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뿔테 안경과 밝은 립스틱,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원색이 도드라진 화려하고 대담한 의상, 목과 팔에 찬 특대형 액세서리 등으로 인생 황혼기에 패션 아이콘으로 유명세를 떨친 아이리스 아펠(압펠, Iris Apfel)이 1일(현지시간) 10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BBC 방송 등은 미국의 유명 디자이너이자 뉴욕 사교계 명사인 아펠이 플로리다주 팜비치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고 보도했다.
고인은 98세이던 2019년 세계 최대 모델 에이전시 IMG와 계약을 맺었고, 지난해에는 화장품 브랜드 시아테런던의 광고 모델이 됐다. 300만에 가까운 팔로워를 보유한 인스타그램 계정에 자신을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10대'라고 소개했고, 종종 스스로 '노인네 샛별(geriatric starlet)'이라고 지칭하곤 했다. 또 "많을수록 좋고 적은 것은 지루하다", "다른 사람처럼 옷을 입지 않으면 다른 사람처럼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패션관을 당당히 털어놓았다.
1921년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펠은 결혼 후 남편 칼과 함께 17∼19세기 직물 복제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 화장품 업계 거물 에스티 로더를 고객으로 두는 등 성공을 거뒀다. 이런 인맥을 통해 존 F. 케네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리처드 닉슨, 로널드 레이건 등 9명의 대통령이 거주하던 백악관 인테리어 공사를 맡았다.
아펠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2005년 자신이 소장한 의상 82점과 액세서리 300점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열면서 패션계 명사로 떠올랐다. 미술관 측은 아펠이 대단한 패션 수집가라는 소문을 듣고 전시회를 제안했는데, 이 전시회는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로 꼽혔던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카를 라거펠트가 참석하는 등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80세를 넘긴 나이였지만 고인은 광고·패션잡지 모델로 활약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다.
미국의 바비 인형 제조사인 마텔은 2017년 아펠의 모습을 본뜬 바비를 만들기도 했다.
미국 디자이너 토미 힐피거, 가수 레니 크라비츠와 테드 라소, 여배우 한나 워딩험 등이 추모의 뜻을 표했다.
남편 칼을 2015년에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는데 그의 나이 역시 100세였다.
2014년 알버트 메이슬레스가 다큐멘터리 '아이리스'를 만들었다. 이듬해 BBC 뉴스나이트인터뷰를 통해 "옷 입는 일은 즐거워야 한다"며 "놀 기회"라고 여겼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창의적인 인물이라 내 인생의 한 부분이며 다른 사람들도 창의성에 탐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에 적당한 의상에 대해 생각하느냐는 우문을 던지자 "그런 생각을 밀어내는 것이야 말로 적절한 일"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