오랜세월동안 그 집에 머물러 있었던 사람들이라 모든 면에서 죽은 전 부인과 비교 당하는 느낌이었다. 모두들 쉬쉬하고는 있지만 자신이 술집 출신이라는걸 알고있는듯한 시선에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곤 했었다. 자신의 침실에서조차 편히 쉬어본적이 없을만큼 긴장하며 살고 있는 세라에게 장미라는 존재는 더없이 편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들어낼수있는 사람인 것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당장에 높은 힐을 발에서 빼내버린 세라가 다리를 꼬며 담배를 물었다.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요 근래들어 도무지 생각나 견딜수가 없다. 아직 쌀쌀한 날씨임에도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하연이가 결혼을 하면 넌 어떻게 되는거야?"
"닭 쫓던개 지붕 쳐다보는 꼴 되겠지. 하나뿐인 딸 자식인데 결혼하면 그 사위를 회사로 끌어들일게 분명하고, 그럼 둘다 집으로 들어올테데, 날 그냥 두겠어? 그날로 난 그 집에서 쫓겨날거야."
생각만으로도 아찔해지는 세라는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여지껏 2년이 넘는 시간을 일하는 사람들의 눈치까지 봐가면서 정 회장의 눈밖에 나지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게된다. 분명 딸과 사위를 집안으로 끌어들일거고 그렇게되면 껄끄러운 존재로 전락해버린 자신은 발 붙일곳 없이 쫓겨날수밖에 없다. 아무리 정 회장이라도 딸과 사위가 있는 집에 여자를 들여놓지는 않을테니깐. 사실 애써 모른척 하고있지만, 지금도 자신을 집에 들여놓은걸 은근히 후회하는 눈치였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초조한 기색이 역력해지는 세라는 기어이 짜증스럽다는듯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어떻게 할수 없잖아. 호적에 안 올려준다며."
"그러니깐 미치겠다는 거지. 아무리 조르고 갖은 아양을 떨며 입안의 혀같이 굴어도 들은척도 안해. 하연이 년이 말이나마 재혼하라고 권하길래, 그래도 하나뿐인 딸년 말은 잘 들어주니깐, 잘 보이려고 팔자에도 없이 새파랗게 젊은 년한테까지 아부까지 떨었는데.......어휴 짜증나."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술 따르던 년이 대한민국 최고 그룹 회장 첩으로 들어앉은것도 황송한 일인데, 그냥 한몫 챙기는걸로 끝내. 뭘 사모님 자리까지 넘보니?"
"한몫 챙기면 내 나이 이제 마흔이 다 되가는데 뭘 먹고 살라구. 한몫 챙겨봤자 배운 도둑질이 그건데 술집 차려서 다시 술집 마담으로 나서서 또 그짓들을 해가면서 늙으라구?"
"그래도 종업원은 아니잖아. 마담이 어딘데."
"누구 염장 질러!!! 2년이야. 회장님 모신지 벌써 2년이라구. 이정도면 마누라 되고도 남지. 내가 무슨 욕심이라는 거야!!!!"
주위를 아랑곳하지않고 빽 소리를 질러대는 세라를 보며 장미는 화들짝 놀란다. 야외 테이블이라고는 하지만 저렇듯 안하무인으로 소리를 빽빽 질러대니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기만 하다.
"소리 낮춰.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
"어떡하든 호적에 올려달라고 할거야. 내가 이대로 물러날순 없지."
세라의 고집에 장미는 어쩔수 없다는듯 고개를 흔들어댄다. 막말로 아들이라도 하나 낳아주면 호적에 올라가는건 문제도 아닐텐데, 세라 말처럼 2년을 곁에 있었으면서 여지껏 임신 소식은 커녕 헛구역질 한번 했다는 말을 못들었다. 그러고보면 세상사 마음대로 되는건 없나보다.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의 세라는 잔뜩 찌푸린 눈쌀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혹시 그 영감 애 못낳는거 아냐? 나이가 꽤 되잖아."
"무슨 소리야, 아직 60도 안됐어. 남자는 여자랑 달라서 죽기전까지라는거 몰라?"
