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사를 밝히기 위해 열정적인 삶을 사시다 영면하신 환국고려님의 크나큰 노고에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 올린글을 환국고려님을 생각하며 여기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징기스칸. 원(元)의 대도(大都) 캄발리크는 어디인가?
조선(朝鮮)이 멸망한후 일제(日帝)와 현 중국공산당에 의해 조작된 역사(歷史)는 몽고(蒙古)에 의해 건설된 원(元)나라의 수도인 대도(大都)가 현 대륙 하북성의 북경(北京)이라고 일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다음은 위키백과에 기술된 원(元)의 수도 대도(大都)에 대한 기술이다.
대도(大都, 몽골어: ᠻᠠᠨᠪᠠᠯᠢᠺ 캄발리크)는 원나라의 겨울 수도이다. 현재의 중국 베이징이다.
1267년, 원(元) 왕조의 시조인 쿠빌라이 칸은 중국의 전 지역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로 중도의 북쪽 자리에 칸발리크(汗八里, Khanbaliq, 위대한 칸의 거주지라는 뜻) 혹은 대도(大都)라는 이름의 도시를 건립하고 원래 수도였던 몽골 고원의 카라코룸으로부터 천도하였다. 이곳은 전통적인 중국의 수도들보다 북쪽에 위치했지만, 원 왕조의 발원지인 몽골 고원에 가까워서 몽골족의 지원이 용이했기 때문에 수도로 선택되었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속에 캄불룩(Cambuluc)이라는 이름으로서 잘 나타나 있다. 1368년, 주원장의 세력이 대도(大都)에 이르자 원나라 황제(皇帝) 토곤 테무르는 대도(大都)를 버리고 북쪽의 몽골 고원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대도는 주원장에 의해 베이징으로 개칭되었다.
3. 현 북경(北京)은 장개석에 의해 1930년대 후반 북평(北平)에서 북경(北京)으로 변경된 지명이다.
→또한 줄리아노 알레니(Julio Aleni,艾儒略,1582-1649)에 의해 저술된 직방외기(職方外記)에서 몽고는 천산산맥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 학자 장 피에르 드레주는 그의 책 실크로드에서,
“카르피니 神父의 뒤를 이어 성 루이대왕은 蒙古와의 友誼圖謀를 목적으로 하는 使節團을 계속 파견했다. 앙드레 드 롱쥐모가 1249년 두명의 도미니크 사제들과 길을 떠났다.그러나 대칸 구유크가 사망했기 때문에 대신 權力을 잡은 王妃는 카라코룸에 있지 않고, 발하슈 호수 근처에 있었다.“
고 기술함으로써 몽고의 위치가 발하슈호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4. 그렇다면 한자(漢字)로 된 서지적 접근보다 러시아의 지도속에서 몽고의 위치를 찾아볼수는 없을까? 왜냐하면 러시아의 동진(東進)속에서 강력한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러시아는 13세기에 몽고인에게 당했던 수모를 완벽히 보복하여, 풍요로운 중앙아시아 초원의 몽고(蒙古)를 척박하여 살아가기 힘든 현 사막의 한가운데 울란바토르를 세워 몽고라는 나라전체를 옮겨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8세기 이전의 지도에서는 분명 발하슈호 근처에 몽고의 지명(地名) 정도는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5. 다음의 지도는 러시아 고지도(古地圖)로서 1563-1612년 사이에 그려진 지도라고 한다. 이 지도에 보면 몽고어(蒙古語)로 대도(大都)가 캄발리크(cambalich)로 정확하게 발하슈호 위쪽 현 자이산호수의 좌측 오브강 가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지도를 구글어쓰를 통해 북극해에서 대륙으로 통하는 오브강의 위치를 비교하면, 지도 가운에 남북으로 뻗은 산맥의 중간에 있는 발하슈 호수가 정확히 보인다. 발하슈 호 옆은 현 타림분지로 묘사되어 있고, 우측하부에 SANCII가 정확히 표시되어 있다. 산서(山西)다. 현 대륙 감숙(甘肅)의 청해(靑海)를 끼고 있다.
6. 다음은 지도상에 나타난 대도(大都) 즉 캄발리크(cambalich)를 확대한 모습이다.

