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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꿈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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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7. 2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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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꿈이 있는 곳
아침에는 언제나 바빠진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바쁘게 돌아간다는 것을 의식(意識)은 하면서 시계를 바라보니 생각보다 훨씬 빨리 가는 것 같아서 조반(朝飯)은 생략하기로 하고 좌충우돌하면서 핸들을 잡았다. 왠지 나도 모르게 흥분이 가시지를 않아서 하나님에게 감사하면서 마음을 정돈하고 오늘의 계획을 다시 한 번 점검하면서 서서히 도로를 달렸다. 가시권의 산천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7월의 푸름이 나를 마치 반기는 듯한 감상(感想)에 빠지기도 하면서 수안보를 지나 신풍 수옥 정을 옆에 두고 이화령 터널을 지나 문경에 접어들었다. 이 길은 내가 50년 넘게 충주에 우거(寓居) 하면서 넘던 조령(鳥嶺)이다 하늘에 나는 새들도 울고 간다는 조령(鳥嶺)이다.
주흘산(主屹山)을 배산(背山)으로 하고 자리 잡은 문경은 수많은 정사(正史)는 물론이고 야사(野史)로 전해지는 곳이 이곳이다. 포도 알처럼 이야기의 시원지(始原地)이기도 하며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고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1관문 가기 전에는 왕건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세를 과시하고 있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하여도 부존 된 광물자원으로 지역 경제는 흥하였는데 지금은 전설이 되고 말았다. 아득한 옛날 신라 사람들은 이곳의 높은 재를 넘고자 하늘길을 열어서 충주의 달천(達川)과 남한강(南漢江)이 만나는 탄금대(彈琴臺)를 경영하여 수로(水路)를 이용하여 한강(漢江)을 접수하여 삼국의 통일 대업을 이룩한 중요한 난관의 하나인 조령(鳥嶺)에 하늘 재라는 이름으로 길을 처음 닦아 문경 괴산 충주를 경영하였다.
문경읍을 지나 진남 휴게소에서 잠시 동안 쉬었다가 가기로 하였다. 한때는 봉명 광업소로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오가는 길손들만이 쉬어가는 곳으로 전락하였다. 이곳에서 풍곡 형에게 오전 10에 만나기로 입을 맞추고 또한 전 안동 사장을 역임한 김휘동 시장에게 전화하여 오후에 새로 마련한 처소이면서 송암(松巖) 화랑에서 조우(遭遇) 하기로 하였다. 물론 내 고향을 방문하고 나오는 길에 들리기로 하였다. 이때에 마침 고향에 우거(寓居) 하시는 재종형님께서 전화가 왔다. 앞뒤 집에 살고 있는 제수(弟嫂) 씨가 아침 6시에 소천(所天) 하셨다면서 안동병원 장례예식장에 장례절차를 밟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신은 비석(碑石) 관계로 석물 시공업자를 만나기로 하여 집에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였다. 내 아우들에게 부고(訃告)를 하고 육군 체육부대 앞을 지나 예천으로 줄곧 달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게는 형수님으로써 형님 댁에 출가하여 96세를 일기로 영면(永眠) 하신 시아버님을 정성껏 모시면서 4형제를 낳아 키우신 근세(近世)에 보기 드문 효부(孝婦)였다고 기억된다. 일찍이 지병(持病)으로 고생만 하시다 살만한 시기에 가시고 말았다. 애통하고 절통한 심정이었다. 옛날 고려 말경에 야은(冶隱) 길재(吉再) 선생의 시(詩)가 생각이 난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사는 동안 각인(各人)들이 애써 노력한 일들이 이루기를 바라지만 꿈이 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천읍을 옆으로 하여 줄 곳 달리다 보니 경북도청 가는 이정표(里程標)가 나타났다. 소재지는 안동시 풍천면에 위치하면서 예천과 접경 지역이라 기억된다. 도청 이전에 지대한 노력을 경주하신 이가 바로 김휘동 시장님이 목민관(牧民官)으로 재임(在任) 시에 이루어진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기라성 같은 경쟁의 벽을 뚫고 도청소재지를 유치한 업적은 길이 전해져야 할 것으로 오래전부터 내 생각이었는데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일은 유감천만(遺憾千萬) 한 일이다. 예전 같으면 송덕비(頌德碑)라고 세워야 하는 것인데 안타까움만이 남는다. 지금 정부는 없는 것도 만들어 생색을 내는 판인데 엄연한 역사적 사실마저도 외면한다면 모두가 자신마저도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루속히 실현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기대를 해 본다. 보문 산을 지났다. 멀리 보이는 안동의 풍산과 예천이 경계를 바라보니 다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산 농공단지를 지나 넓은 풍신들을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즐겁다. 서 안동 톨게이트를 지나 서의문(西義門)에 이르렀다. 이 또한 김 시장의 평생동안 꿈꾸어온 야심적인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임 당시 안동시의 브랜드를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정하면서 유교의 핵심 가치의 덕목인 오상(五常)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중에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실현하고자 동서남북에 세운 문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특히나 이 지역은 성리학을 발상지인 중국을 넘어 찬란하게 승화시킨 퇴계 선생의 우거(寓居) 하시면서 후학(後學)을 가르치시면서 몸소 실천하면서 살다가 가신 곳으로 이웃 나라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퇴계 사상(학)을 연구하는 열기는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마도 후세에 크게 인정받을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창조하시고 선조대왕(宣祖大王)의 왕도(王道)에 가르침을 주시기도 하였으며 동양의 공자로 칭송받기도 하고 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朱熹)도 지하에서 찬송(讚頌) 할 것이다.