"자~알 알지. 그러니 늙은이가 젊은 첩년 끼고 자식 새끼랑 같이 기저귀 가는거 아니겠어? 잘 아는데, 근데 왜 안생기냐 말야? 넌 아무 문제 없다며."
"낸들 알아? 가끔 내가 회장님 아이 낳고 싶다고 말하면 웃기만 하거든. 그런 걸 보면 또 싫은건 아닌거 같은데 왜 임신이 안되는 걸까?"
"혹시 공장 문 닫은거 아니야?"
"그럴리가, 저런 큰 회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딸랑 딸년 하나 낳고 공장 문을 닫아? 나라도 그러지는 않겠다."
"그럼 뭐야? 뭐가 문제야?"
"전 처 사이에서도 딸년 하나 있는거 보니깐 손이 귀한 집인거 같아. 전처랑 무지 사이가 좋았대. 회장님이 죽은 전처에게 끔찍했다고 하더라구. 나도 죽은 전처 닮았다고 그래서 귀여워 해줬잖아. 죽은 전처 물건이 아직도 집에 그대로 있는거 보면 맞는거 같아."
"죽은지 벌써 10년도 더 됐잖아. 근데 아직도 물건이 남아있어?"
"그래. 그거때문에 딸년이라도 사이가 안 좋잖아. 우라질!! 더럽게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물건들이더라구. 나도 모르게 저절로 손이 가더라. 돈만 가지고는 살수없는 물건들이 많아."
풀이 죽은듯 한숨을 내쉬는 세라를 보고있던 장미는 안됐다는듯 혀를 끌끌 찬다. 뱉새가 황새 쫓아가단 가랑이가 찟어진다고 했던가, 아무리 명품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휘감는다고해도 출신은 속일수가 없는가보다. 생각해보면 참 안됐다. 부모 잘 만나 손끝에 물 한방울 안묻히고 산 전처나, 어릴적부터 구박과 학대를 받으며 지지리 고생하다 여기까지온 세라나 모두 정 회장의 여자인데 누구는 황후요 누구는 무수리인가. 그야말로 한끗 차이 아니겠는가.
"세라야, 그 한끗 말야."
"뭐?"
"굳이 회장님일 필요는 없잖아. 응?"
"무슨 말이야?"
"일단 임신을 하면 호적에 올라가는건 문제도 아닐거야. 안그래?"
"그거야 그렇겠지."
장미는 영악한 미소를 흘리며 세라의 귀를 끌어당겼다. 잠시후, 안색이 변하며 겁에 질린 표정을 한 세라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미쳤어!!!"
"뭐 싫다면 할수 없구. 난 그냥 대안을 얘기해준거 뿐이야."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일을.........."
"왜 이래? 너 그 영감 밑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몸뚱이로 먹고 살았어. 마나님 흉내 좀 내더니 그새 다 잊어버린거야?"
"그건......."
"너 혹시, 그 영감 정말 사랑이라도 하는거야?"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말도 안된다는 듯이 펄쩍 뛰며 정색을 해보이는 세라를 보며 장미는 어쩌면 세라가 정말 정 회장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게 아니가 의아해진다. 나이 16살때부터 이 바닥 생활을 해온 장미는 세상에서 믿을거라곤 자신의 몸뚱이와 돈밖에 없다 생각하며 살았었다. 세라 역시 정 회장을 만나기 전까지도, 아니 정 회장의 여자가 되어서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여겨왔었다. 헌데 막상 장미에게서 정 회장을 사랑하냐는 말을 듣자 몹시도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워 어찌할바를 모르고 말까지 더듬게 된다.
"그.....그냥 회장님 좋은신 분이니깐..........살면서 나한테 여지껏 이렇게 잘 해준 남자 없었으니깐."
"사랑하는구나."
세라는 한숨을 내쉬며 옛날일이 떠올라 머리를 흔들어댔다.
"아버지한테 맞는거 지겨워 15살에 집에서 도망쳐 나왔어. 서울 올라와 여기 저기 술집 전전하면서 별의별 남자 다 겪었고 변태같은 새끼들 요구 다 들어주기도 했구 따귀 맞은것쯤은 일도 아니었지."