타슈켄트 지명이 명확히 보이고, 현 자이산호수와 연결된 오브강의 우측에 정확히 cambalich라는 지명이 보인다. 물론 이 지도의 현 몽고지역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cambalu라는 표시는 있다. 하지만 이 표현은 마르코 폴로의 표현인 것이고, 정확한 지명이름은 캄발리크가 맞는 것이다.
7. 몽고(蒙古)의 대도(大都)지역을 현 구글어쓰로 보면 다음과 같다.

명확히 지정할 수는 없지만, 이 지역의 도시를 확대해 보았다.

북위 48도34분 지역의 현 카자흐스탄 동북지역으로 도시명은 Kurshim이다.
위도상으로 보면 프랑스 파리, 독일 뮌헨과 일치하는 지역으로 인간이 거주하기 좋은 지역인 것이 사실이다.
8. 명(明)이 원(元)의 대도(大都)를 정복하여 명(明)의 수도로 삼았다면, 또 청(淸)이 명(明)을 정복하여 북경(北京)을 그들의 수도로 삼았다는 역사적(歷史的) 기록이 사실이라면, 대륙조선(大陸朝鮮)을 연구하는 우리의 북방(北方) 및 서쪽 경계에 대한 그간의 시각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또한 바로잡아야 한다는 당위론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네덜란드 헤이그왕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 있는 1622년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東印度會社)의 <코레아 원정군에 관한 각종 공문서>상의 코레아는 길이가 4-5백밀렌(2,960-3,700km)에 달한다는 기록은 당시 조선(朝鮮)의 정확한 크기였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2019.03.16. 松溪
첫댓글 고 려 영토는 얼 마 나 컸을까?
안녕하세요. <송계>님!
바쁘실텐데 우리 카페에 까지 좋은 글을 게재해주시니,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환국고려"님께서는 고전에 기록된 지형지세를 찾아 현지답사를 통해 많은 부분을 확인, 증거했다고 하시면서 하나 하나 그 증거와 고증을 통해 밝히겠다고 하셨으나, 생각지도 못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분의 글이 올라올까 하는 착각이 들곧 합니다.
조선사를 찾는데에는 다양한 여러 방면의 연구 과정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정말 놀라운 발견이요, 성과라고 봅니다.
자이산호가 '발해'였다는 것과 님께서 말하시는 대도(大都)의 위치는 오늘날의 '발해'와 '북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군요.
더불어 우리가 오늘날 중국이라고 했던 옛 왕조 이를 테면, "북위나 수나라, 당나라 또는 명이나 청등은 모두 중앙아세아와 동구라파에 걸쳐 있었던 나라"들을 말하는 것이고, 이들의 동(東)쪽이 바로 옛 조선왕조였다는 것인데, 이렇게 놓고보면, 동서(東西) 일만리 영역에 조선왕조의 영토가 자리잡게 됩니다.
더불어 북방지대인 평안도와 함경도지방의 사막지대를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댓글로 말씀드리기엔 벅찬 이야기입니다.
<송계>님께서 좋은 글을, 우리 카페의 회원님들을 위해 게재해 주신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늘 번창하시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감사드립니다.
정말 놀라운 발견입니다. 우리역사에 한획을 긋는 한줄기 희망적인 기록입니다. 이기록을 근거로 역사연구를 다시해야될것 같습니다. 건강하세요.
카작동북이면 핵실험장으로 출입금지구역 큼
아 그런식으로 감추면 정말 밝히기는 어려운거군요 에고
발하시 왼쪽에 kitai라고 적혀 있네요. 여기가 거란이군요
예전에는 기후가 온난하여~~
북극해로 배가 다녔을꺼라고 봅니다...
그러니 북쪽 강가에 수도를 정하고....
북극해에서는 유럽이든 그린란드 아메리카를 배로 쉽게 다녔을꺼라고~!