시가지(市街地)를 접어들어 풍곡 형을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09시 30분에 병원 예약이 되어있어 진료받고 돌아오면 바로 만날 수 있다고 하였다. 잠시 후 풍곡이 직접 운전하면서 도착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손수 운전한다면 괜찮은 것으로 생각되어 잠깐이지만 안심이 되었다. 자난달 거제에서 보고 다시 만났다. 안색을 살피니 내가 생각한 것처럼 기대는 아니었다. 안색도 매우 초췌(憔悴) 하고 기력(氣力)도 저하된 모습에서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도 죽지 않고 만났다는데 자위(自慰) 하면서 근황(近況)을 들었다. 1차는 약물치료로 치유될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다시금 재발되어 복부를 가르고 병원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였다고 한다. 퇴원하고 요양하는 중인데 앞으로 2달 동안은 아주 조심하여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친구를 뒤에 두고 동 안동 게이트를 지나 상주 영덕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나 도로 하나는 잘 설치되었다고 생각된다. 자동 시스템을 이용하여 엑셀에서 발을 떼고 편한 자세로 푸른 산악지대의 연속된 터널을 지났다. 이 노선은 유난히도 터널이 많다는 생각이다. 예전같이 평지를 이용한 것이 아니고 건설 공법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였으니 산악 지대를 이용하는 것이 아마도 경제성(經濟性)이 있다 보니 터널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월전에서 좌회전하니 먼발치 내가 자라던 산이 보였다. 가슴에 혈기가 돌았다. 반변 천을 앞에 둔 마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제 종형 님 집에서 정차(停車)를 하고 집에 들었 더니 아무도 없었다. 전화도 불통이었다. 마치 지나는 마을 아주머니에게 물어 보았다.
이집 사람들이 어디 가신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병원에 갔다고 하였다. 막냇동생이 와서 안동으로 병원에 갔는데 조금 기다리면 오실 것이라 하면서 방에 들어가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막냇동생 한수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연결되었다. 지난번에 진료받았는데 오늘 결과 보려고 병원에서 대기 중이란다. 어디 가 아프냐고 하였더니 피부에 반점이 생겼기 때문이란다. 올해 80고지에 올랐으니 병이 날만도 한 연령이다. 돌아서 영덕 강구 항에서 단골 사장님을 만나서 주문한 상품을 받아 다시 안동으로 나와서 자형(姊兄)과 누님이 계시는 집으로 이동하였다, 코로나에 연세도 80을 넘겼으니 활동할 엄두도 못 내고 집에 있다는 것이다. 세월은 속이지를 못한다. 당신의 근황(近況)과 아이들의 소식이며 내 형제자매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1층은 에어컨 없어도 시원한데 2층 화실(畫室)은 덥다고 하였다. 인사를 하고 안동병원 장례예식장을 찾았다. 5호실에 입실하였더니 아직은 성복(成服)을 하지 않아서 손님을 받을 입장이 아니었다. 영정(影幀)을 바라보고 명복(冥福)을 빌었다. 아들 4명이었는데 3명만 있고 하나는 아버지 모시고 선산(先山)에서 어디에 안장(安葬) 할 것인지를 지관(地官)을 만나려고 집으로 갔다고 하였다. 손님 영접(迎接) 실에서 상직 족하가 먼저와 있어 잠시 동안 이야기 나누었다. 나는 이곳에서 형님들(윤수 씨, 문수 씨, 태수 씨)을 만날 것을 생각하였는데 모두 불발이 되고 말았다. 병원을 나와서 송천(松川)으로 이동하여 김 시장의 사저(私邸)에 도착하였는데 외관(外觀)은 마치 고성(古城)에 온 느낌이었다. 마중 나온 김 시장을 만나 인사를 하고 1층에 입실하였다.
설명에 의하면 1층은 그간 목숨 걸고 작품화한 송암(松巖)들은 전시(展示) 하는 공간(空間)이라고 하였다. 그간 여러 번 전시회(展示會)를 개최하기도 하였고 월간 산이라는 저널지에 싣기도 한 불후의 작품들을 전시하였다고 한다. 의지(意志)와 투지(鬪志)는 타(他)의 추종(追從)을 불허(不許) 하는 사람이다. 명품 전시관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많은 동호인들과 관심 있는 개인이나 단체에서 관람하기를 줄을 잇는 모습이다. 이곳을 나와서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친구 김규엽 형에게 연락하여 자리를 같이 하였다. 모처럼 만난 친구의 모습을 보니 실감이 난다. 어려서 한때는 한집에서 기숙하면서 학교에 나닌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아직도 일거리를 놓지 않고 활동을 한다니 반가울 뿐이다. 융숭한 대접받고 집에 도착이 밤 9시가 지났다. 여기서 접으려 한다. 끝
2021년 7월 24일 토요일 오후에
夢室에서 法珉 씀
#일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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