"그래. 찌질하고 못난 병신같은 새끼들이 화풀이를 우리같은 년들한테 다 했지. 지들 스트레스 돈 몇 만원에 쉽게 자기 소유로 만들수 있는 우리같은 년들한테 다 풀었지."
"그래. 그래도 날 사랑해줄 남자가 나타날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었어. 그랬는데.........."
잠시 말을 끊으며 추억에 잠긴듯 딴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세라를 보며 장미는 마음이 아프다. 세라의 눈에 슬픈 빛이 어린다.
"그 자식, 못 잊었구나."
"어떻게 잊을수가 있겠니. 16살때부터 10년을 술집을 전전하면서도 단 한번도 마음을 준적 없었어. 나이 27살에 처음으로 마음을 준 사람이였어. 첨으로 사랑을 느꼈고 그렇게 맘이 설레었는데.......하지만 그 남자는 술에 취해 날 갖고선 아침에 눈떠선 날 벌레보듯 보더니 혼자 그렇게 가버렸어 날 혼자 놔두고..... 아무리 내가 술집여자고 하룻밤 상대라고 해도 어떻게 그렇게 가버릴수가 있는건지. 내가 그때 얼마나 비참한 생각이 들었는지 넌 아마 모를거야."
"왜 모르겠어. 내가 너 그때 넋놓고 있는거 보면서 그 자식 찾아보려고 그 난리를 쳤는데...하긴 그 자식 군대 안 갔어도 우리같은 술집 여자를 상대해줄 그런 인간은 아닌거 같았어. 잘나도 너무 잘나보였으니깐. 아마 지금쯤 어느 부잣집 귀한 딸년과 결혼해서 잘먹고 잘살고 있을거다. 그런일이야 이 바닥에선 비일비재한데........그러니깐 너! 다시는 여기로 돌아오지말어. 너도 이 지겨운 생활로 돌아오고 싶지 않잖아. 그러니깐 내 말대로 하라구."
"하지만, 정말 그렇게해도 될까?"
"걔 결혼 말까지 오간다면서 시간 없잖아. 2년동안 안 생긴 얘가 며칠사이에 들어설 일도 없고, 사람이란 모르는 거야. 더구나 노인네 건강은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거야. 막말로 내일이라도 그 영감 심장마비로 가고나면 그 재산 고스란히 그 딸년한테로 갈텐데, 그럼 넌 뭐가 되는거야? 니 말대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것 밖에 더 있어?"
"하지만 회장님이 그렇게 쉽게 속을까?"
아직도 약간의 망설임을 가진 세라의 말에 장미는 쐐기를 박는다.
"남자는 늙을수록 애가 된다는 소리 못 들어봤어? 더구나 자식일엔 판단이 흐려지는거야. 귀한 딸년 하나 애지중지 키우다 늙으막에 턱하니 아들하나 안겨주면 아마 하늘에라도 뛰어오를걸? 더구나 2년을 자기가 데리고 있었는데 의심할게 뭐냐구?"
"그럴까? 아무 의심 안할까?"
"너랑 나 둘만 입 다물면 돼. 내가 아무리 술집에서 굴러먹는 년이라고해도 입 그렇게 가볍지 않은거 너도 알고있지. 죽을때까지 비밀 지킬거야. 아니 무덤속까지 갖고갈거야."
10년 가까이 서로를 보듬어주며 상처를 달래주던 사이다. 정 회장 밑으로 들어간다고 했을때도 누구보다 기뻐해줬던 장미다. 그런 그녀를 보며 한참을 그렇게 망설이며 앉아있던 세라는 드디어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 일 잘만 되면 그 딸년도.............내가 아주 적당한 사람을 찾았거든."
장미의 얼굴엔 아름답지만 사악한 미소가 퍼진다.
며칠후 세라와 장미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외진 곳에 위치한 호텔로 들어가고 있었다.
첫댓글 허 ㅡㅡㅡ세라하고 장미가 애를 만들기위해 비상수단을 강구하는 모양이네요 도현과
혜진 하영과찬혁의 가시받길 같은 사랑이 어떻게 전개되려는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